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손해보는 장사의 대가"

제일은행 매각 과정에서 무능력, 혈세 낭비 여실히 보여줘
뉴브리지캐피탈 인수 5년만에 1조 1,500억 원 이익, 정부 5조 7,295억 손실

SCB 임원진들이 10일 오후 제일은행 인수 결정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토마스 멕케이브 SCB 한국 대표, 마이크 드노마 소매금융 총괄이사, 카이 니고왈라 아시아지역 총괄 대표. SCB 제공

뉴브리지캐피탈이 인수 5년만에 제일은행을 영국계 스탠다드차드은행(SCB)에 넘겼다. 단기성 투기자본의 행태와 정부의 무능력함이 드러나는 사건이다. SCB의 인수 소식에 국내 언론들은 '수조원의 혈세를 낭비한 무능한 정부'에 입방아를 찧었고, 국내 금융시장에 확대되고 있는 외국자본의 확대에 대한 '토종은행 힘실어 주기'에 나섰다.

뉴브리지캐피탈, 인수 5년만에 1조 1,500억 이익 거둬

영국계 은행인 SCB 임원진들은 10일 오후 기자회견을 통해 "제일은행 대주주인 뉴브리지캐피탈과 예금보험공사, 재경부로부터 제일은행 지분 전량을 3조4000억 원(33억 달러)에 현금지급 방식으로 인수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뉴브리지캐피탈은 99년 제일은행을 5,000억 원에 인수했다. 제일은행이 SCB에 3조4000억 원에 매각됨에 따라 미국계 투기자본인 뉴브리지캐피탈은 불과 5년만에 1조 1,500억 원에 가까운 막대한 차익을 남기게 됐다.

또한 정부에 대한 '헐값 매각' 과 '무능력', '혈세 낭비' 등의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정부는 제일은행 매각 과정에 사후 손실보전 계약을 체결해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 등을 통해 최근까지 총 17조 7,632억 원을 제일은행에 투입했다. 이 중 10조 1,549억 원은 자산매각과 유상감자 등을 통해 돌려 받았다. 그리고 지분매각으로 1조 7,488억 원의 공적자금을 추가적으로 회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적자금 손실액은 5조 7,495억 원에 달한다.

정부 '반성 필요', 토종 은행 '경주해야'

이와 관련해 언론들은 "정부가 외국자본에 빨리 넘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나머지 협상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고 그 결과가 막대한 국부 유출이 빚어진 데 대한 심각한 자기 반성이 필요하다"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한국경제신문은 11일 시론을 통해 "규모가 작은 국내 시장에 이 같은 거대 은행들이 대거 진출할 경우 이른바 '토종'으로 불리우는 국내 은행들은 생존 자체까지도 위협받을 수 있어 여간 걱정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이어 "외국계와의 전쟁에서 밀리면 가뜩이나 취약한 국내 금융산업의 기반마저 흔들리 수 있다는 점에서 국내 은행들은 외국계와 맞설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라는 조언을 잊지 않았다.

이미 금융계에서는 지난 해 시티그룹의 한미은행 인수 이후 외국계 은행과의 보이지 않는 전쟁을 진행하고 있다. 몸집 불리기에 나선 우리지주회사는 LG증권 인수를 통해 금융지주회사로서의 대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국민은행은 조직체계 정비를 위해 3,000여 명의 인원 정리와 지점 A, B, C, D 등급화를 통해 비용 누수를 줄인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한편 금융계의 시선은 이와 비슷한 론스타펀드로 옮겨지고 있다. 론스타펀드의 외환은행 주식보유 의무 기간은 2년이다. 관련 업계 내에서는 올해 11월 외환은행 매각에 나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미 론스타펀드는 외환은행 인수 과정에서 1조 원에 가까운 주식 차익을 얻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영국 소식에 정통한 파이낸셜타임즈는 이날 관련 소식통을 인용해서 HSBC가 제일은행 대신 외환은행에 참여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 놓기도 했다.

매각 과정 책임자 처벌해야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은 "결국 정부의 무모한 제일은행 해외 매각 정책은 국민의 혈세인 공적자금만 낭비한 반면 외국계 투기자본의 장사를 도와주는 데 그쳤다"고 평가하며 "제일은행 매각 과정을 밝혀 책임자를 처벌해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정종남 투기자본감시센터 사무국장은 "외국자본들이 보이는 선진금융기법이라는 것은 결국 고율배당, 유상감자 등으로 돈 빼내기일뿐 기여도가 극히 미미하다. 그리고 이들이 하고 있는 소매금융은 고액자산가들을 중심으로 상품을 개발하고 펀딩하게 하면서 오히려 국민들에 대한 일반 대출을 줄이고 수수료를 올리는 방식"이라고 지적하면서 2004년 은행 수수료 수익이 7조 원으로 사상 최대 기록을 갱신한 예를 들었다.

정종남 사무국장은 또 "최근 시티은행이 일본에서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바 있다. 이들이 은행자본이기 때문에 투기자본과 다를 것이라고 본다면 그것은 정부의 오판일 뿐이다. 정부는 금융시장에 대한 감독기능 강화와 이들의 이익을 국내에 재투자하도록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계 은행 스탠다드차타드은행(SCB)

아시아 진출 역사가 150여 년이 넘는 HSBC와 쌍벽을 이루는 은행이다. 총직원이 전세계 3만명 정도로 전세계 50여개국에 500여개의 지점을 가진 세계적인 은행이다. 총자산 1,200억달러로 2004년 6월말 영업이익이 11억 600만 달러에 달한다.
태그

금융 , 뉴브리지캐피탈 , SCB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라은영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
  • 요주의

    론스타 매각에 깊이 개입된 론스타편 외환은행 행장이었다가 론스타에게 팽당한 전직 재경부 관료이자 강경식의 비서였던 이강# 씨(한겨레21 기사 참조)가 현재 금융허브 추진 헛바람과 맞물려 한국투자공사 책임자로 앉혀졌다는데, 이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물린 것 아닌가 하여 심히 우려된다. 조만간 더 큰 폭탄이 터질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