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열 유령이 온라인 덮친다

‘정보통신질서확립법’에 따라 정부통제 강화… “사이버공간의 표현의 자유 말살한다”

오프라인 무대에서 물러난 검열 유령이 온라인 세계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사이버공간을 달구고 있는 검열 논란의 진원지는 정보통신관련 법률 개정이다. 그 한복판에는 ‘검열관’이라는 의혹을 눈길을 받고 있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아래부터 윤리위)가 자리하고 있다. 지난 7월20일 서울 삼성동 무역회관에서 열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등에 관한 법률’ 개정 공청회. 이날 공청회에서는 현행 통신망이용촉진법 개정안으로 정보통신부가 내놓은 ‘개인정보보호 및 건전한 정보통신질서확립 등에 관한 법률’(아래부터 질서확립법)을 둘러싸고 검열 공방이 오갔다. YMCA 신종원 시민사회개발부장은 “과거 소비자보호법이 소비자보호원을 재경원 산하 기구로 설치하는 법으로 전락했듯이 정보내용에 대한 모든 심의권을 정보통신윤리위에 맡겨 국가기구가 통신망에 직접 개입할 근거를 만든 것”이라고 주장했다.

내년 7월 시행 예정인 질서확립법은 인터넷 내용등급제 실시와 정보제공자들의 책임 확대, 통신규제 강화 등을 담고 있다. 특히 이들은 모두 윤리위의 대폭적인 역할 강화를 고리로 하고 있다. 진보네트워크센터와 참여연대 등 27개 시민·사회단체들은 일제히 성명을 내고 “정부가 유해정보 차단을 명분으로 정보통신서비스 전반에 걸쳐 정부통제를 크게 확대함으로써, 통신의 자유가 심각하게 훼손당할 우려가 높다”며 질서확립법의 전면철회를 요구했다. ‘사이버 영토 독립’을 외쳐온 통신단체들은 질서확립법을 또다른 ‘검열 시대’의 서곡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질서확립이라는 이름 자체가 어두운 시절을 떠올리게도 하지만, 이 법안 제정에 주도적으로 개입한 쪽도 윤리위이다.


국가기구가 통신망에 개입할 근거 마련

심의기구인 윤리위에 대한 통신관련단체들의 ‘심의’는 윤리위가 민간 자율기구임을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국가권력이 사이버공간에 개입하는 도구라는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정보통신윤리위는 광운대 박영식 총장을 위원장으로 교수, 목사, 언론인 등 12명의 윤리위원으로 구성돼 있다. 윤리위의 올해 예산 21억3천만원은 전액 국가가 대주고 있다. 윤리위가 올 상반기 동안 정보내용을 삭제하거나 이용정지 및 해지한 것은 8천건을 웃돈다.

지난 5월 백두청년회 명의의 북한체제를 찬양하는 게시판 글 삭제파문은 윤리위가 국가의 심의도구 노릇을 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예다. 윤리위의 한 위원은 “백두청년회 건은 청와대와 검찰 등으로부터 ‘우리가 하기 뭣하니까 당신들이 필요한 조처를 취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그래서 우리가 나선 것이다”라고 털어놨다. 국가보안법을 적용하기 곤란하자 윤리위에 악역을 떠넘긴 것이다. 그는 또 “어떤 사람들로 분과위원회를 구성할 것인지를 놓고 정통부와 협의를 거치는 게 일반적이다. 정통부로부터 이런 안을 분과위에 올려 논의해 달라는 요청이 오기도 한다. 구성은 민간인들로 돼 있지만 정통부 산하기관이기도 한 것이 사실이다”라고 고백했다.

윤리위는 시정요구를 강제할 수단이 없다. 다만 정보통신부 장관에게 불온통신에 대한 취급거부 명령을 내려달라고 건의할 수 있다. 물론 건의가 오면 정통부 장관은 곧바로 시정요구를 강제하는 명령을 내린다. 이 부분은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이 제기돼 있는 상태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김기중 변호사는 “누가 길거리에서 유인물을 돌리고 있을 때 구청직원이 나와서 명예훼손이라며 이를 막을 수 있느냐”고 반문하며 “법원이나 수사기관의 판단도 거치지 않고 정보통신윤리위의 건의에 따라 정통부장관이 통신 게시물을 삭제하는 행위는 위헌”이라고 말했다.

이번 질서확립법에서 가장 논란을 빚고 있는 대목은 인터넷 내용등급제다. 등급제는 유해성 정보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인터넷 콘텐츠마다 등급을 매기는 것이다. 문제는 등급 기준과 부여, 표시 방법은 윤리위가 맡게 된다는 데 있다. 진보네트워크센터 장여경 정책실장은 “인터넷 내용등급제는 사실상 검열이다. 등급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은 ‘등급외 판정’을 내리도록 돼 있다. 영화상영을 아예 금지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질서확립법은 자율적으로 매겨진 등급에 대해 정보통신윤리위를 포함해 누구든지 등급조정을 요청하면 윤리위가 등급을 조정할 권한까지 부여하고 있다. 그래서 통신단체들은 등급제를 통신검열의 특수한 형태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런 ‘은폐된 검열권력’은 이날 공청회에서도 드러났다. 공청회에서 데이콤 윤종성 상무는 “같은 정보내용에 대해 정보제공사업자마다 다른 등급을 매길 것이고 누구나 등급을 낮게 매기려고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등급조정이 불가피해진다. 결국 제도의 안정성을 위해 등급부여 권한을 모두 윤리위가 담당해야 한다”고 ‘현실’을 정확히 지적했다. 윤리위쪽의 대답은 이런 현실을 이미 짐작하고 법안이 제정됐음을 보여준다. 윤리위 이영규 사무국장은 “윤 상무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어차피 정보제공사업자들이 사전에 우리에게 등급을 매겨달라고 요청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일반에 공개되기 전에 윤리위가 등급을 분류하는 ‘사전심사’쪽으로 갈 공산이 큰 것이다.

영리목적의 청소년유해정보에 등급표시를 의무화하는 부분도 논란을 낳고 있다. 김기중 변호사는 “어디까지 ‘영리’로 볼 것이냐는 판단도 결국은 행정기관이 할 수밖에 없다. NGO의 인터넷활동도 광고를 받으면 영리고, 가입비를 받거나 회원가입을 받아도 영리로 볼 수 있게 된다. 표현의 자유를 크게 제한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청소년유해정보가 음란물뿐만 아니라 건전한 시민의식 형성을 저해하는 것까지 포괄하고 있는 만큼 정치적 의견을 억제하는 데 악용될 우려도 있다는 얘기다.


등급 매기고 통신망 이용 원천봉쇄도 가능


불법정보에 대한 책임규정 역시 윤리위의 역할 강화에 맞춰져 있다. 질서확립법은 정보서비스제공자는 타인이 유통시킨 것이라도 그 정보를 알았거나 알았을 것으로 기대 가능한 경우 불법정보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이 부분도 등급제와 같은 경로를 밟을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윤리위 이영규 국장은 “정보제공사업자들도 자신들의 책임을 피하려 할 것이다. 불법정보인지 아닌지를 자신들이 어떻게 판단할 수 있겠느냐? 우리에게 알아서 통제해달라고 요청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법적 보호가 끝나고 제재가 시작되는 불법정보의 경계선에서 윤리위가 ‘교묘히’ 개입할 공간을 찾은 것이다. 특히 윤리위로부터 불법정보라고 통보받은 경우 정보제공사업자가 이 정보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규정함으로써 사실상 윤리위가 통신공간을 지배할 수 있는 길을 터놓았다는 것이 통신단체들의 주장이다.

이 질서확립법은 윤리위에 불량이용자들의 전체통신망 이용 자체를 아예 원천봉쇄할 수 있는 권력도 쥐어주고 있다. 정보제공사업자가 이용자들의 평소 로그기록을 보존하는 것은 물론 불량이용자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등을 윤리위에 통보해야 하고 윤리위는 이를 다른 정보제공자에게 알려줘 서비스 제공을 정지시키거나 거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진보네트워크 장여경 실장은 “정보통신윤리위가 준사법권까지 갖게 됨으로써 통신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되고 다른 목적의 표현을 통제하는 도구로 이용될 수 있다”며 “온라인매체의 폐해를 막는다는 명분 아래 권력적 개입을 시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홍준형 교수는 “사이버공간은 자유롭고 강하게 표현한다. 표현의 자유도 오프라인세계보다 더 확대돼야 한다. 온라인 표현양식의 다양성을 감안해 전자 민주주의의에 맞는 새로운 규제철학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경희대 도정일 교수(영문과)의 말은 검열장치의 은밀한 잠입과정을 보여준다. “검열이 길들여져 내면화하는 순간 검열관의 얼굴과 이름은 상실된다. 검열이 내린 금지명령은 진리로 규범화하고 억압은 더이상 억압으로 의식되지 않는다”


주홍글씨 어떻게 새기나

인터넷 콘텐츠마다 등급을 매겨서 나이에 따라 정보이용을 제한하는 것이 인터넷 내용등급표시제다. 상품에 붙은 바코드처럼 인터넷 HTML 문서에 등급을 표시하는 것이다. 질서확립법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청소년유해정보’에 대해 등급표기를 의무화하고 있다.

인터넷 등급제는 자율 등급부여와 제3자 등급서비스기관이 등급부여서버를 이용해 등급을 매기는 두 가지가 있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이 두 가지를 병행할 방침이다. 자율등급부여는 홈페이지를 가진 개인이든 영리목적의 정보제공사업자든 자기가 제공할 정보내용에 자율적으로 등급을 표기하는 것이다. 제3자 등급시스템은 등급이 표기되지 않은 정보내용에 대해 등급서비스 기관이 등급을 부여하는 서버(프락시-레이블뷰로)를 이용해 임의로 등급을 매기는 것이다. 최종 이용자는 등급별로 접근을 제한하는 내용선별 소프트웨어를 컴퓨터에 설치하고 이를 통해 걸러진 정보를 이용하게 된다. 내용선별 소프트웨어는 학교 도서관 등 공공시설에서는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지만 개인이나 가정에서는 설치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다.

등급은 0∼4등급까지 5단계로 나눠진다. 물론 불법정보로 분류돼 ‘등급외 판정’을 받는 콘텐츠도 있게 된다. 등급은 성, 노출, 폭력, 언어 등 4가지 범주에 걸쳐 매겨진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인터넷 정보의 국제성을 감안해 국제적으로 보편화된 PICS 기술표준을 기반으로 하는 RSACi와 SafeSurf의 내용등급체계를 기준으로 정할 방침이다.

미국, 일본, EU 등 주요 정보 선진국들은 등급기준을 기업이나 민간단체가 정하고 자율규제에 맡기고 있다. 미국은 민간기업이 주도해 자율적으로 규제하고 있다. 범유럽적 등급제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EU는 자율 등급을 원칙으로 2002년부터 등급표시를 본격화할 예정이다. 일본은 온라인 서비스사업자들로 구성된 전자네트워크협의체가 자체 등급제를 개발하고 내용선별 소프트웨어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 반면, 불법정보에 대한 접근을 국가가 차단하고 있는 싱가포르는 인터넷 서비스제공업자(ISP)와 인터넷 정보제공자(IP)에게 사업면허를 받도록 하고 있다.

조계완 기자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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