전세사기, 대중의 금융화가 불러온 사회적 재난

[요즘 경제]


세 번째 죽음

세 번째 죽음이 알려지고 나서야 여야 정치권들은 각종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전세사기 피해는 이미 지난해 초부터 사회문제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제 1년이 지나고 연이은 안타까운 죽음이 보도되고 나서야 뒤늦게 정책당국자들은 허둥대고 있다. 이건 직무유기에 가깝다. 도대체 공정과 상식은 어디 숨었던 걸까?

사기는 보통 피해자에게 큰 이득을 줄 것처럼 속여서 손해를 입히는 것을 말하지만, 재난은 그냥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보는 것을 뜻한다. 전세사기를 사회적 재난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다른 금융사기처럼 피해자들에게 큰 이득을 주겠다고 현혹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주거를 미끼로 그들의 보증금을 강탈했기 때문이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투기로 돈을 잃은 것이 아니다. 의식주에 필수적인 주거환경을 마련하고자 사회적으로 공인된 중개사를 통해 합법적 테두리에서 전세 계약을 맺었을 뿐이다. 이들에게 부주의함을 탓하는 시각은 매년 태풍이 불어오는 바닷가에 왜 터를 잡고 살았는지 묻는 것과 같다. 공인중개사까지 얽힌 사기행각에 더 주의를 기울이라 하면, 전세피해자들을 수소문해 임대인과 공인중개사를 뒷조사하고 다녀야 한다는 말인가?

연이은 죽음의 원인을 제공한 인천 건축왕 남모 일당이 동해시 망상 경제자유구역 개발에서 6천 700억 원 사업권을 따냈던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이들이 정치권 인맥과 뒷배를 이용한 것 아니냐는 의심마저 일고 있다. 이들은 주택 2천 700여 채를 보유하고 임대하는 과정에서 은행대출과 전세보증금으로 자금을 돌려막았다. 이 과정에서 전세사기 행각에 고용된 공인중개사들은 임대인을 건실한 건축사업가로 포장하고 미화했고, 집값이 오르고 있어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식으로 임차인들을 속였다. 하지만 금리인상과 부동산 경기 하강으로 사업이 부실에 빠지자 경매로 물건이 넘어갔고, 곧 전세사기 행각이 드러났다. 심지어 이후에도 고용된 공인중개사들은 이 사실을 숨기고 전세계약을 체결했고 보증금을 대신 갚아준다는 이행각서를 작성해 주는 방법으로 임차인들을 기망했다.

보이스피싱 같은 사기행각에 대해서 초기엔 피해자들의 부주의한 행동을 비난했지만, 워낙 심각한 사회문제로 기승을 부리자 이젠 범정부적 대응을 통해 예방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마찬가지로 전세사기 역시 관련된 각 행정 감독기관들이 선제적으로 개입해야 하는 문제이다. 누군가 수백 수천 채의 임대빌라를 소유하고 있는 사실은 국가 전산망 조회만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당연히 임대보증금을 폰지사기처럼 돌려막고 있다는 의심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임대사업자 우대정책으로 전세난을 완화하겠다는 부주의한 발상 때문에 이런 전세사기 사태가 방치된 것이다. 주택 정책 및 금융 관리 감독을 맡고 있는 이들이야말로 이 사태에서 가장 부주의했던 주체들이다.

사회적 재난이라 불리는 이유

왜 방치됐던 것일까? 이야기를 15년 전으로 거슬러 가보자.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근원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라는 부동산버블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당시 미국발 부동산 광풍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었고, 우리나라도 그 여파를 피할 수 없었다. 2002년 미국 부시 정부는 전임 정부의 ‘서민용 주택 확대’ 정책을 ‘한 가정 한 집’이라는 ‘오너십 소사이어티(Ownership Society)’ 정책으로 바꾸면서, 누구라도 대출을 받아 집을 살 수 있도록 하는 부동산 공급 정책을 취했다. 이 정책의 이념적 배경엔 자본주의 사회가 추구하는 책임의식, 자유, 번영의 가치가 깔려 있다. 대중들이 자산을 소유하게 되면 국가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인생을 설계해 부를 축적하고, 자본주의는 번영한다는 논리다.

당시 미국 중앙은행도 이런 정부 정책에 발맞춰 금리를 대폭 낮췄다. 느슨한 관리 감독과 규제 완화 속에 각종 금융상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로써 IT 버블로 꺼진 빈자리를 부동산 버블이 대신하게 됐다. 누구나 살 거처는 있어야 하므로 그 수요는 엄청났다. 하지만 5년 후 금리가 인상되자 주택 버블이 꺼지면서 집이 차압당하고 주거 난민이 대량 발생하는 엄청난 사회적 문제로 비화했다.

지금 전세사기도 전·월세시장 안정화라는 좋은 목표를 위해 출발했지만, 그 방식으로 임대주택사업자 등록 활성화를 택하면서 정책이 오용될 가능성의 첫 단추가 끼워지게 됐다. 이들에 대한 엄청난 세제 혜택 등이 갭투자 이익을 보장해 주는 역할을 해줬고, 수년 동안 1~2%대 초저금리 정책은 임대보증금을 대출로 지탱해 전세사기 규모를 키우는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갭투기 열풍 속에서 저리의 전세대출이 전세가 90%까지 받쳐주면서 대출받은 임차인들의 보증금이 투기꾼들의 돌려막는 돈으로 흘러 들어갔다. 전세사기 피해가 빌라에 집중된 것도, 시세 확인이 잘 안 돼 임의로 시세를 부풀리기 쉽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공인중개사까지 합세한 불법적인 카르텔이 만들어지면서 조직적인 전세사기 마저 등장하게 된 것이다.

결국 이런 전세사기 피해는 예상치 못한 금리인상이 찾아오면서 표면화하기 시작했다. 임대인들의 유동성이 고갈되자 임대기간 2년이 지난 주택부터 피해가 터져 나왔다. 15년 전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도 금리인상과 더불어 더 이상 시장을 받쳐줄 사람이 없어지자 부실이 드러나게 된 것이었다. 이 둘의 차이점이라면 임대인에게 돈을 빌려준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부실 대출을 일삼았던 은행들보다 채권순위에 밀려 한 푼도 건지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심지어 대출을 받아 전세계약을 한 경우가 많아서 적잖은 빚까지 떠안은 경우가 많다.

임대사업자의 투기 실패든, 의도적 보증금 강탈이든, 이 모든 것이 방치된 배경엔 정책 실패와 관리 감독기관의 태만이 자리 잡고 있다. 어느 정부 가릴 것 없이 매매시장에만 관심을 쏟고, 정작 주거환경 지원이 절실한 서민들의 임대시장에 대해선 대출액만 늘려주는 정책으로 시장에 맡겨버렸기 때문이다. 그 소홀함이 지금의 커다란 사회적 재난을 만들어 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갭투자로 변질된 전세제도

전세사기에 대한 대응이 소홀하게 취급됐던 배경엔 한국식 주택임대 제도인 전세를 바라보는 오래된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서민들을 위한 주택금융 제도가 발달하기 전엔 지금처럼 장기 모기지 대출이 없었다. 그래서 임대보증금을 굉장히 높여 주택 구입 자금으로 충당했다. 제도권에서 보장이 안 되니 일종의 주택 사금융의 성격을 띤 전세임대가 발달하게 된 것이다. 임차인은 높은 보증금을 내는 대신 다달이 월세를 내지 않고 1~2년 동안 안정적인 주거를 마련할 수 있으니 서로 윈-윈할 수 있었다. 게다가 정부 주도의 국민임대주택 비중이 작다 보니 전세를 통해 저축하고 자산을 늘리는 방식이 일종의 관습처럼 굳어져 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 제도가 계속 유지되기 위해선 거액의 보증금을 낼 수 있는 임차인이 어느 정도 존재해야 가능하다. 임차인의 보증금을 고스란히 은행에 보관하고 있는 임대인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전세난처럼 보증금 반환에 어려움을 겪는 임대인이 발생하면 민사소송으로 이어지는 사례들이 오래전부터 존재했었다. 그런데 이런 전세는 개인 간 금융거래로 치부되면서 은행대출처럼 공적인 관리 감독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 커다란 임대시장의 안정적 거래를 위해선 양자 간의 계약을 원활히 도와줄 누군가가 꼭 필요하다. 그 빈 곳을 공인중개사들이 메웠고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임차인은 이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전세사기의 발단은 이런 낡은 관습, 거래관계의 비대칭성과 더불어 전세제도가 갭투자로 오용된 현실에 있다. 자본이 없어도 임차인의 보증금만으로 집을 사고팔아 시세 차익을 남길 수 있다는 신박한 논리가 똑똑한 자산증식의 방식으로 인식되고, 이를 전세가 90%에 이르는 전세대출과 100% 보장이라는 전세 보증보험제도가 뒷받침해 주면서 사회적 재난의 씨앗이 생겨난 셈이다. 무자본 갭투자는 타인의 전세보증금으로 시세차익을 남긴다는 것인데, 이는 시세차익을 안겨줄 새로운 매입자 역시 전세보증금 채무를 이어받아 또 다른 시세차익을 기대하는 논리다. 집값이 영원히 오를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은 필연적으로 전세보증금 반환사고의 위험성을 안고 있다. 이런 위험성 높은 투기방식에 2030 젊은 세대가 영혼까지 끌어모아 뛰어들고, 유튜브 채널을 통해 투기 정보가 공유되고 있는 현실이 비통할 뿐이다.

사회적 재난이라 부르는 두 번째 이유는 이처럼 개인의 합리적 투자라 포장된 갭투기가 수백 년 자본주의 역사에서 오랫동안 지속된 버블의 역사와 닮아있기 때문이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 이익을 챙기는 것이 개인에겐 이로운 행동일 수 있어도 집단적으로 확대해 보면 비합리적이고 비윤리적인 행동임을 금융버블의 오랜 역사에서 우리는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이것을 관리 감독할 금융기관을 만들고 금융규제를 체계화했던 것이다.

주거정책 전환을 위한 사회적 교훈

전세사기 재난 역시 피해자 구제정책에서 머물고 끝날 문제가 아니다. 이런 일이 있었으니 앞으로 사람들이 주의할 것이란 기대는 여전히 임대주택 시장에서 벌어지는 약자들의 처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인천 건축왕 남모 일당의 전세 매물에 청년들이 몰렸던 이유는 선순위 근저당이 있어도 당장 시세보다 훨씬 쌌기 때문이다.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청년들에겐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 누구든 주거할 집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주거환경이 열악한 처지에 있는 이들에겐 언제든 또 벌어질 수 있는 사태다.

이제 더 이상 대출정책으로 주거정책을 보완하려는 시각은 정정돼야 한다. 전세자금대출 잔액이 2020년 1월 101조 원에서 지난해 12월 기준 170조 5천억 원으로 3년도 안 돼 70% 가까이 폭증했다. 갭투자자들에겐 물 만난 고기와 다를 바 없었다. 금융이라는 것이 실물경제를 돕는 인체의 핏줄과 같은 것이라고 하는데, 과연 3년간 폭증한 70조에 이르는 전세대출이 사람 사는 경제에 어떤 이로움을 줬는가? 앞으로 날로 확대될 전세사기 사태를 생각하면 허탈하기만 하다. 수십조 원의 전세대출 증가를 자연스러운 시장의 논리라고 그냥 받아들일지, 아니면 그 수십조 원을 재정투자로 돌려 국민임대주택 사업을 대폭 확대할 것인지, 대중의 금융화가 불러온 전세사기라는 사회적 재난에 대해 사회적 교훈과 구조적 대책을 확실히 남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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