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문화. 여성에 대한 신체적이거나 언어적인 방식의 성적 공격성이 정상화, 규범화되고 장려되는 문화.(1) 위의 이야기처럼, 텔레그램 N번방을 비롯한 각종 성범죄들은 강간문화, 여성 억압적 문화를 먹고 자랐다.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와 정복, 통제, 지배, 폭력은 남성의 정상성이나 본성 혹은 남성다움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이 같은 문화는 누군가에게 돈이 됐다. 강간문화는 점차 산업과 자본으로 성장했고, 이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여성 억압적 콘텐츠들이 체계적으로 거래될 수 있었다.
자본이 재편한 포르노산업은 더욱 자극적이고 하드코어적인 콘텐츠를 생산해 냈다. 그리고 기술의 발전과 시장 경쟁에 힘입어 구매자들은 어느 때보다도 손쉽게 포르노그래피에 접근할 수 있게 됐다. 이들은 단순한 시청자를 넘어 직접 생산자로서 또는 창작자로서 새로운 포르노그래피를 만들어냈다. 그 과정에서 ‘상상의 자유’, 혹은 ‘성적 취향’으로 포장됐던 여성 폭력들은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드나들며 실제화됐다. 국가는 언제나 방관자로서, 혹은 조력자 내지 공모자로서 존재했다. 국가는 여성을 도구화, 상품화하며 ‘남성 국가’로서의 발전을 꾀했다.
도대체 ‘합법적 성인물’이 뭔데?
지난해 2월, 방송통신위원회는 해외 불법 음란물 사이트 895곳의 접속을 원천 봉쇄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사이트 대부분에서 불법 촬영물이 유통되고 있던 까닭이었다. 곧바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등에서 반발이 일었다. “성인이 성인물을 보겠다는데 정부가 막는 것이냐”는 항의부터 “정부가 국민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 “성인물 차단은 남성의 강제적 성욕 억제로 더 크고 무거운 범죄가 일어날 수 있다”는 등의 주장도 이어졌다.
화들짝 논란 방통위는 곧바로 해명자료를 내놨다. “‘합법적인 성인영상물’이 아닌 ‘아동음란물 등 불법영상물’에 대한 접속 차단”이며 “합법적인 성인영상물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합법적인 성인영상물’의 기준은 무엇일까. 공식적으로 한국에서 포르노물은 불법이다. 하지만 현행법상 음란물에 대한 구체적 개념 정의는 마련돼 있지 않다. 그러다보니 음란물을 구분하는 기준은 전적으로 판례에 의존하고 있다.
대법원은 포르노그래피를 “전체적으로 관찰·평가해 볼 때 단순히 저속하다거나 문란한 느낌을 준다는 정도를 넘어서서 존중·보호되어야 할 인격을 갖춘 존재인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왜곡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노골적인 방법으로 성적 부위나 행위를 적나라하게 표현 또는 묘사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2) 헌법재판소 역시 “인간존엄 내지 인간성을 왜곡하는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성표현으로서, 오로지 성적 흥미에만 호소할 뿐 전체적으로 보아 하등의 문학적, 예술적, 과학적 또는 정치적 가치를 지니지 않은 것으로서, 사회의 건전한 성도덕을 크게 해칠 뿐만 아니라 사상의 경쟁메커니즘에 의해서도 그 해악이 해소되기 어려워 언론, 출판의 자유에 의한 보장을 받지 않는 것”이라고 정의했다.(3)
판례에 따르면, 사실상 현재 ‘합법적’으로 송출되는 성인채널의 포르노물을 포함해 웹하드 사이트에 떠돌아다니는 성인 영상물, 인터넷 성인방송 등 대다수가 불법이다. 유료 성인방송 채널만 보더라도 대다수의 영상물들이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를 비롯해 폭력, 노예화, 강간, 추행 등 성적 모독을 부추기는 내용들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포르노 자체의 유해성 여부를 떠나, 현재 유통되고 있는 포르노 대부분이 ‘존중·보호되어야 할 인격을 갖춘 존재인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왜곡’하고 있다는 의미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모든 포르노그래피가 다 안 된다는 것이 아니다. 포르노그래피 안에서 여성을 성적인 도구로 대하는 방식, 여성혐오, 비인간화가 얼마나 당연하게 반복되는지에 초점을 맞추자는 것”이라며 “현재의 포르노그래피는 남성의 시선에서 여성에 대한 과잉된 폭력과 섹스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오로지 한국에서만 포르노가 ‘불법’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오지만, 사실 서구에서도 여성의 존엄성을 해지는 포르노들은 불법으로 규제된다. 서구에서는 소위 ‘하드코어 포르노그래피’를 ‘금지 영역의 성표현물로 폭력적인 성표현물, 비폭력적이지만 인간의 지위를 저하시키거나 품위를 손상시키며 여성을 남성의 종속적인 대상으로만 묘사하는 성표현물, 아동을 대상으로 한 아동 포르노그래피, 성에 관한 일반인의 가치관과 직접적으로 배치되는 성표현물’이라 정의한다. 그리고 이것들은 형법적으로 성인과 청소년 모두에게 금지 대상이다.(4)
상황이 이렇지만 정부는 지금껏 상업적으로 유통되는 포르노물을 묵인해왔다. 성인 영상물 제재 기준 또한 여성에 대한 성적 도구화나 폭력 여부가 아닌 ‘주요부위 노출’ 여부에 맞춰져 있다. 이런 까닭은 국내 유일의 위성방송 사업자인 KT를 비롯해 다수의 유선방송사업자와 통신사 등의 주 수입원이 포르노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2003년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산업 분야 음란물 실태 및 종합대책 마련 연구〉 보고서를 통해 “재정상의 이유로 저질의 성인물 방영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케이블TV와 위성방송에서의 음란물 제공은 이미 방송 의미의 수위를 넘어섰다”며 “우리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심의는 문제 장면을 지적하거나 삭제하는 형식적이고 기계적인 심의가 주를 이룬다. 사후심의를 악용해 심의 기준을 무시하거나, 심의에서 지적받는 프로그램이 시청률이 높다는 이유로 특별대우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여성을 ‘상품화’ 하면서 그들의 존재를 지워나간 사람들
애초부터 여성의 ‘성’을 동원하고 상품화하면서도, 그들의 존재를 지워나간 것은 정부였다. 박정희 정권 시절, 경제성장을 위해 기지촌 성매매 산업을 활성화시키고, 젊은 여성들을 ‘관광산업’ 종사자로 고용했지만 이들에게 ‘노동자’라는 이름은 주어지지 않았다. 당시 정부가 여성 노동자를 관광산업의 핵심 자원으로 동원하면서 해당 산업은 30% 이상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고, 관광객 100만 돌파의 신화를 만들어냈다.(5) 조혜민 정의당 여성본부장은 “소위 국가발전 과정 혹은 산업화 과정에서 국가가 여성을 상품화하는 측면이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여성은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전두환 정부 시절에는 광주 민주화운동 직후의 민심을 잠재우기 위해 유흥업소와 접객업소의 할당제를 폐지했다. 문화정책으로는 일명 ‘3S’ 정책, 즉 ‘유흥·향락산업’(Sex) 부양과 함께 ‘에로영화’(Screen)를 양산한 검열완화와 ‘스포츠’(Sports) 장려 정책을 펼쳤다. 여성의 성을 매개로 돈을 벌어 들였지만 법·제도적 억압과 통제는 여성들에게만 가해졌다. 일례로 1961년 시행된 〈윤락행위 등 방지법〉은 성매매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성매매 여성뿐 아니라 구매자까지 처벌토록 했다. 하지만 구매자가 처벌받았다는 기록은 극소수에 그친다. 2004년에 시행된 성매매특별법 역시 성매매 여성들은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았고, 경찰의 무자비한 단속에 여성들이 자살하는 사건들이 발생했으며, 법 집행에 있어서도 형평성과 일관성이 결여됐다는 비판을 받았다.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의 유나 활동가는 “(성착취 산업에 대해) 현재까지도 국가는 묵인관리체계를 지속하고 있다. 지금의 국가는 ‘남성국가’의 모습을 띠고, 시민과 시민이 아니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분할하면서 정상, 비정상의 영역으로 통치를 이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송란희 여성의전화 사무처장 역시 “지금까지 국가가 여성을 수단화하면서 ‘국가 발전’과 같은 이름으로 여성을 대상화하고 착취하는 역사가 이어져 왔다”며 “여성을 ‘보호받는 여성’과 그럴 수 없는 여성으로 구분하면서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를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송 차무처장은 “N번방 사건에서도 보호받는 여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을 구분하려는 기조가 나타나고 있다. 지금은 성인과 미성년으로 나누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성인이 아닌 사람 중에도 이력이 있는지 없는지로 나누게 될 것”이라며 “가해자에 대해 집중하지 않고 피해자 판별에만 집중하려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문제도 여전히 논란거리다. 최근까지도 N번방과 불법촬영물 촬영 및 유통 등의 범죄 가해자 등에 대한 법적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지난 4월 22일, 법원은 N번방 운영자인 ‘켈리’에게 고작 징역 1년을 선고했다. 검찰은 항소조차 하지 않았다. 이날 디지털 성착취 공동대책위는 성명을 내고 “N번방 핵심 운영자 중 한 사람인 ‘켈리’는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9만여 개를 소지하고 이 중 2,590여 개를 판매해 8천 7백만 원이 넘는 이득을 챙긴 가해자”라며 “징역 1년이라는 가벼운 판결이 내려진 것에 국민은 분노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회변혁노동자당 여성사업팀에서 활동하는 지수 씨는 “정부와 사법기관이 성범죄, 성착취 행위자들에게 어떤 시그널을 줬나. 행위자들에게 어떤 경고도 보내지 못했다. 사회가 이런 범죄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느냐를 생각해 봤을 때, 사실상 국가는 방조, 방치 말고 한 것이 없다”라고 지적했다.
이어서 그는 “기술의 발전으로 전통적 성산업과는 다른 형태의 새로운 성산업이 자리를 잡았으며, 이런 것들이 많은 돈을 벌어들인다는 것이 확인됐다”며 “하지만 정부의 규제나 관심, 논의, 피해자 지원 등이 사실상 작동하지 않으면서 N번방 사건과 같은 여러 범죄들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각주>
1. 나무위키
2. 대법원 2008.3.13., 선고, 2006도3558 판결
3. 헌법재판소 1998.4.30. 95헌가 16결정
4. 2003.9, 문화관광부, 문화산업 분야 음란물 실태 및 종합대책 마련 연구
5. 박정미, 한국 성매매정책에 관한 연구,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