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해야 할 것은 자본주의

워커스 9호 시평



대기업 노동자들은 중소기업 노동자들보다 비교적 고용이 안정됐다고 알려져 있다. 대기업 정규직은 비정규직이 있기 때문에 고용 문제에 안심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대기업에 몸담은 노동자 다수는 구조조정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재벌은 계속되는 불황의 늪을 극복한다는 이유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으며 구조조정은 조선, 해운, 철강, 건설, 기계 산업부터 유통, 금융, 공공 등 서비스 산업까지 전방위로 이뤄지고 있다. 이전엔 주로 40~50대 이상의 장기 근속 노동자들에게 향했던 정리 해고의 칼날이 지금은 최근 입사한 20~30대 노동자들의 목줄까지 겨냥하고 있다.

경쟁력 위기를 노동자 탓으로 돌리는 자본과 정권

자본주의에서 불황과 위기는 주기적으로 맞을 수밖에 없는 단골손님 같은 것이다. 20여 년 전 외환 위기라는 이유로 노동자 민중의 삶이 벼랑에 내몰렸던 기억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런 위기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가격 경쟁이 아니라 기술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하지만 불황이 계속되자 대우조선,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등 조선 3사는 해양 플랜트 사업을 무리하게 확장하면서 서로 간에 가격 경쟁까지 벌였다. 그 과정에서 해양 플랜트 사업에 비정규직을 대규모로 투입했고 이제 위기가 닥치자 십만 명이 넘는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들을 먼저 해고하기 시작했다. 또한, 비싼 임금이 경쟁력 저하의 원인이라며 정규직 노동자들을 공격하면서 위기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위기의 핵심 원인은 자본주의 모순이며, 그다음으로는 기술 개발의 부진과 경영 실패, 그리고 제멋대로인 정부 정책을 지목 할 수 있다.

구조조정이란 사회 경제적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촉진하기 위해 진행하는 것으로, 우선 기업의 이윤을 높이기 위해서 성장 가능성이 낮은 사업 분야를 축소하거나 없애고, 비슷한 일을 하는 업종들을 하나로 합친다. 그래도 수익성에 대한 전망이 없으면 임금을 줄이거나 회사의 부동산과 같은 자산을 매각 처리하기도 하고 또 정리 해고라는 이름으로 노동자들을 쓰레기 버리듯 잘라 버린다. 이런 현상에 주요한 모순이 자리하고 있다. 책임은 무능한 정부의 경제 정책과 자본의 경영 방식에 있는데 그 부담을 왜 노동자가 모조리 떠안아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MOU는 계약서가 아니라 양해 각서

최근 정부는 뒷북을 쳐 대며 대통령이 이란에서 금광이라도 캘 것같이 요란을 떨었다. 이란에 입국하자마자 42조 원 규모의 MOU를 체결했다고 청와대발 속보를 쏟아내고 있다. 지난 3년간 박근혜 대통령이 돌아다닌 나라 중에 MOU를 체결하지 않은 곳은 없다. 중국, 브라질, 멕시코, 체코, 칠레, 페루 등 방문하는 즉시 대규모 MOU 체결로 경제 발전의 토대를 구축했다고 대대적인 보도를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언론의 엄청난 호들갑에 비해 지금까지 천문학적 MOU 체결이 계약으로 성사된 경우가 있었는지 제대로 들어 보지 못했다.

MOU란 ‘계약서’가 아니라 ‘양해 각서’에 불과하다. 쉽게 말하면 “양국 간 상호 이해한 내용에 대한 메모” 정도의 의미로 아무런 법적 효력이 없다. 그런데도 마치 계약이 성사돼 한국 경제 발전의 청사진을 제시한 듯 보도한다. 한마디로 언론 플레이다. 유치한 언론 플레이의 의도는 경제 위기에 대한 책임 회피일 뿐이다. 정부와 재벌들이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로 MOU라는 성과를 획득했으니 나머지 책임은 노동자들이 떠안아야 한다는 것 아닌가. 정말 이런 논리라면 너무 허접하다.

구조조정을 통해 꿩 먹고 알 먹겠다는 수작

최근 정부는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에 대해 파견 확대 등 노동법 개정과 연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에는 조선과 해운업 그리고 제반 산업 위기의 명확한 원인 규명과 정부 정책 실패에 대한 반성은 찾아볼 수 없다. 경제 위기에 대한 분석과 사태 해결을 위한 대책은 고사하고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과제도 찾아볼 수 없다. 현 상황에서 구조조정을 꺼내려면 첫째, 정부의 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책임을 져야 하며 둘째, 부실·방만 경영의 책임을 분명히 함과 동시에 재벌의 천문학적 사내 유보금을 환수한다는 발표가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피해받은 노동자들이 살아갈 수 있는 대책이 수립되어야 한다. 한국 경제를 위기로 내몬 주체들이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며 노동자 목줄 조이기에 나서는 것은 박근혜 정권과 자본이 노동자 계급에 퍼붓는 악질적인 ‘숙청’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최근 프랑스에서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노동법 개악에 반대하는 대대적인 밤샘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시위 참가자는 노동자뿐 아니라 노동법으로 영향을 받게 될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즉 노동자와 학생의 연대(노학 연대)라는 공동체를 형성해 같은 목소리로 투쟁함으로써 변화를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주어진 조건은 한국과 다르지 않다. 다만 상황이 다를 뿐이다.

어린 시절 도덕 시간에 ‘동양은 공동체주의’이고 ‘서양은 개인주의’라고 배웠던 기억이 난다. 한국 사회에서도 불과 얼마 전까지 계급적 투쟁과 노학 연대라는 공동체의 깃발이 선명하게 휘날렸다. 위기는 새로운 기회를 동반한다고 했다. 웅성거림이 가득한 거리에 같은 목소리로 연대 투쟁의 깃발을 세우기 위해 노동자 계급의 조직력과 더불어 노학 연대의 공동 사안을 담은 대오를 기획하고 만들자. 그리하여 침체한 민주 노조 운동은 물론 정치적으로 침몰하고 있는 노동자 민중의 정치를 꿈이 아닌 현실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나아가 구조조정다운 구조조정, 개별 기업과 산업을 넘어서 자본주의 자체에 구조조정의 메스를 들이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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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규헌 한내/ 사진 정운 기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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