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나도 겪었을지 모를 폐업과 해고

[서평] <회사가 사라졌다>가 건져 올린 기억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폐업과 여성노동에 던지는 끈질긴 질문

아침 일찍 가산디지털단지역에 내려서 출근하는 때가 아주 잠깐 있었다. 파견직 노동자로 핸드폰 부품을 조립하는 일이었다. 내 또래 미혼의 여성들과 중년의 여성 50여명이 한 공간에서 같은 일을 했다. 과장으로 기억하는 남성 관리자는 여성 노동자들을 학생처럼 대하며 권위적인 교사처럼 굴었고 작업복 조끼를 입지 않고 조회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함께 파견직으로 들어간, 나보다 어린 동료를 그 자리에서 해고했다. 21세기가 맞나 싶은 2000년대 중반이었다.

먼지 쌓인 종이 앨범 들추듯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 난건 <회사가 사라졌다>(싸우는여자들기록팀 또록 지음, 2020.11.30, 파시클 출판사)를 읽으면서다. ‘싸우는여자들기록팀 또록’에서 회사의 폐업으로 싸우는 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다. 책은 회사의 폐업으로 일자리를 잃은 여성 노동자들이 사라진 회사와 싸우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리고 또록 기록자들은 그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여성 노동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여성 노동의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 속에 가부장제가 강요한 사고의 흔적이 있지는 않은지 질문을 던진다. 더불어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폐업의 형태를 다양한 직종의 노동자 이야기로 보여준다. 이렇게 정리하니 꽤 크고 넓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기도 한데 결국 일관되게 회사 폐업과 여성노동이라는 두 가지 화두에 끈질긴 질문을 던진다. 회사가 오직 회사 사장만의 것인가? 여성노동을 단지 반찬값을 벌기 위한 것으로 치부할 수 있는가?

  싸우는여자들기록팀 또록 지음, 2020.11.30, 파시클 출판사

기업하기 좋은 나라, 그리고 싸우는 여자들

이 질문들과 마주하며 책장을 넘길 때마다 다채로운 감정을 경험했다. 첫 번째 감정은 분노로 시작했다. 책의 1부에서 듣게 되는,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거리에서 싸우게 된 이야기는 기가 막힌다. 자동차의 가죽시트 재봉 작업을 했던 성진씨에스 노동자들, 휴대폰 부품을 만드는 신영프레시젼 노동자들, 문구용 스티커를 만드는 레이테크코리아 노동자들 모두 점점 열악해지는 노동조건과 처우 개선을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고 가입한다. 회사는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자 기다렸다는 듯 회사를 폐업한다. 가족 같은 회사를 강조하며 집안의 가장인 양, 자신이 노동자들을 먹여 살린다고 하더니 그 노동자들이 고분고분한 자식이기를 거부하고 누려야 할 권리를 요구하겠다고 하자, 먹고 살 수단을 없애 버린다.

분노가 고양된 건, 정부에게 이런 문제에 대한 어떤 대책도 없다는 이야기에서다. 중소기업에 대한 온갖 지원과 특혜를 주지만, 회사가 적법한 절차와 과정만 보여주면 문을 닫는 것이 이렇게 쉬운 일인지 부끄럽게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정부가 공공자금으로 기업을 지원하는 것은 그들 말대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서일 텐데 지원받은 기업이 그 일자리를 다 없애버려도 아무 조치가 없다. 노동자들이 십수 년 동안 노동 강도를 두 배로 높이며 생산량을 높여서 남긴 이윤을 회사는 다시 노동자들에게, 그들의 일터에 투자하지 않고 부동산을 사고 골프장과 같은 서비스 산업으로 업종을 바꾼다. 정말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사실에, 노동자를 위한 법은 이렇게 허술하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그러나 여성노동자들이 사라진 회사와 싸우는 과정에서 분노만 있는 것은 아니다. 회사와 가정만이 전부였던 분들이 연대와 투쟁의 과정에서 세상을 다시 보고 성장하는 이야기는 따뜻하다. 소극적이고 표현을 잘하지 못하던 분이 노조 사람들과 거리에서, 시민들 앞에서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며 사회도 보고 율동도 하면서 성격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만큼, 이전과 다른 자신을 발견하는 일. 회사에서 겪은 고생이, 배움이 짧은 여성으로서 겪을 수밖에 없는 팔자가 아니고 사실은 사측의 ‘갑질’이었다는 것을 깨달으며 갖게 되는 자신의 언어. 짧지 않은 싸움은 고되었을 테고 사측으로부터 얻은 결실도 부족할 텐데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싸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달라고 글쓰기를 부탁한 마음. ‘또록’이 전해주는 그들의 이야기는 나의 엄마 이야기 같았고 과거에 함께 일했던 동료들의 이야기 같았다.

폐업이 너무 쉬운 현실을 바꾸기 위해 고민할 것들

‘또록’은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을 구술하고 기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여성 노동의 현실에 주목하며 그 위치를 묻는다. 남성 노동자들이 조건이 나은 일자리를 찾아 퇴사와 이직을 반복할 때, 그 빈자리를 여성 노동자들이 채우는 현실. 남성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는 일은 그 가족의 생계를 위협하는 일이지만 여성 노동자의 실직은 그 정도는 아니라는 사회적 인식. 최저임금을 넘지 못하는 임금을 받으면서도 잔업과 특근으로 자식들을 키운 여성 노동자의 경험은 경력이 되지 못하고 ‘엄마의 억척스러움’과 ‘고생’으로만 묘사되는 현실. 이러한 현실은 가부장제 가족제도에서 여성(아내)의 지위는 가부장인 남성과 동등하지 못한 현실을 반영한다. 그리고 “친밀한 가족이라는 신화는 위계를 활용해 이윤을 확대하는 기업에게 차용하기 좋은 모델이 된다. 어쩌면 우리가 싸워야 하는 것은 우리의 삶의 사소한 순간, 편하고 안전하다고 느끼는 모든 순간”(135쪽)이라는 지적은 일자리를 잃은 여성 노동자와 함께 분노하고 연대하는 마음 이상의 태도를 요구한다. 나 또한 이 위계가 불러오는 불평등에 동조하고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서늘해진다. 나이 지긋한 여성 노동자를 만나면 ‘어머니’라는 호칭이 당연했던 나의 인식도 불평등과 “싸우면서도 가부장제 사회에 힘을 보태는 불행한 상황”을 지속시킬 수 있다는 것이 무겁게 다가온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20여 년 전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동료가 해고된 날, 그 부당함에 치를 떠는 또래의 여성들에게 슬쩍 “이 회사에 노조를 만들면 어떨까?” 하며 이야기를 꺼내 보았다. “그러면 우리도 잘릴 걸?” 그래. 어쩌면 회사가 사라졌을지도 모르겠구나. 우리는 모두 자신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그 자리에 있었지만, 우리의 노동은 결혼하면 그만둘지 모르는 임시 노동으로, 우리보다 나이 많은 중년 여성의 노동은 반찬값이나 버는 노동으로 평가 당했다. 지금도 그 평가가 변하지 않았음을 <회사가 사라졌다>가 보여준다. 노동자의 권리를 존중하고 싶지 않은 회사가 문을 닫는 것이 너무 쉬운 현실도, 여성 노동자의 노동을 헐값으로 보는 현실도 바꾸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의 연대와 투쟁이 필요하다는 것, 더불어 우리의 일상, 가부장제에 균열을 내는 일도 필요하다는 것 또한.

* 필자 이효정 님은 경기평화교육센터 교육위원이며, 결혼한 여성들의 페미니즘 탐구모임 ‘부너미’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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