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일한 대가는 휘어지고 뒤틀린 손가락에 월급 67만 원

[인터뷰]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엔텍지회 김종욱 조직부장

충북 영동에 위치한 (주)엔텍은 주방기구인 후드를 생산하는 업체다. 2천억 원이 넘는 매출로 유명한 주방기구 전문 생산업체인 '에넥스'의 박유재 회장이 64%의 지분을 갖고 있고 그의 셋째 아들이 대표이사로 있다.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엔텍지회는 지독한 저임금과 열악한 작업환경에 시달리다 4월 5일 노조를 설립한 신규노조다. 서울에서의 4일간 상경투쟁을 마무리하고 파업 31일차, 직장폐쇄 26일차를 맞는 6월 10일 김종욱 조직부장을 만났다.

'노동조합'을 모르고 일만 했던 15년

  김종욱 엔텍지회 조직부장
"노조 만든 이유는 별거 아니고... 임금이 너무 적기 때문이죠. 한 달 월급이 여자는 63만 원이고 남자는 70만 원인데, 잔업하고 뼈빠지게 일해봤자 일 년에 천오백만 원도 안되거든요. 그런데 회사 매출은 작년에 600억 원이고 박유재 회장이 챙긴 순 이익만 38억 원이랍니다"

실제로, 직원 86명인 (주)엔텍의 올해 예상 매출액은 800억 원이고 내년에는 천억 원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기업에서 한 달 64만 원인 최저임금에 겨우 '턱걸이'를 하고 있는 셈. 노동시간 변형과 작업장 환경, 현장통제 또한 심각하다.

"임금도 임금이지만 처우도 개선되어야 합니다. 노동자들 거의가 4,50대인데 젊은 관리자들이 '야자'는 기본에다, 출근이 조금만 늦어도 욕하고 불량 나와도 욕하고... 거기다 '20분씩 일찍 나와서 일해라', '월차는 이날 이날에 써라', '잔업 못하겠으면 나가라'고 하기 일쑤입니다. 작업시간엔 화장실도 못 가게 하고, 손가락은 휘어지는데 위험수당은 없고요. 우리가 후드를 만드는데 정작 작업장에는 후드가 안 돌아가요."

'높으신 대표이사'와 상견례도 했지만

노동조합을 설립한 후에 보인 사측의 태도는 그간 자행해 왔던 탄압만큼이나 실망스러웠다. 지난 4월 8일 간담회에서 사측은 연월차 사용 강요, 일방적인 대치근무, 조기출근 문제, 강제 잔업, 작업시간 중 화장실 통제, 관리직의 반말 등의 사항을 시정하겠다고 약속했고 4월 12일 상견례 자리에서는 노동조합 사무실과 집기를 지원하기로 합의하여 단체협약 체결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듯 했다. 처음으로 사측과의 협상을 경험한 지회 간부들은 "이제 회사 그만둬도 여한이 없다", "높으신 대표이사와 교섭 가졌다는 자체에 노동자의 자존심을 느낀다"고 말했다고 한다.

  (주)엔텍 앞에 설치한 노조 천막 [출처: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엔텍지회]

"4월 18일에 2차교섭을 하기로 했는데 교섭 시작하기 몇 시간 전에 팩스가 왔어요. 그 내용이 교섭은 연기하고, 교섭권은 충북 경총에 위임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사측은 태도를 바꾸어, 노조 탄압 작전에 돌입했다. 4월 18일부터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관계자들의 정문출입을 봉쇄하고, 몸져 누운 지회장에 대해서는 무단결근 징계를 예고했으며 노조와 상의 없이 '연장근로 동의서'를 배포하기도 하고 대전충북지부와 엔텍지회 교섭위원들을 고소했다. 그리고 영동과 황간 지역에서 '힘 좀 쓰는' 용역깡패를 소집하기 시작했다.

70여 명이었던 조합원은 끈질긴 탈퇴 권유로 현재 34명이 남았다. 이 작업의 일등공신(?)은 사측에서 조직한 '사원협의회'다. "노동조합은 우리의 조용한 정서와 맞지 않는다"는 사원협의회는 조를 편성하여 남아있는 조합원들을 설득하기도 하고 협박하기도 하면서 탈퇴를 조직했다. 노조 간부들의 술자리까지 찾아와 술상을 뒤엎고 멱살잡이하는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현재의 조합원 34명은 "사원협의회로 가느니 차라리 사표를 쓰겠다"는 결의로 뭉쳐 있는 사람들.

압도적인 찬성으로 쟁의행위를 가결하고 파업에 돌입한지 일주일 여만인 5월 16일에 사측은 조합원을 상대로 한 부분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영동 시내에서 거리행진을 하고 있는 엔텍지회 [출처: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엔텍지회]

노조 파괴에 들이는 돈 10억 원

사측에서 이같은 공세를 취하는 배경에는 충북 경총이 있다. 경총으로 교섭권을 위임한 이후부터 노골적인 부당노동행위를 일삼고 있다는 것. 심지어 몇 차례의 조정회의에도 불참하고 노동부 중재의 교섭 테이블에서도 일방적으로 퇴장하는 등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실무교섭에 참가한 충북 경총은 예상대로 '파업으로 인한 손배가압류'만 운운할 뿐이다.

(주)엔텍이 충북 경총에 지급한 계약금은 무려 10억 원. 엔텍 노동자 전부에게 월 10만 원씩 10년 간 지급할 수 있는 액수다. 금속노조 충북지부의 경우 '충북 경총'이라면 고개를 내젓는다. 하이닉스-매그나칩 교섭에서 충북 경총이 보여준 열성적인 노조 파괴 공작을 이미 경험한 탓이다.

박유재 회장, "노조는 절대 안 된다"

영동 지역에서의 거리 선전전을 해온 엔텍 지회는 이에 더해 6월 1일에 공장 앞에 천막을 치고 매일 결의대회를 갖고 있다. 7일에는 김종욱 조직부장을 비롯한 3명의 조합원이 서울로 상경했다.

"박유재 회장 집 앞에 와보고 깜짝 놀랐죠. 외국 저택같이 으리으리한데 외제차는 3대가 있고 기사에 집사까지... 집앞 1인 시위 하면서 보니까 생수도 택배로 배달시켜서 먹더군요. 그런 집 담벼락에 대자보 붙였다가 경찰서까지 갔다왔죠."

  박유재 회장 집앞에서의 피켓시위 [출처: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엔텍지회]
마침 김종욱 조직부장을 만난 때는 궂은 날씨에 1인 시위를 하던 도중 우비와 피켓까지 빼앗기고 돌아나오던 길이었다. 1인 시위 4일만에 회장 집안까지 들어가 이야기를 나눴지만 박유재 회장은 "노조는 인정 못하겠으니 사원들끼리 대화해 봐라"고 딱 잘라 말했다는 것. 경총의 교육을 받으며 활동하고 있는 '사원협의회'를 염두에 둔 듯한 발언이었다. 자리를 박차고 나오며 실랑이가 벌어졌는데 '회장댁 직원'인 듯한 3명의 남자에게 둘러싸여 모자, 우비, 피켓 등을 다 빼앗겼다고 한다.

"노동부에서 허가 내준 노동조합을 왜 회사에서는 인정을 안한답니까? 우리가 벌어다 준 돈을 작업장 개선에 조금만 투자한다면 우리가 이러지도 않을텐데..."

임금인상안은 아직 제출도 못 해 봤다. 노동조합 인정, 나이많은 노동자에게 반말 금지, 작업장 환경 개선 같은 소박한 요구들이 갓 노조를 설립한 노동자들을 거리로 나서게 했다. 엔텍 지회는 13일부터 다시 회장집 앞 시위를 재개할 예정이며 본사 상경투쟁도 계획하고 있다.

서울에서 4일간 투쟁한 소감을 묻자 김종욱 조직부장은 "서울에 올라와서 13명이서 4년 동안 싸우고 있다는 노조(하이텍노조)를 봤는데,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우린 두 달밖에 안됐지만 잘 싸워서 잘 풀릴거라고 자신합니다. 난생 처음 회장 얼굴도 봤고 한 마디지만 입장도 들었으니 이것도 성과가 아니겠습니까"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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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목록
  • sool

    술 먹고 읽으니까 그런가. 참 감동적이다. 참 잘 썼구나...
    투쟁도 잘 해야 할텐데...홧팅

  • 금속

    엔텍지회 동지들 힘내세요~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 먼산

    글쎄....입사 1년 안팎의 지회간부님들 진정 애사심으로 노조를 결성햇는지...묻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