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호/초점] 유럽의 새로운 파시스트 대형

유럽의 새로운 파시스트 대형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3월호 장-이브 카뮈

오스트리아의 현재 상황에서도 알 수 있듯이(본호에 실린 폴 파스퇴르의 글 참조) 유럽에서는 극우파가 무대에서 완전히 사라진 적이 없다. 스칸디나비아 3국이나 영국에서처럼 선거제도로부터 배제된 경우는 극우 운동이 테러리즘에 호소하고 있으며 다른 경우에는 정치적 대의제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우파와 좌파 사이의 모호함을 파고들어가고 있다. 따라서 문제는 '파시즘'의 부활이라기보다는 정치, 경제적 합의의 민주주의에 대한 마비효과이다.

1999년 6월 13일 진행된 유럽의회 선거에서의 극우 정당들의 붕괴와 프랑스 국민전선(Front National)의 분열은 이들이 쇠퇴할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낳았지만 최근 투표에서의 결과는 이러한 예측을 실망시키고 있다. 작년 10월 3일 오스트리아 총선에서 외르크 하이더의 자유당(FP )은 26.91%의 득표율로 2위를 차지했고 같은 달 24일에는 크리스토프 블로셰가 이끄는 스위스의 국민당이 22.5%의 득표율로 사회주의자들과 나란히 1위 자리를 차지하였다. 독일의 경우 독일인민연합(Deutsche Volksunion; DVU)이 동부지역 하원의회(Lana)들에서 데뷔를 했으며 노르웨이에서는 작년 9월 14일 치러진 지방자치 선거에서 진보당(FP)이 13.4%(1.4% 상승)를 득표하였다.
서유럽에서 외국인혐오 정당들이 끈덕지게 지속되고 선거에서 성공을 거두는 것은 급진자유주의적 경제, 사회 사상이 점차 널리 퍼지고 정치 지도자 및 경제 우두머리들 운데 민족국가를 과거의 유물로 간주하는 경향이 분명해진 것과 관련된다. 그리하여 유럽의 극우파들은 사회에서 기반을 획득하였고 이제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전투적 행동주의보다는 투표함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영국의 지독한 소선거구제(first-past-the-post)에서처럼) 선거제도가 군소정당에 불리하거나 (스웨덴의 경우처럼) 비전통적인 견해에 대한 사회적 압력이 매우 강하다는 등의 이유로 극단적 사상이 선거를 통한 출구를 찾을 수 없는 나라들에서는 전투적 행동주의가 여전히 관심사가 되고 있다. 조직상의 분열과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부재 또한 극우파 운동의 현실화를 가로막을 수 있다.
지난 몇 년간 폭력적이고 공공연한 여러 소규모 네오나치 및 인종주의 그룹이 주류 정당과 나란히 또는 심지어 그들 내부에서 등장하였다(일부 투사들은 양자 모두에 속해있다). 정치평론가인 제프리 카플란과 레너드 와인버그가 설명하듯이1), 이들 그룹은, '질서(The Order)'나 '아리아 민족들(Aryan Nations)' 같은 미국 테러주의 집단들의 활동방식을 채택하였다. 이들은 미국에서와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스웨덴의 폭력 작전에서 드러난 것처럼 대규모 행동을 선호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위험한 운동은 일부 스킨헤드족들처럼 어떠한 사회, 정치적 반향도 얻고 있지 못하다.
동부독일의 '랜더(L nder)'가 젊은층에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예외적인 경우이다. 폭력적 극우 운동이 활발한 나라들의 경우 이들은 여러 상징적 도구를 통해 자신들이 국가사회주의나 파시즘 이데올로기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법을 어기기까지 한다. 이 극우 집단은 현재로서는 소수파이다.
1945년에서 1980년대에 이르는 시기에 실제 지지자들을 거느린 극우 정당은 이탈리아와 남부 유럽의 독재국가들에만 존재했다. 그러나 빈곤의 확산과 증대, 다문화주의의 도래와 더불어 이제는 대부분의 서유럽 민주국가들에서 극우 정당이 활동하고 있다.
이민의 유입은 많은 나라들에서 정치적 권리와 시민권 부여와 더불어 귀화의 물결을 가져왔으며, 이에 따라 소수 언어와 문화의 권리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정책이 뒤따랐다.
60년대와 70년대 산업화 도상에 있던 나라들에 있던 극우파의 무게중심은 이제 중부 및 북부 유럽으로 옮겨졌다. 초기 연간 극우파의 봉홧불이었던 이탈리아 사회운동(Movimento Sociale Italiano)은 80년대와 90년대에 접어들어 프랑스의 국민전선에 그 자리를 내주었다.
사회주의운동의 자리를 이어받은 국민전선은 다른 나라들의 수많은 운동에 모델이 되었다. 이들은 적어도 서유럽에서는 다양한 성공을 거두었는데, 실질적이지만 단명한 경우(다니엘 페레가 이끄는 벨기에의 국민전선(Front National)),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지만 당선자를 내지 못한 경우(스웨덴 민주주의자(Sverigedemokraterna)), 완전히 주변적인 경우(스페인의 국가민주주의(Democracia nacional)와 이탈리아의 국민전선(Fronte Nazionale)) 등이 그 예이다.
그러나 두 개로 쪼개져 여론조사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장-마리 르팽의 당은 이제 더 이상 과거처럼 완벽한 패러다임이 아니다.

제3의 물결

현재에는 알프스 북부와 남부(외르크 하이더와 크리스토프 블로셰의 정당들, 움베르토 보시의 북부동맹(Lega Nord), [스위스의] 티치노연합(Lega dei Ticinesi)), 스칸디나비아(노르웨이의 카를 하겐의 진보당(Fremskrittspartier), 피아 키에르고르의 덴마크인민당(Dansk Folkeparti))2) 등지의 민중주의 운동으로 대표되는 보다 유망한 제3의 물결이 존재한다. 이들 정당은 (외르크 하이더라는 인물을 제외하고는) 파시즘이나 나치즘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 이들은 최소한의 국가개입을 신봉하고, 외국인혐오적이
지만 (적어도 공식성명상으로는) 인종차별과 반유태주의는 거부하며, 자신들이 극단주의자로 간주하는 국민전선이나 플랑드르블록(Vlaams Bloc) 같은 집단과는 협력을 고려하지 않지만 우파 정당들과는 기꺼이 연정을 형성할 것이다.
이들 정당은 전통적 의미에서 파시즘 세력은 아니며 이들의 성공은 본질주의적 용어(오스트리아의 탈나치화 실패라든가 스위스의 뿌리깊은 외국인혐오증 등)로 설명될 수 없다. 이러한 요인은 항의표에 기반해서 성공한 극우정당인 프랑스의 국민전선이나 벨기에의 플랑드르블록 같은 혼성물들의 성공조차 설명할 수 없다. 플랑드르블록은 종종 이차대전 이전의 플랑드르 운동의 친나치 이탈파의 자연적 계승자로 묘사되곤 한다. 그러나 정치평론가 마르크 스윈지도우는 플랑드르블록의 지지자 가운데 17%가 국민연합(People's Union)에 투표한 데 비해 4∼5%만이 플랑드르 민족주의자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 결과 국민전선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신념과 전투적 사고방식에 있어 여전히 전통적 극우와 상당 부분 일치하는 지도부와, 그러한 정치적 관계를 갖고 있지 않으며 심지어 한때 좌익 성향을 가졌을 수도 있는 기층 대오 사이에 기본적인 분열이 있는 듯
하다. 플랑드르 지방의 경우 1991년에 사회주의자들에게 표를 던졌던 젊은이의 21%가 나중에는 플랑드르블록으로 방향을 전환하였다. 오스트리아에서는 1999년 총선에서 자유당이 사민당으로부터 213,000표를 빼앗아갔다. 덴마크의 경우 1998년에 인민당을
지지했던 이들 가운데 10%가 이전에는 사민당에 표를 던진 사람들이었다.
이들 정당의 지도자들이 과거에는 극단주의의 징표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점도 주목할만하다. 덴마크인민당의 모겐스 캄레는 사민당 국회의원이었으며 오스트리아 자유당의 떠오르는 스타인 토마스 프린초른은 크리스토프 블로셰와 마찬가지로 전혀 극
단적일 게 없는 평범한 기업가였다. 이러한 점에서 이들은 브뤼노 메그레와 그가 이끄는 공화주의적인 국민전선-국민운동(Front National-Mouvement National)과 구별되며, 이는 메그레가 전통적 우파의 성원들 가운데 보다 많은 지지를 획득하지 못함을
부분적으로 설명해주는 듯하다.
따라서 두 개의 상충하는 정치투쟁의 개념이 존재한다. 반혁명적이거나 근본주의적인 또는 향수병적인 사고틀 속에 갇힌 과거지향적인 개념과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현대화를 받아들이는 미래지향적인 개념이 그것이다. 자신들의 입장을 재규정하지 않은 정당들은 움츠러들고 주변화되고 있다. 이탈리아의 경우, 1995년에 지안프랑코 피니가 부과한 개혁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이들로 구성되어 있는 삼색불꽃 사회운동(Movimento Sociale Fiamma Tricolore)은 이제 1.6%에 불과한 득표를 얻고 있다.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 등의) 권위주의 체제를 대변하고 이를 옹호하는 것에 불과한 강령을 가진 정당들은 대부분 사라졌다3).
외국인혐오적인 민중주의 운동은 사회적 지위와 일자리가 가장 위험에 처한 국민계층 사이에서 특히 눈부신 성과를 얻고 있다. 프랑스의 상황도 예외가 아니다. 국민전선은 1997년 선거에서 몇몇 선거구에서 30%를 득표하였다. 또한 젊은층(오스트리아의 경
우 30세 이하 가운데 35%)과 종교가 없는 이들, 투표 불참자들 가운데 이들 운동에 대한 뚜렷한 지지가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다양한 설명이 제출되었다. 몇몇 이론에 따르면 경제적이거나 상징적인 이해가 핵심이다. 경제위기로 타격을 입은 국민계층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협으로 간주하고 외국인혐오증 정당에 표를 던지는 경향이 있다. 그리하여 벨기에에서는 플랑드르
블록이 자신에 대한 지지의 대부분을 미숙련 노동자층에서 이끌어내었고 1999년 오스트리아 선거에서는 블루칼라 노동자의 48%가 자유당에 표를 던져 이 계층의 대변자로서 자유당을 다른 정당들에 앞서게 만들었다.
독일의 경우, 정치평론가 패트릭 모로는 1996년 지방선거에서 공화당에 대한 노동계급의 지지를 17%로 잡고 있다. 그는 극단주의 운동에 대한 지지와 낮은 노동조합 가입률, 실업의 경험, 대가족, 사회복지에 대한 의존, 불충분한 교육 등이 밀접한 상
관관계를 갖는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극우파가 각각 9.8%와 15.3%를 득표하고 있는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경우 실업과의 가시적인 연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 나라에서 극우파에 대한 지지는 자영 기업인과 점차적으로 노동자층에서 오는 것이다. 두 나라 모두 진보당들이 사회민주당을 앞질러 지도적인 노동자 정당이 되었다. 가능한 하나의 설명은 부르주아지 정부나 사회민주당 정부 모두에서 복지국가가 동등하게 잘 이루어진 나라들에서는 좌파에 대한 노동계급의 충성이 침식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노동자 전통의 일부인 권위
주의적 요소가 가능한 유일한 출구로 새로운 우파로 전환되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역설에 마주치게 된다. 본질적으로 민중으로 구성된 선거민들이 어느 정도건 민족주의적,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채택하는 후기산업주의적 극우 정당들에 투표를 하고 있다. 이들은 간략히 말해 자유무역주의자들이다.
그리하여 오스트리아 자유당의 경제 정책은 경쟁력과 번영을 보장하고 고용을 창출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경제의 전면적인 탈규제를 요구하게 된다. 스위스 인민당의 강령은 사회복지 사기행위를 비난하고 유연한 임금과 노동시간, 다양한 국가복지의 종
식(이는 자연스럽게 기업측에 유리한 조세상의 조정을 동반한다) 등을 요구하고 있다. 스칸디나비아의 정당들은 세제에 대한 저항과 복지국가의 권력에 재갈을 물리고픈 욕망으로부터 성장하였다. 이러한 주제들은 알렉산드라 콜렌 상원의원이 이끄는 플랑드르블록의 소수 자유주의 분파의 강령에서 그 반향을 찾을 수 있다.
이탈리아의 북부동맹은 보다 복잡한 경우이다. 북부동맹은 자본주의의 현대화와 소기업의 폭발적 증가가 이와 병행하는 제도 및 정치적 틀의 급속한 현대화를 동반하지 못한 상황에 대한 북부 이탈리아의 신흥 중간계급과 소기업인의 대답으로 읽혀질 수 있
다. 외국인과 남부 이탈리아인에 대한 북부동맹의 증오, 과세에 대한 저항, 허구적인 정체성과 역사(파다니아독립공화국이나 파다니아 민족은 한번도 있어본 적이 없다)에 기반한 독립 요구와 더불어 북부동맹의 등장을 낳은 것은 바로 이러한 상황(그리고 기
민당의 붕괴로 야기된 우파의 공백)이다.
허버트 키트셸트4)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러한 대중적 지지의 이유를 세계화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견해에 의하면, 세계화는 국가개입에 기반한 평등주의적 쟁책의 도입을 가로막으며, 가난한 유권자들로 하여금 시장을 자유롭게 함으로써(또
는 민중주의자들과 급진적 자유주의자들의 표현대로 하면, 창의적 에너지를 해방시키고 개인의 이니셔티브를 고무하며 국가개입을 최소로 유지함을 통해 사람들이 출세 길을 오르도록 도와줌으로써) 사회정의를 달성할 수 있다고 믿게 만든다.

편협한 자유주의

이는 민중주의적 투표에서 보여진 외국인혐오증의 요소까지 부분적으로 설명가능하다. 노동시장에서 외국의 경쟁으로 위협받고 있다는 사람들은 사회복지와 일자리로부터 이민자들을 제외시킨다는 단순한 이유로 민중주의 정당들의 자유주의 강령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들에게 급진자유주의는 민족적 편애로 완화되기만 하면 용인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프랑스의 경우 국민전선은 1995년 가을의 사회적 전환점 이후 (다른 극우 정당들보다 훨씬 큰 정도로) 자유주의에 등을 돌려버렸다. 국민전선은 이제 비록 프랑스 시민들만을 위해서지만 어느 정도의 공공서비스와 사회복지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국민전선의 주장은 정치인과 공무원이 부패하고 무능하며, 국가 동냥 체제의 실패를 나타내는 상징인 동시에(따라서 질서와 안정에 대한 끈덕진 요구가 있게된다), 부의 창조자들(소기업인, 전문직 종사자, 숙련공, 농민, 그리고 심지어 노동자)과 비교되는 쓸모없는 비생산적 사람들의 무거운 짐
으로 인해 야기된 압도적인 조세 부담이 있게된다는 것이다.
외국인들의 존재와 극우파의 득표 사이에 자동적인 상관관계가 있지는 않을지라도 이민에 대한 반대는 의심할 바 없이 주요한 요인이다. 1997년 유로바로메트르(Eurobarom tre) 통계조사에 따르면, 프랑스의 국민전선과 벨기에의 플랑드르블록, 독일의 공화당(Die Republikaner) 등에 투표한 사람들은 무조건 이민을 반대하며 모든 형태의 다문화주의를 거부한다고 한다(이들 정당의 인종차별은 이종교배라는 망령에 근거하고 있다). 스칸디나비아의 민중주의 그룹이나 이탈리아의 국민동맹(Alleanza Nazionale)과 북부동맹, 오스트리아의 자유당 같은 다른 운동의 신봉자들은 그렇게 인종주의적이지 않다. 이들이 이민에 반대하는 것은 외르크 하이더의 강령에서 분명히 보이는 것처럼 문화적 차이의식에 근거하고 있다. 이들은 자기 자신의 민족이 가지는 특수한 성질에 대한 자각이 다른 민족성을 존중하고자 하는 욕망과 뗄레야 뗄 수 없다(이는 대체로 신우파의 인종차이주의로부터 빌어온 공식이다)고 주장한다.
급진자유주의적 세계화와 극우파의 발흥 사이에는 훨씬 분명한 상관관계가 입증된다. 앞에 인용한 통계에 따르면, 공화당 지지자의 87.5%, 국민전선 투표자의 68.4%, 자유당 지지자의 45.7%가 유럽연합이 그릇된 방향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플랑드르
블록 지지자들의 경우 이보다 낮은 수치를 보인다(40.8%인데 이는 사회당 지지자의 38.9%를 가까스로 넘어설 뿐이다). 이는 아마도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프랑스의 민중주의자들이 소중히 여기는 민족국가에 대한 최선의 대응수단으로 플랑드르 운동에서는 다인종적인 유럽이라는 사고가 대중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반유럽적 경향은 스칸디나비아와 스위스에서도 발견된다.
극우파 정당들은 사실상 일종의 편협한 자유주의, 즉 국가경계선 내부로 제한되고 사회복지나 국가통제의 해체를 동반하는 자유무역 없는 자유주의를 선호하는 듯이 보인다. 그렇지만 일종의 이동이 있어왔다. 따라서 프랑스 국민전선이나 이와 유사한 조직들은 세계무역기구(WTO)에 대한 반대 캠페인을 벌였다. 반면 크리스토프 블로셰는 WTO에 반대하지 않으며 외르크 하이더는 나토 참여를 지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낡은 정당 체계라는 사자(死者)의 망령이 유럽에서 극우파의 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음은 분명하다. 스칸디나비아와 스위스, (1999년 총선 전의) 오스트리아, 벨기에 등에서는, (오스트리아의 경우는 사민당과 인민당, 다른 나라의 경우는
주요 정당 사이에 연방의회 의석의 안정적 분배를 보장하는 스위스식 마술 공식인, 사민당과 보수당 사이의) 영구적인 연립정부나, 시장 규제냐 탈규제냐 하는 처방에 의해서만 구분가능한 사민당과 우파 자유주의 정권의 정기적인 교체로 정치적 풍경이 특징
지워졌었다.
주요 정당들의 정실주의(cronyism)와 이들이 국가와 맺고 있는 근친 관계는 제도상의 어떠한 근본적 개혁도 가로막았으며 선거제도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따라서 하나의 계급으로서의 정치인들에 대한 전면적인 거부가 프랑스 국민전선, 벨기에 플랑드르블록, 오스트리아 자유당, 이탈리아 북부동맹 등에 대한 투표를 좌우하는 데 있어 결정적이었다. 이탈리아 국민동맹의 지지자들은 자신이 참여한 민주적 게임룰과 권력구조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 예외적이었다. 유일한 실질적인 예외는 룩셈부르크와 네덜란
드였다. 이들 나라에서는 매우 강력한 합의가 있었지만 여기서조차 국민운동(Nationalbewegong)과 중도민주당(Centrumdemokraten)은 실패하였다. 부정할 수 없는 권위주의와 외국인혐오주의적 성격은 논외로 하더라도, 급진우파 정당들은 분명 좌
파와 우파 사이의 구분선의 모호함과 사민주의자들을 새로운 중도로 이끌어오는 것에 관한 광범위한 합의로부터 커다란 이득을 얻었다. 이러한 점에서 이들이 현질서에 대한 주류의 반대여론을 대표한다는 사실은 좌파에게는 자신의 무능과 배신에, 그리
고 보수우파에게는 자신의 맹목과 비겁에 대면하게끔 한다.
이들 정당이 권력을 잡게 될 경우 무엇을 기도할 수 있거나 하게 될 것인지를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이탈리아의 사례는 극우파가 어느 정도까지는 외부의 영향을 받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외르크 하이더 같은 일부 지도자들의 기회주의는 이러한 추측을 뒷받침한다. 자기의견을 고집하지 않을 때 이들은 자유민주주의의 변형틀로 빠져들 수도 있다. 하여튼 당분간 우리는 공공당국에 권위주의적 압력을 행사하고, 민주주의에 낯선 것일 뿐만 아니라 외국인혐오적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용될 수도 있는 공
공생활의 가치로 되돌아갈 정당들에 직면해야 할 것이다.

■ 장-이브 카뮈 : 정치평론가. 저서로는 『유럽의 극단주의자들(Les Extr mistes en Europe. Centre europ en de recherche et d'action sur le racisme et l'antis mitisme(CERA) 연례보고서, Editions de l'Aube, Paris, 1998)』, 『국민전선: 프랑스 민주주의에 대한 위험?(Front National: eine Gefahr f r die franz sische
Demokratie? Bouvier Verlag, Bonn, 1998)』 등이 있다.

<후주>

1) Jeffrey Kaplan and Leonard Weinberg. Fade to black: the Emergence of a Euro-American Radical Right, Rutgers University Press, Piscataway, New Jersey, 1998.

2) 스웨덴의 네오나치즘에 대해서는 D mokratins f rg rare(논문집), Statens Offentliga Utredningar, Stockholm, 1999를, 덴마크의 신우파에 대해서는 Johannes Andersen and others, Valelgere med omtanke. En analyse af folketingsvalget 1998, Forlaget Systime, Arhus, 1999를 보라.

3) 1999년 6월의 유럽의회 선거에 나선 5개 팔랑헤주의나 급진주의 정당은 61,522표를 획득하였다. 포르투갈의 경우 네오살라자르주의 국민동맹은 후보를 내지 않았으며 그리스의 반유태주의 정당인 최전선(Front Line)과 중도연합(Centre Union)은 1.57%(101,044표)를 득표하였다.

4) Herbert Kitschelt, The Radical Right in Western Europe,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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