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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참세상 주례 토론회에서는 지난달 방한한 모디 총리가 집권하고 있는 인도 국내외 상황을 분석하고 이를 토론할 것이다. 인도 모디 정권의 1년차 평가에 관한 토론이기도 하다. 진행 순서는 1) 인도 모디 정권의 정치 사회학적 의의 2) 모디 노믹스라 불리는 인도 현 정권의 경제 정책과 모디 총리 방한의 의미 3) 일본의 안보 다이아몬드에 깊숙히 들어가고 있는 인도의 외교 안보 정책 4) 무력하기 이를 데 없는 인도의 좌파정당들이다.
목차
1. 인도 모디 정권의 정치 사회학적 의의
1-1. 중앙정치와 지역 정치
1-1-1. 잠무 카시미르의 총선거와 지방 선거 - BJP의 어부지리
1-1-2. 델리의 총선거와 지방선거 - 인도 총리는 모디, 주수상은 케지리왈
1-2. BJP의 힌두 꼬뮤날리즘에서 발전 담론을 내건 민족주의로의 진화
1-2-1. BJP의 힌두 꼬뮤날리즘의 한계 자각
1-2-2. 발전 담론을 내용으로 하는 민족주의로의 진화
1-3. 현재의 정치 상황 - BJP의 공격 대상은 무슬림이 아니라 발전 반대 세력이다.
2. 모디노믹스
2-1. 중국의 ‘세계의 공장’ 자리를 차지하기
2-2. 모디노믹스는 구자라트 모델의 진화이다
2-3. 모디노믹스와 환경 문제
2-4. 모디의 방한과 한국의 산업 공동화의 가능성
3. 모디 정권의 외교 안보 정책
3-1. 인도의 오랜 안보외교적 전통 - 양다리 걸치기
3-2. 인도-미국 핵 협정
3-3. 일본의 안보 다이아몬드 안의 인도와 각 국가들의 관계 - 중국의 위협이라는 명분
3-4. 인도와 미국
3-5. 인도와 호주
3-6. 인도와 한국
4. 인도 진보 세력들의 대응의 한계
1. 인도 모디 정권의 정치 사회학적 의의
먼저 인도 모디 정부의 1년 평가를 정치 사회학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서 1) 중앙 정치와 지역 정치의 관계 2) BJP의 힌두 꼬뮤날리즘에서 민족주의로의 진화라는 두 가지 분석틀을 설정하였다. 우선 중앙정치와 지역정치의 관계를 BJP집권 이후 있었던 2번의 선거 분석을 통해 보고 이후에 지난번 “[참세상 주례 토론회] - 힌두 꼬뮤날리즘과 세속주의, 모디의 발전담론” 연장선상에서 BJP가 힌두꼬뮤날리즘에서 민족주의로 어떻게 진화하였는가를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이 두 축이 어떻게 교차되면서 전개되고 있는가를 볼 것이다.
1-1. 중앙정치와 지역 정치
인도 정치는 국민회의당 독주의 일당우위체제에서 다당체제로 변화해왔다. 국민회의와 BJP는 이런 다당체제에서는 단독으로 집권할 수 없기에 BJP는 NDA를 국민회의는 UPA라는 플랫폼을 통해 집권을 할 수밖에 없었다. 2014년 총선에서 BJP는 하원 545석에서 281석을 차지해서 단독으로 집권이 가능하게 되어 이런 구조를 바꿀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모디가 총리로 된 것만으로는 인도는 다당체제의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다. 모디 집권 이후의 2번의 선거를 돌아보자.
1-1-1. 잠무 카시미르의 총선거와 지방 선거 - BJP의 어부지리
잠무 카시미르에서는 잠무 카시미르의 민족적 영웅인 세이크 압둘라가 인도 독립 이전에 만든 정당인 JKNC(Jammu and Kashmir National Conference)가 인도 독립 이후 2008년까지 계속 집권 정당으로 있었다. 그러나 세이크 압둘라의 아들인 파룩 압둘라, 그리고 손자인 오마르 압둘라로 권력이 이어지면서 정당은 무능과 부패에 대한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이 틈을 타고 또 다른 지역정당인 JKPDP(Jammu and Kashmir Peoples Democratic Party)가 창당되었고 이들은 JKNC를 대체해나가기 시작했다. 잠무 카시미르 지역에서 무슬림이 다수라고는 하지만 힌두와 불교도들도 있었고 이들은 JKNC에 대해서는 무슬림만을 위한다는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주인구의 53%인 카시미르 지역은 무슬림이 압도적인 97%이지만 주 인구의 43%인 잠무 지역은 힌두가 65%이다. 주 인구의 2%인 라다크 지역은 우리에게 <오래된 미래>로 알려진 티벳불교도들과 무슬림이 거의 절반씩 차지하고 있는 곳이다. (2%의 인구밖에 되지 않지만 인도 법상의 부족민 특별 선거구로서 이들은 한 선거구를 차지한다. 라다크 지역의 인구는 티벳불교도가 절반이며 사용하는 언어도 자무 카시미르 지역의 언어인 우르두어가 아니라 라다크어를 사용한다. 인도 선거법은 소수자들을 배려하는 이런 훌륭한 면도 있다.)
선거구로 보면 카시미르 지역은 바라뮬라, 스리나가르, 아난뜨낙 지역이고 잠무 지역은 우담뿌르와 잠무이고 라다크 지역은 라다크이다. 잠무 카시미르의 2014년 총선거와 2009년 총선거를 비교해보면 카시미르 지역은 지역정당이 JKNC에서 JKPDP로 교체 되었고 잠무와 라다크 지역은 국민회의에서 BJP로 교체된 것을 볼 수 있다. 카시미르 지역은 상원선거이던지 하원선거이던지 지역정당이 승리하겠지만 잠무와 라다크 지역은 지역정당을 원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 선거에서 28석을 획득한 JKPDP로서는 집권을 위한 절반의 좌석인 44석을 가진 집권 플랫폼을 형성하기 위해서 BJP외 다른 대안이 없었다. BJP는 JKNC외에 카시미르 지역의 주민을 기반으로 하는 정당인 JKPDP가 만들어졌기에 어부지리를 본 것이다.
1-1-2 델리의 총선거와 지방선거 - 인도 총리는 모디, 주수상은 케지리왈
델리의 총선거와 지방선거는 잠무 카시미르처럼 행정구역상의 인구통계학적 분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같은 주민들이 총선에서는 BJP를 지방선거에서는 AAP를 찍었기 때문이다. AAP는 반부패시민운동가들이 시민운동만으로는 인도의 부패한 사회를 바꾸는데 한계를 느끼고 정치에 뛰어들기 위해서 2012년 12월 창당한 정당으로 다음해인 2013년 선거에서 28석을 획득해 국민회의와 집권 플랫폼을 형성한 후 케지리왈은 주총리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국민회의가 반부패법안을 통과시키는데 협력하지 않는데 불처럼 화를 내면서 49일 만에 주총리직을 사임하였다. 그리고 그는 2015년 그는 델리 정치판에 다시 돌아와 ‘풋내기 정치인의 과오’를 용서해달라고 했고 델리 시민들은 그를 용서했다. 그리고 그가 불과 49일 안되는 집권 기간 동안 반부패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 또 서민들에게 가장 절실한 수도와 전기 문제로 격렬히 정치권에서 싸웠던 것과 부패한 공무원들이 움츠러들었던 것도 기억하고 있었기에 그에게 표를 몰아주었다.
지난 30년간의 인도 정치 상황을 돌아보면,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정당인 BJP가 지역 선거에서도 압승을 총선 성적만큼 그대로 거둘 것이라고 예상할 수만은 없는 것이었다. 라지브 간디는 인디라 간디의 암살로 인한 죽음으로 국민들의 동정표를 받아 1984년 총선에서 전체 542석 중에서 411석을 획득했다. 그러나 인디라 간디 시절부터 이미 난립하기 시작한 지역정당들은 지역에서의 맹주로서의 자리는 잃지 않았다. 국민들은 인도의 집권당과 자신의 주의 집권당을 다르게 투표했기 때문이다. 1989년 총선부터는 총선에서조차 국민회의 일당우위체계가 종식되고 다당경쟁체제가 정착되었다. 1989년 총선에서 국민회의는 총의석 529석 중 197석, 자나따 달이 143석, BJP가 85석을 얻었는데 국민회의는 1위를 하였지만 과반수를 넘을 수 없었기에 단독 집권할 수 없었다. 이때부터 다양한 정당들이 합종연횡의 플랫폼을 구성해서 중앙정부를 공동 집권하는 인도 정치의 특징이 나타났다. 자나따 달은 국민회의를 제외하고 여타 군소정당을 규합하여 국민전선(National Front)란 플랫폼을 구성해서 집권하였다. 이 이후 30년간 인도는 어느 정당도 단독집권 할 수 없었다. 2014년 총선에서 BJP는 전체 하원의 545석 중에서 281석을 차지하여 30년 만에 단일정당으로서 집권이 가능하게 되었다.
BJP의 승리는 힌두 벨트 지역, 꼬뮤날리즘이 문제가 되는 지역을 벗어나서도 BJP가 지지기반을 가지게 된 결과였다. 총선 이후 BJP는 그 동안 집권해보지 못한 주들의 지역선거에서도 이 승리가 이어질 것이라는 믿었으나 지난 델리 선거에서 적신호를 처음으로 보게 된 것이다.
지역 선거에서는 인도 중앙정부를 장악한 집권당이 승리하지 못 할 수 있다는 것은 인도 정치에서의 상식이었다. 그러나 이번 델리 선거에서 BJP가 패배한 것은 이변이었다. 델리 지역선거에서 BJP의 라이벌은 국민회의였고 국민회의는 지난번 총선에서 545석에서 44석 밖에 얻지 못했을 정도로 완전히 몰락해버렸다. 델리는 웨스트 벵갈의 트리나물 꽁그레스, CPIM, 타밀나두의 AIADK, DMK 등 어느 특정한 지역정당이 집권하는 지역이 아니고 중앙정부를 장악한 당이 집권하는 지역이었기에 BJP는 당연히 압도적인 표로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총선거 시기에 AAP에 단 한 표도 주지 않았던 시민들은 왜 지방선거에서는 그에게 표를 몰아주었을까. 가장 유력한 분석은 델리 주민들은 강한 국가가 되어야 하는 인도의 총리로는 모디가 제격이지만 내가 사는 델리에서는 서민들의 실정을 알고 싸우는 케지리왈이 되어야 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델리 시민들은 자신들의 지역정당으로 AAP를 선택했다. 델리 선거는 BJP에게 총선거의 승리가 지역의 승리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절실하게 가르쳐주었다.
행정수도인 델리에서의 선거 결과는 중요하다. 양원제로 운영되는 정치제에서는 수도에서의 승리에는 정치적인 상징성이 분명하게 있기 때문이다. 작년 2014년 2월 도쿄 도지사 선거의 예도 한번 보자. 탈원전을 내세우는 호소카와 후보(일본의 전총리)와 우쓰노미야 후보(사민당과 공산당)가 경기 회복을 내세우는 자민당의 마스조에 패하면서 일본 아베 정권은 독주에 가속도를 더했다. 일본의 원자력 발전소는 폐쇄되지 않고 계속 운영되고 더 들어설 것이고 자위대는 이제 일본해를 벗어나서 이북을 공격할 수도 있다는 발언을 하게 되었다.
양원제에서는 하원만을 장악해서는 정책을 마음대로 펼칠 수가 없다. 지역 선거에서도 승리해서 상원까지 장악해야 집권 정당은 원하는 정책을 펼칠 수 있는데, 수도에서의 승리는 지역 선거에서의 승리를 보장 받는 것을 수월하게 한다.
1-2. BJP의 힌두 꼬뮤날리즘에서 발전 담론을 내건 민족주의로의 진화
BJP는 스스로를 꼬뮤날리스트라고 규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스스로를 처음부터 지금까지 민족주의자로 규정했다. 자칭 민족주의자들인 힌두 꼬뮤날리스트들이 스스로를 민족주의자로 방어하기 위하여 들고 나오는 개념은 거짓 세속주의(pseudo-secularism)이다. 거짓 세속주의는 힌두 민족주의와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아드바니 등의 힌두 꼬뮤날리즘을 전면으로 내세우는 BJP 정치인들이 힌두 꼬뮤날리즘으로 공격을 받을 때 반격으로 사용하는 개념이 거짓세속주의이다. 거짓 세속주의는 세속주의를 내걸고 있지만 사실은 반힌두이거나 친소수자 경향이라는 것이다. 아드바니에 의하면 거짓 세속주의는 오직 투표은행정치(vote-bank politics)만으로 소수자들을 생각하지 소수자를 전혀 위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거짓 세속주의의 예로 무슬림의 샤 바노 케이스(Shah Bano case. 무슬림 이혼녀의 위자료 문제), 일부다처제, 자뮤 카시미르에 대한 370조를 들고 있다. 아드바니는 1991년 아요디야 행진 때 자신은 종교적인 사람이 아니며 단지 당의 일꾼으로서 “거짓 세속주의(pseudo secularism)”와 싸우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 거짓 세속주의는 민족주의에 위협이 된다고 하였다.아드바니와 BJP는 2009년 총선을 앞둔 당의 고위직 모임에서 총선을 진정한 세속주의자들인 BJP, RSS와 거짓 세속주의자들인 국민회의, 좌파정당과 여타 정당들의 대결로 설정했다.
아드바니는 인도-파키스탄 분단이 일어나던 시기, 간디의 암살 직후에 RSS의 당시 수장이었던 M.S. 골워커(M.S. Golwalkar)에게 세속주의가 무엇인가를 질문했었다. 그가 구루에게 들은 세속주의에 대한 답변은 인도는 힌두가 지배적인 국가이기에 힌두 국가라는 것이었다. 2009년 총선 기간 중 맘모한 싱이 인도가 “세속주의와 꼬뮤날리즘으로 분열”되었고 “나는 이런 세속주의 가치를 제외하면 어떠한 미래도 이 나라에는 없다고 본다”라고 한 발언에 대해서 아드바니의 반격은 국민회의는 무슬림을 투표은행으로 보고만 있고 그들을 위해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 거짓 세속주의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1-2-1. BJP의 힌두 꼬뮤날리즘의 한계 자각
2009년 선거에서 BJP는 116석 획득했고 2004년 138석 보다 후퇴하였다. 선거 패배에 대한 분석에서 아드바니의 힌두 근본주의 강성 이미지가 가장 문제였다는 결론이 나왔다. BJP는 자신들의 힌두 민족주의를 민족주의로 진화시키기로 전략을 바꾸고 프론트맨도 아드바니에서 모디로 교체했다.
이를 위한 BJP의 이미지 정치 – ‘아우랑제브 VS 쉬바지, 라마야나와 인도에 사는 무슬림 술탄 람’ –를 지난번 주례 토론회에서 이미 말하였다.
[주례토론회] 힌두 꼬뮤날리즘과 세속주의, 모디의 발전담론 5. 인도 민족주의의 현재 - 힌두 꼬뮤날리즘에서 모디의 발전 담론으로 진화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category2=203&nid=99343
BJP는 반무슬림 정서를 정면에 내세운 꼬뮤날리즘을 모든 인도인을 포괄하는 민족주의로 진화시켰다. 이 민족주의는 종교를 떠나 모든 인도인들에게 필요한 부국강병을 위한 개혁의 전망을 보여준다고 믿게 한다. 이 개혁에서 무슬림 또한 애국적 인도인이라면 같이 가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주례 토론회 시간에 보여주었던 이미지 2개를 다시 꺼내보자. 힌두 꼬뮤날리즘이 어떻게 모디 정권의 민족주의로 발전했는지 짚어보자는 의미에서.
▲ 힌두 꼬뮤날리즘의 대두 이후 변화된 어머니 인도의 이미지. 사자는 인도를 상징한다. |
▲ 제조업 중심의 인도 경제 도약을 상징하는 구호인 make in India를 상징화한 사자. [출처: Narendramodi.in] |
BJP는 인도를 상징하는 무슬림들을 박멸하는 어머니 여신에서 어머니 여신의 이미지는 버리고 사자의 이미지는 제조업을 상징하는 톱니바퀴와 나사로 변신시키었다. 이제 인도의 인민들은 공장에서 부지런히 일을 해서 ‘애국의 한 길’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BJP가 힌두 꼬뮤날리즘이라는 종교적 색채를 버리게 된 것은 인도만의 추세가 아니다. 부시 정권 당시의 사무엘 헌팅턴 류의 학자들이 내세우던 이슬람과의 충돌 불가피를 강조했던 [문명의 충돌]이론이 더 이상 미국의 국제 정치에 적합하지 않게 되자 오바마 정권 들어서서 피터 R. 데만트(Peter R. Demant)와 바삼 티비(Basam Tibi) 등의 학자들은 [이슬람과 이슬람주의(Islam and Islamism)]를 통해 새로운 틀을 제시했다. 이슬람 국가 건설을 내세우는 이슬람주의라는 특정 정치 이데올로기와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구분하는 이 틀은 새로운 주류이론으로 등장했고 BJP의 변화도 이 맥락에서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점령 이후에 이슬람 자체를 전쟁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질서 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명의 충돌]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런 세계적 추세와 발 맞추어서 힌두트바를 외치던 힌두 꼬뮤날리스트들도 이슬람교를 믿고 라마야나를 체화시킨 애국적인 무슬림들과 친파키스탄 혹은 무슬림 국가를 인도에서 건설하려는 특정한 꼬뮤날리즘 이데올로기 즉 이슬람주의를 가진 반국가적 무슬림들을 구별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진화된 민족주의는 반무슬림 정서를 배제하고 아드바니 류의 꼬뮤날리즘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필요하다면 반파키스탄 정서는 민족주의 고취를 위해서 언제든지 사용한다. BJP의 창립 멤버이자 지도부였던 자스완트 싱(Jaswant Sing)이 2009년 [진나 – 인도, 분단, 독립(Jinnah- India, Partition, Independence)]란 책을 통해 인도 분단은 반인도적 분열주의자인 진나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네루 등 당시 인도 지도부들과 합의에 의한 것이라는 의견을 내었을 때 그는 BJP에서 탈당을 당했고 지난 총선에서도 BJP 후보가 아닌 독립 후보로 나가야 하는 상황으로 몰렸다. 반파키스탄 시각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 다른 시각으로 파악해보려는 태도는 반민족, 반국가 행위로 간주되는 것이다. (이 책은 모디의 구자라트 주에서는 금서가 되었다.)선거에서 자스완트 싱이 자신의 행동이 반민족적이 아니고 합리적이라고 제시하는 근거는 BJP에서 축출된 후 출마한 자신의 후보구에서는 BJP보다 자신이 무슬림들의 지지를 더 많이 받는 후보라는 것이다. 자스완트 싱의 이런 발언은 힌두 꼬뮤날리즘이 민족주의로 진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힌두 꼬뮤날리즘의 변신은 전국 정당인 BJP에게만 일어난 것이 아니다. BJP의 오랜 지역 파트너 정당인 쉬브 세나 또한 지난 총선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힌두 꼬뮤날리즘에서 민족주의로 변신하였음을 보여주었다. 쉬브 세나의 최고 지도자인 유다브 타커레이는 “인도를 그들의 모국으로 생각하는 무슬림들은 이 나라의 법을 존중하고 폭동을 일으키지 않고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다.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 - 유다브는 아버지 발(Bal)로부터 선거구를 물려 받았다. - 처럼 우리는 그런 무슬림들과 쟁점이 될만한 것이 없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무슬림들은 이 나라에서 살 권리가 없다”라고 자신들의 당기관지에서 밝혔다. 이전과 다르게 반무슬림 정서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애국적인 무슬림과 반국민적 무슬림을 구분하여 꼬뮤날리즘 정치의 한계를 벗어나 민족주의로 갈아탄 것이다. 하이데라바드의 무슬림 꼬뮤날리즘 정치가인 악바루딘 오와이시가 15분만에 힌두들을 전멸시키겠다고 한 발언에 대해서도 이전과 다르게 대응하였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진정한 힌두이셨지만 무슬림을 15분만에 전멸시키겠다는 말을 하지 않으셨다. 오와이시처럼 격분해서 파키스탄 힌두들 사이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상황에서는 누가 그들을 보호할 것인지는 힌두들이 결정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힌두가 소수인 파키스탄에서 힌두 지도자가 힌두 꼬뮤날리즘으로 다수의 무슬림들과 적대한다면 과연 힌두들에게 도움이 되겠냐고 빗대면서 무슬림 꼬뮤날리즘 정치는 막을 내려야 한다고 점잖게(?) 조언을 하고 스스로를 무슬림 꼬뮤날리즘 정치가와 차별화시키고 자신이 무슬림들을 진정으로 보호해준다고 공언한 것이다.인도에서의 힌두 꼬뮤날리즘을 내걸던 정치인들은 이렇게 민족주의로 변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변신의 성공으로 델리 북부 지역 같은 지역에서는 무슬림 지도자들이 BJP에 표를 몰아주기 위해서 무슬림들 공동체를 동원하였다.
그러나 모디 집권 이후 기세 등등해진 힌두 꼬뮤날리스트들로 인해서 모디 집권 이후 모디를 지지했던 이슬람들은 ‘모디의 부하’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여기서 분명하게 할 것은 힌두 꼬뮤날리스트들이 기세를 더 부리게 된 것과 모디 정권의 성격은 다르다는 것이다. 힌두꼬뮤날리스트들은 모디의 집권을 자신들의 승리로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모디가 힌두 민족주의 색채를 벗고 발전담론을 내세우지 않았다면 비힌두벨트 지역에서의 승리는 불가능했을 것이고 집권을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모디 정권이 힌두 꼬뮤날리즘 정권이고 힌두 꼬뮤날리즘으로 집권이 가능했다고 보는 것은 힌두 꼬뮤날리스트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1-2-2. 발전 담론을 내용으로 하는 민족주의로의 진화
현재의 인도 정치에서 반무슬림 선동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BJP는 힌두 꼬뮤날리즘에서 민족주의로 색깔 전환을 위해 반무슬림 선동은 접고, 모디의 구자라트 경제 성장을 본보기로 내세우는 개발에 대한 약속을 제시하였다. 분명히 이들에게는 여전히 반무슬림 정서가 있기는 하지만, 자신들 스스로도 이를 표면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금기시한다. 과거와는 다르게 정치적 자멸의 길을 앞당기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동일한 힌두 꼬뮤날리즘으로 묶였던 쉬브 세나와 BJP도 이젠 정치적으로는 대립의 길을 가고 있다. 힌두 꼬뮤날리즘은 힌두 벨트 지역에서는 모디 집권 이후 더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인도 전체로 보면 과거의 유물이 되어가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의 BJP의 압승은 힌두 꼬뮤날리즘이 아닌 민족주의를 내걸고 경제 부흥을 내걸었기 때문이었다. BJP가 자신들의 표밭인 힌두 벨트를 벗어난 지역에서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힌두 꼬뮤날리즘의 색채를 씻어내고 민족주의자로의 변신에 어느 정도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힌두 꼬뮤날리즘은 힌두들의 투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다수의 중도 힌두들은 꼬뮤날리즘 폭동에 지칠 대로 지쳐 있는 상태이다. 델리에서의 선거 패배 이후, BJP에서 힌두꼬뮤날리즘 색채가 다시 나오는 것에 대한 반성에서 BJP의 지도자는 “어차피 무슬림들은 우리들에게 투표하지 않는다. 문제는 중도 힌두들이 떠나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 지난 총선 이전의 BJP 이미지로 돌아가면 안된다는 것이다. 모디의 집권 이후 기세등등해진 내부 강경파들에 대한 경고였다.
델리 선거가 진행되는 기간 델리에서는 힌두 꼬뮤날리스트들에 의한 크리스탼 커뮤니티에 대한 공격들이 있었다. 델리 AAP의 승리로 끝난 시점 또 한 번의 크리스챤 학교에 대한 파괴가 있자 그동안 여기에 대해 가만 있던 모디는 델리 경찰들을 직접 불러서 꼬뮤날리즘적 폭동을 엄중히 처벌하라고 지시했다. 그동안 인도 총리인 모디가 델리 주의 야만적인 꼬뮤날리즘에 관해서 직접 간섭하지 않은 것에 대해 비판을 할 이유는 없다. 전국 곳곳에서 여전히 꼬뮤날리즘의 야만주의가 있는 인도에서 델리지역만 한 나라의 총리가 직접 개입해야 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델리 선거에 패배한 직후 모디가 델리 경찰을 불러서 호통을 친 것은BJP가 다시 힌두 꼬뮤날리즘의 이미지를 가지게 되면 향 후 있을 지역 선거들에도 부정적인 여파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1-3. 현재의 정치 상황 – BJP의 공격 대상은 무슬림이 아니라 발전 반대 세력이다
힌두 꼬뮤날리즘에서 발전 담론 중심의 민족주의로 진화한 BJP의 공격 대상은 이제 무슬림이 아니라 “발전 반대 세력”이다.
델리 선거 기간 내내 모디와 BJP는 AAP의 케지리왈을 ‘낙살라이트’, ‘아나키스트’로 불렀고 그가 밀림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비난했다. 그리고 지금 토지 법안에 반대하는 세력들도 “발전 반대 세력”으로 규정하고 있다.
2015년 3월 17일 국민회의의 소니아 간디는 토지 법안을 반대하기 위해서 반대정당들의 100여명의 국회의원들과 함께 대통령궁으로 행진했다. 참가한 정당들은 JD(U), DMK, 뜨리나물 콩그레스 등 지역 정치들의 맹주들이었다. 이 지역정치의 맹주들은 BJP와 자신들의 대립을 반농민 대 친농민의 구도로 방어와 공격의 방향을 잡았다. 모디의 후진카스트 출신의 청렴한 이미지는 급격하게 퇴색하고 있다. 케지리왈이 델리 선거기간동안 델리의 행정구역에도 속하지 않은 빈민가를 다니면서 표를 끌어 모을 때 모디는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백만 루피 옷을 입고 오바마를 영접했다.인도 전체 인구의 65%인 농민들이 모디에게서 ‘짜이왈라’의 이미지를 계속 읽을 수 있을까?
지난 델리 선거에서 AAP를 선택한 델리 주민의 40%가 비하르와 우따르 뿌라데시에서 온 이주민들로 이들 대부분은 자영업자이고 달리트와 후진 카스트에 속한다.델리 선거에서 이들이 모디를 선택하지 않은 것은 지역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인도에서 세번째 인구가 많은 비하르 또한 지역 정당들이 정권을 잡는 주로 BJP는 한번도 승리한 적이 없다. 비하르주 수상 니띠쉬 꾸마르는 2015년 3월 14일 비하르 주 내각 각료들과 토지법안에 반대하는 24시간 사티아그라하 단식을 했었다. 야당도 참여하였다.BJP의 비하르 주 입성은 여당, 야당 상관 없이 막겠다는 의지로 읽으면 될 것이다. 상원 245 좌석 중 47석만을 가진 BJP로서는 델리의 악몽이 비하르에서부터 계속 재연될 경우 상원을 결국 통제할 수 없게 되고, 향후 정국 운영도 불분명해질 것이다.
인도의 사회학자 데사이(A. R. Desai)에 따르면 공동체들을 국가로 통합하는 것은 오래된 역사적 과정이다. 신생 국가는 그 성장을 가로막는 다양한 장애들에 대해서 투쟁해야 한다. 각기 다른 국가들에서 민족주의의 발전은 각각의 사회 문화적 역사, 현존하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구조, 그리고 특히 민족적 사회적 존재를 위한 투쟁의 전위인 사회계급들의 심리적 경제적 특색에 의해서 결정된다.인도가 독립 이후 꼬뮤날리즘의 고통 속에서 빠져 있던 것도 인도만의 사회 특색 때문이었다. 꼬뮤날리즘으로 인한 갈등은 모디의 집권 이후 퇴색하고 있지만 발전에 관련된 각 사회계급간의 갈등이 이제 본격화되고 있다. 그리고 인도 민족주의의 쟁점은 이제 발전을 둘러싼 것이 되었다. 인도 국가를 이끌어갈 사회계급들의 전위는 누가 될 것인가? 국민회의인가? BJP인가? 좌파정당들? 카스트에 기반을 둔 정당들? 이것은 어느 특정 정당의 집권 문제로 질문할 것이 아니라 민족주의와 발전을 논할 때 어떤 민족주의인가 어떤 발전인가를 처음부터 다시 정확하게 질문해보아야 할 것이다.
2. 모디노믹스
인도 모디 총리의 경제부흥 정책인 모디노믹스는 2014년 9월부터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를 구호로 걸고 있다. 제조업 기반으로 인도 경제를 성장시키겠다는 것이다. 현재 인도의 제조업 비율을 15%에서 25%로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독립 직후부터 있던 국가계획경제를 기획하는 경제기획위원회(Planning Commission)을 해체하고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칠 국가개조기구(NITI Aayog, National Institution for Transforming India Aayog) 를 설립했다.
모디노믹스는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첫 번째는 중국이 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Asia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를 설립하고 각국으로 공격적으로 투자를 해나가면서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공장장으로 위치를 옮겨가는 시점에서 중국이 차지하고 있던 세계의 공장 자리를 이어받겠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첫 번째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기도 한데 구자라트 주 총리 시절의 구자라트 모델을 인도 전체로 확대하는 것이다.
2-1. 중국의 ‘세계의 공장’ 자리를 차지하기
중국은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공장장으로 자리를 옮겨가고 있다.
참조. [국제포럼] 정호영 - AIIB, TPP, 민주안보 다이아몬드 그리고 사드(THAAD), 1-1. AIIB와 TPP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99119
중국 노동자들의 월평균 임금은 650달러로 베트남,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인도 보다 2~6배 높으며 2015년 1분기의 노동쟁의 증가는 작년 대비 16.8% 증가하였다. 이전의 일본 공장에서 일어나는 파업들은 일부러 정부에서 방기하는 수준을 넘어섰다.
중국 서부의 저임금 지역으로 지역 균등 발전의 명목으로 공장들이 이동을 하고 새로 공장을 짓기도 하지만 이는 대세는 아니다. 중국은 해외로 나가는 것을 더 선호한다. 중국은 노동문제만이 아니라 환경문제도 심각하다. 중국의 하천은 3/4 이 오염되어서 복구가 불가능할 지경이고 늦었지만 이제라도 본격적으로 환경 규제를 해야할 상황에 이르렀다. 또 중국은 현재 과다하게 보유한 미국의 국채를 자산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해외에서 대규모 인프라를 건설하고 자국 내 공장을 이동해야 한다. AIIB나 일대일로는 이를 위한 마스터 플랜으로 제시된 것이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 자리를 버리고, 세계의 공장장이 되려는 지금, 인도는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 되던 중국 개혁 시기의 위치에 자리를 잡는다면 ‘세계의 공장’이 될 좋은 기회를 맞이하였다. 또 중국과 국경 분쟁 등의 갈등을 최소화하고 인도 내에서 정치적인 불안정을 최소하시킨다면 중국의 최고의 투자처가 될 수 있다. 모디 총리는 중국의 투자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2-2. 모디노믹스는 구자라트 모델의 진화이다
구자라트 모델은 저임금, 비정규직 위주의 값 싼 노동력에 기반을 두고 해외로부터 투자를 받아서 성장한 모델이다. 구자라트의 경제 수준은 인도에서 상위권이지만 아래의 통계에서 보이듯이 임금 수준은 인도의 다른 주보다 낮다.
이런 저임금에다가 인도에서 가장 앞선 ‘노동의 유연화’를 내걸었다. 근골격계 질환과 과다한 노동으로 이유로 구자라트에 위치한 GM 자동차에서 파업을 했을 때 모디의 첫 반응은 파업을 하면 대체 인력을 정부에서 보내주겠다는 것이었다. 구자라트 모델은 저임금, 노동의 유연화를 양축으로 하는 ‘친기업’적인 것이었고 이제는 구자라트를 넘어 인도의 ‘Make in India’ 모델로 진화하고 있다.
저임금에 노동의 유연화가 이렇게 심한데도 왜 모디노믹스가 지지를 받는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답은 1) 일자리가 아예 없는 것 보다는 저임금 일자리라도 있는게 낫다. (예: 마루티-스즈끼 파업이 났을 때 노동부 장관의 첫 반응은 “얘들이 일자리 구하기 얼마나 힘든지 모르나”였다. 2) 언론과 여론을 장악하는 중산층과 지식인들은 저임금 일자리의 고통과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고 경제 발전의 몫을 이들에게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2-3. 모디노믹스와 환경 문제
환경 문제 또한 모디 노믹스에서 첨예한 논쟁거리이다. 모디정권은 ‘그린피스 인디아’의 은행계좌를 동결했는데 명분은 그린피스 인디아가 “외국기부규제법(Foreign Contribution Regulation Act)”을 어겼다는 것이다. 사실 인도의 수많은 NGO들이 부패할 데로 부패해 있고 시민 활동가라고 자처하는 인간들이 NGO에서 근무하는 것을 아주 좋은 직장으로만 알고 있는 현실을 안다면 그린피스 인디아도 부패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린피스 인디아가 타밀나두에 들어설 원자력 발전소 건설 반대을 포함하여 각종 대형 발전 프로젝트들을 “국가에 대한 위협”이라 부르면서 반대의 선두에 서 있는 것을 안다면 이를 단지 인도에서 흔히 있는 NGO의 또 다른 부패사건이라고 선듯 판단할 수는 없다. 그린피스의 간부인 프리야 필라이가 영국 의회에서 마디야 프라데시에서 부족민들의 인권 침해를 알리는 연설을 하기 위해서 델리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는 것을 저지 당한 사건도 있었다.
인도에서도 환경 문제는 심각하다. 인도 일간지 타임즈 오브 인디아가 모디 총리 취임 1주년을 앞두고 지난 2015년 5월 16일 공개한 설문조사에서 모디 총리의 가장 잘한 정책은 ‘클린 인디아’ 정책이다. 인도는 마실 식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국가인데도 하천의 오염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클린 인디아 정책’은 갠지스강 정화사업을 포함하여 인도의 위생산업을 대폭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 모디의 이미지 정치 - 클린인디아 정책을 앞장 서서 실시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전통적으로 불가촉 천민의 일인 청소를 하고 있다. [출처: Narendramodi.in] |
그러나 NGO들은 모디의 이 클린 인디아정책을 원칙적으로 동의하고 있더라도 모디 정권의 경제발전 방향의 많은 면에는 동의하기 힘들 것이다. 원자력 발전소를 짓고 유전자변형작물을 대규모로 도입하는 투자 유치를 하고 있는 것은 인도의 많은 NGO들의 활동과 정면충돌하는 것이다. 이 NGO들 중 최대규모인 그린피스 인디아와 모디 정권의 충돌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최대 규모의 환경 NGO인 그린피스 인디아가 활동에 제한을 받게 되면 그 것을 선례로 다른 NGO들도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조금 더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구자라트 모델이나 모디 노믹스의 실제 내용은 저임금으로 제조업을 유치하여 환경 규제 받지 않고 공장을 운영하여 세계의 공장이 되겠다는 중국 개혁개방 초기 모델과 사실상의 차이가 없을 수도 있다는 분석을 우리는 거칠게나마 해볼 수 있다.
2-4 모디의 방한과 한국의 산업 공동화의 가능성
모디 총리의 해외국가들 방문은 철처하게 해외투자자본유치를 위한 것이다. 이번 방한에서 그가 처음부터 끝까지 초점을 맞춘 것은 한국자본의 인도 유치이다. 그러나 한국의 노동자들은 인도 모디 총리의 방한으로 엿볼수 있는 산업공동화의 위기의 가능성에 대처해야 할지도 모른다. 우선 현재 위기에 처해 있는 한국 조선업 노동자들이 이런 위기를 맞이할 수 있다.
참조. <세계의 창> 인도 모디 총리 방문, 울산 고용구조에 영향 끼칠까
http://www.usjournal.kr/News/72520
정몽구 현대 자동차 회장도 모디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인도 내 현대차 제3공장 건설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올해 첸나이 공장의 1, 2공장에서는 작년보다 4% 성장한 64만대를 생산, 판매할 계획인데 47만대는 인도 국내 내수로 17만대는 수출용이다. 3공장에서 어떤 생산라인이 들어설 것인가도 국내 자동차 고용구조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현재 1, 2 공장은 인도 국내 내수 위주의 소형차 중심의 생산라인을 갖추고 있는데 신설한 3공장에서 중형차 위주 위주 라인을 갖출 가능성이 있다. 국내에서 수출하는 중형차의 물량이 빠져나갈 수도 있는 것이다.
3. 모디 정권의 외교 안보 정책
모디 정권의 외교 안보 정책은 인도의 오래 외교 정책인 양다리 걸치기 연장선상에 있다. 안보 정책에서 모디 정권 이전의 가장 중요한 변화는 인도-미국 핵 협정이고 이것은 일본의 안보 다이아몬드 정책에 인도가 들어가는 것이다. 현재 모디 정권의 외교 안보 정책은 맘모한 싱의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차이를 굳이 강조하자면 해외 자본 투자 유치에 더욱 힘을 쓴다는 것이다.
3-1. 인도의 오랜 안보외교적 전통 - 양다리 걸치기
인도는 전통적으로 두 진영 간의 갈등을 이용하여 자국의 이익을 챙기는데 탁월했다. 냉전 시기에는 네루 정권과 인드라 간디 정권은 인도가 비동맹국가의 수장임을 자처하면서 중립임을 내세워서, 인도를 자신의 진영으로 끌어들이기 원했던 미국으로부터도 소련으로부터 다 지원을 받았다.
인도 제도권 공산당이 비합법화되지 않고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쏘련의 인도에 대한 지원을 떼고서 생각할 수 없다. 방글라데시 해방전쟁을 위해 인드라 간디의 요청에 따라 쏘련군을 보낸 것과 쏘련이 제공해주는 다양한 지원 때문이었다. 아시아 최대의 헌책방 서점들이 있는 인도 꼴까다의 컬리지 스트리트를 가면 70년대 읽히던 이공계열 책들을 보면 전부 쏘련에서 나온 것들이다. 당시 쏘련은 대규모 엔지니어링 인력들을 파견하여 인도에 공학 관련 기술을 전수해준 흔적들이 이렇게 남아 있는 것이다. 인디라 간디 정권은 토지개혁을 요구하던 인도공산당들을 탄압하기 위해서 쏘련에게 인도 공산당을 조용히 시켜줄 것을 요청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미국으로부터는 구호식량을 받다가 미국이 토지개혁을 제안했을 때 지주들의 정당인 국민회의는 이를 거부하고 토지개혁의 대안으로 미국이 제시한 녹색혁명을 받아들였다. 토지 개혁 관련된 지원은 물론 미국으로부터 받았다.
비동맹 운동의 역사의 다른 측면을 돌아보면 비동맹 국가들간의 연대 보다는 통치의 정당성 확보와 각 나라의 토착 자본가들이 냉전을 이용하여 이권을 챙기는 역사로 첨철되어 있다. “중소 분쟁으로 벌어진 틈 사이에서 비동맹 운동은 주변부 국가들의 부르주아 민족지도자들이 어부지리를 얻어가는 방향으로 퇴색되어 갔다.”
모디 총리 또한 미국과 중국 양측의 경쟁 관계를 최대한 활용하여 그 틈새에서 자국의 이익을 챙기려고 하고 있다. 인도의 안보와 외교 정책을 이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아래에서부터 설명할 중국으로부터 위협이라는 인도의 안보 정책과 인도의 경제 정책 사이에 모순점들이 있다고 여겨질 때는 더더욱 그래야 한다.
3-2. 인도 - 미국 핵 협정
2006년 3월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인도를 방문하여 맘모한 싱 전 인도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지고 인도의 민수용 핵시설에 대한 핵 협력 협정을 체결하였다. 이 협정의 주요 내용은 양국은 22개의 인도 원자로 중 핵시설을 민수용과 군사용을 구분하고 민수용 14개만을 국제사찰을 허용하는 조건으로 미국이 인도에 대한 핵동결을 해제하고 핵 연료와 기술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인도는 기존 개발해오던 자체 핵 기술 개발을 포기하고 미국이 제공하는 기술로 교체하기로 하였다. 인도로서는 자체 군사용 핵 기술 개발에 대해서는 사찰을 받지 않아도 되는 아주 예외적인 ‘대우’를 받는 것이었고, 미국에게는 핵 관련 시장을 비롯한 각종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게 되는 협정이었다. 인도가 자국의 핵무기 개발을 미국으로부터 용인 받고, 핵 관련 시장을 미국에게 열어주는 협정을 한 것은 인도가 안보정책까지 포함하여 미국의 주도하는 세계 체제에 깊숙히 들어가겠다는 의지의 실현이었다. 인도의 안보 정책은 이 협정 이후 급격하게 미국의 안보 체제 안으로 깊숙히 들어가고 있다.
3-3. 일본의 안보 다이아몬드 안의 인도와 각 국가들의 관계 - 중국의 위협이라는 명분
일본의 민주적 안보 다이아몬드에는 인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2007년 여름 아베는 인도 국회 연설에서 무굴 제국의 비운의 황태자 다라 시꼬(Dara Shikoh)의 책 “두 대양의 합류(confluence of two seas)” 인용하면서 일본과 인도와의 관계 발전을 천명했다.
2010년 12월 일본 국방성에서는 새 국방정책이 담긴 지침을 내놓았다. 2004년 이후 처음으로 개정된 것으로 2011년부터 향후 10년간의 연간의 국방정책을 담고 있다. 일본이 테러, 이북의 호전성과 중국의 군사력 증강에 대처하기 위한 국방정책을 세우는 것을 골간으로 한다.
2012년 12월 일본은 중국을 견제하려면 일본 - 하와이(미국) – 호주 -인도가 연계해 다이아몬드 대열을 갖춰야 한다고 제안. 인도는 아시아에서 일본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임을 강조.
2014년 일본은 인도 모디 총리와 당선 이전부터 트윗 친구라고 우정을 과시, 지원 약속. 5년간 수조엔 경제협력 추진 약속
일본의 민주적 안보 다이아몬드는 이슬람국가들과 중국에 의해 포위당한 – 진주 목걸이라 불리는 형세 – 인도의 이익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이다.
3-4. 인도와 미국
일본의 민주적 안보 다이아몬드는 사실상 미국의 큰 그림에서 나온 것이다. 미국은 중, 일 영토권 분쟁 지역을 센카투로 부르고 댜오위다오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 지역이 미일 방위권 내에 있음을 명확히 하고 있으며 남지나해에서 중국이 인공섬에 군사시설을 늘리는 것에 명백하게 반대를 하고 있다.
인도는 앞서 말한 인도-미국 핵 협정 이후 인도를 미국의 안보 체계 안에서 편입시켰기에 인도-일본, 인도- 호주와의 협력 상황을 정검하고 있을 것이다.
‘
미국은 일본과 미국의 공동해상 군사훈련시에 인도도 참가할 것을 권하고 있으나 아직 결정 나지는 않았다.
3-5. 인도와 호주
2014년 11월 모디 총리는 호주를 방문하여 인도와 호주는 인도 핵개발에 필요한 우라늄의 공급과 양국간 교역과 안보 관계를 위한 협정을 맺는 것에 동의했다. 안보 관련되어 논의된 것은 ‘중국의 위협’에 공동대처하기 위해 매년 장관들의 회의, 정기적인 국방장관의 회의, 매년 국방정책 논의와 정기적인 공동 해상 훈련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12월에는 인도 연안경비선인 산칼프호를 호주로 보내었다.
3-6. 인도와 한국
1973년 우리나라와 수교한 인도는 2010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고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을 체결했었으나 인도로서는 계속 한국과 무역 적자를 보고 있기에 양국 관계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야 하는 상황이다.
2014년 1월 박근혜 대통령의 인도 방문을 계기로 한국-인도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체결했다.
2015년 4월 16일 인도 마노하르 파리카르 국방장관은 한국을 방문했다. 양국 국방장관 회담이 열린 것은 2012년 10월 이후 2년 6개월여 만이다. 이전 방문과는 달라진 것은 인도가 한국 방산기업의 인도 내 합작 생산 유치 협력에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양국이 유엔평화유지군(PKO)을 파견한 남수단과 레바논에서 PKO 활동의 협력을 활성화하기로 한 논의는 아주 부차적인 것이다.
단순한 국방차원의 방문이 아니라 모디 정군의 ‘Make in India’와 궤를 같이 하는 것이었다. 인도는 'Make in India' 정책에 따라 국내 방위산업을 강화하는 데 역점을 두는 것은 자국 방산 분야에 대한 외국기업의 직접투자 비율을 26%에서 49%로 대폭 높이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단순히 한국에서 무기를 수입하는 것이 아니라 전차 엔진 등 부품 생산 공장을 인도에 유치하는 것이었다. 인도 정부는 한국 기업에서 수입하려다고 했던 소해정(기뢰제거 선박), 또 한국산 초음속 훈련기 T-50을 활용한 훈련체계 등 한국의 방위 산업 현지화 모델에도 관심을 보였다. 파리카르 장관도 지난 16일 국내 방산업체 한화를 방문했으며 18일 한화, 삼성탈레스, 두산DST 등 방산업체 관계자들의 토론에 참여했는데 이 모두가 한국 방산업체의 인도 투자와 관계 되는 것으로 추측된다.
4. 인도 진보 세력들의 대응의 한계
현재 모디 정권을 흔들만한 가장 정치적인 쟁점으로 보이는 것은 토지수용법 개정에 맞서는 대규모 농민시위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대규모 농민 시위는 모디 정권을 흔들지는 못하고 있다.
첫 번째, 경제 발전을 모디에게 기대하면서 찍은 다수의 유권자들은 이 대규모 농민 시위에 관심이 없다. 모디 정권 지지자들의 다수는 토지 수용법 개정에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 모디 정권의 지지자들의 관심은 토지 수용 이후 경제 발전의 혜택이 그들에게 오는 것에 있지 농민들에 대한 관심은 없다.
두 번째, 이 시위의 전면에 나선 국민회의를 비롯한 여타 정당들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회의가 지난 총선과 총선 이후 각 지역 선거에서 계속 참패를 하고 있는 것은 두 번째 집권시기부터 심해진 경제위기와 물가 상승 때문이었다. 국민회의가 과거 정책 실패를 만회하면서도 현 모디 정권보다 나은 새로운 정책적 대안의 제시 없이 농민의 이름으로 시위를 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대규모 농민 운동조직과 직접적인 관계를 가진 좌파정당들 또한 국민회의와 마찬가지로 토지수용법 개정 반대에서 설득력이 없다. 웨스트 벵골에서 30년 넘게 집권했던 인도 공산당(맑스주의)는 난디그램 지역 개발에서 토지 수용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대규모 폭력 상황을 맞이했고 그 후유증으로 정권을 잃었다. 좌파정당이 자신의 과거 실책에 대한 제대로 된 자기 비판을 담은 새로운 정책적 대안 없이 모디의 토지 수용법 개정에 반대를 하는 것은 그 진정성을 의심 받을 수 밖에 없다.
세번째 좌파정당들이 반대를 위해 내거는 것은 모디 정권은 힌두 꼬뮤날리스트 정권이라는 지겹도록 반복되는 주장은 식상하기 이를데 없다. 유권자들은 모디 정권의 변화를 알고 모디 정권을 지지했다. 좌파정당이 정책으로 승부하는 것이 아니라 BJP의 과거의 행적을 물고만 늘어지고 있는 것은 처량하기 이를데 없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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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iaToday.in Mumbai, April 1, 2014, Uddhav UddhavUddhav Thackeray says 'anti Thackeray says 'anti-national Muslims have no right to live in India
The Telgraph, March 22, 2015 Minority ire erupts on PM acolyte.
in.reuters.com, Thu, Feb 12 2015, Tough election battles ahead for Modi after Delhi drubb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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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post.com, Feb 7, 2015, Delhi polls 2015: AAP’s rise shows Modi can’t take his popularity for granted
News Express, March 14, 2015, Bihar CM Nitish Kumar starts 24hour satyagraha against Land Bill, Party's statewide agitation
Desai, A. R,. 2001, Social background of Indian nationalism, Popular Prakashna pp. XXX - xxxi
[주례토론회] 정호영. 중소 분쟁사를 통해 본 중소 논쟁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99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