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차분히 내립니다. 얕게 묻힌 작디작은 당근씨가 밖으로 나올까, 막 나오기 시작한 감자싹에 상처가 날까, 봄비는 자분자분 부드럽게 땅에 내려앉습니다. 4월 16일도 지나고 봄 같지 않은 봄이 유하네에게도 찾아옵니다.
유하네 8평 작은 집 앞에는 400평 정도 되는 밭이 있습니다. 문전옥답이라고 하지요. 문만 열고 나가면 많은 것들을 키울 수 있는 밭이 있습니다. 이 밭은 원래 집터였습니다. 집이 올려져 있고 사람이 매일 밟으며 지나갔으니 땅은 무지 딱딱했습니다. 또 유하네 집을 짓기 위해 포크레인이며 큰 트럭들이 마구 밟아놨으니 누가 봐도 밭이라 볼 수 없었죠. 씨앗들이 뿌리를 쉽게 내리려면 흙들이 포슬포슬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밭도 절로 있는 것이 아니라 농부의 손길이 닿아 만들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겨울에 이사 온 유하네는 봄이 오자 밭 만들기 대작전에 들어갔습니다.
하얀 도화지 같은 밭에 그림을 그려봅니다. 일단 밭 사이로 길을 만듭니다. 이제부터 사람은 길로만 다닙니다. 마당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유하가 “왜 이리로만 다녀야 해”라며 뾰로통해집니다. 엄마와 아빠는 “이제 이곳은 놀이터가 아니고 밭이니까. 유하가 먹을 맛난 채소들을 키워야 하는데 우리가 막 밟으면 채소들이 자랄 수 없잖아”라고 합니다. 사각형 땅에 십자로 길을 내고 밭을 네 군데로 나눴습니다. 유하 아빠가 삽을 들고 나섭니다. 이 동네에서 70년 가까이 사셨다는, 올해 87세가 되신 앞집 할머니가 혀를 끌끌 차며 오십니다. “밭을 기계로 삶아야지. 삽을 들고 어쩌자는 거야.” ‘밭을 삶아? 냄비에 넣고 삶아?’ 처음 들어본 농사 전문 용어에 당황합니다. ‘삶다’는 말의 뜻 중에 ‘논밭의 흙을 써래로 썰고 나래로 골라 노글노글하게 만들다’가 있네요.
▲ 밭을 만드는 모습 [출처: 이꽃맘] |
땅 속의 작은 구멍들
보통 봄이 되면 농부들은 집마다 하나씩 있는 커다란 트랙터로 밭을 갈아엎습니다. 경운을 한다고 하죠. 소똥 등으로 만든 퇴비를 잔뜩 뿌리고 밭을 갈아엎습니다. 겨우내 딱딱해진 땅을 보드랍게 만들면서 밑거름을 땅에 넣어주는 겁니다. 유하네는 기계로 밭을 갈아엎는 것이 땅에 어떤 영향을 줄까 고민합니다. 물론 수 천만 원 하는 기계가 없기도 하지만 최대한 자연스러운 농법을 추구하는 유하네에게 강제로 땅을 매년 갈아엎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저 무거운 트랙터가 매년 밭을 꾹꾹 밟으니 겉은 부드러워 보일지 몰라도 땅속은 그렇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수차례 귀농학교를 다닌 유하 아빠말로는 경단층이라는 것이 생겨 땅이 숨을 쉴 수 없게 돼 땅속 미생물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없다고 합니다. 미생물이며 곤충들이 함께 살아가야 땅이 건강해지고, 건강한 땅에서 자란 채소들이 사람들의 몸에도 건강을 줄 것이라는 마음으로 유하네는 기계를 쓰지 않고 최소한의 깊이만 갈아 엎어주기로 했습니다.
유하 아빠가 한 삽 땅을 뒤엎으면 유하 엄마는 돌을 골라내고 땅 속에 수십 년 묻혀 있었을 비닐이며 쓰레기를 골라냅니다. “땅 속에 왜 신발이 묻혀 있는 거야?” 함께 일을 하는 유하와 세하도 땅에 철퍼덕 앉아 보물찾기 하듯 쓰레기들을 골라냅니다. 전 주인이 집터로 썼으니 아무렇게 버린 쓰레기들이 땅속 깊이 들어있던 거죠. 이렇게 하다간 이랑도 못 만들고 한 해가 지나갈 것 같습니다. 네 칸 중 한 칸을 뒤집고 나머지는 내년을 기약하기로 합니다. 레이크로 흙을 긁어모아 이랑이며 고랑을 만듭니다. 다행히 강릉에 사는 농부 선배가 밭귀퉁이에 방치되어 있던 작은 관리기 하나를 가져가라고 합니다. 기계를 쓰지 않겠다는 높은 결의(!)를 살짝 무너뜨리고 낡은 트럭을 몰고 가 얼른 받아왔습니다. 땅 상태를 본 유하 아빠가 최소한 한 번은 갈아엎어야겠다는 결심을 한 순간입니다. 삽도 들어가지 않는 밭에 채소를 키우기는 어려우니 말이죠. 마음대로 되지 않네요.
갔다 섰다를 반복하는 오래된 관리기로 땅을 조금 부드럽게 만든 후 고랑과 이랑을 만듭니다. 이랑에는 식물을 심고 고랑으로는 사람들이 걸어 다니며 농사를 짓습니다. 식물이 자라는 이랑을 사람이 밟지 않으니 앞으로는 땅을 갈아엎지 않아도 됩니다. 식물들의 뿌리가, 곤충들의 먹이활동이 땅을 보드랍게 만들어 줄 테니 말이죠. 당근씨를 뿌리기 위해 호미로 이랑에 난 잡초들을 뽑습니다. 호미로 땅을 툭 친 순간 동그란 구멍이 보입니다. 씨를 뿌리겠다며 당근씨 봉투를 들고 있던 세하가 “쥐구멍이다”라고 외칩니다. 순간 얇고 작은 당근씨가 후두둑 땅으로 떨어집니다. 짜증이 올라오지만 ‘침착해’를 두 번 외치고 유하 엄마는 친절한 목소리로 “그러네. 두더지랑 땅쥐가 땅 속에 구멍을 만들었네”라고 합니다. 유하 엄마는 쥐를 끔찍이도 싫어하지만 “쥐들이 일을 열심히 해주니 땅이 부드러워지네”하며 호미로 골을 내고 세하와 당근씨를 뿌립니다.
▲ 밭 가는 것을 도와주는 세하 [출처: 이꽃맘] |
옻나무도 부리는 텃새
유하네는 앞집 할머니가 사시는 집 뒤에 있는 밭도 빌렸습니다. 밭 한 쪽에 방치되어 잘 자라지 못한 대추나무를 베어내고 뿌리를 캐내 채소밭을 만들었습니다. 작년 가을 좋은 마늘씨를 구해 심었습니다. 지나가시던 마을대장 할아버지가 “마늘잎이 좋네”라며 칭찬을 하십니다.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처음 받은 칭찬이었습니다. 다른 밭처럼 갈아엎지도 않고 비닐을 깔지도 않았지만 유하네의 삽질을 기억하는 듯 마늘싹은 추운 겨울을 견디고 딱딱한 땅을 뚫고 나왔습니다. 마늘이 뿌리로, 잎으로 땅을 뒤집어 주었으니 더욱 부드러운 힘을 가진 멋진 밭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3년째 밭을 만들고 있었는데 앞집 할머니 자녀들이 유하네를 찾아왔습니다. 내년부터는 우리가 농사를 지으려고 하니 밭을 내놓으라고 합니다. 늙으신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옆에서 텃밭 농사를 지으며 함께하겠다는 자식들의 착한 마음이었지만 유하네에게는 청천벽력입니다. “어차피 우리 밭도 아니었는데 뭐. 이 기회에 대출을 받아 좋은 밭 하나 사자.” 유하 아빠는 위로의 말과 함께 더 큰 꿈을 꿨지만 소심한 유하 엄마는 “그동안 저 밭 만드느라 고생했는데…”하며 안타까운 마음에 마늘잎 사이를 걸어봅니다.
앞집 할머니 자식들은 “우리에게 권리가 있다”고 했습니다. 마을 곳곳에 있는 무덤을 벌초하는 대신 빌려 쓰는 밭이었습니다. 할머니가 힘들어 농사를 짓지 못하시면서 마을 다른 분께 밭 임대를 넘겼고 유하네가 이사 오자 “집 앞에 있으니 너희가 벌초하고 농사지어봐”하며 빌려주신 밭입니다. 밭주인이 서울에 살아 내려와 보지는 않지만 유하 아빠는 추석이면 7-8개 되는 무덤을 찾아 벌초를 했습니다. 쑥이며 망초대며 환삼덩굴로 뒤엉켜 있던 밭을 낫으로, 삽으로 정리하며 조금씩 밭을 만들고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내놓으라니 많이 속상했습니다. 농림부 통계를 보니 귀농 실패의 큰 이유 중 하나가 이웃과의 갈등, 일명 텃새라던데 우리한테도 비슷한 상황이 오는 건 아닌가 걱정도 됐습니다. “우리에게 권리가 있다”며 땅주인과의 관계, 자신들이 이곳에서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 등등 수십 년간의 역사를 읊으며 유하네의 지난 3년간의 노력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의 말을 하는데 화가 났습니다. 며칠 전 밭둑에 늙은 호박을 심어보자고 아무렇게나 자라고 있던 옻나무를 베어내고 정리하다 세하에게 옻이 올랐습니다. 아빠를 도와주겠다며 옻나무 가지를 맨손으로 만진 까닭입니다. 아침에 팅팅 부운 세하 얼굴에 약을 발라주다 “옻나무까지 우리한테 텃새야?!”라며 괜히 심술을 부려봅니다.
▲ 세하가 옻에 올라 우는 모습 [출처: 이꽃맘] |
땀만큼, 딱 그만큼
오늘도 유하네는 밭을 만들기 위해 나섭니다. 오늘은 유하네 집 옆 골짜기 사이에 있는 밭으로 향합니다. 작년 봄 아카시아 나무 밑 그늘이 지는 곳에 곰취를 심었습니다. 그늘을 좋아하는 곰취는 골짜기에 심기 좋은 채소입니다. 반짝거리는 연두색 곰취잎이 예쁘게 나왔습니다. 내년이면 장아찌를 담아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올해는 햇볕이 들어올 수 있게 아카시아 나무를 베어내고 감자랑 당근이랑 더덕을 심었습니다. 유하네가 흘린 땀만큼, 딱 그만큼의 밭이 만들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