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정사진에조차 얼굴을 드러내지 못하고"

‘HIV감염인, AIDS환자 인권 사망 선고’ 기자회견 가져


제 17회 세계에이즈의 날인 12월 1일 ‘HIV/AIDS 인권모임 나누리+’(나누리+)는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HIV감염인/AIDS환자(감염인/환자) 인권 사망 선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기자회견은 추모사로 시작되었다.

처음으로 너의 영정 앞에서 너의 안부를 묻는 비통한 자리에서조차 살아있는 난 아직도 얼굴을 드러낼 수가 없어 이렇게 검은 천을 쓰고 너의 앞에 서는 걸 용서해다오...
...
너의 부모님이 장례식에도 오지 못하는 기구한 현실이 기가 막혀 통곡을 했었다...
...
언젠가 하늘나라 올라가 널 다시 만나게 되면 네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우리의 인권과 권리를 위해 끝까지 싸워 나갈게. 지켜 봐 주렴....

윤호제 나누리+ 대표와 함께 투병하다가 3년 전 세상을 떠난 동갑내기 친구에게 전하는 윤 대표의 글이다. 윤호제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얼굴에 검은 천을 쓰고 추모사를 낭독했다. 추모사가 끝난 후 진혼무가 흐르는 가운데 전통무용가 김준일 씨의 추모굿이 이어졌다.

나누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364일 동안 감시하고 차별하면서 에이즈의 날 하루만 감염인/환자들의 삶을 행사로 치러내는 이 땅에서 감염인/환자들의 인권은 죽었음을 선고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회사에서는 병을 이유로 퇴사를 종용 당하고, 병원에서는 진료를 거부하고, 죽어서조차 염을 거부당한다”며 감염인/환자들에게 가해지고 있는 사회적 차별을 지적했다.

이어 나누리+는 에이즈에 대한 사회적 공포에 대해 “감염인/환자들에 대한 차별과 외면은 에이즈라는 병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며 “에이즈는 그 원인과 전파 경로가 이미 다 알려진 ‘관리 가능한’ 질병”이라고 전했다.

나누리+는 또 “정부가 감염인/환자들을 건겅권, 노동권, 사생활권, 출산 등의 권리로부터 배제시키고 동성애자, 성매매 여성 등을 고 위험군으로 분류하여 잠재적인 가해자로 취급하고 있다”며 “감염인들을 사라져야 할 존재로 취급하고, 이들의 죽음조차 숨길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책임이 명백히 한국정부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국가인권위원회 앞에는 영정이 차려졌다. 한편으로는 병마와 다른 한편으로는 세상과 싸우다 떠난 이들의 영정이었다. HIV 감염인과 AIDS 환자들, 그들은 죽어서도 얼굴을 드러내지 못했다. 영정 사진에서 조차 얼굴을 드러낼 수 없는 그들을 진정으로 죽인 것은 질병이 아닌 한국 사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