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웃의 정치가 중앙정치여야 한다

성미산 싸움으로 지역 공동체 일군 마포구의 선거 이야기


탄핵정국으로 한동안 언론지상에는 각 당의 지지율이 크게 보도된 바 있다. 물론 각 당의 정책조차 발표되지 않은 시점이었지만 국민의 뜻과 아무 상관이 없는 우리 정치체제에 느끼는 말못할 염증과 분노는 우선 당장 각 당의 지지율로 환산돼 언론지상을 오르락 내렸다.

이라크 파병결정,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비준, 집시법 개악 등 민주정치라는 것이 국민의 뜻과 정반대로 움직이는 일. 이 와중에 빚어진 탄핵정국으로 일상적으로 내면화된 비상식과 박탈감은 한계치를 넘어서 뜻하지 못했던 거대한 움직임을 만들었고 그 움직임이 탄핵반대를 중심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듯 보였지만 그 안에서 산발적이나마 다양한 이야기들이 터져나오고 있다.

이전과 별 다를 바 없는 물갈이의 요구에서부터 국민의 이름으로 탄핵해야한다는 목소리, 더 근본적으로는 간접정치라는 의회정치구조상 국민의 의견 반영이 과연 가능한가라는 문제제기까지. 이 때문에 탄핵반대의 와중에서도 국민발의제나 국민소환제 도입의 목소리도 나올 수 있었고, 그 흐름을 타 최근 각 정당들은 민노당이 지난해 제의한 부정부패에 연루된 공직자를 국민이 해임할 수 있도록 하는 국민소환제 추진에 대해 한나라당을 뺀 주요정당 모두가 찬성한다는 발표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국민발의나 국민소환제는 국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의 실질적 시행여부는 지역주민의 일상적 정치참여가 뒷받침됐을 때 가능한 일일 것이다. 아니 그보다는 지역주민의 일상적 정치참여가 가능하다면 이미 부패 정치인이 설 자리는 없을 터이니 문제의 본질은 부패여부가 아니라 그러한 일상적 정치참여의 통로를 확대해나가는 일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지역주민과 밀착해 수년간 지역운동을 해온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순서일 듯 싶었다. 그 지역에 살므로 당연히 매일 주민과 만나고 지역에서 물건을 사고 팔고, 지역에서 아이를 키우고, 학교를 보내며 지역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을 지역주민과 함께 해결하려 애써온 이들이야말로 주민자치라는 것에 대한 별 자의식 없이 한발한발 주민자치를 향해 가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 목소리부터 찾아야 한다

지역 안에서 자신이 참여하는 정치를 만들어가는 이들에게 지금의 탄핵정국,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마포구 주민 김종호 씨

선거는 어떤 의미로 다가오고 있을까. 성미산 배수지 건설 문제로 2년 3개월 간 지역주민이 뭉쳐 서울시와 지자체를 상대로 싸워 결국 배수지 건설을 백지화해낸 마포구 주민 김종호 씨를 만나보았다. 김종호 씨는 배수지 싸움에 몸을 아끼지 않았던 마을주민과 힘을 합쳐 지난 3월 13일 <참여와 자치를 위한 마포연대>(이하 마포연대)를 창립해 지역일꾼으로 일하고 있다. 마포연대는 현재 마포구의 세금 감시와 지역여론을 형성할 대안 언론 만들기와 의정참여활동, 교육환경 개선과 학교급식 조례제정 운동 등의 교육연대 사업, 성미산 생태공원화 추진 및 주민복지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마포구 주민은 이미 10년 전부터 지역주민이 공동육아를 시작해 지역자치의 씨앗을 마련했다. 그 후 도시와 농촌이 만나고 주민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공급하기 위해 조합형태로 생협을 운영해오고 있고, 작년 말부터는 공동의 차병원(카센타) 운영을 시작했으며 올 5월부터는 지역의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무료 치과병원이나 한의원을 개원할 계획이다. 또한 9월에는 전국에서 두 번째로 도시형 대안학교를 개교할 계획이다. 주민이 지켜낸 성미산에 주민들이 나무를 심고 그곳에서 마을축제를 여는 일 정도는 더 이상 드러낼만한 일도 아니다. 눈에 보이는 성과들이 이정도이니 주민들 사이에 맺어진 끈끈한 연대는 더 묻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지역에서 선거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원칙부터 내세웠다. 현실정치에서 원칙을 내세운다는 것은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이미 자신감이 마련되어 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개개인 지역주민의 삶을 먼저 보고 제도나 틀을 만들어가야지요. 지역에서 성장한 일꾼이 당연히 지역의 실무나 정치를 맡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탄핵국면으로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이 급상승하는 등 한참 시끄럽지만 어디까지나 지역의 사정을 훤히 꿰고 있는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도록 세부적인 실행계획까지 검증할 수 있는 정책토론회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아무것도 분리되어 있지 않고 아무것도 갑자기 변할 수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02년 월드컵의 광풍이 몰아쳤을 때 말이에요. 그때 효순이 미선이가 죽었지만 아무도 몰랐어요. 그런데 나중에라도 광화문 한복판의 촛불집회로 이어질 수 있었던 건 월드컵이라는 그 와중에 의정부에서 단 몇십명이 꾸준히 두 사람의 죽음을 환기하는 촛불집회를 이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지역운동이 찻잔 속의 태풍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지금의 중앙결정적인 권력은 이 작은 움직임들로 바꿔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성미산 싸움도 단지 마포구의 문제로 비췄을지 모르나 다른 지역, 혹은 여러 시민단체들의 연대가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싸움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마포구의 이러한 성과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 지역연대를 모색하기 위해 마포연대로 많은 문의들을 해오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매일 생활하는 지역민들이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리고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공동육아 때문에 이 지역으로 이사왔습니다. 다른 어린이집에도 보내봤지요. 근데 이곳 공동육아의 가장 큰 특징은 아무것도 억지로 시키지 않는 겁니다. 다 밖에서 놀고 싶다고 해도 한 명이 싫다고 하면 그 아이는 안에서 딴 놀이하면 돼요. 지금 그 공동육아가 방과 후 교실로 이어지고 있는데 여기에 다니는 아이들 학원 안 가요. 그 일사분란한 움직임에 개의치 않겠다는 겁니다."

결국 어린시절부터 자기 목소리를 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행복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확신할 수 있을 때 역으로 공고한 것처럼 보이는 집중화되고 중앙에서 내려오는 권력체계에 저항할 수 있다고 했다. 9월에 개교할 대안학교 역시 역으로 기존의 교육방식에 반드시 영향을 미칠 것이라 했다. 손바닥 뒤집듯이 바뀌는 교육정책은 아이들의 자율성을 바탕으로 한 모델이 부재하는 한 언제까지나 계속될 일이라는 것이다. 성미산학교는 부모들의 힘으로 이뤄진 거지만 그 힘이 모아지면 대안학교를 위한 입법화도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긴호흡과 자신감이 없이는 시도할 수 없는 일들이다.

"5월부터 시작할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무료진료도 이 지역의 사회복지전체의 모습을 제대로 짜겠다는 생각으로 계획하게 된 겁니다. 무료진료에 나서려면 우선 관료들과 이 지역의 취약계층과 복지관 실태부터 조사해야 해요. 별 것 아니지만 이런 것들이 끊임없이 관료를 자극하는 견제활동이 될 수 있거든요. 그렇게 되면 무료진료도 제도화할 수 있어요."

이제는 남의 문제와 내 문제가 따로 없는 시절

그는 일관되게 거미줄처럼 얼켜 있는 관계를 강조했다

"노동법에 3자 개입금지법이라는 악법이 있죠? 말도 안되는 법이잖아요. 비단 노동문제 뿐만 아니라 어떤 일이건 3자 개입해야해요. 나와 분리된 문제가 뭐가 있습니까? 나는 마포구에 살지만 서대문구에 어려운 일 생기면 달려가서 도울겁니다. FTA가 비준됐지만 어디 농업문제가 농민만의 문제에요? 그 화살은 반드시 도시민에게 되돌아와요. 지역정치와 분리된 중앙정치라는 건 없다고 봐요."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간중간에도 지역주민들에게 간간이 전화가 걸려왔다. 앞으로 열릴 차병원 이사회나 나무심기 행사와 구청자료조사 등의 내용을 주고받았는데 그런 일들이 밥 먹고 직장에 다니는 일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상처럼 보였다. 일상정치를 말하는 그에게 보수와 진보의 차이를 물었다.

"보수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더 공고히 하려는 것이라면, 진보는 당연히 우리것을 만들어가는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만들어 갈 수 있어요. 우리 동네에서 불법선거 신고하는 분들이 누구신지 아세요? 나이 지긋하신 어른분들이세요. 성미산 싸움 겪으며 많이들 변하셨다고 생각해요. 늙고 힘없다고 언제까지나 표몰이 대상일수만은 없죠."

그는 그와 같은 지역주민 두명과 함께 지난 2002년 지자체 선거에 나간 적이 있다. (그중 한 명은 황신혜밴드의 멤버인 조까치이다. 그는 운영하던 출판사가 망해 정릉으로 이사갔지만 마포구에 대한 애정이 각별해 다음 지자체 선거에 또 출마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때 세명 다 되지 않았지만 별로 좌절하지 않았다고 한다. 왜냐면 정치는 일상적인 것이니까. 지역일꾼이 그런 선거에 계속 나서줘야 한다는 확신에는 변함이 없다. 국회의원 선거라고 다르지 않다. 그리고 다행히 이번 선거에서 지역의 일을 발벗고 해준 일꾼이 후보로 나서주었다고 한다.

마포구에서는 지역의 요구를 담을 수 있는 선거준비로 차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마포구에서는 어쩌면 버스정류장에서 악수하고 명함 나눠주는 식의 선거운동은 별 실효를 거두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그 인물이 그 인물이라는 말도 쉽게 내뱉지 못하게 될 것 같다. 매일 마주치는 이웃이 자신의 이야기로 정치를 하는 곳..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급식을 먹이는 일 등을 국가의 교육정책, 농업정책과 연결지어 정치를 하는 곳.
지역의 촛불은 그렇게 더 많은 촛불과 만날 자신만의 동력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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