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용허가제 시행 1년을 맞은 2005년 8월 17일. 여의도에 모인 이주노동자들을 비롯 고용허가제 폐지와 단속추방 중단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높았지만, 이주노동자에 대한 한국정부의 탄압은 계속됐다.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이 주최한 집회에 가던 라디카(34)는 친구인 람부마리(34)가 공장에서 끌려갔다는 소식을 듣고는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여성 이주노동자들

한국에 온 지 10년이 된 라디카는 같은 고향(네팔 동부의 도시 ‘더란’)출신인 람부마리를 8년전에 만났다. 처음엔 몰랐지만 람부마리의 남편은 라디카의 소꿉친구이기도 했고, 둘은 한국에서의 생활을 서로 의지할 수 있는 단짝이 됐다.
재작년 말 단속추방에 대한 두려움에 한국 체류를 포기하고 남편이 네팔로 돌아간 후, 람부마리는 라디카의 집으로 들어와 같이 살게됐다. 고향 얘기를 나누다 보면 한국에서의 고생스러운 생활이 잠시나마 잊혀졌다. ‘여자끼리의 아픈 것 어려운 것을 나눌 수 있는 게 얼마나 행운인 지 몰라’
라디카와 람부마리는 같은 처지에 있었지만 생각은 조금 달랐다. 대다수의 이주노동자들이 그렇듯 감시와 단속의 두려움에 람부마리는 한국에 와서 동대문구를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라디카는 이주노동자 스스로가 원하는 곳에 취업을 할 수 없는 ‘고용허가제’에 반대하며 389일이라는 긴 시간을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농성을 했고 한달간 목숨을 건 단식을 벌이기도 했다.

“람부마리, 차라리 싸우자. 언제까지 이렇게 숨죽이고 겁나게 있어야 하니.”
“지금 이 숫자로는 아무리 싸워도 안돼.”
“그렇게 생각하면 안돼. 숫자가 무슨 상관이야. 1명이 남아도 우리는 승리할 수 있어.”
람부마리는 라디카의 근성과 용기를 좋아하고 부러워했지만 한편으로는 불만이었다. 단식에 들어간 후 골반에 염증이 생긴 걸 알고도 미련하게 30일을 채우고는 6개월 가까이 병원에 다녀야 했던 라디카가 왠지 미련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단식하면 약도 먹을 수 없다는데’
람부마리도 라디카처럼 “Stop! crack down!”(단속추방 중단하라) “Achieve labor rights!”(노동권을 쟁취하자)를 외치고 싶을 때가 있었지만, 그럴 때 마다 가족들 얼굴이 먼저 떠올라 용기를 낼 수가 없었다. “너무 무섭다 라디카, 너 거기에 갔다가 잡혀가면 어떻게 하니”

라디카는 람부마리의 딱한 처지가 원망스러워 가끔씩 퉁퉁거리는 자신이 항상 미안하다.
람부마리는 가족들에게 매여있었다. 물론 라디카도 마찬가지였지만 말하자면 람부마리의 가족들은 다 그녀만을 바라보고 있다. 그녀가 끌려간 사실을 모르는 지금도 아마 그럴 것이다. “아들은 점점 커가는데 남편은 아프고 시어머니도 모셔야하고. 잡혀가면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몰라” 그녀가 늘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다.
람부마리는 한국에 와서 몸이 많이 아팠다. 맹장수술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람부마리는 또 위장병을 얻었고 벌써 1년 넘게 심한 통증을 느껴오고 있었다. “람부마리, 넌 술담배도 한번 안하는데 아프긴 왜 아프니.”
말다툼
오늘 새벽 3시까지 라디카와 람부마리는 얘기를 나눴고 끝무렵엔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다. 라디카는 람부마리가 아픈 몸을 이끌고 출근을 하는 게 맘에 들지 않았고, 일주일 전부터 극도로 단속이 심해진터라 걱정이 됐던 것이다.
“람부마리, 단속이 요즘 너무 심해. 공장에 가지마라. 그렇게 잡혀가는 것보다 견디는 게 좋아. 돈은 어떻게든 구해보자”
“라디카 딱 3주만.. 그 담엔 입원할께. 오늘도 우리동네에 출입국 직원들이 오면 사장한테 얘기해서 내일부턴 가지 않을께”
일주일 전부터 극도로 심해진 출입국관리소의 단속은 조그만 집과 공장까지 덮쳐오고 있었다. 열명중 네명은 달아날 수 있었던 예전과는 달랐다. 고용허가제 1년을 앞둔 때문인 지, 출입국관리소는 요즘 공장을 통째로 막고 열이면 열 불법체류자들을 잡아들였다.

람부마리는 이미 2주전부터 출근을 하던 터였다. 라디카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좋아, 딱 일주일 만이야. 그 다음엔 절대 안돼’ 람부마리는 출입국 직원들을 피해 두달째 치료를 받지 못했던 터라, 의사에게서 당장 입원하라는 얘기를 들었다.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하루라도 더 공장에 나가야 했다. 라디카는 자신도 돈이 없음에 화가나 애꿎은 람부마리를 탓한 게 미안하다. ‘괜찮을 거야. 일주일 남았는데 뭘’
비행기 표
하지만 모든게 라디카의 바램대로 되지는 않았다.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여의도로 향하던 라디카는 다급한 람부마리의 전화를 받았다. “(출입국 직원들이)공장을 다 막았다. 나 어떻하냐”. 입원 일주일을 남기고 결국 잡히고 만 것이다. 라디카는 “내가 왜 좀 더 말리지 않았나” 자책했다. “마음이 너무 아파요. 이렇게 동물처럼 끌려가는데. 다들 생활고에 쫓기다 끌려간다지만 고작 일주일남았었는데..”
람부마리마저 허무하게 끌려가자 라디카는 무서워진다. 또 혼자 살아야 한다니 안정이 되지 않고 한국생활이 더욱 힘들게 느껴진다. 8년 가까이 혼자 산 게 신기할만큼 람부마리가 없는 방은 생각조차 하기 싫다.
람부마리의 위장병은 어떻게 하지? 라디카는 급하게 해야 할 일이 떠올랐다. ‘람부마리의 한국생활은 끝난 게 아냐’ 비행기 값을 구하지 못하면 람부마리는 기약없이 보호소에 갇혀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라디카는 보호소 내에 설치되어 있는 CCTV를 람부마리가 견뎌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보호소 직원들은 전부 한국 남성들이라는데’ 샤워도 할 수 없고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왜 남성들에게 감시받아야 할까. ‘우리는 죄인일까’

8년, 10년을 일했지만 람부마리와 라디카는 돈이 없다. 정말 하나도 없다. 누구는 그래도 IMF때 들어와서 천만원은 모았다는데, 2003년말부터 계속된 단속추방에 1년·2년 일을 못하는 건 예사였다. 아르바이트를 했다간 돈을 떼이기 쉽고 공장들도 단속이 심할 때는 이주노동자들을 피했다.
라디카는 다시 한번 자신이 람부마리와 너무 닮아있다고 생각한다. 라디카는 달아났지만 역시 갈 곳이 없었다. 동대문에서 살아남은 동료들이 ‘출입국 직원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오지 말라’고 그녀에게 자꾸 메시지를 보내온다.
“어디로 갈 겁니까?”
“어디로 가야 될 지 모르겠네요. 물어봐야죠”라며 웃고마는 라디카의 눈에 눈물이 글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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