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호/동향] 오래된 이탈리아, 새로운 파시즘

오래된 이탈리아, 새로운 파시즘

[르몽드디플로마띠끄], 2002년 2월, 이그나씨오 라모네


은밀한 설득의 형태 중, 있는 그대로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무자비하다.
- 삐에르 부르디외

이탈리아에서는 "있는 그래도"라는 것으로 전통적 정치 정당의 시대가 이제 지났다는 것을 대다수 투표자들에게 성공적으로 그리고 눈에 띄지 않게 설득했다. 이는 매우 단순한 사실에 뿌리를 둔다. 즉 1980년이래 정치 체제가 매우 위험스러운 속도로 퇴화했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는 부패 때문이라고 한다. 부정부패의 규모와 범위는 놀라운 정도이다. 체계적인 뇌물 은 750억 유로 상당의 국가 손해를 가져왔다. 정당으로 흘러 들어가는 은밀한 자금줄은 특히 사회주의자나 기독민주주의자 등 엄청나게 부유한 정치인들을 키워냈다. 독립 언론의 편집장, 인드로 몬타넬리는 "눈이 달린 사람이라면 특정 정당 간부들의 생활이 공개된 수입액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볼 수 있다." - 후주 1-
이미 1992년에 '마누 풀리떼(깨끗한 손)' 캠페인과 안토니오 디 삐에트로 판사는 사업가와 정치인들 간 부정부패의 네트워크를 밝혀내고 있었다. 전 총리이자 사회당 당수인 베띠노 크락시는 불법으로 부를 축적한 혐의를 받았으며, 거의 린치를 당하고 군중들로부터 폭행을 당하는 등 혼란 속에서 사퇴했다. 다음은 역시 전 총리이자 기독민주당 당수인 길리오 안드레오띠였다. 그는 마피아와의 유착 및 살인사건에의 연루로 기소되어 공개적으로 비방 당했다.
이 두 거인의 몰락으로 정치 체제 전체에 쇼크가 퍼졌다. 단 몇 달 사이에 수백 명의 하원, 상원과 전 장관들이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었고, 판사의 조사를 받아 언론의 공격을 받았다. 이와 같은 불법 자금 운용에 대한 고발이 쌓여가자 정치 계급은 대중으로부터 효과적으로 거부당하고 불신임당했다. 에릭 조세프는 "엄청난 진공과 패닉 상태가 형성되어 몇몇은 쿠데타를 두려워하기도 한다" - 후주 2 - 라고 묘사한다.
그런데 쿠데타 대신, 대중은 집단적으로 텔리비젼에 최면 걸렸다. 이미 국민동맹의 후기 파시스트들 및 북부리그의 외국인혐오주의자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등장하여 그의 첫 선거에서 당선되었고 1994년 5월부터 12월까지 총리를 지냈다. 그의 첫 총리직이 갑작스럽게 끝났지만, 그는 결코 절망하지 않았다. 그도 역시 의심스러운 거래와 뇌물 등 비정상적 자금운용의 혐의를 받았지만, 여러 요소들의 결합으로 2001년에 그의 컴백이 가능해졌다.

그 요소들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그의 엄청난 부이다. 그의 사회주의자 친구 베띠노 크락시가 애초에 보호해준 덕에 그는 완전 무(無)의 상태에서 세계 14위로 가장 부유한 사람, 이탈리아에서는 최고로 부유한 사람이 되었다. - 후주3 - 여러 개 음모에 가담해 그는 부동산에서 큰 성공을 이뤘고, 이어 수퍼마켓과 물류, 보험과 광고, 그리고 영화와 텔리비젼을 통해 부자가 되었다. 베르텔스만 그룹, 루퍼트 머독, 레오 커쉬와 쟝마리 메시에와 함께 그는 유럽의 언론 거물 중 한 명이 되었다.
상징적 폭력 - 후주 4 - 과 연관된 부와 권력을 자신의 텔리비젼 채널들로부터 얻은 베를루스코니는 세계화의 진실 중 한 가지를 증명한다. 즉, 경제와 언론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 거의 자동적으로 정치 권력을 획득한다는 사실이다. - 후주 5 - 그것도 승리적으로 말이다. 그가 이끄는 포르자 이탈리아(Forza Italia) 당은 2001년 5월 선거에서 30%를 득표해 이탈리아의 주요 정치 정당이 되었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는 대중추수주의자이자 선동가로서 그가 가고자 하는 길에 장애가 어떠한 양심의 가책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의 정치 파트너를 선택하는 데 있어 전 파시스트 지아프랑코 피니와 인종차별주의자 움베르토 보시와 거래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 세 명은 유럽에서 가장 징그럽고 구역질나는 정치가 3인조를 이룬다. 5월 선거 이전에 [이코노미스트]는 베를루스코니에 대한 혐의를 언급하면서 그는 이탈리아를 지도할 능력이 없으며 민주주의에의 위험이자 법치에 위협이 된다고 했다. - 후주 6- 이 암울한 예언은 옳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전통적 정당들의 비참한 몰락 이후 이탈리아 사회 -한 때는 세련됨의 본보기였던- 는 정치 체계가 허물어지고 점점 더 혼란스러워지고 난폭해지고, 엉뚱해지고, 위험스러워지는 것을 무기력하게 (영화계만 진정한 저항을 했다) 바라보았다. 놀이공원 행상인과 같은 분위기로, 그리고 그의 TV 독점 덕분에 베를루스코니는 다리오 포가 '새로운 파시즘'이라 부른 것을 만들어가고 있다. - 후주 7 - 문제는 이 우려스러운 이탈리아의 정치 모델이 유럽 나머지 지역에 얼마만큼 확대될 것인가이다.

후주

1) 에릭 조세프가 [Main basse sur l'Italie. La r sistible ascension de Silvie
Berlusconi] (그라세, 파리 2001년) 37페이지에 인용했음.
2) Ibid, p41
3) 미국의 [포브]지는 베를루스코니의 재산이 145억 유로 정도라 추정하고 있다.
4) "상징적 폭력이란 한 사람이 공범과 함께 사회 구성요소에 가해지는 형태의 폭력
을 의미한다." 삐에르 브르디외 (로익 와쾅 공저), [R sponses] (쐬이, 파리 1992)
5) 이러한 증명은 마이클 블룸버그도 해줬다. 미국의 24시간 금융뉴스 채널인 블룸버
스 TV의 백만장자 소유자인 마이클 블룸버그는 선거자금으로 7천7백5십만 유로 이
상 지출해 2001년 12월 1일 뉴욕 시장으로 당선되었다.
6) [이코노미스트], 2001년 4월 28일 자, 런던
7) 다리오 포, 'Le nouveau fascisme est arriv ', [르몽드], 2002년 1월 11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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