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선택할 수 있어야 삶도 선택할 수 있다

[연속기고] 투표는 되는데 낙태는 ‘외 않되’?

여성이 낳지만 여성 스스로는 결정할 수 없는 낙태. 이 낙태죄를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한국은 임신중지를 전면 금지하되 일부 경우를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입법례를 취한다. 일단 형법 제27장 ‘낙태의 죄’는 낙태를 전적으로 금지한다. 모자보건법 제14조에서는 다섯 가지 예외적인 낙태 허용 사유를 들고 있다. 본인 또는 배우자가 우생학적/유전학적 장애나 질환을 가졌거나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준)강간 또는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에 임신된 경우의 윤리적 사유, 임신 지속이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의학적 사유 등이다.


여성이 낳지만 결정은 못한다?

우선, 형법상 낙태죄의 문제는 낙태죄를 빌미로 여성에게 금전을 갈취하거나 이별, 이혼 요구를 묵살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2년, 프로라이프 의사들의 고발 이후 여성단체들에는 ‘낙태죄를 빌미로 자신에게 폭력을 구사한다·협박한다’는 상담이 쏟아졌다. 또 낙태를 기본적으로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여성들에게 법적인 처벌은 받지 않더라도 법을 어긴다는 공포심과 죄책감을 느끼게 한다.

모자보건법에서의 문제는 이렇다. 먼저 배우자 동의의 문제가 있다. 법률상·사실상의 배우자가 동의해야 낙태는 합법이 된다. 미성년이거나 혼인하지 않은 경우는 어떨까? 생부가 배우자가 아니면 배우자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가, 아니면 태아 생부의 동의를 받는가? 배우자는 형법상 낙태 행위에 대해 책임지지 않으나 모자보건법상 동의권은 가진다. 여성들의 재생산권을 남성이 통제하는 상황인 것이다.

낙태를 금지하는 사유들도 문제다. 이 사유들은 우생학적인 관점으로 임신 유지와 중단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 ‘본인 또는 배우자가 대통령령이 정하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 장애나 신체 질환,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에 낙태를 ‘허’한다. ‘우생학적’이라는 표현은 그 자체로 차별적이지 않은가? 이는 장애인 여성들의 재생산권을 제한하고 장애와 질병의 유무를 기준으로 국가가 국민을 ‘차별’하고 ‘선택’한다.

기한의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모자보건법이 정하는 기한은 모체의 건강을 해친다 해도 임신 24주 내로 제한된다. 이외에도 모자보건법에서 예외적으로 허용된 임신중지의 주체는 의사이며, 허용되는 행위는 그 의사가 하는 인공임신중절수술이다. 임신의 주체인 여성은 지워진다.

형법 제정 이후 한 번도 개정된 적 없는 ‘낙태죄’ 조항은 국가의 필요와 이익에 따라 사문화됐다가 부활하는 ‘법이되 법이지 않은’ 법이다. 국가는 시기별 필요와 이익에 따라 ‘낙태’를 조장해왔다.

여성을 자기 삶을 계획할 권리의 주체로서 인정하지 않은 채, 한때는 출산율을 낮춘다는 명목으로 최근에는 출산율을 높이는 해결수단으로 ‘생명존중’을 내세워 여성의 몸과 성을 통제하고 있다. 특히 저출산 담론 속에서 여성은 ‘불법낙태 단속’의 대상으로 전락해 출산을 강요받고, ‘일·가정 양립’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시장에서의 차별과 비정규직화를 강요받고 있다. 이는 국가가 임신한 여성을 규제하는 것을 넘어 여성의 몸에 대한 통제를 통해 여성에게 성적 행위규범을 강제적으로 부과하는 것이다.

낙태를 선택할 수 있어야 삶을 선택할 수 있다


형법상 ‘낙태죄’가 존재하는 이상, 여성들은 끊임없이 음성적 수술로 내몰려 건강과 삶을 위협받는 상황에 놓일 것이며, 임신중절은 낙인과 협박의 수단이 되어 여성의 안전을 위협할 것이다. 또 임신중절을 한 여성과 의사들에 대해 ‘비도덕’과 ‘불법’이라는 혐의를 씌워 처벌을 강화하고, 여성의 몸을 통제하려는 국가의 움직임은 계속될 것이다.

모든 여성이 임신, 출산, 임신중지(낙태), 양육에 이르는 재생산 관련 경험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성만의 특수한 경험이라는 점에서 여성은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성관계, 임신, 임신중지(낙태), 출산 등의 문제에 대해 스스로의 의지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주체로 인정받아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 임신을 중단한 여성을 ‘낙태죄’로 처벌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후보를 원한다. 장애와 질병을 임신중절사유로 허용함으로써 차별을 재생산하는 우생학적 모자보건법 조항 개정을 약속하는 후보를 원한다. 피임/임신·임신중지·출산 등의 정보 및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권과 여성의 몸과 삶의 권리 보장을 약속하는 후보를 원한다. 결혼유무·성적지향·장애와 질병·경제적 차이에 대한 차별과 국가의 통제를 넘어선 삶의 권리 보장을 약속하는 후보를 원한다.

낙태를 선택할 수 있어야 삶을 선택할 수 있다. 여성에겐 투표할 권리도 있고, 삶을 결정할 권리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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