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일차 서울대지부 파업, 산별교섭은 끝나지 않았다

"병원 산별 합의 안, 지부교섭력 가둔 결과"
서울대 병원 산별합의안 내세워 교섭 절대 불가

14일 보건의료노조의 2차 시기 집중 총파업에 앞서 13일 한양대의료원과 단국대의료원이 지부교섭을 타결 짓는 등 16일 현재 121개 보건의료노조 소속 지부 가운데 70여 개 지부가 지부별 교섭을 마무리지었다.

그러나 38일차 파업을 벌이고 있는 서울대병원은 아직까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서울대병원측은 노조가 파업을 풀지 않으면 교섭을 진행할 수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고, 14일 김애란 노조지부장 등 지도부 15명에 대해 업무방해와 의료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하고 노조를 상대로 15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채권가압류 소송을 제기하는 한편 노조 지도부에 대한 대기발령을 내렸다.

현재 서울대지부 파업의 주요 쟁점은 △주5일 실시에 따른 인력충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의료공공성 강화 △치과병동 분리에 따른 지부와 단협 승계 △생리 휴가 및 연월차 휴가 수당 보전의 신입사원 동일 적용 등이다.

인력 충원의 경우 근무형태 변경만 논의되고 있을 뿐 신규 채용의 규모에 대해서는 거의 협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병원 쪽이 내놓은 안은 기존 오전 7시 30분이던 간호부 출근시간을 오전 6시 30분으로 앞당기고, 종전 밤 10시 퇴근시간을 11시로 늦추는 대신 다소간의 인력을 보충하겠다는 안이다. 이 경우 서울근교 거주자가 아닌 대다수 조합원들은 첫차를 타고 출근해도 제시간에 맞출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는 게 노조의 설명이다. 노조는 근무 형태의 변경을 전제로 한 인력 충원 얘기는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또한 사측은 낮-저녁-밤 주40시간에 맞추기 위해 8-8-8시간으로 변경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제에 대해 경우 병원측은 직접고용 계약직에 대한 단계적인 정규직화에 노력하고 신규 채용시에 우선 적용하도록 노력하겠다는 정도의 얘기를 하고 있다.

또한 의료공공성 강화와 관련해 노조가 요구하고 있는 다인병실 확보, 단기병상제 폐지, 2인실 병실료 인하, 선택진료제(특진제) 폐지, TV무료 시청 등에 대해서도 병원측은 별다른 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현재 서울대병원은 6인실 이상 병상의 경우 2주 이하의 입원환자만 이용하고 2주 이상 입원환자는 2인실을 사용하게 하는 단기병상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대병원에 입원하는 환자들의 대부분이 지방에서 마지막 보루로 서울대를 선택하는 것을 감안한다면 사실상 2주 이내 입원환자는 극소수이고 따라서 대부분의 환자들은 어쩔 수 없이 2인실 사용을 강요받는 다는 것이 노조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병원측은 단기병상제에 대해 개선하겠다, 다인실병동확보는 소아병동이 완성되면 고려하겠다는 수준의 안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TV 무료 수신의 경우 2006년까지 업체와 계약이 되어있어 그 이후에나 논의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치과병동 분리 문제는 2003년 교섭에서 현재 지부와 단협을 승계하기로 합의를 본 내용이었으나 치과병동 측은 2003년 합의안을 번복하고 별도의 지부를 통해 단협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신규노동자와의 차별을 인정하는 것은 산별정신의 훼손"

지난 보건의료노조 산별 파업 정리과정에서 보건의료노조는 연월차 휴가와 생리휴가를 개악된 근기법에 따라 무급화하되 기존 노동자에게는 임금으로 보전하기로 잠정합의했다. 또한 잠정 합의안 10장 2조에서는 '제 9장(임금), 제 3장(노동시간단축), 제1조(근로시간단축), 제5조(연월차 휴가 및 연차수당), 제 6조(생리휴가)는 지부단체협약 및 취업 규칙에 우선하여 효력을 가지며, 동 협약과 동시에 지부의 단체협약 및 취업규칙을 개정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쟁점중의 하나인 생리휴가 및 연월차 수당 보전 조항을 신입사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하는 문제에 대해 병원측은 "산별 잠정 합의안을 뛰어넘는 내용의 요구이므로 이 부분만큼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병원측은 산별 실무교섭에 직접 참가한 당사자로서 산별 잠정 합의안을 상회하는 안은 절대 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지방공사의료원과 제주대병원지부에서 재직중인 사원에게만 적용되기로 했던 산별 합의안을 신입사원에게도 적용하기로 하는 지부교섭을 타결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대병원 측이 산별 합의안 만을 내세워 교섭 절대 불가 입장을 고수하는 것은 지부 교섭 자체에 대한 의지가 없는 반증"이라고 노조는 반발하고 있다.

노조는 "산별 잠정 합의안 내용을 기존 사원에게만 적용하도록 하는 것은 산별의 기본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에 이 문제는 반드시 극복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동자들 내에서 기존 인력과 신규 인력의 이유로 차별을 두는 내용을 노동자들 스스로 승인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또한 노조는 "산별 합의안이 지부 교섭의 최소 가이드라인의 제시여야 하는데 산별 잠정합의안 10장 2조에 의해 오히려 최소한의 가이드 안에 지부의 교섭력을 가둔 결과가 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노조의 한 대의원은 "산별교섭이라는 게 뭉쳐서 싸우기 위해서 한 건데 지부에서 손도 쓰지 못하게 해 놓은 것이 아닌가?"라고 반문하며 "지방대오가 서울에서 겪은 어려움이 너무 크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산별 싸움이 이후 지부교섭의 동력으로 전화되기 위해서는 지부의 최소한의 요구가 관철되도록 산별 협약이 이루어졌어야 한다"고 말했다. 6년여의 요구 끝에 특성별 각 병원들을 중앙교섭으로 끌어내는 첫 산별 교섭을 성사시키는 성과를 남겼음에도 직권중재를 들이민 정부와 자본의 공세에 밀린 투쟁 없는 산별합의가 결국 이후 산별을 뛰어넘는 지부의 싸움을 가로막는 장애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는 "언제고 우리가 합법 파업을 했었나? 산별이 최소 가이드를 지키기 위한 투쟁을 지속하고 지부는 지부의 투쟁을 지속했어야 했다. 정작 설득은 투쟁의 정당성에 대한 것이지 산별의 한계에 대한 어쩔 수 없음에 대한 설득이어서는 안되었다"고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대병원지부는 산별 잠정 합의안 타결 이후 지난 28일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 산별 잠정 합의안 중 문제가 되는 부분을 파기할 것을 보건의료노조에 요구하는 한편 산별 합의 이후 1주일간이나 교섭에 임하지 않는 병원 측을 교섭 장소로 끌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병원 측은 "산별 교섭에서 합의된 것을 다시 논의한다면 산별 교섭을 할 이유가 없는 것 아니냐", 심지어는 "조직적 보호도 받지 못하는 파업이 얼마나 가나 보자"라는 식의 반응까지 보이고 있다고 노조의 한 대의원은 전했다. 즉 신규 직원 적용 문제를 빌미로 다른 기본적 교섭마저도 해태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선임 서울대지부 지도위원은 "산별 합의안을 이유로 사측이 교섭을 해태하며 탄압을 노골화하는 과정에서 조합원 사이에 산별 교섭에 대한 문제제기가 많았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뒤로 미루고 우선 현재의 투쟁에 집중하기로 동의를 얻어냈다"고 전했다. 최 지도위원은 "어려운 상황이지만 조합원들이 흔들림 없이 잘 버티고 있다"고 자신감을 표현하는 한편 "하지만 사태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보건의료 노조 차원의 연대가 전혀 없는 부분이 많이 아쉽다"고 말했다.

앞서 말한 노조의 대의원도 "17일이 급여날인데, 사측은 무노무임이 적용되면 1인당 1~20만원도 못 받는 상황에서 조합원들이 동요할 것을 바라는 것 같다. 그러나 조합원들 역시 버티자는 분위기다. 예전 선배들이 누구보다 조합원을 믿으라고 한 의미를 하루가 다르게 느끼고 있다"고 현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보건의료 노조 한 간부는 "문제는 '산별협약이 최저협약이냐 아니냐'에 있는 게 아니라 중앙쟁의대책위 찬반투표 등 모든 절차를 거쳐 합의했던 조직원칙이 한 지부의 문제제기로 훼손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첫 산별이니 만큼 아쉬운 부분이 있었던 것은 모두가 동의하나 그걸 뛰어넘는 방식이 산별 합의안 자체를 파기하는 방식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지방의료원이나 제주대처럼 지부별 상황에 맞게 산별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본조와 함께 가야하는게 아닌가"라고 말하고 "산별안 자체를 부정하는 선에서 출발함으로써 서울대지부가 본조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전혀 두지 못한 거 같다"고 말했다. 또한 "그러나 지부의 상황과 별도로 노조에 대해 벌어지는 탄압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엄호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전했다.

일방적 병원측의 교섭 중단과 지도부에 대한 대기발령, 손배 가압류와 형사고발, 노동부의 불법파업 경고에 서울대병원 2300여 노동자들이 오늘도 38일차 파업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대 병원측은 산별 합의안을 산별 교섭의 성과를 바탕으로 힘있게 진행되야 할 지부별 교섭의 장벽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에 맞선 서울대지부의 투쟁이 어떤식으로 자리매김 하느냐, 이들의 투쟁을 어떻게 엄호하는냐는 올 첫 교섭을 이뤄낸 보건 산별투쟁의 평가를 가르는 또 다른 실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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