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북에 가면 통일공부 하고 싶다'

내달 2일 북송될 예정인 비전향장기수 중에서 전북지역에 거주하는 고광인(66세) 선생을 만나봤다. 선생은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에서 3남2녀중 맏이로 태어났고 현재 90세의 부친을 비롯 형제들이 모두 남한에 살고 있다. 가족을 두고도 북한에 가려 하는 그의 사연을 들어봤다. [편집자주]

<'평화와인권'이 만나본 북송대상 비전향자 고광인 선생>

"조국을 위해 일하는 것 그게 바로 효도야."

다음달이면 북한으로 가게 될 비전향장기수 고광인 선생은 올해로 90세인 고령의 아버지를 남겨두고 왜 북으로 가려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선생은 지난 50년간 남한에서의 자신의 삶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징그럽고도 징그러워' 다른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선생은 고창중학교 3학년 그의 나이 열아홉에 빨치산이 되었다. 그해가 53년. 굶주림과 추위, 그리고 토벌대와의 전투속에 하루하루를 보냈지만 빨치산으로 지냈던 3년은 그의 삶에서 유일하게 행복했던 시간이다. 오늘날까지 그를 지탱해준 사상과 신념을 만들어준 시기가 바로 이때이다.

동지의 배신으로 발각되어 잡힌 56년부터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34년간의 죽음보다 더한 참혹한 감옥생활이었다. 5·60년대엔 굶주림으로, 70년대엔 전향공작으로 매순간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 그는 '살아남기 위해' 감옥 안에서 침술을 배운다. 철사 끝을 뾰족하게 갈아 자신의 몸에 직접 시험해보면서 독학으로 배운 침술이 이제는 허준이라 불리게 할만큼 용하다.

"언제나 노동자로 살고 싶었다"

89년 서준식씨의 51일간의 단식으로 사회안전법이 폐지되자 원래의 형량인 20년에 14년의 곱징역을 살고 나오게 된 선생은 '아파트 수위자리를 주겠다'는 경찰들의 '호의'를 거부하고 노동자로 살고자 서울로 올라온다. 네온사인 공장, 플라스틱 공장 등에서 일하다 부상까지 입게 되지만 월급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한 선생은 6년간의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95년 고향으로 내려오게 된다.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에 40여년만에 돌아왔지만 고향사람들은 여전히 '빨갱이'에 대해 경계를 풀지 않았다. 그 경계어린 시선속에 묵묵히 지은 5년 농사 끝에 선생에게 남은 건 850만원의 농협 빚이다.

선생은 50년 전 빨치산 때와 마찬가지로 소금물에 밥말아먹는 것이 식사의 전부이다. 이런 식단이고 보니 배가 고프지 않으면 밥을 먹지 않는다.

50년 전 노동당에 가입했던 선생은 이번 북송을 "당에서 부르는데 가는 건 당연하다"고 말한다. 옷가지와 남한 땅의 흙 등 벌써부터 북에 가져갈 짐을 꾸리고 있는 선생은 북에 가면 무얼하고 싶냐는 질문에 "통일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싶다"고 수줍게 말한다.

선생은 이제 그 자신의 말 그대로 '징허고도 징헌' 남한에서의 삶을 접고 북에서의 새로운 삶을 꿈꾸고 있다. 어쩌면 그에게 북송은 고통만 안겨줬던 남한에서의 삶에 대한 보상인 듯 싶기도 하다. 북에서의 삶이 고통으로 일관된 지난날에 대한 위안이 될 수 있길 기원한다.


[관련내용]

<북송 전창기 선생 인터뷰>

"내 처가 살았다면 팔순이 넘었을텐데…"

지난 20일 군산의 한 음식점에서는 다음달에 북송되는 비전향장기수 전창기(83) 선생 환송식이 있었다.

일제시대에 황해도 제철소에서 일하다 해방을 맞고 그곳에서 가정을 꾸린 전창기 선생은 55년에 남쪽으로 내려와 6개월 후 바로 붙잡혔다. 이후 10년의 형량을 마치고 포장마차와 막노동 등 생계를 위해 일하고 있던 중 72년에 생긴 사회안전법에 의해 77년 청송 보안감호소에 끌려가 서류에도 없는 옥살이를 12년을 더 살고 나왔다. 청년시절 끌려가 노인이 되어 사회에 나온 선생은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선생은 97년부터 군산 돌베개교회에서 생활하고 있다.

○ 북한에 가게된 소감은?

∥ 우리의 북송은 오래 전부터 우리가 요구했던 것이다. 몇 해 전부터 논의됐지만 오래 걸릴 거라 생각했는데 이번 남북정상회담으로 의외로 빨리 성사되었다. 나는 지난 55년 북에서 내려와 무려 50여년만에 가족과 상봉하게 된다. 이 심정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가족이 모두 살아있을지 특히 내 처가 팔순이 넘었을텐데 살아있을지 걱정이다. 가족과 헤어질 때 맏딸이 11살이었는데 46년이 지났으니 지금은 할머니가 되어 있을 거다. 그래서 설레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착잡한 심정이다.

○ 북에 가면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 내 나이가 많아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마는 죽을 때까지 통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 가져갈 물건은?

∥ 내 처에게 줄 금반지와 네 명의 아들딸에게 줄 선물을 준비했다.


(평화와인권 210호 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