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쌍용차 문제 해결 기원 10만배 기도 나서

[인터뷰] 종호 스님 “노동의 문제를 자기문제로 인식해야”

조계종 노동위원회가 17일부터 쌍용자동차 문제 해결을 기원하는 10만배에 들어간다. 매일 1천배씩 백 일간 대한문 쌍용자동차 분향소 앞에서 릴레이로 이뤄진다. 17일 첫날에는 노동위원장인 종호 스님이 1천배를 올린다. 이후에는 쌍용차 범대위, 각계 시민사회와 일반시민이 100일 동안 10만배를 이어간다. 10만배는 쌍용차뿐 아니라 재능, SJM, 콜트콜텍 등 사업장의 투쟁이 평화적이고 신속하게 해결되길 바라는 차원의 기원이다. 노동위원회가 출범부터 강조한 ‘불교적 해법’의 첫 걸음.

  지난 무차대회 당시, 김정우 쌍용차 지부장의 타종

조계종 노동위원회는 종교계 최초로 종단 직속에 설치된 노동전담기구다. 노동 현안에 ‘불교적 해법’을 제시하겠다는 취지로 지난달 출범했다.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조계종 노동위원회가 노동현장의 신음에 언제나 귀를 기울이고 위로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곳이 될 수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 “노동위원회는 힘없고 소외당하는 노동자의 아픔에 함께하지 못했던 불교계의 반성”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가난하고 소외받는 이들에 대한 ‘자비’를 강조한 부처의 가르침이 곧 조계종 노동위원회의 탄생으로 이어진 것이다.

10만배 기도를 알리는 기자간담회가 열린 12일 오후 인사동, 조계종 노동위원장 종호 스님으로부터 조계종 노동위원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종호 스님은 “젊은 노동자 22명의 죽음을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 노동위원회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이벤트성 행사 같은 건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내내 진정성을 강조했다. 조계종 노동위원회의 활동이 노동자들의 현장에 실질적 힘이 됐으면 한다는 바람이었다.

간담회에 참석한 기자들에게 직접 구입한 ‘의자놀이’를 나눠주며 쌍용자동차와 노동현장에 더욱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져달라고 부탁하는 노동위원장 스님과의 대화를 정리했다.

  조계종 노동위워장 종호스님

- 비정규직, 정리해고, 용역폭력 등 노동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사회가 무한한 성장만을 고집하고 강요하고 있는 탓이다. 대량으로 생산해서 대량으로 소비하는 삶의 방식을 바꿀 때가 됐다. 사실 이러한 성장만능주의가 위기에 봉착했다는 것은 지난 세계금융위기 때부터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다른 나라들은 탈원전을 시도하는 등 생태 산업에 관심을 쏟으며 삶의 방식을 바꾸는 노력을 시작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성장이라는 환상을 강요하고 있다. GDP 3만 불 시대를 운운하는데, 3만 불 시대가 되면 더 많이 일하게 하고 더 많이 착취하게 될 것 아닌가.

그것을 가장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일이 쌍용이나 SJM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용역에게 줄 돈을 노동자에게 주면 될 것인데, 더욱 착취하기 위해 사람에게 쇳덩어리를 던지게 하는 세상이다.


- 성장만을 강요하는 신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문제의식인가?

문제는 90년대부터 신자유주의가 세계적인 추세가 되면서부터 발생했다. 김영삼 정권의 노조법 날치기라든가 노동유연성 논의, 비정규직, 정리해고의 문제. 모두 같은 맥락에서 나오는 문제들이다. 불교계가 나서서 문제제기를 하고 제동을 걸었다는 거창한 표현을 쓸 수는 없겠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노동자들, 특히 ‘88만원세대’나 ‘3포세대’ 같은 말이 익숙해진 젊은 청년들에게 부끄럽고 서글픈 마음이 활동의 근거일 수 있다.

- 종교의 사회참여, 특히 대선정국을 앞둔 시점에서 핵심이슈인 ‘노동’을 들고 나섰다는데 곱지 않은 시선이 있을 수 있다.

‘조계종의 좌경화’란 말도 들었다. 그러나 이건 정치활동도 사회참여도 아니라 종교 본연의 활동이다. 정치활동이니 해도 어쩔 수 없다. 다만 소외받고 힘이 없는 이에게 손을 뻗고 위로하는 종교 본연의 활동을 해나갈 뿐이다. 이것이 시대의 요구고 사람들의 바람이라고 생각한다.

신도 중에도 노동위원회의 활동을 의아해하거나 우려하는 분들이 있다. 그러나 그분들은 이 문제가 역시 자신의 문제이며 자신들도 노동자임을 인식해줬으면 한다. 모든 이들이 사실은 다 노동자 아닌가. 이런 현실이 언제든 내게도 닥칠 수 있고, 이 착취와 탄압의 문제가 내 문제라고 인식하는 자기화의 과정을 신도들에게도 대중에게도 부탁하고 싶다.


- 강조하던 ‘진정성 있는 활동’이 무엇인가

그들과 함께 지내고 싶다. 여름에는 같이 더워하고 겨울에는 같이 추워하면서. 그렇게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진심으로 이해하는 일부터 하고 싶다. 당장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위로를 건네고 그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 전달하는 역할부터 시작할 것이다. 이벤트에만 급급해 얼굴에 금칠하는 활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 노동위원회가 비단 노동뿐 아니라 진보적 이슈들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을까

맡고 있는 직함이 세 가지다. 노동위원장뿐 아니라 실천불교승가회와 영등포장애인복지관에도 자리를 맡고 있다. 다른 진보적 이슈들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웃종교, 시민사회와 함께 연대하면서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다.

- 노동위원회의 활동이 최근 있었던 종단의 불미스러운 일들을 쇄신하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이미지 쇄신 같은 것들을 생각하고 있지 않다. 쉽게 용서받고 이해받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노동위원회는 단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그 불미스러운 일들에 대한 용서는 더욱 오랜 시간 정성 들여 구해야 한다. 다만 노동위원회가 역할을 잘 해내고 그 진정성을 많은 사람이 이해해 준다면 용서를 구하는 시간이 더 짧아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 특히 쌍용자동차에 집중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젊은 목숨 스물두 명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이 죽음을 반드시 멈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목숨만큼은 지켜주고 싶다. 그리고 쌍용자동차 문제는 어떤 상징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쌍용차 문제 해결이 정리해고, 비정규직 문제를 풀어줄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종호 스님은 산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출입문인 ‘일주문’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 나무를 서로 다른 두 개의 기둥이 떠받치는 일주문은 불이(不異)사상을 내포하고 있다고 했다. “당신과 내가 다르지 않으니 노동의 문제를 모두의 문제로 인식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종호 스님은 17일부터 시작되는 10만배의 기도에 처음으로 나선다. 노동하는 중생들이 고통받지 않도록 기원하는 그와 노동위원회의 ‘불교적 해법’이 얼마나 큰 울림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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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 , 조계종 노동위원회 , 종호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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