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 사각지대와 삶을 잇고, 관객을 깨우는 배우들

[인터뷰] 연극배우 양정윤·김정화 인터뷰

최근 3년 간 연극계에 연이어 풍파가 들이닥쳤다. 코로나19로 공연이 줄줄이 취소되거나 축소되면서 연극계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생존을 고민 중이다. 2017년 말 시작된 미투에서도 연극계는 가장 큰 지탄을 받은 분야였다. 유명 연출가, 배우, 교수 등의 성폭력 사실이 연이어 폭로되며 밑바닥에서부터 자정이 요구됐다. 이런 위기 속에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배우들이 눈에 띈다. 이들은 페미니즘, 성소수자, 세월호 참사, 노조파괴, 국가 폭력 등 가장 사회적인 이슈들을 다룬 작품에 출연해 고정관념을 깨고 변화를 추동하고 있다. 이들은 또 권위주의와 성폭력 등으로 논란이 돼온 연극계에서 성평등한 문화를 정착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연극배우 양정윤과 김정화는 이러한 연극계의 움직임을 만들고 있는 배우들이다. 이 두 배우는 지난 8월까지 극단 ‘신세계’의 연극 〈공주(孔主)들2020〉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바 있다. 〈공주들2020〉은 ‘양공주’ ‘왜공주’ ‘관광기생’ 등 공주(公主)라 불린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대한민국 성착취 100년사를 돌아봤다. 성착취사는 지금도 쓰이고 있어 2018년엔 미투, 2019년엔 버닝썬, 올해는 n번방 이야기가 추가됐다. 《워커스》는 두 배우를 만나 〈공주들2020〉과 연극계 성평등 문화를 위한 노력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김정화(왼쪽) 배우와 양정윤 배우

우선 근황부터 듣고 싶다

양정윤(이하 양) 건강 검진을 받으러 간 병원에서 코로나 환자가 나와 자가격리에 들어갔고 얼마 전 끝났다. 자가격리가 힘들고 무서운 조치인 줄 이제 알게 됐다. 코로나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작품도 못 하고 있다. 5월에 하기로 한 작품이 10월로 연기됐는데, 또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김정화(이하 김) 그 건강 검진을 같이 받은 덕분에 저 역시 자가격리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최근에 오디션을 하나 봤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그것 빼면 공부하면서 그냥 쉬고 있다. 12월쯤 잡지 작업이 하나 예정돼 있는데 그 일정 역시 불확실하다.

공연이 줄줄이 취소되고 있는데 배우들은 생계를 어떻게 이어가는지 궁금하다

김 일자리도, 페이도 줄고 있다. 지금까지는 예술인복지재단, 파견예술인 지원금 등으로 버텼는데 앞으로 계속 지원이 될까 걱정도 된다. 문재인 정부에서 오는 12월부터 예술인도 고용보험에 가입하도록 했다고 하지만 사실 큰 기대가 없다. 작은 극단의 연극은 매우 짧은 기간 동안 이뤄지기도 하고, 일을 동시에 할 때도 있어서 고용됐다고 말하기 힘든 것 같다.

양 원래 연극으로만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서 알바를 병행했는데 요샌 알바 자리도 없어졌다. 그동안 행사 알바를 했었는데 요즘엔 행사 자체가 잡히지 않아 일할 수 없었다. 다른 분들도 그렇겠지만, 저도 모아둔 돈을 쓰면서 지내고 있다. 무기력증에서 빠져나온 것도 최근이다. 올해 〈공주들2020〉 연습을 길게 했는데 정말 아무 의욕이 없었다. ‘죽음 앞에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지?’ 이런 고민이 컸다. 온전히 회복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공주들2020〉이 끝났다. ‘김공주’의 인생은 대한민국 성착취 역사와 궤를 함께한다. 인물의 무게가 있다 보니 연기하는 데 부담도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떤 자세로 연기했나.

양 2018년도에 초연을 준비할 때 혹시나 내가 특정 누군가의 삶을 모방하고 재연하는 데 그치지 않을까 두려웠다. 관객이 ‘잘 살렸네’라며 박수치고 끝나지 않길 바랐다. 모든 배우가 마찬가지겠지만 관객이 연극을 통해 하나의 파편이라도 가져가길 원한다. 타인의 이야기를 지켜보는 것에서 끝내지 않고, 연극을 매개로 연극의 이야기와 자신의 삶을 연결하길 바라는 것이다. 이런 연결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고 있지만, 어려운 일이다.

김 〈공주들〉은 1장부터 마지막장까지 연출, 배우, 스텝이 함께 만드는 공동 창작이다. ‘당신의 이야기’라는 것을 주입하기 위해 극에 여러 장치를 심어둔다. 모든 상황 설정과 대사 등이 어쩌면 이를 위한 것일 수 있다. 최선을 다해 장치를 만들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은 받아들이고, 튕겨내는 사람은 튕겨낸다. 관객의 반응을 보면 저 사람이 동의하지 않고 있구나, 받아들이지 않고 있구나 하는 것이 느껴진다.

김정화 배우가 연기한 ‘고공주’란 인물은 이 시대 아버지, 아들 상이 그대로 투영된 인물이었다. 전쟁에 동원돼 후유증을 얻었고, 극우화하여 가족에게 폭력을 저질렀다. 너무 전형적인 인물이라 연기하면서 고민도 들었을 것 같다.

김 전형적인 인물을 통해 반복되는 역사를 알리고자 하는 게 목적이었기 때문에 다르게 연기하고자 하는 시도는 없었다. 고공주는 폭력의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그 폭력을 고스란히 돌려줘야만 분이 풀리는 인물, 또 고민하지 않는 인물로 설계됐다. 고공주 연기를 위해 전쟁에 대한 공부를 할수록 전쟁이 비극으로 다가왔다. 개인적으론 베트남에 파병된 우리나라의 극우들과 소녀상을 대하는 일본 극우의 모습이 비슷하다는 게 놀라웠다.

양정윤 배우에게도 비슷한 질문을 하고 싶은데 ‘위안부’ 피해자, 성매매 여성의 보편화된 이미지들을 타파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나?

양 위에서 말한 그들의 삶을 모방하는 것에 그치지 않기 위한 노력과도 연결된다. 우선 주변 지인들을 관찰하려고 했다. 성노동을 하는 친구도 있고, 성폭력에 노출된 사람들도 많았다. 이들은 사회에서 규정한 ‘피해자 프레임’에 갇혀서 살고 있지 않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더 건강하게, 더 악착같이 잘 산다. 우리 모두 내면에 곪아 터진 상처쯤은 있지 않나. 우리를 멈추게 하는 일들이 생기지만 그럼에도 살아가게 되는 것은 그 동력도, 계기도, 방향도 다 다르다. 이를 이해하면서 나의 상처, 다른 이들의 상처를 꺼내 잇는 작업, 이를 보편의 문제로 만드는 작업을 했다.

〈공주들2020〉엔 n번방 이야기가 추가됐다. 매해 업데이트되고 있는데 n번방 사건을 작품에 녹이는 과정이 궁금하다.

김 동료들과 자조적인 농담을 많이 한다. 사회가 이렇게 이야깃거리를 던져주는데 창작을 안 하는 건 직무유기라고. 공주들 연극을 3년째 하고 있는데 매년 달라지는 파트가 현대 성매매 부분이다. 미투에 이어 버닝썬, n번방까지 있었다. n번방을 녹일 때 장면 발표가 40개가 넘을 정도로 각자가 생각하는 문제의 면면이 달랐다. 그럼에도 가부장제하에서 성착취가 지속되는 건 시스템의 문제라는 것, 그리고 우리 모두 시스템에 종속돼 살아가기 때문에 선긋기 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돈이 많아 성매매를 하는 것도 아니고, 컴퓨터를 이용하지 않는다고 사이버 성폭력과 상관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나는 억울하다’는 남성들이 많다. 페미니즘 의제들이 성대결을 부추긴다는 사람들도 있고. 연극을 만들면서 모종의 합의들은 이뤄진 건가?

양 2018년에 〈공주들〉을 준비하면서 피 터지게 싸우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한 장면 한 장면을 만드는 게 고통스러웠다. 남성 배우들은 잠재적 가해자로 위치돼 흥분했고, 여성 배우들은 전체 큰 그림을 봐달라고 호소했다. 장면 발표 때 서로 상처받고, 말도 안 하고 있다가, 이성을 찾고 시도를 한 게 자기 이야기 들려주기다. ‘내 이야기를 들려줄게’로 시작한 이야기는 생각보다 큰 힘이 있었다. 우리의 태도와 행동과 말이 가부장제, 성착취 문화와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 보이기 시작한 것 같다. 타협점이 생겼고, 그때부터는 맞출만한 선이 생겨서 토론이 됐던 것 같다.

김 그때 열렬히 화를 냈던 남성 배우 1인이 나다. 뭐가 씌운 것처럼 화냈던 기억이 난다. ‘인간 보편적 이야기를 하자면서 왜 여성만 공감하는 장면을 만들어? 그럼 여자들끼리 하든가!’ 뭐라 했던 기억이 있다. 양정윤 배우가 자기 이야기를 솔직하게 하면서 공감이 시작됐다고 말했는데 실제 그랬다. 〈이갈리아의 딸들〉을 작업할 때도 느꼈지만, 알고자 하는 사람의 입장에 서보고, 그렇게 행동하고, 살다 보면 안 보이던 게 보이는 것 같다. 제가 느낀 연극의 힘이기도 하다.

이견 조율에 시간이 걸렸을 것 같은데 연극 준비 기간이 궁금하다.

김 초연을 할 때 총 연습기간이 4주였다. 3주 동안 대본을 만들고, 쪽대본이 나오면 그걸로 연습했다. 〈공주들〉은 2018년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의 마지막 작품이었다. 마지막으로 올라가는 공연이니 정말 후회 없이 끝장나게 해보자, 할 수 있는 거 다 해보자는 결기가 있었다.

2018년 극에서 미투를 다뤘다. 연극계의 미투도 화두였는데, 미투 이후 연극 현장이 궁금하다.

양 우선 미투가 터지기 전 제가 경험한 연극계는 성희롱이 만연했다. 쉽게 말하면 여자 후배들은 남자 선배 옆에서 술을 따르고, 또 추행이라고 할 만한 터치도 늘 있었다. 또 농담이랍시고 성희롱을 하는데 저보다 어린 친구들도 곧잘 그런 성희롱을 했다. 나이가 상관없었다. 그런 성희롱을 들으면 웃으면서 넘기거나, 농담으로 받아쳤다. 분위기를 차갑게 하지 않는 게 꼭 임무처럼 느껴졌다.

미투 이후의 변화에 대해 하나의 에피소드를 말하고 싶다. 미투 이후 어느 술자리에서 어떤 남성 배우가 여성 배우에게 가슴을 갖고 성희롱을 했다. 예전 같으면 같이 웃고 말았을 텐데 ‘그거 성희롱이야. 그런 말 함부로 하지마’라고 지적하게 됐다. 저도 모르게 정말 화가 나서 말이 나와 버렸다. 만약 그렇게 말하지 않았으면 저도 건드렸을 텐데 내가 싸울 태세가 돼 있다는 걸 안 모양이다. 더 이상 성희롱은 없었다. 그때 잘못에 대해 지적이 꼭 필요하다고 느꼈다. 미투가 터지고 술자리 자체는 많이 없어진 듯하다. 또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도 생겼다. 이런 작은 시작이나마 다행이라고 느낀다.

김 크게 달라진 것은 못 느낀다. 여전히 (성희롱이 잦은 것은) 동일한 것 같다. 다만 성폭력 사건이 일어난 이후에 피해 당사자, 가해 당사자 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인식이 바뀐 것 같다.

김정화 배우는 극단 ‘신세계’의 단원이기도 하다. ‘신세계’는 매번 작품을 진행할 때마다 ‘성폭력 위계 폭력 지침서’를 업데이트한다고 들었다. 조직 내 반성폭력 내규에 대해 설명을 부탁드린다.

김 연극계 내부(성폭력 문화)로부터 우리를 바꾸고 싶었다. 시행착오를 겪고 있기 때문에 지침은 매번 달라진다. 작품마다 극단 멤버들과 프로덕션 사람들이 새로 만나게 되는데, 프로덕션마다 그 특징이 달라 그때마다 지침서를 함께 읽고, 논의해서 수정할 부분들을 고친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 내규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아픔도 있고, 어려운 부분이다.

두 배우 모두 출연작들이 눈에 띈다. 소수자, 억압받는 이가 나오는 작품들에 출연하게 된 계기, 이유가 궁금하다.

김 배우의 행보가 배우 개인의 선택으로 이뤄지는 건 아니다. 동료와 속한 극단의 영향이 컸다. 개인적으로 ‘신세계’는 예술인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도 할 정로 불합리에 대해 많이 이야기해 왔다. 만약 극단이 아닌 개인으로 목소리를 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양 사각지대에 놓인 삶에 관해 관심이 있었다. 그 삶이 내 삶과 이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했던 주제에 대해 불편하다, 두렵다는 생각은 안 해 봤다. 다만 보통의 사람이 아는 것을 넘어 그들을 이해시키고 함께 가기 위해선 말도 안 되는 양의 공부를 해야만 하는 게 어려웠다. 알면 알수록 사각지대는 훨씬 넓었다. 계속 그쪽을 돌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정화 배우에게 마지막으로 묻고 싶다. 극단 ‘신세계’는 ‘새로운 세계, 믿을 수 있는 세계를 만나고 싶은 젊은 예술가들의 모임’인데 김 배우에게 이러한 세계는 어떤 세계인가?

김 내게 새로운 세계, 믿을 수 있는 세계는 작업에 대한 태도다. 내 두 발을 땅에 딛고 세상을 바라보고, 내가 해석한 세상을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싶다.

양정윤 배우에게 마지막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 묻고 싶다.

양 작은 영향력이라도 가진 배우, 또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영향력이란 건 상황에 따라 부정적인 일에 사용될 수도 있어 그 파동이 염려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내게 영향력이 있었으면 한다. 내 행동의 파동을 생각하면서 행동에 제약을 받기도 하지만 이러한 재단이 최근 즐겁고, 필요하고, 옳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치유와 치료라는 내 연극의 방향성과도 연관된다. 내가 가족, 친구, 작업자, 지인들로부터 힘을 얻듯, 나로부터 힘을 얻는 사람들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