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채무보증..사는 게 죽는 것 보다 힘들더라"

[책] 단 하루라도 빚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 (메이데이)

최근 한 연구자료는 저소득층의 소득부진으로 국민 5명 중 1명은 상대적 빈곤에 빠져 있는 것으로 보고했다. 상대빈곤에 속하는 도시가구 인구비율은 외환위기 이후 최고로, 상위 20% 계층이 하위 20% 계층보다 7배 가까이 소득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양극화에 따라 빈곤이 대세인 2007 한국의 현실이다.

2004년도 '신용불량자 400만 시대'의 표어는 당시 신용불량자에 대한 사회 문제의 심각성을 대변한다. 결국 정부는 '신용불량자'를 '금융채무불이행자'라는 용어로 대체하며 2005년 신용불량자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폐지했다. 그러나 등급별로 나눠진 금융채무불이행자들은 계속 증가했고, 파산신청자도 2006년 현재 12만 명을 넘어섰다.

가계부채의 위험도도 지난 6년에 비해 2배 이상 확대 됐고, 이 수준은 2002년 신용카드 버블 붕괴 당시 수준과 비슷하다는 분석도 있다. IMF 이후 2001년 IMF 차입금 195억$를 3년 앞당겨 조기 상환한 한국의 현실은 국민 5.4명 중 1명이 빈곤으로 분류되는 처참한 성적표이다.

책 '단 하루라도 빚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메이데이출판사: 서창호 엮음)'는 빚과 함께 살아온 그들의 목소리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이 책에는 빚을 피할 수 있는 방법, 사채업자를 따돌리는 방법, 파산신청 방법 등과 관련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그들이 어떻게 빚을 지게 됐고, 어떻게 살아왔으며, 그들이 꿈꾸는 미래에 대한 작은 희망들이 담겨져 있다. 가슴을 짖누르는 빚만 없다면, 하루에도 수백 번 오늘을 살아야 할 이유를 되묻고, 삶을 포기해야 할까를 고민하게 되는 그들의 절규와 심정이 고스란히 녹아져 있다. 그래서 읽는 내내 마음이 무겁고, 답답하고 매우 불편한 책이다.

금융채무자 스스로 더 이상 '신용불량자'가 아니라, '금융피해자'로 새롭게 태어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도덕적 해이로 표현되고 있는 금융채무의 개인 책임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넘어서야 합니다. 금융회사와 정부가 저지른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고금리가 '신용불량자'가 아닌 '금융피해자'로 만든 가해자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그리고 실업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던 금융피해자의 삶이 웅변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 실린 파산신청 사례들은 채무자들이 원래 무모한 낭비자나 빚을 떼먹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파산신청자가 사치스럽고 남을 등쳐먹는 이미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오히려 평범하고 정직하고 열심히 일하며 생활해온 모범 시민입니다. 부지불식간에 검소한 영혼이 빚이라는 흙탕물에 빠져버렸지만 새로운 희망으로 좋은 가정을 개적하기 위해, 우연히 발견하게 된 파산제도는 어딘가 아직도 두려움이 있는 마음을 괴롭히는 최후의 선택입니다"

2005년 KDI의 '개인파산및개인회생제도의 기능에 대한 경제적 분석' 자료에 따르면 저소득층 금융채무의 실제 원인은 투기나 낭비가 아닌 고액의 병원비와 자녀교육비, 생활유지를 위한 생계형 문제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단 하루라도 빚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IMF 10년의 자화상, 금융피해자[메이데이출판사; 서창호 엮음]
필자가 주목하는 부분은 바로 '금융채무불이행자'라는 용어가 보여주듯, 빚을 지고도 갚지 않는 '도덕적 해이자'로 몰아가는 사회적 분위기에 경종이다. 필자는 금융피해자들의 목소리와 사례를 통해 왜 그들이 빚을 질 수밖에 없었고, 그런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는가를 정책, 사회 구조 속에서 원인을 진단한다. 금융채무 불이행자는 IMF 이후 한국 사회를 버텨온, 처절하게 희생당한 '금융피해자'라는 기본적인 접근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노동력 유연화로 인한 소득감소, 정부의 금융권에 대한 규제완화, 금융회사의 카드사용 남발 정책, 1998년 이자제한법 폐지, 과도한 고금리로 인한 채무 급증, 금융세계화와 소매금융확대 등 구조조정->정리해고->비정규직, 고용불안의 악순환 구조에서 병원비, 보증, 빚 등 개인이 빚의 수렁텅이에 빠지게 되는 구조를 지적한다. 그렇기에 사회 정치적으로 사용되는 '신용불량자', '금융채무자'가 아닌 그들은 '금융피해자'로 '개인'의 책임을 넘어 사회적으로 책임져야 할 대상임을, 제도가 필요함을 강변한다.

또한 필자는 '금융피해자들의 인권에서 출발하자'고 제언하며, 2005년 8월부터 진행된 '금융피해자 파산학교'의 소개와 '인권운동연대'의 활동을 소개한다.

왜곡된 시각을 스스로 극복해야 할 과제, 살인적인 고금리의 현실화와 대안금융기관 설립, 파산법(통합도산법)의 개정과 소액채무의 특별법을 통한 채무탕감을 요구해야 한다. 신용정보법 강화와 함께 추심 과정에 인권침해를 예방하는 법안을 발의하자. 면책자들의 사회적 차별해소, 생존권과 인권을 보장해야, 채무를 지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사회적 변화가 절실하다

오는 11월 21일은 IMF 구제금융이 시작된 지 꼭 10년이 되는 날이다. 1997년 11월 21일 외환위기 사태를 겪은 한국과 그 이후의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진행된 거침없는 구조조정. 아가들의 돌 반지까지 꺼내 '금모으기' 등을 통해 위기 극복에 나섰던 대다수 국민들은 사회경제적 양극화와 고용불안 그리고 천만 빈곤의 시대라는 고통의 짐을 고스란히 받아 안아 오늘도 살아가고 있다.

최근 드라마 '쩐의 전쟁' 이후 빈곤, 빚, 사채의 문제들이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긴 했지만 이 또한 '반짝' 효과에 불과하다. 빈곤 및 생활고, 정리해고와 실업, 자영업의 폐업과 부도, 과도한 의료비, 보증, 사기, 청년 채무 등 금융파산의 개인적 원인은 다양하다. '금융채무불이행자'가 아니라 '금융피해자'라는, 개인의 책임으로 몰아세울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책임으로 받아 안아야 한다는 필자의 주장이 설득력을 더한다.

"저에게 태교라는 것은 사치였습니다. 밤이 되면 아침이 두렵게 느껴졌고, 월요일이 되면 토요일까지 어떻게 견디나하는 걱정뿐이었습니다. 전화벨 소리만 나도 누군가 문 두드리는 소만 나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배는 자꾸 불러오고 뱃속의 아이만 아니었으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여겼지만……. 죽는 것도 쉽지만은 않았습니다"(본문 1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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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 파산 , 메이데이출판사 , 쩐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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