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관련법 제정의 득과 실

배아무개 사장은 인터넷 예약서비스 사업을 하려다 미비한 법 때문에 망설이고 있다. 배 사장은 미국의 한 사이트에서 사업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 사이트는 호텔·콘도·항공권·골프장 등을 예약해 놓고 일정상 못가는 사람들한테서 예약권을 사들여, 다른 사람들에게 수수료를 받고 되파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배 사장은 사업을 막 추진하려던 참에 변호사 친구로부터 이런 서비스가 우리나라에서는 불법이라는 얘기를 듣고서는 난감했다. 정해진 가격이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에 웃돈을 받고 팔면 안 된다는 것이다. 친구 얘기론 암표처럼 경범죄에 걸린다. 배 사장은 사업을 계속 추진할지 고민에 빠졌다.

“인터넷은 무법천지입니다. 오프라인에서 상정한 법의 잣대를 인터넷에 적용하면 모두가 불법이 될 수밖에 없어요. 인터넷은 날고 있는데, 법은 기고 있는 것이지요.”(배재광 벤처법률지원센터 소장)

인터넷 서비스는 하루가 다르게 새로 생겨나고 있는데 관련 법률 제·개정은 게걸음이다.

최근 들어 봇물을 이루고 있는 교육사이트는 `학원설립에 관한 법률'로 따져보면 모두 불법이다. 이 법에서 `학원'이란 10명 이상을 가르칠 수 있는 공간과 30일 이상의 교육 과정을 준비한 곳이어야 한다. 이 규정을 인터넷 교육서비스에 적용하기는 곤란하다.

인터넷영화도 마찬가지다. 극장·공연장 등은 문화예술진흥기금을 징수하게 돼 있으나 인터넷 유료영화 사이트의 경우 사업주는 이를 납부해야 할지, 아니면 하지 않아도 되는지 알 수가 없다. 부동산 사이트는 중개사무소를 관할하는 등록관청에 개설등록을 해야 하지만 현재 등록신청을 한 사이트는 거의 없다.

인터넷에서 소액의 전자화폐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현행법으로 금융기관이 아니다. 때문에 이들이 부도가 날 경우, 서비스를 이용하는 네티즌들은 하소연할 데가 없다.

“전자화폐 서비스업체들은 금융감독원 등으로부터 관리·감독을 받지 않습니다. 전자화폐 서비스에 대한 규정이 없기 때문이지요. 전자거래기본법과 전자서명법이 지난해 7월 발효됐지만, 법은 여전히 선언적 내용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좀더 구체화된 법안 마련이 시급한 실정입니다.”(금융감독원 이상구 조사역)

그러나 인터넷업체들은 관련 법률을 손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또다른 규제만을 낳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현재 인터넷사업에서 흑자를 보고 있는 곳이 도대체 몇 군데나 됩니까. 사이버를 규제하는 법이 생긴다면, 생존하는 벤처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사이버세상이 지금과 같이 양적 성장이 아닌 질적인 성장을 일궈냈을 때 법을 만들어도 늦지 않습니다.”(전자상거래업체 ㄱ사장)

“법은 어떻든지간에 규제입니다. 규제는 오프라인에서와 마찬가지로 공권력을 가진 사람에 대한 뇌물이나 비리를 낳을 수 있습니다. 적어도 국가 권력에 대한 인터넷업체들의 종속을 가져올 겁니다.”(경매서비스업체 ㅈ 이사)

반면 인터넷과 관련이 있는 법률을 잘 정비하면 인터넷 서비스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경매서비스업체들은 법원경매와 관련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 변호사법에 변호사가 아닌 사람이 법원경매에 관여할 수 없도록 규정해 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수익성 높은 서비스를 온라인에서 허용하는 법규정이 마련된다면 비즈니스 모델로 고민하는 업체들에 새로운 수익원이 될 수 있다.

인터넷에서 앞으로 가장 높은 수익 모델로 꼽히는 부문이 수수료 관련 사업이다. 미국 아마존에 비해 이베이가 애널리스트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도 수수료를 통한 인터넷 사업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팍스넷·씽크풀과 같은 국내 증권정보 사이트는 증권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투자에 관한 서비스를 할 수 없다. 증권사가 아닐 경우에는 투자자문업을 할 수 없다는 증권거래법 규정 때문이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개척할 여지를 법이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사이버와 관련한 법을 손질하면 일반인에게도 편의를 가져다 줄 수 있다.

최근 서울지검 컴퓨터수사부는 범죄 피해자의 이메일 진술을 법원에 증거자료로 제출했다. 현행 형사소송법은 작성자의 자필이거나 서명·날인이 있어야 진술서로 인정하고 있어 법원이 이메일 진술서의 증거능력을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법이 사이버의 행위를 인정하는 쪽으로 구체화된다면, 앞으로 진술서를 쓰기 위해 경찰서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 이메일로 간단히 보내면 되기 때문이다.

“상징적 의미의 사이버공화국을 만들어야 합니다. 사이버 판사·검찰·경찰 등을 만들어 사이버에서 벌어지는 법적 문제를 재단할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이들의 구실은 규제가 아니라 오프라인쪽 법을 온라인으로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지요.”(오세오닷컴의 최용석 변호사)

“디지털과 인터넷에 대한 마인드가 있는 학계·법조계·인터넷업계 인사들이 인터넷 법률에 관한 공청회를 열어 법률 제·개정을 준비해야 합니다.”(법무법인 태평양의 조우성 변호사) 정혁준 기자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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