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자본 횡포 분쇄할 반세계화 운동을

[특별기획] 세계화에 저항하라(8) - 초국적자본이 점령한다<1>

지금 한국경제는 1960∼80년대 말까지의 30년 장기호황 이후 시작된 장기적 불황 추세에서, 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한층 심화된 경제위기 국면에 있다. 현재의 불황은 과거의 호황과 관련이 있다. 당시의 호황은 철저한 국가주도가 배경이었다. 군사독재에 기초한 정치영역의 억압적 비민주주의, 자본과 노동 사이의 초착취 장시간노동 노동기본권 말살, 그리고 세계경제의 장기호황 등이 당시 호황의 핵심 요소였다.

강력한 수출주도형 체제로 신흥공업국의 선두 군으로 부상한 한국은 세계시장에서 성공적으로 위치를 잡았으나, 이내 시련이 닥쳤다. 기술집약적 선진국 기업에 대한 자본 기술 경쟁력의 취약함과 뒤로는 중국 등 노동집약적인 산업상품을 내세운 국가의 추격 속에서 매우 불안정한 위치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한국 자본가 계급에게는 구조를 개혁할 강력한 필요가 제기되었고, 정부는 나름의 타개를 시도했는데, 이것이 바로 김영삼 정부부터 시작된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의 적극적 수용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은 경제성장에서조차 이렇다할 기여를 하지 못한 채 온갖 폐해만 양산하고 있는데, 자본의 투기화 양상도 바로 그 해악적 결과중의 하나다.

신자유주의 - '워싱턴 컨센서스'의 세계화

오늘날 전 세계 정책 결정자들이 수용하는 10개 영역의 신자유주의 정책(워싱턴 컨센서스)은 긴축정책, 복지삭감, 조세개혁, 금융자유화, 변동환율제, 무역자유화, 해외직접투자, 사유화, 규제완화, 재산권 등이다. 투기자본의 문제는 이 정책에 기초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사상의 재등장 배경은 1974-76년 전후 최초의 심각한 불황과 관련 있다. 또한 이는 정치투쟁의 결과이기도 했는데, 80년대 동안 레이건과 대처는 성공적으로 자유시장 정책을 시도했다. 그들은 일부 기득권층의 저항과 81년 미국 항공관제사 파업, 84-85년 영국 광부파업으로 대표되는 노동자들의 저항을 분쇄했다. 80년대 말이 되자 신자유주의적 혁신이 일반화되기에 아주 유리한 세계 환경이 조성되었다.

이제 신자유주의자들은 세계 수준에서 자신들의 정설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이는 미 행정부의 헤게모니를 확장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러나 기업들은 끝없이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면서 주식시장의 압력을 내세워 환경을 파괴하고, 민중의 삶을 망쳐놓았다. 그러나 이 정책은 또한 강력한 도전을 받기 시작했다.

신자유주의적 헤게모니가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함께 시작됐다면, 그것은 1999년 11월 30일 시애틀에서 거대한 도전에 직면하기 시작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 같은 저항은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 경제의 금융세계화와 투기자본의 횡포

한국형 발전모델의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써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을 도입했지만, 이는 취약한 한국경제를 통제 불가능한 세계 차원의 위기에 속박시킴으로써 문제를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김영삼 정부는 OECD 가입을 계기로 금융자유화 정책을 포함하여 각종 개방정책을 발표했고, 노동현장에는 온갖 고용유연화 정책이 도입되어 강압적으로 시행되었다.(김대중 정부는 신자유주의 드라이브를 더욱 광범하게 확장시켰으며, 노무현 정부도 그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시장이 극적으로 개방되는 등의 변화에도 실물경제는 개선될 기미가 없었다. 게다가 세계 경제의 불안정과 주기적 공황이 겹치면서, 금융시장이 동요할 기미를 보이자, 환투기를 일삼는 외자가 급격히 도피하기 시작했다. 금융위기가 도래했는데, 이것이 이른바 97년 IMF 외환 위기였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개방은 더욱 일관되게 추진되었다. 이에 따라 외환위기 이전에 견주어 한국경제에 대한 초국적 금융자본의 영향력이 크게 늘어났다. 외국 자본은 이미 주식시장(시가총액 기준)의 43%, 은행 주식의 63%를 점했고, 삼성전자 포스코 국민은행 등 우량기업들의 경우 50%를 넘는 지분을 소유했다. 그러나 외국자본의 국내유입과 그들의 비중 증대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점이다.

다수 지분을 확보하여 기업경영을 주도하게 되면 외국자본은 우선적으로 대량 해고와 노조의 약화를 시도하며 노동자를 공격한다. 기업 활동의 지속성과 생산적 분야 투자를 통한 일자리 창출은 고사하고, 사회 공익적 지출은 철저히 배제하는 한편, 기존 자산을 처분하여 주주의 호주머니를 채운다. 대량해고와 고배당, 자산매각, 자사주매입, 유상감자를 통해 오직 주주가치 증대를 추구할 뿐이다. 게다가 이들 투기성 단기자본은 대체로 시세차익을 챙기고 곧장 다른 대상을 찾는 수법을 보이고 있다. 이런 수법으로 단기간에 천문학적 규모의 이득을 챙기고도 세금 한 푼 제대로 물지 않는다.

단기성 해외 자본이 경영권을 통제하면서 은행의 업무형태도 변화하고 있다. 일반 국민과 하층 시민들에게는 은행문턱이 높아지는 반면, 부유층들을 위한 은행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76% 이상의 지분이 해외 투자자의 수중에 있는 국민은행의 경우에는 학자금 대출 같은 서민형 소액대출은 대폭 축소하거나 폐지하는 대신, 부유층들을 위한 상품 개발을 늘리고 있다.

이 같은 폐해는 제조업 부문도 예외가 아니다. 제조업 노동자들은 IMF 위기 이후 기업들이 무분별하게 해외자본에 매각될 때 '국민기업화'나 '공기업화' 또는 '우리사주를 통한 기업유지'를 요구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제안은 철저히 외면당했고, 이른바 '고용 없는 성장'과 단기이익을 위한 저임금 비정규직 확대경향이 확산되었다. 특히, 투기자본에 매각된 기업(또는 금융기관)이 자행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양산은 다른 부문 노동자들의 처우를 끌어내리는 선례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사회적 문제의 원천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이런 배경에서 투기자본 반대 운동이 출현하게 되었다.

투기자본 반대 운동을 둘러싼 몇 가지 논점

이제 막 시작한 투기자본 반대 운동은 몇 가지 논점에 직면해 있기도 하다. 재벌과 외국 투기자본간의 소유권 분쟁에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지도 그중 하나다. 그러나 투기자본 반대 운동을 투기가 아닌 '건전한' 자본 또는 국내 자본 지키기 운동으로 보아서는 곤란하다. 시애틀 시위를 기점으로 전진하고 있는 '반세계화 운동'을 자본주의의 폐해를 용인 한 채, 조직 형태만 다른 폐쇄적 국민경제 또는 경제 블록화를 지지하는 운동으로 단순화시키는 것이 옳지 않듯이 말이다.

외국계 단기성 투자펀드의 횡포를 막기 위해 금융기관을 국내 재벌이 인수하도록 하자는 주장은 노동자의 입장에서 볼 때 다소 위험하다. 민족주의적 호소력이 강한 이 '대안'에 재계가 적극 환영하고 나서리라는 것은 불문가지다.

그러나 일면 현실적으로 비쳐지는 '재벌 대안론'은 투기적 횡포를 막는 데서는 어떠한 도움도 되지 못할 것이다.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지배문제를 차치하더라도, 금융의 투기화를 초래한 신자유주의 정책은 재벌을 포함하여 하나의 집합체로서의 국내 자본이 목적의식적으로 추구하는 바이다. 지난 9월 국회에서 사모펀드 설립 법안이 통과된 것도, 재계의 이 같은 희망이 반영된 것이다.

재계는 '역차별' 운운하며, 외자의 '과감한' 수법을 스스로 추구하고 있다. 이미 외국계 투기자본이 선보인 유상감자 등의 신종 갈취 수법을 국내 자본(우리증권)이 답습하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국내 자본에 기대어 외국계 자본의 횡포를 막자는 견해는 실현 가능성도 없다.

게다가 무노조 경영과 노동자 탄압으로 악명 높은 삼성이 노동자 권익 문제에 있어 외국계 투자펀드에 비해 낫다고 볼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또한 SK가 소버린으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하는 것 자체로서 노동자 민중에게 어떠한 득이 되겠는가! 노동자 민중의 권익은 소유주에 무관하게 투쟁으로 쟁취해야지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한국경제가 라틴아메리카 형의 장기침체로 갈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관련하여 경제 회생을 위해 사회 대타협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으나, 회생은 노동자를 희생시킨 대가로 이뤄질 것이란 점에서 섣부른 주장이다. 역으로 경제회복에 실패하더라도 이것이 모든 개별 자본의 실패를 뜻하지는 않을 것이다.

80년대 라틴 아메리카에서 IMF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혹은 케인즈주의적 구조주의 정책이 모두 경제 살리기에 실패했지만, 자본은 도리어 착취율의 비약적 상승이라는 획기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경제의 실패가 자본의 성공으로 귀결된 경우는 자본주의에서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다. 그러므로 투기자본 감시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자 민중의 권익을 보호하고 확대한다는 관점일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운동과 연계

투기자본 반대 운동은 작금의 투기자본 횡포에 대한 책임이 정부의 정책에 있음을 분명히 하고, 정부가 이를 규제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 보았듯이 투기자본의 횡포가 특정국가에서 나타난 우연한 현상이 아닌 세계적 차원의 신자유주의 정책의 논리적 결과란 점에서, 이 운동은 다른 영역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운동'과 어떤 방식으로든 결합될 필요가 있다.

투기자본반대 운동은 경제위기시 특정 영역의 운동이 보다 광범한 민주적 권리 쟁취 및 사회 진보운동으로 나아가는 가교로서 의미가 있다. 말하자면 이 운동이 '투기자본' 반대 운동에서 '자본 일반의 폐해'에 대한 문제의식의 확대로 발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미BIT 또는 FTA가 체결될 경우 투기자본의 폐해는 전 영역으로 확대될 것이다. 그러므로 투기자본 반대 운동과 각종 무역협정 체결 반대운동은 당연히 서로 연대해야 한다. 투기자본이 앞장서 양산하는 비정규직노동자의 투쟁과 투기자본 감시 운동의 결합도 당면한 과제이다.

알림
반세계화 특별기획 7회차는 기획 마지막 종합 토론으로 변경합니다.
덧붙이는 말

이정원 님은 증권산업노동조합위원장으로 투기자본감시센터 운영위원장 일을 하고 있다.

태그

반세계화 , 투기 , 투기자본 , 금융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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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기연

    좋은 글입니다...

  • 노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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