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의 종소리가 밤길을 깨다

밤길을 되찾기 위한 '2회 달빛시위' 열려

"언제나 꿈꿔 온 순간이 여기 지금 내게 시작되고 있어
그렇게 밤을 사랑했던 내 마음을 넌 받아 주었어
오∼ 내 기분만큼 밝은 달빛과 시원한 바람들이 내게 다가와
나는 이렇게 행복을 느껴
밤길은 우릴 향해 열려있어 그리고 내 곁에는 네가 있어
환한 미소와 함께 서 있는, 그래 너는 나의 친구야"

개사곡 '달빛 아래서'(원곡; 듀스 '여름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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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아래 여성들, 밤길을 되찾다

불량소녀들이 밤길을 점령했다. "어디 여자가 조심해야지 밤에 그런 옷을 입고 돌아다녀!"라는 많은 사람들의 우려와 걱정을 뒤로하고, 밤을 되찾기 위한 여성들의 웃음과 목소리가 거리를 가득 채웠다.

29일 어스름하게 어두워 질 때쯤 신촌 창천공원에서는 밤길을 되찾기 위해 150여 명의 여성들이 모였다. '달빛 아래 여성들, 밤길을 되찾다!'라는 제목으로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달빛시위'는 그동안 폭력에 대한 잘못된 책임전가 속에서 나타났던 여성들의 통제에 반기를 들고 여성들이 밤 거리를 자유롭게 다닐 권리, 여성들이 자신의 몸을 자신의 의지에 따라 표현할 권리를 이야기 하는 자리였다. 2회 달빛시위는 서울을 비롯해 강릉, 광주, 대구, 마산, 부산, 진주, 여수, 춘천, 평택, 포항 등 20여 개 지역에서 80여 개의 단체들이 함께 했다.

  성폭력에 대처하기 위한 호신술 강의도 있었다

달빛시위는 여성들에게 일상적으로 가해지고 있는 성폭력의 경험을 나누는 시간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녀들의 경험은 숨겨야 하는 경험이 아니라 당당히 말하고 함께 느낄 수 있는 것이 되었다. '무용담'을 이야기 하기 위해 나선 한 여성은 "버스에서 남은 자리가 많음에도 한 아저씨가 제 옆에 앉았어요. 저는 잠이 들었구요. 근데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깨보니 그 아저씨의 손이 제 치마 속에 들어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가지고 있던 손톱깎이를 꺼내서 무자비하게 찔러줬죠. 여러분∼ 버스탈 때 꼭 손톱깎이를 가지고 타세요(웃음)"고 말해 참가자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렇게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성폭력은 너무나 일상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성폭력의 원인은 가부장제 속에서 그동안 여성들에게 전가되어 여성들의 몸을 통제하는 수단이 되어왔다.

성폭력은 여성을 통제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달빛거리 이 안에서 덩실덩실 춤춰보세"
여성들은 외쳤다. 자신의 몸을 스스로 통제할 권리를 요구하는 여성들의 목소리였다. 참가자들은 성명서를 통해 "어느 것도 부당한 성적 폭력을 입어야 할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사회는 성폭력의 책임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찾으며, 마치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존중받기 위해서는 여성의 기본적인 운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그 결과 정작 가해자의 폭력성은 은폐되고, 여성에 대한 억압적 통제와 기본권에 대한 폭력이 당연하게 행사되어 왔다"고 설명하고 △성폭력을 발생가능하게 하고 조장하는 가해자 중심적 문화 철폐 △부당한 폭력의 예방과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하는 사회적 인식 철폐 △성폭력의 위험을 들어 여성의 밤길과 사회적 활동권을 제약하는 사회문화적 통제 철폐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에서 피해자 존중 등을 요구했다.

그녀들의 달빛행진이 시작되었다. 신촌 창천공원을 시작으로 홍대 걷고 싶은 거리까지 이어진 여성들의 행진에 지나가던 많은 사람들은 관심을 보였다. 참가자들은 행진을 하면서 남성들에게 '남성들의 몸가짐 지침'을 나누어 주기도 했다. '남성들의 몸가짐 지침'을 보자



1. 밤길에서 여성이 혼자 앞에 가고 있을 때, 여성이 위협을 느끼고 걸음을 빨리 하면 걸음을 늦추고, 여성이 걸음을 늦추면 앞질러 가는 등의 센스를 발휘한다.
2. 밤길에, 특히 술을 마신 후에는 마주치는 여성에게 쓸데없이 말을 걸거나 다가가지 않는다.
3. 여성의 몸을 훑어보거나 응시하지 않는다.
4. 자기 몸이 남에게 함부로 닿지 않도록 각별히 간수한다.(예를 들어 지하철에서는 오해받지 않도록 먼저 손간수를 잘하고, 옆사람과 몸이 닿는 것을 최소화시킬 수 있도록 각별히 신경쓴다)
5. 공공장소에서의 성기 노출이나 노상 방뇨가 수치스러운 일임을 자각한다.
6. 남녀공용화장실에서는 안에 사람이 있는지 먼저 확인하고, 반드시 문을 닫고 용변을 본다.
7. 엘리베이터 앞에서 여성과 단 둘이 기다리게 될 경우 여성에게 혼자 탈 의사가 있는지 반드시 확인한다.
8. 밤길이나 공공장소 등에서 고함을 마구 지르거나 욕을 하는 등, 위협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매우 몰지각하고 폭력적인 일임을 자각한다. (때리는 것만이 폭력이 아님을 깨닫는다)


행진에서 이 종이를 받아든 많은 남성들은 종이를 구겨 버리거나 또다시 행진에 참가하는 여성들을 훑어보기 일수였다. 그러나 그녀들의 공포를 깨뜨리고, 공포를 깨뜨리고, 분노를 터트리고, 밤길을 되찾기 위한 행진은 계속되었다. 행진에 함께 한 연어 장애여성공감 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 상담원은 "밤길이 공포와 폭력의 공간이 된 것은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가부장제 때문이다"고 밝히고 "가부장제와 남성중심적인 사회의 변화가 없으면 성폭력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고 전했다.


홍대 앞에 도착한 참가자들은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하며 그동안 느꼈던 것을 커다란 천에 함께 쓰고 찢어버리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그리고 그녀들은 '달빛 여성들의 권리헌장'을 함께 낭독하며 일정을 마무리 지었다. 밤길을 자유롭게 걸어다닐 자유보다 집에 일찍 들어가야만 할 것 같은 통제를 먼저 교육받아야 하는 여성들, 친구와 자유롭게 여행할 권리보다 조신하게 집에 앉아있어야 하는 통제를 먼저 교육받아야 하는 여성들... 그녀들의 작지만 힘찬 몸부림은 밤길을 깨우고 있었다.

달빛 여성들의 권리헌장

1. 우리는 밤길을 안전하게 거닐 권리가 있다.
1. 우리는 혼자서도 안전하게 여행 다닐 권리가 있다.
1. 우리는 성추행으로 인한 불쾌감이나 경계심 없이 지하철을 이용할 권리가 있다.
1. 우리는 안심하고 택시를 이용할 권리가 있다.
1. 우리는 모든 성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가 있다.

1. 우리는 복장에 자유가 있다.
1. 우리는 늦게까지 일할 권리가 있다.
1. 우리는 늦게까지 놀 권리가 있다.
1. 우리는 늦게 술을 마실 권리도, 취할 권리도 있다.
1. 우리는 성폭력 예방의 책임을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물을 권리가 있다.

1. 우리는 성폭력의 위협을 받거나 혹은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 신고할 수 있으며 즉각적인 경찰의 출두와 진지하고 성실한 대응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1. 우리는 버스 안에서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 가해자 신고와 처벌을 위해 버스의 노선을 인근 경찰서로 변경할 것을 승객과 기사에게 요구하고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1. 우리는 성폭력 위협이나 발생 시 우리의 부당한 폭력적 느낌과 경험을 주변 이들에게 존중받을 권리를 갖는다.
1. 우리는 성폭력 발생 시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인 우리의 보호를 위해 주변의 적극적인 지원을 요구하고 받을 권리를 갖는다.
1. 우리는 성폭력의 위협이나 발생 시, 주변의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하고 지원받을 권리가 있다.

1. 우리는 가해자의 나이와 무관하게 가해자에게 분노를 표출할 권리를 갖는다.
1. 우리는 성폭력이 아직 발생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위협을 느꼈다면 이에 대한 적극적이고 성실한 대처와 지원을 경찰 및 주변인에게 요구할 권리가 있다.
1. 우리는 가해자로부터의 폭력의 위협 시 자기방어로서 가해자를 공격할 권리가 있다.
1. 우리는 적극적으로 자기를 방어할 권리가 있다.

1. 우리는 부당한 폭력의 피해자로서 우리의 경험과 느낌을 존중받을 권리를 갖는다.
1. 우리는 피해 단시의 시간, 복장, 음주여부 등과 상관없이 피해자로서 존중받고 배려받을 권리가 있다.
1. 우리는 피해자로서 수사, 공판 담당자에게 존중받고 배려 받을 권리를 갖는다.
1. 우리는 침해된 권리회복을 위해 가해자를 처벌하도록 요구할 권리를 갖는다.
1. 우리는 부당하게 침해된 권리의 회복을 위하여 존중받고 지원과 배려를 받을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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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 달빛시위 , 가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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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허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극히 주관적일 수 밖에없는 한낱감상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결정권이라는 것은 '자본'에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여성주의라는 것은 관념성이 다분하다. 과학적일 수가 없는 것이다. 주관적인 것은 인간의 이기심을 포장하는 그릇에 불과하다.. 자체가 브루주아적인 것이다.

  • 돌멩이

    모든 인간은 인종, 성, 계급에 따른 차별이나, 이로 인한 폭력에 무방비상태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행동과 행동 강령은 대부분 동의합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 문제는 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어째서 모든 남성이 '잠재적인 성폭력 가해자' 취급을 받아야 하며, 그 취급을 받지 않기 위해서 남모르는 여성에게 그러한 '질문'을 하고 '허가'까지 받아야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