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미]의 당장 멈춰!
감기부터 죽음까지, 노동자들의 건강에 대한 모든 문제는 자본과 관련이 있다. 건강한 일터, 살맛 나는 일터를 만드는 것이 신자유주의를 막아내고 해방을 이루는 중요한 행위라 생각한다. 골병과 죽음의 현장을 당장 멈추기 위한 움직임을 계속하는 단정과 울컥의 실무형 인간

초콜릿 공장의 10년 후

윙카의 초콜릿 공장을 세우고, 움파룸파족의 빼앗긴 일상을 찾아라

해미  / 2005년11월15일 11시06분

2주쯤 전이었나 보다. 재건축으로 갑자기 중산층스러워진(?) 우리집 근방에 새로 생긴 멀티플렉스에서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란 영화를 봤다. 아이들을 위한 키높이 쿠션이 좌석마다 깔려 있을 정도로 이 영화는 공식적으로 ‘어린이를 위한 판타지’ 또는 ‘어른을 위한 동화’로 설명된다.

워낙 서울에서 외진 동네이고 낮 시간인지라 극장안에는 나를 포함에 20명이 안 되는 관객들이 있었다. 그런데 즐겁게 보기 시작한 팀 버튼의 판타지 영화는 어느새 내게 공포물이 되어갔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로알드 달의 ‘동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라고 한다. 원작을 보지는 못 했지만 영화는 마치 ‘잔혹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그림형제의 그것처럼 잔인했다. 겉으로 보이는 이야기는 간단하다.

윌리 윙카는 어려서부터 억압을 많이 받으며 자라온 어른의 몸을 가진 아이이다. 어려서 거의 ‘양들의 침묵’에서 렉터 박사를 옥죄이던 것과 비슷한 고문기구에 가까운 치과교정기를 끼고 지내야 했던 소년은 치과의사 아버지 밑에서 초콜릿을 못 먹고 자란 한(!)이 있다.

결국 소년은 아버지를 떠나 초콜릿 상점을 차리고 장사가 무지하게 잘 되어 초콜릿 공장을 차린다. 초콜릿 공장이 무지하게 잘 팔리던 당시, 기업의 비밀이 새어나가면서 경영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고 윙카의 초콜릿 공장은 문을 닫는다. 이후 다시 가동을 시작한 초콜릿 공장은 베일에 쌓여 있다.

윙카는 그 신비로운 초콜릿 공장에 아이들 5명을 초대한다. 초콜릿에 포함된 골드 티켓을 가진 아이들을 초대해서 공장을 견학시킨다. 그리고 그 5명의 아이들 중에는 영화의 주인공이자 가난하지만 심성은 착하고, 화목한 가족을 가진(!) 찰리가 있다.

찰리는 당연하게도 돈 많은 아버지를 둔 덕에 가지고 싶은 건 가지고야 마는 떼쟁이나, 남은 건 경쟁심 밖에 없는 투사나, 먹는 것에 대한 욕구를 참지 못하고 계속 먹어대기만 하는 뚱보나, 비디오 게임에 중독되어 있으면서 정나미 떨어질 정도로 잘난 척 하는 헛똑똑이를 제끼고 결국 윙카의 후계자가 된다.

칠거지악을 연상시키는 이런 저런 욕심을 가진 아이들은 패하고 결국 부모 말 잘 듣고 착한(!) 찰리가 윙카에게 가족의 따뜻함과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엄청나게 큰 공장을 물려받기 위한 후계자 수업에 돌입하면서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것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일단 뉴욕의 타임스퀘어 에서 보았던 화려하면서도 엄청 크던 ‘허쉬’를 생각나게 하는 윙카의 초콜릿에 갑자기 거부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욕심을 그저 ‘벌’하기만 하는 내용이 거슬렸다. 그리고 ‘가족’으로 회귀하는 결말이 영 찜찜했다.

하지만 무서울 정도로 짜증이 났던 것은 윙카의 그 ‘초콜릿 공장’이었다.

윙카의 초콜릿 제조 비법이 유출되자 윙카는 노동자들을 ‘산업스파이’로 몰아 대규모의 구조조정을 감행한다. 조그마한 점포에서 시작해서 엄청나게 큰 공장을 지을 때까지 헌신적으로 노력해 온 노동자들을 한순간에 정리해고하고 공장의 문 밖으로 노동자들을 내쫓는다.

공장 문 밖에서 아연실색해서 서 있는 그 많은 노동자들의 눈빛이 정리해고의 칼바람에 목숨을 끊던 우리네 노동자들의 모습이 겹쳤다.

그 후 윙카는 공장을 돌리기 위해 새로운 노동자들을 찾아 나선다. 이들은 바로 밀림 속에 살던 미개부족 ‘움파룸파’ 족과 다람쥐들이다. 말도 잘 통하지 않은 그들을 부족장으로 보이는 자와의 계약을 통해 모두 윙카의 공장에 데려왔다. 부족장은 파견사업체의 대표쯤이 되는 것이고 윙카가 원청 사업주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들어온 움파룸파족과 다람쥐들은 쉬지 않고 일사분란하게 일을 해 낸다. 생긴 것도 똑같이 생긴 움파룸파족은 똑같은 동작과 빠르기로 쉬지 않고 일을 한다. 다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집에도 가지 않고 끊임없이 일을 한다. 뿐만 아니라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신제품 초콜릿을 직접 시식하기도 한다. 그리고 사고의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장인 윙카가 시키는 데로 등을 돌리고 앉아 배를 운전한다.

자동화된 공장은 이전처럼 많은 수의 노동자들이 필요하지 않다. 각각의 분절된 공간에서 맡겨진 단순한 업무들을 아무 불평과 불만 없이 수행할 수 있는 움파룸파족과 다람쥐이면 되는 것이다. 무슨 부작용이 있을 지도 모르는 초콜릿을 그냥 먹일 정도로 윙카에게 움파룸파족은 도구에 불과할 뿐이다. 물론 움파룸파족 중에 일부는 이런 단순 업무뿐만이 아니라 일하는 움파룸파족과 다람쥐를 관리하는 중간관리자의 역할을 한다.

지극히 분절화 된 그들의 노동과 엄청난 노동강도 그리고 그들 위에 신처럼 군림하는 윙카를 바라보면서 이 땅의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가 겹쳐졌다. 정말 기계처럼 시킨 일을 정확하게 해 내는 전체 생산 공정의 부품과 같은 노동자를 또는 노동력을 바라는 자본의 욕심이 그대로 초콜릿 공장안에 녹아 있었다.

10년이 지나면 그 초콜릿 공장에는 골병과 죽음이 만연할 것이다. 그 엄청난 노동강도와 현장 통제속에 움파룸파족은 근골격계 직업병과 정신질환으로 고통을 받을 것이며 누적된 노동강도로 과로사가 급격히 증가할 것이다.

물론 지금의 공정 자체만 놓고 보더라도 죽음과 사고가 끊이지 않을 게 분명한게 윙카의 공장이었다. 너무 끔찍했다. 이 땅, 지금의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가 자본의 노동유연화라는 탐욕속에서 결국 죽어나갈 것이라는 것이 눈앞에 선해졌다.

12월 1일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한다고 한다. 이번 노동자대회에서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혁신’과 ‘투쟁’을 외쳤다. 전체 노동운동에 대한 발언들이 어찌보면 돌출적으로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나오는 것 같은 요즈음...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될 것은 이런 초콜릿 공장과 윙카 같은 자본가가 이미 이 땅을 점령(!)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그저 움파룸파족과 같은 ‘기계’이고 ‘부품’일 뿐이다. 한 10년쯤 후 우리를 쓸 수 없게 되면 그저 버리고 말 부품일 뿐이라는 것이다.

윙카로 표현되는 그리고 그 착한(!) 찰리에게 세습될 자본에 대한 저항을 만들어야 한다. 초콜릿 공장에서 일만 열심히 하는 움파룸파족의 빼앗긴 일상을 되찾고 그 들이 움파룸파족 답게 일하고 즐길 수 있는 투쟁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계급적 전선 속에서 우리는 ‘혁신’을 이야기 할 수 있지 않을까?

윙카의 초콜릿 공장이 멀지 않았다. 이런 투쟁과 혁신을 만들지 못한다면 초콜릿 공장은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이 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미 현실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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