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해왜란과 총알받이

[워커스] 연재


지난해 대법원이 외교협정으로는 개인 청구권이 소멸하지 않는다며 일본 전범기업이 일제 징용노동자에게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일본은 한국이 1965년 한일협정의 배상과 청구권 소멸과 관련한 국제법을 위반했다고 강변하면서 반도체와 스마트폰에 사용되는 3가지 화학제품의 한국 수출을 규제했다. 일본은 이어 징용노동자 배상과 관련한 대법원 판정에 대해 제3국에 의한 중재위원회를 설치해 해결하자고 요구하더니 지난 18일 그 시한이 지나자 2차 카드로 경제제재를 가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일본이 전략물자로 규정한 1,100여 개의 품목에 대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전략물자 수출 간소화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한국은 일본의 일방적 경제 규제가 자유무역질서를 흔드는 경제전쟁이라 선포하고 WTO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의 경제제재가 계속된다면 한일정보보호협정GSOMIA 재연장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맞수를 두고 있다.

이 사태가 처음 대두됐을 당시 대부분은 일본 참의원 선거를 앞둔 아베의 선거전략이라는 판단이 우세했지만, 이제는 장기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에서) 열두 척의 배로 승리했다’고 결기를 보였고,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SNS를 통해 죽창가를 읊기도 했다. 드디어는 ‘목숨 걸고 독립운동을 한 적은 없지만, 일본제품 불매로 작은 애국 실천하겠다’는 전국적인 불매운동도 들불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양국 감정이 격화하면서 일본에서는 문재인 대통령 탄핵까지 거론되고 한국에서는 내년 총선까지 이 기조로 간다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이로 인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비롯한 모든 이슈가 묻히고 있는 격변의 상황이지만 정작 이러한 경제전쟁의 내막을 알기는 쉽지 않다. 다만 역사적으로 볼 때 이번 경제전쟁의 불씨는 ‘한일청구권협상’에 대한 해석을 달리하는 데서 시작한다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본질적으로는 전후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과 그 미‧일 중심의 전후체제가 가지고 있는 문제에서 연유한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임마뉴엘 월러스틴의 장기 역사 읽기의 입지에서 본다면 “16세기 이후 근대 세계체제를 형성하고 이후 제국의 시대를 여는 단초는 대항해 시대의 개막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16세기에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대항해 시대를 열어갈 때 러시아 또한 시베리아 삼림의 바다로 나아갔으며, 전자는 아메리카에 식민제국을, 후자는 유라시아 제국을 건설하였다. (그리하여) 제국으로서의 미국이 아시아 태평양에서 ‘시작’되었다면 제국으로서의 러시아는 아시아와 태평양 연안에서 ‘완성’되었다.”1) 그리고 동북아가 그 접점이 됐고 여기서 불꽃이 튀어 왔다.

식민지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 남북전쟁을 거친 후 서진하여 마침내 대서양에서 태평양까지 대륙을 가로질러 제국을 건설하고 이후 제국주의의 진출을 하게 된다. 그 상징적 표현이 루즈벨트 대통령의 먼로독트린이었다. 그것은 남북미를 가리지 않고 내 땅이니 손대지 말라는 선언이었다. 월러스틴의 개념대로 1870년대부터 1913년 사이 광활한 토지, 자연자원, 자원집약적 기술진보 등에 기반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미국 헤게모니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리고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해 아시아에서는 필리핀을 차지하게 된다. 아울러 1905년 도쿄에서 미국이 필리핀을 통치하고 일본은 대한제국에 대한 지배적 지위를 인정하는 태프트 가쓰라 밀약이 맺어졌다. 마침 동진을 계속하여 부동항 블라디보스톡까지 도착한 러시아와 일본의 한판 교전이었던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고 조선은 일본에 병합됐다.

이후 1922년 일본이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1933년 국제연맹을 탈퇴하자, 미국의 정책은 북중국에서 일본의 특수이권을 점차 인정하지 않는 방향으로 바뀌어 간다. 그럼에도 미국은 한국에 대한 일본의 우월한 이익을 인정했으며 한국을 일본제국의 한 부분으로 취급했다. 영국도 한국의 독립을 결코 지지한 적이 없었으며, 사실상 1902년 영일동맹 이후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지배권을 적극 지지해 왔다. 그런데 태평양전쟁이 마무리될 즈음 미국 합동참모본부는 소련의 협력을 얻더라도 일본을 꺾는 데는 적어도 18개월은 더 걸릴 것이며 최소 50만 명의 희생자를 내게 될 것으로 평가했다. 그리하여 미국은 소련에 참전을 제안했으며 사할린과 쿠릴열도를 넘겨받는 것은 물론 외몽고, 만주 등을 요구하는 스탈린과 합의해야 했다. 소련은 일본이 항복하기 겨우 6일 전에 태평양전쟁에 참전했다.2)


이후 전후처리는 미국의 강권으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귀결됐다. 일본의 주권을 회복시키고 미국과 일본이 군사동맹을 맺는 샌프란시스코체제가 형성된 것이다. 48개 연합국과 일본과의 조약은 소련의 태평양전쟁 참전을 요구한 미국의 결정적 실수를 배경으로 한다. 사회주의 국가 소련과 유럽과 태평양에서 마주하게 되면서 세계적인 냉전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미국은 일본과의 안보조약을 맺으면서 일본을 미국의 군사기지로 만든 것이다. 이를 위해 일본의 전범들은 풀어주고 패전국으로서의 지위를 분명히 하지 않았다. 또 대부분의 아시아 피식민지 당사자들은 전후처리에서 배제했고, 오히려 아시아대동영공영권의 구축을 통해 총력전체제를 폭력적으로 가동했던 제국 일본의 재무장을 촉구했다. 그렇게 살아남은 전범들이 이후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원폭의 피해당사자임을 선전하면서 전후질서의 수혜를 수렴해갔다. 지금 아베 수상의 외할아버지 전범 기시 노부스케, 아소 다로 부수상의 외할아버지 요시다 시게루가 다름 아닌 일본의 종속적 전후체제 총리들이었다. 대신 과거사 문제에 대해 일본의 사죄와 반성을 꾸준히 주장한 이들은 밀려나 왔다. 지난 2015년 서울 서대문형무소를 찾아가 독립운동가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했던 하토야마는, 전후 일본의 재무장에 반대하여 미국에 의해 쫓겨났던 하토야마 총리의 손자이다. 이처럼 샌프란시스코체제는 대를 이어서 그 명운을 지속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제국주의 식민지배의 최대 희생자인 남북한은 물론이고 중국, 대만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초대받지 못했고 소련은 참가는 했으나 조인을 거부했다. 미국에 의한 전후처리의 강제, 그 결과로서의 샌프란시스코체제의 지속은 아시아에서 일본이 벌이는 영토분쟁, 한반도와는 독도, 중국과는 댜오위다오(센카쿠열도), 러시아와는 쿠릴열도 분쟁이 해결되지 못하고 각축해온 근거이기도 하다.3)

결국 지금의 경제전쟁은 전후 세계지배질서를 동서냉전체제로 구축하기 위한 미국의 전략 구도, 그것에 따른 불확실한 전후처리가 야기한 긴장의 소산이다. 그리하여 일본에 전쟁범죄와 식민범죄에 대한 책임을 묻지 못했고 배보상과 관련한 쟁점은 불완전한 한일협정체제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의 냉전체제로서의 전후 제국주의 지배의 영향이 지속되고 있는 결과인 것이다. 이는 한국정부가 그토록 바라마지 않더라도, 일본이 도발한 경제전쟁에 미국의 중재가 어려운 배경이기도 하다.

지오반니 아리기(Giovanni Arrighi)는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2009)를 통해 세계정치경제의 중심지가 북아메리카에서 동아시아, 중국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다. 지금 미중 간의 무역전쟁은 그 판단의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세계경제질서의 재편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야기될 수밖에 없는 충돌로 보아야 할 것이다. 미 의회 민주·공화 양당 의원들이 초당적으로 참여한 ‘미국 5세대 이동통신 미래 보호 법안’이 7월 16일 상·하 양원에서 발의됐다는 보도를 볼 때, 미중 간의 무역전쟁이 트럼프의 객기를 실은 보호무역주의로만 바라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지금 일본과의 경제전쟁은 자명한 역사적인 배경에 기초한 자본전쟁의 연장으로 파악할 수 있다. 아울러 미중무역전쟁, 핵을 둘러싼 북미 간의 힘겨루기 등으로 요동치는 동북아 정치경제 지형이 재편하는 한 흐름으로 바라볼 수도 있을 듯하다.

제국주의 자본전쟁에는 희생자가 따르기 마련이며 그것은 언제나 그랬듯 또다시 노동자민중이다. ‘일본 수출규제 대응 장관회의’에서 제기된 대책은 부품·소재 R&D 사업은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고 규제대상에 오른 불화수소 등 화학물질에 대해서는 규제를 완화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산화 실증 테스트 등에 특별연장근로 인정을 적극 검토하고 R&D 연구진 등에 대해서는 재량근로제 활용을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대통령이 소집한 재벌과의 간담회에서 삼성은 52시간 노동제의 문제를 제기했고 이후 ‘독립군’, ‘토착왜구’ 가릴 것 없이 공통적으로 52시간 노동제 예외를 인정하고 탄력근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반대, 최저임금 1만 원 공약 파기 규탄,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 촉구와 비정규직 철폐 등을 내걸고 총파업에 나선 민주노총에 대해서는 안전을 이유로 행진 일부를 불허했다. 3년 전에는 청와대 앞도 뒤덮었는데 국회 앞에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어릴 적 사회과학 책 깨나 읽었고 지금쯤은 ‘야만이냐 사회주의냐’를 외쳤을 법한 청와대 민정수석께서는 “이러한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진보냐 보수냐, 좌냐 우냐가 아니라, 애국이냐 이적이냐”라고 읊조리고 있다. 다시 자본주의 시대와 함께 만들어진 민족, 그 민족의 이름으로 노동자를 총알받이로 내몰고 있는 형국이다.[워커스 57호]

[각주]
1) 백준기, 《유라시아제국의 탄생》, 홍문관, 2014, 참조.
2) 조순승, 《한국분단사》, 형성사, 1983, 참조.
3) <샌프란시스코 체제, 미국의 동아시아 지배 전략>, 박인규 프레시안 편집인.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no=244719&utm_source=naver&utm_medium=search#09T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