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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째 교직에 있는 현직교사입니다. 교원평가에 반대하며 학부모님들께 보냈던 편지입니다. 2학년 4반 학부모님께 단풍이 물드는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학부모님의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온나라가 또다시 교원평가를 두고 소란스럽습니다. 교육인적자원부 홈페이지에 게시된 장관의 서한에 따르면 교원평가는 “자신의 수업이나 교육활동에 대해 동료 교원, 학생, 학부모들로부터 의견을 들어 자기개발을 위한 참고자료로 활용하고자” “교장, 교감 및 동료교사, 학생, 학부모가 참여”하여 “교사의 수업활동에 대해 학생과 학부모의 경우에는 각각 교사의 수업 만족도와 자녀의 학교생활 만족도에 대한 설문조사 방식으로 참여”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어제 점심시간에 식사 도중 어느 선생님께서 "그럼 (교원평가제 되면) 누가 담임하려고 하겠느냐? (담임으로서) 애들에게 잔소리하면 애들이 정색하고 '평가 때 봅시다'하지 않겠느냐"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 좌석에 함께 했던 네 명이 모두 공감하면서 속으로 이거 큰일나겠다 싶어 이렇게 부랴부랴 글을 올립니다. 두 분의 걱정은 이런 것입니다. 교원 평가 실시되려면 그 전에 선행되어야 할 것이 교원평가 실시하는 다른 나라들처럼 교사들에게 학급담임이라는 제도와 그로부터 파생하는 생활지도의 책임을 면해 주어야 합니다. 체벌 없는 새로운 훈육법에 대한 노하우 공유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생활지도는 아직은 일정하게 잔소리가 필요할 텐데 평가에 필요한 "인기" 때문에 잔소리는 고사하고 애들에게 잘 보이려 애쓰면 우리 공교육은 더욱더 급속히 붕괴되지 않을지요. 몇 년 전 모 교육청이 준비도 안 된 채 "체벌금지" 운운했을 때 애들은 경찰에 전화하기 시작했지요. 교사들은 이에 모멸감을 넘어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께서 아시는 바처럼 저는 체벌 없이 어떻게 규율과 훈육이 가능한지 온갖 마음의 상처를 받아도 산행하면서 달래고 이제야 겨우 "아 체벌 없이도 학급운영이 가능할 수 있겠구나"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교육부가 "교원평가" 운운하지요? 어떤 결과가 오겠습니까? 제게는 불 보듯 훤하답니다. 학교폭력문제가 한참 부각되었을 때 교육인적자원부는 학교폭력지도조차 근무성적과 연계시키겠다는 발표를 한 바 있습니다. 이런 의식구조를 가진 행정조직이 교원평가를 추진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지요. 어제 선생님들 대화에서 나온 이야기처럼 이제 선생님들은 담임 안하려고 할 것입니다.. 애들의 문제행동을 애써 외면하고 교사의 역할을 포기하느니 비담임으로 근평 꼴찌 받는 것이 훨씬 속 편하기 대문이지요. 어차피 담임 제대로 하려면 애들에게 미운 털 박혀 "교원평가" 꼴찌할 것이므로.. 교육부의 교원평가제로는 인성교육을 포기하게 만들 것입니다. 제가 교원평가제를 반대하는 이유들입니다. 첫째, 우선 교육부의 교원평가제안이 지식정보사회의 특성을 도외시한 산업시대적인 것에 머물고 있습니다. 교사 경쟁으로 실력 향상 유도하자는 것인데요. 교사의 실력향상은 나눔으로써 가능하지요. 이것은 일반 기업에서조차 상식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IBM의 존 에이커스가 실패한 CEO가 된 원인 중 하나가 서로 다른 지식, 기술, 경험을 가진 직원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정보 공유를 할 수 있는 통로를 차단했기 때문이라고 미 캘리포니아 세인트메리대 키스 데블린 학장이 지적한 바 있습니다. 경쟁 운운하는 것은 지식정보화 시대의 경영원칙과도 배치되는 낡은 발상입니다. 굳이 경쟁을 시키려면 얼마만큼 협력했는가를 경쟁시켜야 합니다. 대기업에서 지식마일리지를 도입하는 업체가 속속 늘고 있습니다. 도대체 교육인적자원부 간부들은 지식경영의 개념은 있는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21세기 교사들은 지식경영의 전도사가 되어야 할 텐데 거꾸로 가자는 평가안입니다.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교사들이 수업 노하우와 자료 등을 서로 나누고 힘을 합쳐야 하는데, 교원평가가 제도화하면 학교에서 이런 협력적 문화가 자취를 감출 것입니다. 경쟁체제 아래에서는 '자기 몫'부터 챙겨야 하기 때문에 학교 교과모임 등의 자발적인 수업연구 풍토를 망가뜨릴 수 있다는 뜻이지요. 학교가 21세기 지식사회에 걸 맞는 조직으로 거듭나고, 구성원들의 자기개발 및 업무성과를 높이기 위하여 지식경영을 도입해야 합니다.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고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여 조직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하여 자율적인 학습조직 운영을 통해 지식경영을 실천하고 이를 확대 발전시키기 위한 체제 구축에 나서야 하는 것이지요. 둘째, 교육부의 평가안은 움트고 있는 교사자율평가마저 질식시키게 됩니다. 저도 몇 년 전부터 학급운영과 수업운영에 대해 학년말에 자발적으로 평가를 받고 이를 다음 해 수업과 학급운영에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는 자율성과 전문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자기 평가서가 됩니다. 그리고 수업에서 선생님이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에 대하여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제도화되어서 모든 선생님이 평가를 하지 않으면 안되고 모든 선생님을 같은 잣대로 평가를 해야 한다고 하면 는 평가가 아닙니다. 일단 평가가 제도화되었다고 생각해 본다면 독자적인 평가를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준안이 되어 버린 평가지가 나간 다음 교사별 독자적인 평가지를 다시 반복해서 보내면 학생은 선생님은 왜 따로 평가하시나요? 혹시 이런 의심의 눈초리는 없을까요? "학교에서 하는 평가는 나에게 불리하니 내 스스로 자기에게 유리한 평가지를 만들었다"고 하는.. 학급운영이나 수업운영은 다양성이 핵심입니다. 이를 통해 계발된 다양한 수업, 학급운영 모델이 "공유"의 시스템을 통해 확산되는 것이지요. "2-3세기 전까지는 10만 -20만 명이 군주와 왕족을 먹여 살리는 시대였지만 지금은 1명의 천재가 10만-20만명을 먹여 살린다"고 합니다. 교육부의 평가안은 이런 창의성, 다양성을 질식시키는 우리 교육에 치명상을 입히게 됩니다. 셋째, 초등학생을 둬보신 학부모들이 퇴출시키고 싶어하는 교사들이란 대개 수업 땡땡이 치는 교사, 아이들 인성교육 소홀히 하는 교사, 촌지만 밝히는 교사, 체벌 교사들일 것입니다. 이런 교사들이 교원평가제 도입되면 퇴출될까요? 학부모들이 분노를 불러일으킨 "퇴출 대상1호"인 그분들은 교원평가가 도입되면 기가 막히게 변신을 하게 됩니다. 애당초 애들이 마음속에 없는 분들이니 그런 변신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입니다. 넷째, 우리 나라 공교육의 위기는 늘 조급한 정책의 실패입니다. 전시행정 위주로 생기는 온갖 잡무를 개선해야 합니다. 몇 년전부터 시행된 준비 안 된 학교평가 때문에 교사들의 수업연구 풍토가 한 차례 심하게 망가졌답니다. 초창기 학교평가 준비로 학교가 본래의 학교평가 취지와는 달리 엄청난 보고서 준비를 요구해 한 달 정도를 심한 소요 사태에 빠뜨려 버렸습니다. 충분한 검토 끝에 부작용을 예상하여 보고서 작성에 한 달 여를 허송세월하도록 만들지 말았어야지요. 또한 제대로 준비되지도 못한 채 C/S 생활기록부 전산화로 잡무만 두 배 세 배 늘였습니다. 교사들의 잡무를 줄여 주어 컴퓨터에 대한 긍정적 의식을 제고할 절호의 기회였건만 오히려 교사들에게는 전산화에 대한 부정적인 의식을 심어주고 좌절감속에 50대 교사들의 조기 퇴직시켜버린 이유중 하나가 되었지요. 다섯째, 교과교실이 없는 담임교실제로 인해 수업 이외의 생활지도 부담이 과중합니다. 지난 5일 부산 모 중학교 2학년 학생이 쉬는 시간에 교실에서 다른 친구와 다투다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오다 숨졌다는 보도를 들었습니다. 현재 우리 나라 중고등학교에서와 같은 일반교실제하에서는 학생들이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 등에 교사의 아무런 감독이나 제재 없이 그들만이 방치되어 있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CCTV를 아예 모든 교실에까지 설치하고 쉬는 시간에 감시를 해야한다는 주장도 나올 법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외국의 경우 교과교실제로 미국영화에서 중고등학생들이 쉬는 시간이면 복도에 있는 자신의 라커(=사물함)에서 다음 시간 준비물을 챙겨 이동하여 지도 부담이 적고 수업연구에 전념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의 역동성은 해가 갈수록 더해 가는 느낌입니다. 언제 또다시 이런 우발적인 사건들이 재발할 지 모르는 아찔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교사들은 온갖 인성교육의 지혜를 짜내 아이들을 바르게 이끌려고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교원평가는 또다른 부담이지요. 여섯째, 교과전문성이 무시된 학교 행정부터 평가하고 개선해야 합니다. 몇 년전 제가 근무하던 어느 학교에서 4개월 이상 지난 어느 날 교사가 바로 앞에 앉은 교사가 무슨 과목 교사인지를 묻는 씁쓸한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현재의 이런 행정위주의 업무 시스템으로는 교과전문성 향상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몇 년 사이에 걸친 일련의 일들이 교무실에서 교과서를 보고 있거나 학급애들과 상담하고 있으면 시간이 많은 참 한가한 - 그래서 무능한 - 교사로 보게 되었답니다. 이런 현실에서 교사들은 이중 삼중의 수업외적인 부담에 시달려 수업연구하고 있으면 한가한 교사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오늘 아침 칠순노모께서 말씀하시더군요. "그럴 바에는 어렵다는 임용고시를 보지 말았어야지.. 왜 시험 봐서 뽑아놓고 이제 와서 흔드는 거냐.. 결국 자르겠다는 것 아니냐? 자기들 기분 내키는 대로 하는 거냐? 가뜩이나 뒤숭숭한 데 할 일들이 없으니까 별 짓을 다한다.." 전교조 가입 17년만에 처음으로 노모께서 "투쟁"에 참여하는 것을 막지 않으실 듯 합니다. 말을 어떻게 하든 제도란 한 번 시행되면 관성을 가져 없애기 힘이 듭니다. 언제든 평가제의 실익을 따져 교사를 옥죄는 도구로 쓰인다는 것을 어머니께서는 본능적으로 파악하고 계신다는 느낌입니다. 칼이란 한 번 빼들면 무언가는 베어야 하기에.. 그러면 그 칼에 가슴속에 애들만 가득한 무지랭이 교사들만 희생양이 되지는 않을지요. 칼을 드시기전에 이 칼이 과연 적당한 칼인지. 꼭 칼이 필요하기는 한 것인지.. 見蚊拔劍(견문발검)이라고 혹 모기 잡으려고 검을 빼드는 것은 아닌지. 생각에 생각을 더해 주시길 바랍니다. 21년을 교직에 몸바치고 이제 작게 나마 교사들의 공유의 마인드로 일어서가는 교실 모습에 감동하며 더욱 애쓰려 하고 있습니다. 교원평가안을 접으셔야 합니다. 제발 5년이고 10년이고 자생력을 갖고 일어설 수 있도록 지켜봐 주십시오. 교육부가 일을 안해서 공교육이 붕괴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합의 없이, 현장의 숨결을 외면한 채 일방적으로 밀어부친 정책들로 인해 오늘이 오고야 만 것이라고 봅니다. 그에 대한 책임을 묻지는 않겠습니다. 수업준비해야 하고 한 교실에 방치된 아이들의 심성을 아우를 온갖 지혜를 짜내야 하기에 저희는 그런 일을 할 만큼 한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협의회에 참여했던 학부모 관련 단체 여러 분께도 이런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원점으로 돌리고 기다려 주십시오. 누가 망가뜨려 놓았든 저희들이 다시 일으키겠습니다. 저희 반 아이들 자율이 몸에 배어서 청소감독 안 해도 청소 안하고 그냥 간 경우 지난 일년 동안 딱 한 번 밖에 없었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될 듯 합니다. 애들도 이렇게 인정하고 칭찬해주면 믿기 어려운 기적을 이루는 데.. 학부모님들께 아무튼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기를 기원하며 편한 마음으로 학교에 오셔서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로 꽃을 피웠으면 합니다. 칭찬도장제도 시행 이후 세 번째까지 되기는 올해 처음입니다. 월요일 학급회의 시간에 피자파티할 예정입니다. 2학기 들어서만도 중간고사 때는 상용이네가 피자를 쏘고 지난 번 백일장 때는 유택이 은정이네가 햄버거를 쏘셨지요. 칭찬도장 2차 때는 현주네 이번에는 승우 네에서 후원하셨습니다. 지훈이 어머니게서 부대찌게 값을 안 받으셔서 지각비도 몇 십 만원 아직도 있어서 모의고사 보는 29일에 학교 주변 식당에 가서 맛있는 만두전골 먹을까 합니다. 애들이 우리반 왜 이렇게 자주 먹냐고 즐거운 비명입니다. 부모님들의 올바른 관심과 애정 덕분에 담임이 애들과 삼촌과 조카처럼 친해지는 느낌입니다. 거듭 감사드립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05년 11월 담임 송형호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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