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건설플랜트 노동자 투쟁이 중요한 이유

자본의 기획에 정면으로 충돌하는 '원청의 사용자 책임 인정' 요구

경찰청은 23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 집결해 청와대로 향해 3보 1배 행진을 하던 울산건설플랜트 노조원 580명을 연행했다. 울산플랜트 노동자들이 서울로 올라온 이유는 간단하다. 사측과 단체협상을 요구하기 위해서다. 울산건설플랜트 노동자의 요구 내용을 보면 기가 막히다. 화장실, 식당, 샤워실, 휴게실 설치, 산업안정장구 지급과 안전 시설 설치, 불법다단계 하도급 근절, 노동3권 보장, 단체협약 체결 요구가 전부다.

전문건설업체로 구성된 울산공단건설경제인협의회는 "노조가 불법행위를 중단하지 않는 한 어떠한 외부의 압력이 있더라도 플랜트노조와의 대화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고, 발주사(원청) 모임인 울산시 공장장협의회도 "발주사를 압박해 협상에 나서도록 하겠다는 노조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굽히지 않고 있다. 특히 이번 교섭에 나선 12개의 업체 중 8곳이 SK(주)가 발주처인데, SK(주)가 노조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교섭에 한 발짝 진척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노무현정권은 이미 울산지역건설플랜트노조의 시위자와 주동자 전원 사법처리, 하이닉스 매그나칩노조의 불법행위 엄단, 덤프트럭노조 불법행위자 처벌 등을 결정한 바 있다. 걸핏하면 태스크포스팀 짜기 좋아하는 노무현정권은 이번에도 법무부, 행자부, 산자부, 노동부, 건교부, 경찰청 등 관계부처 실무 책임자로 '노사관계대책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하고, 주요 업종 및 사업장의 임단협 상황을 점검하고 이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울산 지역에서도 플랜트 노동자들의 저항이 계속되자 박맹우 울산시장과 김태현 울산지검장, 송인동 울산경찰청장은 7일 긴급 공동기자회견을 자청, "과격·폭력시위를 주도한 주동자를 가려내 전원 사법처리 하겠다"며 강경 방침을 천명한 바 있다. 이윽고 경찰은 지난 8일 서울경찰청으로부터 고압 살수차와 물대포 차량을 지원받았고, 이 차량들은 실제 17일 집회 때 강제해산용으로 동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내하청노동자의 직접고용·정규직화 투쟁이나 건설노동자의 원청의 사용자책임 인정 요구와 다단계하도급 철폐 및 부당노동행위 근절 투쟁은 원청을 상대로 한다는 데 공통점이 있다. 하청노동과 다단계 하도급 구조의 유지는 노동자 내부를 분할하고 위계화 함으로써 노동유연화를 높이려는 자본의 기획에 부합된다. 자본은 일상 현장에서 이러한 인위적인 기획 사실을 은폐하는 가운데 치밀하게 노동을 관리한다.

따라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원청의 사용자 책임 인정' 요구는 자본의 기획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자본이 단 한 차례의 교섭 자리조차 내줄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의 화장실 하나 지어달라는 요구조차 못 받아들이는 것이다. 여기에 '불법엄단, 주동자 처벌'의 고장난 레코드를 동원하고, 시위 참가자를 전원 연행하는 정권의 태도가 어울려 어이없는 7,80년대식 진풍경이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사내하청노동자의 불법파견 투쟁과 건설플랜트 노동자의 투쟁이 중요한 이유는 단지 비정규직 투쟁이 중요하다는 당위에 있지 않다. 지금 이들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은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가 집약되어 있는 현장에서 그 착취와 억압의 이중삼중의 비밀을 낱낱이 폭로한다는 데 있다. 더군다나 하이닉스-매그너칩, 덤프 노동자, 울산플랜트노동자의 투쟁은 상반기 민주노조운동이 무엇에 집중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알려주는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민주노조운동의 중심이 국회 환노위와 노사정대표자회의로 쏠리고, 민주노조운동의 지도부가 비정규법안 처리 연기에 메달려 허둥지둥 하는 사이에도, 이들의 투쟁은 현장에서의 저항을 통하지 않고서 생존권과 노동권을 지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들 노동자의 저항 앞에서 4월 임시국회 비정규법안 강행 처리 유보를 놓고 성과냐 아니냐를 거론하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궁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6월 국회를 앞두고 있고, 노사정대표자회의가 재개될 것이라는 풍문이 나오고 있다. 이번에 노사정대표자회의가 다시 열리면 비정규법안 문제에서 나아가 교섭기구 구성 문제도 거론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 논의가 진행될 경우 노동조합운동의 모든 관심은 '사회적 교섭기구' 쪽으로 급격하게 무게가 쏠릴 것이다. 무릇 이 그림이 진정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 지 진정으로 짚어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울산플랜트 노동자의 투쟁에, 비정규노동자의 저항을 확산시켜내는 데에 모든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 지금 민주노조운동에 있어 전선이 울산과 청주에 있다는 이야기는 눈꼽만큼도 과격한 선동 구호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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