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슬아슬한 승리가 아니라 압도적 승리였다. 개표 결과를 발표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비난과 중상을 퍼부었던 노동당 우파와 당권파, 의원단은 물론, 주류 언론과 집권 보수당까지 결과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다. 토리당의 신자유주의, 그에 야합한 신노동당 블레어주의에 대한 대중적 저항과 노동당을 통한 희망적 미래의 흐름이 형성됐다. “당의 미래에 대해 당원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출마하겠다”고 출사표를 던진 코빈의 승리는 영국의 제도정치에 엄청난 충격을 가했다.
코빈의 압도적 승리
□ 지도부 선거의 주요한 특징
높은 참가율: 자격 유권자 55만4272명 가운데 42만2871명 (76.38%) 참가
투표참여 당원의 획기적 증가: 2010년 12만7330명 → 2015년 24만5520명
등록지지자의 대규모 참여: 10만5598명, 이중 8만8449명(83.76%) 코빈 지지
소속단체 투표참여의 현격한 감소: 2010년 21만1234명 → 2015년 7만1546명
참가율의 증가: 2010년 71.7% [12만7330명/17만7558명] → 2015년 76.38%
영국 역사상 최대의 온라인 투표: 34만3995명 (81.3%)가 온라인 투표
제러미 코빈은 지구당원 투표에서 12만1751표(49.59%), 노동조합과 사회주의협회 등 단체 당원투표에서 4만1217표(56.71%), 등록 지지자 투표에서 8만8449표(83.76%) 등 총 25만1417표(59.5%)를 얻었다. 고빈은 총득표에서는 2위 앤디 번햄와 3위 이베트 쿠퍼 후보를 합친 표보다 10만여 표 이상을 얻었다. 지구당과 단체당원 투표에서도 확고부동의 1위를 확보했지만, 새로 도입된 등록 지지자 투표에서 84%의 압도적 지지를 얻어 당 외부로부터도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음을 보여줬다.
지도부 선거에 참여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기준 35표 지명을 겨우 넘긴 제러미 코빈의 선전과 승리는 현재 노동당이 의원단(PLP)과 지구당이 얼마나 괴리돼 있는지 보여준다. 동시에 코빈의 선거운동은 바로 의원단 중심의 당운영에 대한 기층의 반대와 당내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었다.
코빈은 1983년 이래 런던 외곽 이슬링턴 북 선거구에서 의원직을 유지했지만, 당내에서 변변한 경력도 없는 아웃사이더에 지나지 않았다. 당내에서 노동당 민주화 캠페인이나 사회주의 캠페인 등 좌파 단체와, 비핵화 캠페인(CND), 반전운동 연합 등 사회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지만, 당내 지지기반은 사실상 전무한 상태였다.
당내의 취약한 기반에도 코빈이 거둔 압도적 승리의 규모는 2010년 선거와 비교해 보면 분명해진다. 2010년 지도부 선거에서도 블레어-브라운 당권파의 지지를 받는 형 데이비드 밀리번드에 맞서, 노동조합의 지지를 통한 에드 밀리번드의 승리는 한편의 역전 드라마였지만, 에드 밀리번드가 얻은 표는 11만4000여 표(37.58%), 4차 조정 이후에도 17만5000여 표(50/65%)에 불과했다.
선거개혁의 부메랑: 블록 투표제 종식 이후
2010년 출범한 에드 밀리번드 지도부는 블레어주의 우파의 견제와 압력에 시달렸고, 내부적으로 당원 1인 1표제를 핵심으로 하는 선거개혁안을 추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선거제도 개혁은 지구당 중심으로 당의 조직구조를 개혁한다는 명분이었지만, 노동조합의 블록 투표제를 없앰으로써 당내에서 노동조합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는 블레어주의 주류파의 의지가 관철된 사례였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당의 외연을 확대하기 위해 도입한 지지자 투표제도는 거꾸로 블레어주의 주류파에게 부메랑으로 돌아갔다. 코빈 열풍 속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지구당에 가입하거나 3파운드를 지불하고 등록지지자로서 투표권을 행사했다. 당권파나 에드 밀리번드,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돌풍이었다.
1970~80년대 100만의 당원과 1000만 명에 육박하는 노동조합 단체당원을 거느렸던 과거 전성기의 노동당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20만 명 이하로 몰락한 노동당에 이번 지도부 선거과정에서 10만명 넘은 새로운 당원들이 가입했다. 더불어 노동조합 역시 블록 투표의 기득권을 버리고 개별 투표로 참여해서 코빈 돌풍을 조직적으로 지원했다. 그러나 2010년에 비해 14만여 표나 감소한 수치다.
코빈 압승의 의미: 신자유주의 긴축 반대, 노동당의 민주화
무엇보다도 제러미 코번의 승리는 마가렛 대처의 신자유주의와 야합한 블레어주의 신노동당에 대한 대중적 심판이다. 마가렛 대처는 “내 인생 최고의 성과는 토니 블레어”라고 말했다. 대처-블레어로 이어진 신자유주의 35년에 대해 제러미 코빈이 종지부를 찍었다. 따라서 데이비드 캐머론 보수당 정부의 신자유주의 긴축기조에 대해 노동당의 주류를 구축하고 있는 블레어파는 선거 기간 내내 주류언론과 보수우파의 지원을 등에 업고 코빈 캠페인을 공격했다. 그러나 그들의 공세는 실패했고, 연간 4억 파운드의 노조 재정지원을 포기하면서 블록투표제로 상징되는 노동조합의 영향력을 제거하려던 자칭 민주화 프로젝트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코빈 돌풍을 통해 몰락한 것은 노동조합이 아니라 블레어주의 신노동당이었다.
또한 런던시장 후보 선거전에서도 블레어파의 지지를 받는 테사 조얼 후보가 패배하고, 파키스탄계 사디크 칸 후보가 승리해 내년 6월 런던 시장 선거에 노동당 공식후보로 나서게 됐다. 이 역시 신노동당의 이름으로 노동당을 탈노동화한 블레주의에 대한 정치적 타격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의미는 새로 노동당에 가입한 10만여 명의 신입 당원과 8만여명의 등록 지지자들이다. 이들의 힘으로 노동당은 역사상 최초로 사회주의를 공공연히 주장하는 좌파 지도자를 갖게 됐다. 의회내 노동당과 중앙당 관료주의를 지배하는 블레어주의 주류파에 맞서 지구당의 기층당원과 일반 노동대중의 목소리가 노동당을 지배하게 된다면, 이는 영국정치와 노동당에 거대한 지각변동을 가져올 것이다. 어쩌면 1970~80년대 노동당을 사회주의 정당으로 전환시키려던 토니 벤(1925-2014)의 프로젝트가 다시 현실화될 수 있다.
제러미 코빈의 거대한 실험과 영국 노동당의 미래
코빈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노동당이 사회운동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내 노동당 중심의 당운영을 넘어, 기층과 호흡하는 노동당을 창출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코빈 지도부는 100년이 넘는 영국 노동당의 역사에서 최초의 좌파 지도부다. 이번 승리는 정직하고 원칙적인 좌파 정치인 제러미 코빈 개인의 승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코빈의 승리로 정치적 측면에서 반긴축 좌파기조를 통한 정치질서 재편의 과제가 제기됐고, 조직적 측면에서는 1) 블레어주의 신노동당 주류파의 몰락, 2) 노동당 좌파의 재생 가능성, 3) 당의 아래로부터 새로운 당원들의 대규모 가입을 통한 조직적 혁신의 가능성이 확인됐다. 그의 승리는 지난 5월총선에서 노동당 패배의 의미를 재확인함과 동시에 당의 미래와 진로에 대한 대중적 토론의 활성화를 통한 조직적 대안의 존재를 확인했다.
따라서 보수당 정부에 맞서 반신자유주의, 반긴축의 기조를 전사회적으로 확장함과 동시에, 노동당 내부적으로 기층 당원 중심의 민주주의를 확대-심화함으로써 자본주의 체제에 순응하는 부르주아 노동자당이 아니라, 광범한 노동계급 전체의 사회주의 정당으로 발전시킬 역사적 실험의 도정에 올랐다.
그러나 낙관은 금물이다. 보수적 주류사회와 제도언론은 코빈 압승의 의미를 최소화하려고 하며, 블레어주의 주류파의 당내 저항은 조직적 형태로 전개될 것이다. 기존 블레주의 신노동당 내에 조직적 기반이 전혀 없는 코빈의 거대한 실험은 기층 당원이 중심이 되는 당내 민주주의 없이는 불가능하다.
기층의 힘과 사회주의 지향을 결합시켜, 당 안팎과 전사회적인 투쟁을 통해 노동당을 사회주의 정당으로 바꿔내는 과제가 코빈에게 주어졌다. 역설적으로 지난 30년간 노동당 외부의 좌파들이 대안적 사회주의를 추진할 주체형성의 과제에 실패했기 때문에, 다시 이 과제가 노동당과 코빈에게 돌아갔음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이 투쟁은 영국만의, 영국 노동당만의 문제는 아니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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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울산저널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