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일간 <노이에스도이칠란트>에 따르면, 10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의회 앞에서는 25만 명(주최 측 추산, 경찰 15만 명)이 모여 TTIP 및 캐나다-EU FTA(CETA) 반대 시위를 벌였다. 이날 행사는 유럽 500여 단체가 조직한 연대모임 “멈춰 TTIP”가 주최한 것으로 독일에서 최대 인파가 모였다. 이런 반향은 주최자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아테네, 암스테르담과 오슬로에서도 같은 행사가 열렸고, 영국 런던에서는 17일 동일한 행사가 진행된다.
독일노총 등 노동자, 좌파당과 녹색당 그리고 사회, 환경 등 다양한 부문의 170여 단체가 공동주최한 이날 집회에서 사람들은 TTIP에 반대하고 정의로운 무역을 요구하는 수많은 플래카드, 풍선, 대형 인형, 음악과 어우러져 춤, 발언 그리고 행진을 이어나갔다. 참가자들은 전국에서 주로 기차를 통해 모였으나 버스도 600대 가량 동원됐다. 이날 참가자 규모는 2003년 이라크 침공 반대 집회 후 가장 커 유럽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출처: 가디언 화면캡처] |
집회에서는 다양한 단체가 나와 TTIP가 독재와 패권을 강화해 민중의 생존권을 위협한다고 반대 의사를 밝혔다.
라이너 호프만 독일노총 의장은 “우리는 자유무역 대신 공정한 무역을 원한다”며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하고 공공부문의 사유화와 환경 파괴를 노정하며 비밀 협상으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자유무역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독일 환경단체 ‘나투어프로인데(자연의 친구들)’의 연방의장은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시장에 내맡기지 않고 민주주의를 구하고자 하기에 이 자리에 섰다”고 발언했다.
1994년 미국, 멕시코와 나프타를 체결한 캐나다의 폴 모이스트 공공노조 위원장도 이날 집회에 나와 “우리는 일전에 이 협상이 일자리, 번영, 성장을 약속한다고 들었지만 이는 거짓말이었다”면서 “현재까지 캐나다에서는 65만 개, 미국에서는 100만 개의 일자리가 없어졌다. 이 협상은 중단돼야 한다”고 밝혀 큰 박수를 받았다.
현재 유럽에서는 2013년 미국과 EU가 TTIP 협상을 시작한 이후로 TTIP에 대한 논란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EU집행위원회는 협상 초기부터 TTIP가 투자와 수출을 확대해 일자리와 소비를 늘려 침체에 빠진 EU 경제를 활성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중국과 인도와 같은 나라에 위협될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이를테면 게르하르트 한트케 독일 무역서비스연맹 대표는 최근 독일 언론 <도이체벨레>에 “유럽은 인도와 중국과 같은 다른 경제국에 뒤처질 수 있다”면서 “이제 다른 나라가 아닌 우리가 경제적 기준을 써야 할 때이고, 그렇지 않으면 언젠간 아시아가 쓴 기준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야권은 노동 및 환경 보호 후퇴와 투자자국가제소조항(ISD)으로 인한 공공정책과 민주주의 무력화를 주요 문제로 삼으며 정부들의 입장을 반박하고 있다. 집회 발언에서처럼 이들은 이 협상이 노동자와 소비자에게는 희생을 강요하며, 초국적 기업에 과도한 권한을 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미국과 유럽 중심으로 북반구의 경제적 패권을 강화시켜 더욱 불평등한 세계화를 강요할 것이라는 입장도 개진되고 있다.
논란 중인 유럽
TTIP는 다양한 각국 정치 상황 때문에 쉽게 타결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독일에서는 기민/기사당 보수연합과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사민당이 내후년 총선을 앞두고 노동조합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어서 이들의 적극적인 반대에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일례로 독일에서 <타츠>는 “대규모 시위 때문에 정치권은 TTIP 협상에 대한 정치적 부담을 느끼게 됐다”면서 지그마르 가브리엘 경제 장관(사민당)은 TTIP에 찬성해 노동조합을 배신했다는 논란에 빠졌었지만, 시위 직후 “TTIP는 매우 중요한 주제”라면서 “사람들이 시위에 나선 이유를 이해한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프랑스 사회당 정권도 몸을 사리고 있다. 마티아스 페클 통상장관은 지난 1일 TTIP가 미국 이익에 치우쳐 협상문에는 유럽보다 미국에 대한 접근 기회가 많다며 철수를 고려하고 있다고 위협한 바 있다. 프랑스는 문화적 예외를 고집하며 문화 관계 사항은 협상에서 제외하자는 입장이기도 하다.
양질의 공공의료보험을 지닌 영국에서는 국민건강보험(NHS)과 수도민영화 등 공공정책에 대한 영향에 대한 우려가 계속되고 있다. 현 WTO 아래 수도는 기본적인 권리로서 간주되지만, TTIP에서는 시장에 맡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영국 정부는 지난해 교육이나 의료보험 정책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으나 최근 <인디펜던트> 보도에 따르면 EU집행위원회는 영국 정부에 대해 공공부문을 개방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TTIP 반대 단체들이 국민투표를 제안해 추진 중이다.
독일, 프랑스 등 미국에 비해 비교적 소규모 자영농이 많은 환경에서 농업 개방 문제도 주요한 쟁점이다.
이 때문에 미국과 EU집행위원회는 내년 초까지 TTIP를 체결한다는 계획이지만, 예정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유럽에서는 현재까지 3백만 명 이상이 TTIP 협상 중단을 요구하면서 서명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