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환자장기요양, 요양이 아닌 ‘사육’

에이즈인권단체, “에이즈환자는 왜 사망했는가?” 증언대회 열어

“에이즈환자는 환자가 아니라 돈이며 요양이 아니라 ‘사육’이다.”,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비슷했다. 굉장히 폐쇄적이다. 일하면서 저도 모르게 상황들이 이해가 갔다. 간병인 1명에 환자가 3-4명이라고 했는데, 실제로는 2배였다. 청결하게 보이기 위해 환자들을 침대에 묶기도 한다.”

에이즈환자장기요양사업 위탁기관 S병원에서 간병인으로 일했던 증언자 E, D씨의 발언이다.

최근 갑작스럽게 사망한 에이즈환자의 죽음을 계기로, 3년간 은폐된 에이즈환자 장기요양사업에 대해 증언자들이 말문을 열었다.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는 5일 오전 서울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배움터에서 “에이즈환자는 왜 사망했는가”를 주제로 3년간 은폐된 에이즈환자 장기요양사업에 대한 증언 대회를 열고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사건 당사자인 김모 환자(35세)는 지난 6월 16일부터 8월 8일까지 서울 시내의 한 대형병원원에서 입원치료를 받고 S병원으로 전원한 후 13일만인 21일 돌연 사망했다. 사망 3일 전 김 환자는 호흡곤란을 인지, 치료를 받던 병원으로 옮겨달라고 요청했지만 S병원 측은 이를 묵살했다.

에이즈환자, 병원으로 이송된 후 돌연 사망

  권미란 나누리+ 활동가가 정신질환 에이즈환자 장기요양사업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증언자들은 무대 뒤에서 증언했다.

단체들은 S병원이 에이즈환자에게 적절한 의료적 조처를 하지 않은 채 원래 치료를 받던 병원으로 이송해달라는 환자의 요구를 무시하고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본다.

증언자들에 따르면, 애초 S병원으로 이송 전 20여 일간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김모 환자의 건강 상태는 양호했다.

당시 그를 돌본 증언자 I씨는 “복막염으로 인해 소장 천공이 생겨 인공항문을 달았지만 간병하는 동안에도 그리고 퇴원시에도 김 환자를 치료했던 대형병원 의료진이 사망의 가능성이나 위중함을 언급하거나 설명하는 것을 들어본 적 없다”며 “힘없이 돌아가셨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고 밝혔다. 그는 또 “김 환자가 치료와 회복에 대한 의지가 강했다”고 덧붙였다.

환자가 사망에 이르게 된 경우에 대해 지난해 말까지 국가에이즈관리사업 모니터단 활동을 했던 김종훈 증언자는 환자 지인과 요양병원 측 사회복지사로부터 확인한 내용을 토대로 병원이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무시하고 환자를 병원으로 실어나르는 데 드는 응급차 비용 30-50만원을 문제로 환자를 방치했다는 점에 책임이 있다고 본다. 병원은 또, 수액이 없다는 이유로 대형병원에서 환자에게 위중하다고 당부한 수액처지도 하지 않았다.

S병원, “요양이 아닌 ‘사육’”

단체들은 김 환자의 죽음은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예견된 일이었다고 제기한다. 환자 돌봄 보다는 통제와 수익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병원 운영 구조 때문이다.

8명의 증언자를 인터뷰한 권미란 나누리+ 활동가에 따르면, 환자 치료와 요양 방치 외에도 병원은 부당한 방법으로 수익을 추구하며 에이즈환자에 대한 차별과 징벌도 자행했다. 또한, 에이즈환자에 대한 감시 및 프라이버시 침해는 물론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무시되기도 일쑤였다. 열악한 노동조건에 있는 간병인에 대해서는 병원 문제에 대한 입막음과 부당한 지시가 내려졌다.

처참한 병원 현실에 대한 간병인, 사회복지사, 의과대 교수 등 모두 5명의 증언은 생생했다.

국가에이즈관리사업모니터단 상담사업 모니터팀장 이훈재 인하대 의과대 교수는 2011년 “몇몇 간병인들이 환자를 대상으로 폭언, 구타 등의 행위가 있다”며 “과도한 물리재활치료, 짧은 배식시간, 가혹행위를 유발하는 요양병원의 병원 방침 등의 문제를 제보해, 추가 조사를 통해 다수의 환자들로부터 사실을 확인 받았다”고 밝혔다. 이후 병원은 문제가 된 2명의 간병인을 해고했을 뿐이다.

간병인인 D씨는 “에이즈환자들은 S병원에 대해 매우 감사해했다. 죄의식을 만드는 사회로부터 숨을 쉴 수 있는 너무 감사한 곳이었지만 폐쇄성이 짙어가면서 겉모습을 관리하는 데 만 치중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환자가 많다보니 식사시간에는 어쩔 수 없이 급하게 먹어야 하는 상황이어서 변비를 앓는 환자, 소화불량으로 복부 비만인 환자가 많다”고 전한다. 또, “간병인뿐 아니라 간호사나 사회복지사의 업무 또한 과다해 병이 악화돼 본원으로 가는 환자들이 많다”고도 덧붙였다.

지난해 9-12월까지 S병원에서 간병인으로 일한 증언자 E씨는 “간호사들은 욕창환자의 드레싱을 해주는 것 뿐이며 기저귀 갈 때는 변 냄새난다고 냄새가 빠질 때까지 들어오지 않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또 “환자가 설사를 하루 10번 넘게 한 적이 있었는데, 일주일 후에야 상태가 매우 악화되자 서울의료원에 보냈고, 보호자가 없는 외국인 환자 역시 서울의료원 감염내과의사의 방문 진료 후 서울의료원으로 옮겼는데 결국 사망했다”고 밝혔다.

증언자 F씨는 “환자들에게 병원 건물 밖으로 못나가게 하지만 병원 내에는 운동시설이 없다”고 전하는 한편, “환자들은 정규집회(예배)에 참여해야 한다. 깨워서 기도하자고 한다. 와상환자도 시트에 앉혀 참여하게끔 한다”고 지적했다.

2011년 S병원 성폭력 은폐로 에이즈환자 인권 침해 확대

단체들은 2011년 S병원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을 국가기관이 방치, 은폐해 문제를 키웠다고 본다.

2011년 S병원 성폭행 사건은 모 간병인이 환자를 지속적으로 성폭행한다는 한 간병인의 제보로 외부에 알려졌다. 환자는 60대 남자로서 거의 실명상태였으며 의사소통도 자유롭지 않았다. 당시 병원은 가해자로 지목된 간병인을 해임, 질병관리본부는 피해자를 방문 조사했으나 환자가 피해사실을 명확히 이야기하기를 꺼렸다고 밝힌 것이 조사의 전부였다.

이에 대해 증언한 이훈재 인하대 교수는 “2011년도에 진정을 냈는데, 인권위는 조사권이 없다는 이유로 남양주 경찰서에 사건을 넘겼고, 이후 남양주경찰서로부터 6개월 만에 전화가 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관련자들은 모두 생활로 돌아갔고, 관련자들이 경찰서에 가 진술하게 될 경우 가질 수 있는 압력, 혐의 없음으로 끝나게 될 경우 문제를 더욱 고착시킬 수 있는 문제 등 때문에 사건을 취하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인권의 가치에 맞는가라는 기준을 중심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인권위에 진정했던 것인데 인권위는 조사권을 빌미로 책임을 방기하는 한편, 질병관리본부는 사건을 덮으려고만 했다며 국가 사업에 대한 정부의 무책임함을 성토했다.

증언대회를 개최한 2개 단체와 김종훈 전 국가에이즈관리사업 모니터단원은 S병원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을 방기했다는 이유로 복지부장관과 질병관리본부장을 피진정인으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한 상황이다.

한편, S병원 측은 사망한 ‘반박자료’와 김 환자 보호자의 의견서를 배포하고 환자에 대해 “질병이 깊어 사망이 예견된 분”이라며 “최선의 돌봄을 제공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병원 측은 김 환자를 대형병원으로 이송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환자의 보호자가 ‘나는 환자가 그곳에서 치료를 계속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밝힌 한편, “김 환자는 너무나 급격한 상태악화와 사망이 진행돼 이송을 고려해 진행할 틈이 없었고, 또 이송을 한다고 하더라도 구급차 안에서 사망할 가능성이 높았다”고 알렸다. 수액처지도 환자가 거부했다는 입장이다.

  주최측의 수차례에 걸친 퇴실 요구를 묵살한 S병원장과 병원 관계자들이 경찰의 퇴실 요구도 거부하고 있다.

이날 증언대회는 시작 전부터 S병원장을 비롯한 여러 명의 병원 관계자의 방해로 40여 분 지연됐다. 병원 측은 녹음기를 들고 자리 맨 앞에 무리지어 앉아 “증언자들이 위협을 느낀다”는 이유로 한 주최 측의 퇴실 요구를 수십 차례 거부했다.

결국 증언대회는 병원 측이 동석한 상태로 1시간 반 가량 진행됐다. 그러나 이후 증언자의 요구로 출동한 경찰에 의해 병원 측은 퇴실했지만 재진입을 시도해 주최측은 문을 걸어 잠그고 진행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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