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출신 대통령 룰라를 바라보는 엇갈린 시선

룰라,국제 국내 문제를 막론하고 연이은 갈짓자 행보

"역대 브라질 대통령 가운데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대통령“ 룰라, 방한

  다보스에서 연설하는 룰라 [출처: AP통신]
루이스 이냐시우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이 3박4일의 일정으로 26일 저녁 방한한다. 한 언론의 표현대로라면 “역대 브라질 대통령 가운데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대통령”이라는 룰라에 대한 평가는 브라질 내에서, 그리고 국제 사회에서 극명하게 엇갈린다.

지난 17일 1만 2천에 이르는 브라질 MST(무토지 농민운동) 회원들이 브라질 대통령궁, 의회 앞, 미국 대사관 앞에서 “룰라는 (농지개혁에 대한) 약속을 지켜라”고 외치며 룰라 집권 이후 최대 규모의 시위를 벌인 것이 보여주듯 룰라는 브라질 민중들과 점점 거리를 벌려 나가고 있다.

잘 알려진 바대로 4번의 도전 끝에 대통령 자리에 오른 초등학교 졸업 학력의 금속노동자 출신 룰라는 브라질 PT당의 얼굴이었고 ‘선거를 통한 혁명’의 실례로 지목되어 왔다. 룰라 자신은 “쿠바 혁명도, 소비에트 혁명도 노동자 출신 대통령은 만들지 못했다”고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룰라 집권으로 급물살 탄 라틴 아메리카 ‘좌파 도미노’

현재 라틴 아메리카는 ‘좌파 도미노 현상’이라 불릴 정도로 좌파 정당들이 대거 각국의 정권을 쥐고 있고 그 가운데 브라질과 룰라가 자리잡고 있다. 1999년 2월 정권을 잡은 베네주엘라의 차베스를 필두로, 2000년 3월에는 칠레의 라고스가 좌파연합을 통해 집권했다. 2003년 1월 브라질에서 룰라가 집권 한 이후에 좌파 도미노 현상은 더욱 급물살을 탔다.

2003년 2월에는 좌파정당과 원주민들의 지지를 받은 구티에레스가 에콰도르 대통령 자리에 올랐고 2003년 5월에는 키르치네르가 아르헨티나 대통령에 당선됐다. 2005년 3월에는 전통적으로 좌파의 세가 약한 우루과이에서도 역사상 최초로 바스케스가 공산당과 사회주의 정당 연합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며 대미를 장식했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파라과이 단 4개국으로 1995년 출범한 메르코수르(Mercosur,남미공동시장)는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로 구성된 안데스 공동체와 결합해 남미자유무역지대(SAFTA)를 결성했다. (칠레는 1996년 메르코수르 준회원국으로 이미 결합)

지난 해 10월 남미 12개국(상기 10개국에 기아나와 수리남 포함) 정상들은 잉카제국의 수도라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는 페루의 쿠스코와 1824년 볼리바르의 부하 수크레가 스페인 군대를 물리친 아야쿠초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남미자유무역지대 결성을 선포했다. 또한 향후 EU처럼 남미의회를 결성하고 단일 통화와 단일 시장을 지닌 남미국가 공동체(CSN)을 추진하겠다는 ‘쿠스코 선언’을 채택하기도 했다.

미국은 FTAA(미주자유무역협정)가 난항을 겪고 역내 국가들의 자발적 블록화 움직임과 중남미에 다시 불어 닥친 볼리바르 열풍에 부딪힌 나머지 전술을 바꾸고 있다. 미국은 남미 개별 국가들에 대한 각개격파를 통한 FTA를 체결하거나(칠레의 경우) 역내 경제 블록들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고 있다. (2002년 미국-중앙아메리카 자유무역협정 U.S-Central America FTA 체결)

미국에 대항하는 차베스는 말리고,부패한 에콰도르 대통령은 빼돌리고

  세계사회포럼에서 친미정책에 항의해 룰라의 허수아비를 태우는 시위대 [출처: http://theage.com.au]

그러나 브라질을 중심으로 한 남미의 좌파 정권들이 순항을 거듭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남미의 양대강국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전통적 주도권 다툼과 화해를 반복하고 있고 남미통합에 대한 각국의 속내도 제각각이라는 지적이다.

또한 미국 주도의 FTAA에 대한 좀 더 급진적인 대안은 베네주엘라 대통령 우고 차베스로부터 제출됐다. 차베스는 미국을 배제한 무역협정인 ‘미주대륙을 위한 볼리바르 대안’(Bolivarian Alternative for the Americas, 스페인어로 ALBA, 베네주엘라 정부가 주창한 통합 제안이다)을 제출했고 이 안건은 쿠바 수도 아바나에서 개최되는 FTAA 반대 미주대륙회의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특히 이 가운데 룰라와 브라질의 갈짓자 행보가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룰라는 지난 달 말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방문을 앞두고 베네주엘라로 측근 인사를 보내 ‘미국을 불필요하게 자극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또한 좌파정당의 지지로 당선됐으나 측근 비리와 급격한 경제자유화 정책, 친미노선등으로 인해 민중들과 의회에 의해 축출당한 루시오 구티에레스 에콰도르 대통령을 구하기 위해 군용기를 보내 구티에레스와 그 가족들을 브라질로 빼돌려 에콰도르 민중들의 원성을 듣기도했다.

이에 반해 지난 10일에는 브라질리아에서 남미-아랍 34개국의 정상들을 모아 제1회 아랍연합-중남미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양 대륙간 관세특혜협정 체결과 미국의 일방적 국제 정책에 대한 분명한 반대 내용을 담고 있는 브라질리아 선언문 채택을 주도해 오랜만에 브라질과 남미 민중들의 갈채를 받기도 했다.

자본으로 부터는 갈채를, 민중으로 부터는 질타를

그러나 룰라 정권이 브라질 국내에서 보여주는 행보는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국제무대에서의 행보에 비해서도 훨씬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룰라는 IMF의 경제 개혁 프로그램을 수용했고 ‘선성장-후분배’ 기조에 따라 연금제도를 ‘개혁’했고 농민들과 약속했던 토지개혁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브라질은 인도, 러시아, 중국과 함께 브릭스(BRICs)로 불리며 국제 투기 자본들의 찬사를 받고 있고 룰라 또한 1세계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고금리 정책’ ‘밀어내기식 자원 수출’을 통한 국제투기자본 비위맞추기가 존재한다는 혹평이 여기저기서 제출되고 있다.

룰라 정부는 전임 카르도스 정권과 IMF가 긴축 재정을 통해 GDP의 3.75%에 해당하는 재정흑자를 내겠다는 약속을 했던 것보다 한 술 더 떠 재정흑자 목표를 4.25%로 상향 조정해 발표하기도 했다. 또한 얼마전 MST농민들의 투쟁이 보여주듯 무토지 농민들에게 거대지주들의 노는 농지를 구매해 분배하겠다는 농지개혁 프로그램과 ‘포미제로’라는 이름의 기아 추방 프로그램도 재정흑자 목표 달성을 위해 대폭 축소했다.

요약하자면 룰라는 브라질 민중들로 부터는 질책을, 브라질과 해외 자본으로 부터는 갈채를 받고 있는 셈이다. 때 아닌 룰라 열풍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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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T , 방한 , 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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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독자

    맞습니다. 룰라, 정신차려야 합니다. 윤기자, 국제적인 이슈도 다루시는군요. 보기 좋습니다. 약간의 옥의 티가 있지만요.
    '공산당과 사휘주의'->'공산당과 사회주의', '메르코스루'->'메르코수르', '미주대륙을 위한 아메리카를 위한'->'미주대륙을 위한', '카르두소'->'카르도수' 혹은 '카르도주'. 지적만해서 죄송^^

  • 담당 기자

    특히 국제 뉴스에서 고유명사를 포함해 여러 오타가 많습니다. 배전의 노력을 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