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진]의 누리하제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작은 일을 하고 있다. '누리하제'는 '몸의 눈과 마음의 눈이 함께 열리는 것'을 말한다. 우리의 눈을 열어, 비정규직 없는 평등세상·해방세상을 만드는 길로 함께 가고 싶다.

"살아있는 류기혁들은 절대로 절망하지 않을 것"

류기혁 열사가 우리들에게 남긴 말

김혜진  / 2005년09월14일 15시24분

한 노동자가 죽었다. 살았을 때 그의 이력은 화려하지 못했다. 협력업체 입사, 한 차례의 소속 변경, 해고... 류기혁 동지는 목숨을 끊기까지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 정부에서도, 민주노총에서도 그 어느 때보다 비정규직 문제를 소리높여 외치고 있으나 정작 그 당사자인 비정규 노동자 류기혁 동지는 자기 목숨을 버려야 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류기혁 동지의 죽음을 동정한다.

그러나 나는 류기혁 동지가 비극적인 삶만을 살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결코 그의 죽음을 동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 땅 비정규직 노동자였으나 비정규직이라는 현실에 갇혀있지 않았다.

그는 노동조합 조합원의 길을 선택했고 부당한 해고에 맞서 투쟁했다. 그의 죽음을 폄훼하는 자들은 그의 활동이 그리 대단한 것이었냐고 반문한다. 나는 ‘그렇게 대단한 것이었다’고 답한다.

어떤 이들의 눈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이 땅에서 비정규직의 처지를 넘어서 자기 스스로가 삶을 개척하고 투쟁하는 것이 얼마나 큰 결단을 요구하는 것인지를 아는 동지들은 당연히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정권과 자본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요구한다. ‘너희들이 불쌍한 것 다 아니까, 그래서 정규직 것을 빼앗아 아주 조금만 줄 테니까 조용히 있으라고.’ 그러나 비정규직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투쟁할 때에는 자본과 정권은 더할 수 없는 탄압으로 일관한다.

죽음의 끄트머리에 맞닿을만큼 사람들을 두들겨패고, 구속하고, 해고한다. 손배 가압류에 납치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른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비정규직이 불쌍한 노동자로 남는 것, 그래서 그들이 주는 대로 가만히 앉아서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것이다.

심지어 노동운동을 한다고 하는 어떤 이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해서 ‘왜 이렇게 극단적으로 투쟁하는가, 정규직에 기대서, 또는 비정규직이라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적당하게 자신의 노동조건을 올리는 방식으로 투쟁하면 되지, 스스로 탄압을 뚫고 갈 힘도 없으면서 왜 투쟁을 하는가?’라고 이야기한다. 이것은 노동자의 언어가 아니다. 동정과 시혜는 원래부터 노동자의 태도가 아니며 연대와 단결과 투쟁이 노동자의 것이다.

류기혁 동지는 투쟁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러나 투쟁의 길을 선택한 비정규노동자들에게 닥친 고통은 너무나 컸다. 그리고 심지어 ‘노동운동’을 하는 우리조차도 그 투쟁에 제대로 연대하지 못했다. 진실로 노동자가 되기를 소망하고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결단조차도 너무나 어렵게 해야 했던 비정규노동자는 그런 현실에서 서서히 죽어갔다.

아직 그 동지에게는 노동운동의 연대는 너무나 멀고 어렵게 느껴졌을 것이고, 두들겨맞고 깨져가는 동료들과 더욱 악에 받쳤을 것이고, 이러한 폭력에 함께 저항하기보다 ‘왜 그리 돌출적으로 투쟁하냐’고 훈수를 두는 이들을 보며 절망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죽었다.

우리가 그의 죽음을 동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죽음에 분노하고, 그의 죽음에 피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그는 초라했던 삶이지만 삶의 주체가 되고자 했고, 그렇게 살고자 하는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류기혁이 바로 자기 자신이다. 그러나 아직도 살아있는 류기혁들은 절대로 절망하지 않을 것이다. 류기혁 동지는 자신의 목에 밧줄을 걸었지만, 유서를 쓸 힘조차 없었던 그의 손으로 그가 쓰고 싶었던 것은 바로 ‘투쟁’과 ‘연대’였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살아있는 많은 류기혁들은, 류기혁 동지의 소리없는 그 외침, ‘투쟁’과 ‘연대’를 마음에 새기며, 여전히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많은 노동자들에게 그것을 실천하라고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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