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이여 살아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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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기계와 손 (www.cgPower.net 정일건, 2002년 봄)


졸속적인 청계천 주변개발 계획에 맞서 대안세력이 형성되지 못하고 원론적인 반대 입장들만 있을 뿐 체계적인 대응이 이루어지지 못한 채 청계천 복원을 알리는 고가철거가 7월 1일부로 시작되었다. 청계천 환경복원은 찬성하되 그 속도를 늦추어야 한다는 속도조절론, 용수를 끌어대는 인공공원 대신 상류 지천부터 살려야 한다는 자연생태론, 매몰되거나 사라져 가는 문화재를 발굴하고 지켜야 한다는 원형복원론, 천변 상인들을 포함한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민주절차론, 고층-고밀화와 난개발을 막고 상인대책과 교통대책 등을 실제로 마련해야 한다는 현실대책론 등이 다같이 서울시의 일방적 독주를 견제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교차하는 전체지형은 불안하게 봉합되어 있으며 각각의 입장들은 서로 충돌하기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다.

이 기이한 현상은 복원과 개발에 대한 고민 이전에 청계천이라는 공간의 삶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시각이 부재하기 때문에 나타난다. 새로운 공간을 대규모로 조성하는 것, 그것도 완전히 새로운 공간으로 대체하는 것은 긍정적 의미에서나 부정적 의미에서나 공간파괴라고 할 수 있다. 청계천의 경우는 부정적 공간파괴다. 왜냐하면 이번 청계천 복원과 천변 개발은 청계천 공간의 문화를 전혀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청계천이라는 공간의 삶과 그곳을 살아낸 삶의 방식들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보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서울시의 ‘그린 개발론’은 컴퓨터로 시뮬레이트한 영상을 통하여 청계천의 미래를 눈부시게 밝힘으로써 지저분하고 낙후되었지만 그 속에서 엄청난 공간문화를 창출했던 청계천의 힘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너무나 밝은 빛을 비춤으로서 역설적으로 그림자, 즉 시선의 사각지대가 생겨 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라짐의 위기가 아니고 무엇인가.

천변에서 사라진 것을 다시 나타나게 하려면 천변의 잘못 조성된 근대의 건조물들이 만들어 냈던 빛과 그늘 아래서 적응하며 40여년을 살아낸 삶의 기술과 공간의 동력을 찾아보아야 한다. 천변 사람들이 비제도적인 방식으로 터득한 기술들은 한국의 근대를 지탱한 대단한 것이었다. 예를 들면, 금속-공구 부문은 금속재료, 가공-제작 그리고 판매-유통의 라인을 형성하여 네트워크 시스템을 만들어 냈다. 뿐만 아니라 점포간에 품목들을 분산하고 집적하는 과정에서 품종과 생산량을 배치하고 재배치하는 기술을 쌓아 왔다. 세운상가와 주변 전기-전자 부문은 기존의 상품들을 해체하고 조립하는 과정에서 기술적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었다. 평화상가와 동대문 중심의 의류봉재산업은 모방을 통해 디자인을 개발하고, 제작의 속도와 유행의 속도를 빠르게 순환시킴으로써 품목들을 세분화하고 확장하는 기술을 터득하여 왔다. 황학동의 만물 부문은 근대화로 인해 버려져 부유하는, 고장난 상품과 박물들을 고물이라는 동일한 차원에서 재생하는 작업을 통해 오랜 기억과 새로운 기술을 결합시키는 방식들을 찾아냈다. 이러한 기술적 노하우를 바탕으로 청계천의 생산 시스템은 한국 경제전반의 견인차 역할을 해 왔다. 청계천은 각종의 새로운 산업 아이디어가 생산되는 진원이었다. 새로운 품목을 만들어 냈고 여러 가지 품목에 투여되는 공통기술을 집적하였다. 샘풀, 목형, 금형과 같은 상품의 프로토콜을 생산하여 연계산업들에 파급력을 행사하여 왔다.

이러한 무형의 삶의 기술들은 비근대적 방식으로 근대적 공간을 살아내야 했던 그 치열함의 비밀을 단적으로나마 말해주는 예들이다. 천변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 공간을 점유하고 전유하는 방식을 통해 품종과 생산량 그리고 기술을 집적-분산-배치해 가는 무형의 노하우를 쌓아 왔다. 이것이 천변 공간의 특수성과 천변 사람들의 공간살이에서 '우리'가 보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이렇게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맹목, 그것은 무엇인가?


사진 : 청계천의 꿈 (워크인서울, 2001년 가을, 청계2가)


과거의 개발이 고가도로와 대형 복합상가라는 근대화된 도시공간의 환영을 통해 천변의 역사, 문화, 환경을 보이지 않도록 했다면, 이번 복원/개발은 천변의 역사, 문화, 특히 환경을 가시화 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역사-문화-환경과 천변의 삶-공간이 맺는 관계나 맥락들을 보이지 않도록 만들고 있다. 그 대신 국제금융업, IT-부품산업, 의류-패션업 등을 위한 지구들을 조성하여 고층-고밀의 도시상업공간들을 가시화 하려 한다. 이런 의미에서 ‘청계천 복원’ 계획은 청계천을 ‘복원’하되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며, 문화적 맥락이 없는 생태복원과 역사문화복원은 그 자체가 갖는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원형보존신화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 사회를 위험사회라고 규정할 수 있다면 그 원인 중의 하나는 삶을 초고속으로 앞지르는 정치경제적 속도주의가 아직도 사회의 제일 원리이기 때문이며, 이로 인해 가시적 이미지들은 도처에 난무하지만 무형의 삶의 맥락들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도시시각환경이 자본의 추상적 논리에 의해 가시화되면 될수록 그 이미지들의 감각적 과잉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을 둘러싼 ‘사라짐’의 위기는 더욱 더 고조될 것이다. 아직 비근대적 삶이 채 가시지 않은 근대의 신화적 구조물과 공간들이 폐허로 사라지는 자리에 또 다른 근대, 아니 보다 가속화되고 완성된 근대가 자리 잡게 되면, 남는 것이라곤 우리의 삶이 살아내기 버거운 초현실적 공간뿐이리라!

류제홍 / 시각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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