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2천 브라질 농민, "룰라는 약속을 지켜라”

경찰 폭력 진압으로 응수, 룰라와 브라질 민중 완전히 갈라서나

자신의 지지기반이었던 MST 시위대에 기마경찰 내보낸 룰라

  의회 앞을 가득 메운 MST회원들 [출처: 로이터 통신]

사회개혁을 통한 농지분배를 외치는 1만 2천명의 브라질 농민들이 17일간 250Km의 대행진 끝에 브라질리아에 입성해 ‘농지개혁’ ‘FTAA 반대’ ‘미국반대’를 외쳤다. 브라질 대통령궁, 의회, 미국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인 농민들은 특히 미국 대사관 앞에서 패스트푸드 제품등을 태우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한 때 브라질 PT당과 룰라의 가장 든든한 기반 중의 하나였던 MST(Movimiento de los Sin Tierra - 무토지 농민운동) 농민들의 시위에 ‘루이스 이냐시오 룰라 다 실바 대통령’의 경찰들은 폭력으로 응수했다.

17일간 250Km 걸으며 농지개혁 국민대행진 벌인 브라질 MST회원들

  브라질 농민들은 17일간 250Km를 행진했다 [출처: AP통신]
브라질 MST는 지난 1일부터 ‘농지개혁 국민대행진’을 벌였다. 고이아스에서 브라질리아를 연결하는 고속도로를 따라 17일 동안 펼쳐진 도보 대행진 과정에서 MST 농민들은 중부 고이아스 주 내의 대농장 8곳을 점거했고 날이 갈수록 합류하는 회원들이 늘어 행진 막바지에 시위대는 1만2천으로 증가했다. 이 행진에 참여하기 위해 길게는 수천 킬로미터를 여행해 참가한 남성, 여성, 어린이 MST 회원들은 밀짚 모자를 쓰고 그들의 붉은 깃발을 흔들며 노래를 부르거나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 15km씩 고속도로 변을 걸었고 행진단의 길이는 거의 5Km에 달했다.

17일간의 평화적 행진을 마친 MST회원들은 수도 브라질리아로 들어서 예고되었던 집회를 진행했다. 집회에서 농민들은 룰라 대통령을 향해 농지개혁 약속을 지키라고 외쳤다. 대선 당시 룰라는 “내가 농지개혁을 통해 여러분들이 땅을 갖게 할 것이고 여러분은 다시는 농장 점거에 나설 필요가 없을 것”이라 공약한 바 있다.

농지개혁을 주 내용으로 하는 16가지 항목의 요구안을 가지고 간 MST대표와 룰라 대통령이 만나 대화하는 동안 대통령 궁과 의회 앞에서는 기마경찰을 선두로 한 경찰 병력의 진압이 시작됐다.

룰라와 MST농민 면담 결과에 대한 엇갈리는 설명들

  브라질 경찰이 폭력적으로 진압에 나섰다 [출처: 로이터 통신]

물론 MST 농민들과 룰라의 만남이 아무런 소득도 거두지 못한 것은 아니다. 룰라와 회담한 이후 MST 지도자들은 룰라가 동결시킨 농지개혁 예산을 7억 레알(한화로는 약 삼천억원)가량 증액 시키고 무토지 농민들의 정착 사업 속도를 높이기 위해 담당 공무원의 숫자를 천삼백명 가량 늘리겠다고 약속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브라질 농업개혁부 장관 미구엘 로세토는 이 만남의 결과에 대해 ‘긍정적’이라 언급했으나 “정부는 농민들과 아무런 거래나 결정을 내린 바가 없다”고 부인했다고 브라질 언론들은 전했다.

한편 농민 시위에 대한 브라질 경찰의 진압 과정에서 최소 30명의 MST 농민들이 타박상과 골절상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충돌은 룰라 정부 출범 이후로 따지면 최대 규모다. 국회 앞마당에서 진압 경찰로 부터 어깨 부상을 입은 MST 활동가 가브리엘 실베이라는 “그들(경찰)이 아무런 경고도 없이 덮쳤다”고 로이터 통신을 통해 전했다.

상위 1%가 농지 45% 차지하는 반면 하위 40%는 농지 1% 가진 브라질

  행진에 참가한 MST회원 [출처: socialist worker]
브라질리아 곳곳에서 진행된 시위의 열기는 상당히 뜨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MST 지도자 중 한사람인 페드로 스테딜은 국회 의사당 앞에서 “2006년까지 43만 가구를 정착시킨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룰라에 대한 전통적 지지를 철회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또한 “이번 행진의 힘으로 우리는 계속 농장 점거 운동을 펼쳐나갈 것이며 또 이 힘으로 우리는 룰라의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에 타격을 가할 것”이라 목소리를 높였다.

MST가 내세우는 그들의 최종 목표는 브라질의 불평등한 토지 소유 체제를 혁파하는 것이다. 현재 브라질에서는 1%의 사람들이 45%의 농지를 소유해 무려 1억8천만명의 소작인을 거느리고 있다. 이에 반해 하위 40%가 차지하는 토지의 비율은 1%에도 미치지 못한다.

17일의 시위에서 MST는 농지개혁 외에도 최저임금 인상, 아이티로부터 브라질 군인의 철군등 다양한 사안들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MST 집행위원 질마르 마우로는 “우리는 부시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를 원한다”며 “이라크에서 손을 때고 베네주엘라와 쿠바 그리고 브라질을 존중하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워싱턴 포스트는 “브라질 농민들이 사회변혁의 메시지를 미국과 브라질에 분명히 전달한 것”이라 보도하기도 했다.

브라질 민중들 룰라로부터 갈라서나

  MST설립멤버중의 하나인 해방신학자 레오나르도 보프 [출처: AP통신]
한편 농민들과 룰라 정부의 정면 충돌에 대해 브라질 안팎에서는 룰라와 브라질 민중들이 완전히 갈라서는 계기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조심스러운 관측들이 나오고 있다. 시장의 총아로 떠오른, 너무 많이 변해버린 룰라에 대한 일방적 애정을 거둘 때가 왔다는 것이다.사실 이러한 움직임은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열린 지난 세계사회포럼에서 가시화 되기 시작했다.

포르투 알레그레와 다보스를 왔다 갔다 하며 양다리를 걸친 룰라의 연설이 진행되는 동안 연설장 밖에서는 브라질의 노조, 농민들을 중심으로 룰라 반대 집회가 벌어졌고 제임스 페트라스 빙햄턴대 교수가 그 집회에 참가해 룰라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맹공을 가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볼“다시 선거 기간이 돌아오면 아마 우리는 긴 토론을 해야 할 것”이라고 호마리오 호세토 ‘비아 깜페시나’(농민의 길)이 로이터를 통해 전한 짧은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룰라 정부도 이러한 경향을 제어하기 위해 얼마전 브라질리아에서 라틴 아메리카,아랍 정상회담을 개최해 미국을 비판하는 브라질리아 선언을 채택하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그의 변화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지적들이 많다. 브라질리안 대학 정치학과의 데이비드 플레쳐 교수는 워싱턴 포스트를 통해 “(MST대표와 룰라의)미팅의 중요성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며 룰라가 토지 재분배를 요구하는 MST 성향의 주장들을 이미 좋아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아메리카를 위한 볼리바르 대안', 룰라와 대조되는 차베스의 행보

  우고 차베스 베네주엘라 대통령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외교 정책, 특히 미국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룰라는 지난 달 말 측근 인사를 베네주엘라로 보내 ‘미국을 불필요하게 자극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차베스에 전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에 반해 미국 주도의 FTAA에 맞서 베네주엘라의 우고 차베스와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는 ‘아메리카를 위한 볼리바르 대안’(Bolivarian Alternative for the Americas, ALBA'이라는 새로운 경제블록을 라틴 아메리카 모든 국가들에게 제안해놓고 있다. 각국 정부는 모르겠지만 이에 대한 라틴 아메리카 민중들의 반응은 그야 말로 폭발적이다.

미국의 FTAA안은 쿠바를 제외한 아메리카 34개국을 모두 포함하고 있고 베네주엘라와 쿠바의 ALBA 안은 미국을 제외한 라틴아메리카 모든 나라들을 포괄하고 있다.

미국과 잘 지내고 경제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해 월가로부터 인정 받는 룰라로부터 미국에 맞서는 차베스에게로 라틴 아메리카 민중들의 포커스가 급속도로 이동한다는 지적이다. 브라질 정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MST와 차베스 정부의 관계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둘의 관계는 아직 상징적인 의미에 그칠 뿐 정치적 영향력을 미칠 수준은 아니”라고 애써 평가를 절하하는 목소리를 브라질 언론을 통해 전했다.

그러나 17일 벌어진 MST의 시위대 중에는 브라질 국기보다 베네주엘라 국기를 흔드는 사람들이 더 많기도 했다. 그리고 MST회원 마리아 데 헤수스는 룰라의 경찰에 의해 호위 받는 미국 대사관 앞에서 베네주엘라 국기를 흔들며 “부시는 베네주엘라와 콜롬비아 그리고 이라크에서 당장 손을 떼라”고 외쳤다.
태그

브라질 , MST , 토지 , 농지개혁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윤태곤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
  • 수정

    훌륭한 기사 잘 보았습니다. 하나 말씀드리면, 정확한 명칭은 '비아 깜페시나' (Via Campesina') 입니다.

  • 윤태곤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외국어 고유명사 표기에 더욱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