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테러 사건을 통해 본 한국인의 미국에 대한 시각들

"미국이 대체 뭐길래"
"선생님, 미국이 좀 있으면 다른 사람들도 죽일텐데 그 때도 묵념해야 하나요?"

지난 14일(금) 전국의 관공서와 각급 학교에서는 조기를 게양하고 오전 10시를 기해 1분간 묵념하는 시간을 가졌다. 정부는 이 날을 미 테러 사건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애도의 날'로 선포했다. 다른 나라 일로 국가적인 추모를 하는 일은 이례적이다.
실제 추모시간을 가진 각 학교의 반응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았다. 목일 중학교 조영선 교사는 "테러로 희생된 무고한 시민들을 추모하는 일이긴 했지만 교사나 학생들은 대체로 미국의 희생자들에 대해 국가적으로 추모하는 것을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고 당일 학교 분위기를 전했다.
오마이뉴스의 고영철 기자는 '우리가 미국의 시다바리가?'라는 기사를 통해 "기성세대와 지도권의 과민, 과잉 반응은 어린 학생들의 눈에도 우습게 보인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한국의 국제적인 역학 관계가 드러난 이번 일은 한국인들의 민족적 자존심을 노골적으로 건드린 것이기 때문이다.

"맞을 짓 했으니..."
대전대 정치외교학과 권혁범 교수는 수업시간 보였던 학생들의 반응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미국이 맞을 짓 했으니 맞은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기 때문. 인터넷에서도 '무고한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를 표한 글 만큼이나 '당연한 결과'라는 글이 넘쳤다. 만년 고대생이라고 밝힌 한 사람은 학교 게시판에서 "세계화는 미국화라는 등식이 낳은 부작용의 결과"라고 이번 사건을 평가했다. 그간 미국의 성장이 세계 여러 약소국을 상대로 한 전쟁과 착취를 기반으로 한 것이기에 이번 테러는 '인과 응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단지 '후련하다'는 수준의 반응을 넘어서 '원인을 따져봤을 때 미국이 자초한 일이므로 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촉구하는 글도 있었다.
권혁범 교수는 한국이 제3세계 국가들처럼 극단적인 반미 감정과 친미 감정이 공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강대국에게 탄압받은 기억과 강대국의 발전에 대한 콤플렉스가 보편적으로 퍼져있는 것이다. 그러나 권혁범 교수는 "다분히 민족적 감상에 의해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것은 생명 윤리를 거스르는 위험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을 화나게 말라"
한겨레 게시판에 박이라는 사람은 "(정부의 태도가) 잘 되었는지 못 되었는지 따지는 것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다른 나라처럼 우리도 제스츄어라도 취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가적으로 추도 행사를 갖고 미국에 대한 직·간접 지원을 아끼지 않은 정부의 대응은 미국과 한국의 관계를 생각해 볼 때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현실론이었다. 미국 테러 사건에 대해 미국에게 악감정을 표출하는 것은 사뭇 위험한 일이라는 것. 어떤 이는 미국의 교포라는 사람의 글을 인용해 "섣부른 반미 구호는 미국인의 감정을 자극해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조기 게양과 묵념은 비록 화는 치미지만 잘 한 일"이라 의견을 개진했다. 독일을 비롯한 세계 각국도 묵념의 시간을 갖는가하면 영국은 궁전 근위병 교대식에서 미국 국가를 연주하기도 했다. 세계 각국의 이러한 유례없는 추도 분위기는 미국 눈치보기의 일환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이 기회에 미국을 해부대로
조선일보를 비롯한 제도 언론은 여전히 미국의 전쟁을 옹호하고, 테러 사건 이후 미국인들의 침착한 대응 등을 강조하며 친미 언론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정부는 미국의 반테러 선언에 적극 동참하며 중동에 국군을 파견할 것을 결정했다. 그러나 이런 제도권의 반응과는 달리 실제 많은 국민들이 미국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리 곱지만은 않다. 그것이 비록 배타적 민족주의의 발로일 지라도 기존의 반공주의에 의한 '미국은 우리의 영원한 우방'이라는 인식이 더 이상은 유효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테러 사건을 계기로 미국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우리 사회의 대미관을 한 번 되짚어 보는 것과 함께 미국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더욱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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