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돌의..] 노동자 그림은 노동자의 정신과 실천을 표현한다.

자화상(담배피는 여성-조합 간사):'나의 공장'이란 주제에 조합 간사가 자신의 근무공간이 사무실에서 담배피우는 자신의 모습을 형상화한 모습.

우리는 어린아이 처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는 곧바로 우리 자신들의 기특함과 함께 초라함도 느꼈다. 그러면서 동료 노동자 얼굴을 그려나가며 그림연습을 해나갔고, 크고 작은 집회를 조금씩 참가하면서 우리 노동자, 내가 누구인지 조금씩 자각해 갔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우리 조합의 투쟁역사(?)를 그릴 수 없을까> 하는 고민도 할 수
단결-투쟁(unite-strugle)
있게 되었다. 물론 아직 이런 작업을 할 만한 역량은 되지 못한다 할지라도 기획하고, 준비하며, 자신의 작품을 완성할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즐겁고 신나는 일이겠는가. 그러나 우리가 새해 계획을 잡은 것은 이 거대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공장내에서의 갈등, 문제> 등에 대한 주제로 그림을 그리기로 하였다.

이 주제를 잡아나가는 과정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왜냐면 사람의 존재와 의식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으면서도 일정한 독립성이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처지이면서도 자신의 처지와 무관한 꿈을 꿀 수 있다. 노동자의 꿈이 아니라 다른 꿈을 꿀 수 있는 것이다. 짧은 순간에 20년 이상 살아오면서 간직한 보수적 의식을 버리고 자각된 노동자로 변하는 것은 만만치 않다. 한 걸음 전진했다가 언제 그랬나 싶게 변하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노동자정신을 얘기하고, 그것을 그림으로써 표현하고, 파업투쟁에서 가장 선도적으로 싸우고, 이러저러한 연대집회에도 참가하여 많은 투쟁을 접하면서도 노동자정신에 반한 행동들을 하기도 한다. 노동자정신을 담아내지 못하는 자연풍경그림이나 연예인 얼굴 그리는 것에 집착하기도 한다. '만약 그림으로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했을 때, 탄압을 한다면 그럼 누가 나를 보호해 주냐'라는 비주체적인 태도를 취하기도한다. 그리고 우리 공장의 사장은 그래도 좋은 사람이라고 두둔하기도 한다. 주변의 가족과 친구들과의 관계로 자신이 참다운 노동자로 성장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한다.

이렇듯 한 노동자가 자신의 의식과 삶 전체를 송두리 채 바꿔내는 데는 어렵고 긴 시간이 필요하다. 많은 경우 노동자는 전진과 후퇴를 반복해가며 서서히 서서히 발전해감을 느낀다.

인간이 자신의 현실을 어떻게 인식하고, 반영하며 자신의 이상을 무엇으로 할 것인지가 그림 안에 그대로 옮겨져 보여진다. 그림 그리는 작업은 구체적 실천이고, 자신의 생각과 이상이 정확히 발현되는, 숨길 수 없이 적나라하게 반영되어 표현되는, 그림은 바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 자신이다. 그림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우리 노동자의 정신으로 우리 노동자투쟁들을 형상화 시키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노동자란 것에 대단한 자부심과 긍지가, 애정이 가장 먼저 필요하다. 그리고 공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노동자의 눈으로 보고,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노동의 역사와 투쟁의 전통을 배우고. 노동자투쟁의 한가운데에 항상 서 있어야 한다. 또한 기술적 훈련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노동자들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고민과 분노, 기쁨과 슬픔, 지향을 올곧게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자들의 고통을 어루만질 수 있을 뿐 아니라, 노동자들에게 현실의 고통을 극복해 나갈 수 희망을 주어야 한다.

우리 노동자는 단지 현실의 집단일 뿐만이 아니라 미래의 집단이기도 하다. 우리 노동자 그림반은 노동자의 현실의 고통과 투쟁, 미래의 이상과 희망, 기쁨까지 담아낼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할 것이다. 더디고 작더라도 미래를 위한 소중한 실천을 해내도록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