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AP통신] |
현지 시간으로 지난 17일, 브라질의 한 TV방송국은 룰라 대통령이 “PT당의 행위에 대해 더 이상 책임감을 느끼지 않고 또한 향후 PT당의 의사결정 과정에도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히는 화면을 방송했다. 이 화면에서 룰라 대통령은 “PT당은 정권 출범 이후 당 노선의 방향을 과도하게 잃었고 이제는 허약한 정당이 되버렸다”고 최근 위기의 책임을 당에 떠넘기는 모양새를 보였다.
프레스에 손가락이 잘린 국졸 금속노동자 출신의 대통령으로 취임 당시 전세계적 화제를 모았고 한 때 지지율이 90%를 넘기기도 했던 룰라 대통령은 전임 카르도수 대통령 보다 더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펼쳐나가 날이 갈수록 지지자들로 부터는 비난을, 우파로 부터는 격찬을 받아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룰라의 변화에 대해 일각에서는 강력하게 날을 세우기도 했지만 브라질 내에서는 ‘그래도 룰라는 룰라’라는 지지세도 만만치 않았다.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열린 지난 1월 세계사회포럼에서 룰라 반대 집회가 벌어졌지만 룰라를 환호하는 인파 역시 만만치 않았던 점이 이를 증명한다.
최대의 뇌물 파동으로 최소한의 도덕성까지 파탄 난 룰라 정부와 PT당
▲ 뇌물파동으로 사퇴한 디르세우 전 브라질 내각선임장관은 2002년 대선 당시에는 PT당 대표를 지내기도 했다 [출처: 에콰도르 일간지 El UNIVERSO] |
이미 지난 해 2월, 2002년 대선 당시까지 PT당 대표를 지냈고 룰라 정부의 선임 장관인 조세 디르세우의 하원 담당 자문역인 왈도미루 디니즈가 브라질 최대의 카지노 업주로부터 돈봉투를 받은 사실이 드러났지만 당시 PT당은 이 사건을 ‘개인 비리’로 처리하고 넘겼지만 이번 스캔들의 결과는 달랐다.
메가톤급 폭로로 인해 PT당의 창당 주역으로 각각 룰라 대통령의 오른팔과 왼팔로 불리던 조세 디르세우 선임 장관과 조세 제노이노 PT당 대표가 사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와 함께 룰라와 PT당은 단지 ‘진보적이지 않은 대통령과 여당’이 아니라 ‘부패하고 파렴치한 대통령과 여당’으로 전락해 버렸다는 것이다.
또한 최근에는 PT당의 룰라 최측근 인사가 브라질 내 몇몇 신문사의 편집장들에게 거액의 뇌물을 제공한 사실까지 알려져 파문은 더 확산되고 있는 형편이다.
복잡한 브라질 국내 정치판도, 오히려 협박하는 PT당 주류세력
하지만 이 파문에 대해 브라질의 여러 정당이나 정파들의 비난의 목소리는 예상외로 높지 않다. 이는 그들이 이번 파문의 또 다른 당사자일 뿐 아니라 각각의 정치적 계산이 다르기 때문이다. PT당 직전의 집권당이며 PT의 최대 경쟁자인 사민당은 이 파문이 급진적 변화로 이어지는 것을 경계하며 룰라 정권의 지지율이 낮아지는 정도에서 막기 위해 비난의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
그리고 PT당 주류 세력들은 ‘룰라가 낙마하면 다음 대선에는 당내 최대 우파인 팔로치 재무장관이 대안으로 나설 수밖에 없고 이는 PT당이 더욱 우경화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당내 좌파와 브라질 민중들에게 ‘협박 아닌 협박’을 가하고 있다. 따라서 브라질의 ‘정통 우파’로 불리는 자유전선당만이 룰라와 PT당의 부패를 강력하게 공격하고 있는 어이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그러나 제도권 정당의 공격 수위는 예상보다 낮지만 민중들의 분노가 엄청나고 심지어 브라질 군부가 8월경에 쿠테타에 나설지도 모른다는 풍문이 떠도는 등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고 제도권 정당들도 곧 맹공에 나설 태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 룰라가 PT당 탈당을 강력하게 시사한 사건의 배경이라는 분석이다.
도마뱀꼬리 자르기식으로 대응하는 룰라, 과연 어디까지 추락할지 관심 집중
▲ 지난 1월 세계사회포럼에서 성난 군중들이 룰라 허수아비를 태우기도 했다 |
룰라 정부는 이번 사건을 PT당 내부의 부패한 엘리트들의 잘못으로 한정 지으며 ‘도마뱀 꼬리 자르기식 행태’를 보인 바 있다. 조세 제노이누 전 PT당 대표와 소아레스 전 재정위원장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 하려 했지만 조세 디르세우 전 선임장관이 이 사건에 깊숙이 연루되었다는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나마 룰라가 직접 연루된 증거가 아직 안 나온 것이 다행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오는 형편이다.
룰라 대통령은 앞서 언급된 ‘탈당 시사 인터뷰’에서 "PT당 지도부가 아무런 생각도 없이 부패한 행동을 저지른 것 같다“고 비난하며 자신은 이 사태와 무관하다는 입장을 강력하게 피력했다.
전세계 진보세력의 찬사와 브라질 민중들의 뜨거운 기대를 안고 출발한 PT당의 룰라 정권이 이제는 1년 반 가량 남은 임기를 무사히 채울지도 의심스러운 지경에 이르렀다. 게다가 룰라 정권은 급진적인 개혁 탓에 기득권층의 위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신자유주의 정책과 부패로 인해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는 것이다. 이제 룰라에게 쏟아지는 관심은 기대로 인한 그것이 아니라 과연 그가 어디까지 추락할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