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하먼] 저절로 만들어지는 네트워크는 없다, 자율주의 반대한다

19일 고려대학교 '학우 강당'에서 진행된 크리스 하먼의 '자율주의'에 관한 강연 내용을 정리한다. 자율주의는 맑스주의에 뿌리를 두고, 이탈리아의 정치철학을 배경으로 1980년대 이후 철학과 실천 영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운동적 조류이다. 자율주의와 관련한 대표적인 이론가들은 안또니오 네그리, 쎄르지오 볼로냐, 마이클 하트 등이 있다.

이날 강연에서 하먼은 이들의 '자율주의'에 대한 강한 반대의 입장을 밝혔다. 자신이 보기에 '자율주의가 아니키즘은 차이가 없'고 '정당과 혁명적 경향을 가진 사람들을 부정'하며 이런 자율주의가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에 '강한' 우려를 표했다. 또한 네그리의 '자본은 한국가의 경계를 넘어 네트워크 형태로 주권화 한다'는 주장에도 '자율주의자들이 자본이 네트워크에 의해 저절로 움직인다고 하지만, 네트워크를 통해 움직일 경우 결정적인 상황에서는 전술을 짜고 행동에 옮길 구심의 조직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며 반박하기도 했다. 이하는 강연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강연을 하고 있는 크리스 하먼.
반자본, 반세계 운동의 부흥

지난 6년 동안 세계 전역에서 대중적인 운동이 일어나는 것을 봐 왔다. 씨애틀에서의 투쟁을 시작으로 반자본 운동이 부흥했고, 대중적인 반전운동도 일어났다. 남미지역의 저항운동을 봐 왔다. 당시 운동의 새로운 물결에 감동한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 실용적인 논쟁을 할 시간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런 모든 다양한 운동이 수렴되고, 모두 모여서 자본주의를 공격하면 된다는 희망이 팽배했다. 하지만 2가지 사건이 발생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전망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됐다.

두 가지 사건. 그중 하나는 2001년 7월에 진행된 G8 반대 투쟁이다. 당시 시위 진압과정에서 '카를로 줄리아니'가 과잉진압으로 인해 사망하게 됐다. 이 사건으로 인해 사람들은 '싸워야 한다'는 필요성의 강조뿐만 아니라 '어떻게 싸워야 할 것인가'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세계무역센터를 강타한 911사건 이후에도 아프간, 이라크 전쟁이 이어지면서 사람들은 우리가 저항하고 있는 상대가 얼마나 강력한 상대인지를 새삼 깨닫게 됐다.

그리고 그 이후의 집회, 시위, 모임 등에서는 3가지의 뚜렷한 경향이 나타나게 됐다. 이 세가지 트렌드, 경향은 외부에서 들어온 것이 아닌 내부의 논쟁을 통해 발생, 나타나게 된 것이다. 첫번째는 개량주의적인 경향으로, 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압력단체로써 조금씩 국가를 압박하고, 영향을 끼쳐 개혁조치를 취하게 해서 개혁조치를 통해 자본주의를 통제할 수 있다는 것. 이런 경향은 비교적 규모가 큰 경향이었다. 두번째 경향은 그에 비해 규모가 작은 혁명적 경향이다. 대표적인 혁명적 조직들이 주장했는데, 영국 사회주의 노동자당, 프랑스 혁명당, 한국의 다함께도 포함되지 않을까. 세번째 경향은 규모나, 영향력 면에서도 뚜렷한 성장을 나타낸 자율주의라고 지칭하는 경향이다. 이들은 운동자체의 추동력과 모멘텀을 칭송하는 경향을 나타냈다.

정당, 조합을 불신하는 자율주의에 대해

자율주의자들은 우리가 지금 목도하고 있는 투쟁이 자치적이고 생명력이 넘쳐나기 때문에 그 하나만으로로 싸움의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경향을 가진 사람들은 개량주의 정당이나 노동조합 모두를 불신한다. 혁명주의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까지도 불신한다. 이들은 혁명가들이 '운동자체를 자기들의 목적에 맞게 이용하려 한다'며 혁명 단위들을 비판한다. 물론 운동 내에서는 여러 경향과 견해가 있고, 요소에 따라 자율주의적인 요소들을 일정정도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을 조금씩 보이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자율주의자라 칭하지 않지만 자율주의적 사고를 갖고 있는 경우도 있다.

NGO 활동가들도 알고보면 자율주의 활동가라 할 수 있다. 멕시코의 사파티스타를 동경하는 활동가들은 자율주의자들이다. 남미의 억압받는 선주민들과 함께 활동하는 사람 중에도 자율주의자가 많다. 그리고 아르헨티나에서 전투적인 운동을 펼치고 있는 많은 사람들 중에도 자율주의 사상을 수용한 사람들이 많다. 그 운동의 주변부에서 함께 하고 있는 블랙블로크(통역자 설명:반자본주의 시위가 벌어지면 불지르거나 까만옷을 입고 마스크를 쓰고 다니면서 부수고 다니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 중에도 자율주의자가 많다.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방법으로 은행에 불을 지르면 자본주의가 망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고 이들 중에도 자율주의자들이 많다. 개인적으로 돈을 찾아야 하는데 블랙블로크들이 은행에 불을 질러 못 찾은 경험도 있었다.

자율주의의 대표주자, 마이클 하트와 안또니오 네그리

자율주의 사상을 이론적으로 정당화하는 이론적 작품이 있다. 마이클 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가 쓴 '제국(empire)'이라는 저서이다. 이책은 문장 이해도 버겁고 내용이 어렵다. 읽은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책의 영향력은 상당하다.

자율주의가 결국 하려는 말은 모든 사람들이 지금 체제에서 희생자들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희생 때문에 결국 저항을 할 것이고, 이런 저항은 조직화 할 필요가 없이 자동적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붕괴시키는 무기가 될 것이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자율주의적인 경향을 가진 이 많은 운동들이 주장하는 것이, 정당은 우리 운동에서 설자리가 없고, 해야할 역할이 없다는 내용이다. 역사적인 경험을 예로 들면서 스탈린주의적 정당과 유럽 사민당의 사례들을 봐도 이런 정당들은 '일정정도 운동이 성장하면 운동에 기대 지배하고 지도하려고 든다'는 것이다.

또한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저항을 하면서 이를 통해 사회를 변화시킬 것이기 때문에 전략도 필요 없고, 조직도 필요 없고, 우선순위를 정할 필요도 없다고 주장한다. 자율주의 운동을 신봉하는 사람이 많다. 이들 중 상당수가 이전에 스탈린 주의자들이었거나 개량주의자들이다. 자율주의자들이 제 3세계 NGO에서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 공산당 처럼 위계질서가 강한 곳이나 단체에서 활동했던 활동가들의 경우 그 반발심이 계기가 되어 자율주의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것보다 건강한 계기나 동기를 가진 젊은이들도 많은데, 스탈리주의나 사민주의자들이 운동을 이용해 먹으려고 조직들의 죽은, 낡은 전략들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반발심으로 자율주의 사상을 신봉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자율주의자들은 아래로부터의 대중 활동, 참여, 대중적인 활동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알고 있다. 하지만 지난 6년 간 실질적 경험에 비춰보면 오류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자율주의의 오류, 모든 운동이 자동적으로 네트워크 되지 않는다

우선 주장하는 것 중 모든 운동들이 자동적으로 단결할 수 있다고 했지만 이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 억압당하는 여성들이 무슬림들의 운동과는 전혀 결합하지 못하고 따로 노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영향력이 센 여성단체가, 프랑스 정부가 이슬람 여성들을 억압하는 것을 지지하기도 한다. 실업노동자들이 직업이 있는 노동자들과 자동적으로 연대한다는 것은 사실 어려운 문제이다. 실업노동자들이 불만을 터트릴 수도 있다. 내가 일자리가 없는 것은 '너 때문이다' 라는 인식 때문에. 반면 일자리가 있는 노동자들은 실업자들을 동지가 아닌 기생충으로 보고 억압하는 지배계급의 편을 들 수도 있다. 유럽에서도 억압받는 흑인들이 투쟁하는 과정에 똑같이 억압을 받는 이슬람 사람들과 연대하거나 단결하지 않는다. 노숙자, 실업자, 장애인 운동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인종 차별적인 정신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 남미에서 선주민 운동 권력 쟁취를 위해 운동하는 사람들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가난하고, 소외 받는 사람들이지만, 단지 백인이라는 이유로 적으로 삼는 경우들이 있다.

단결은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나서고, 투쟁을 조직하고, 단결이라는 사상을 가지고 조직하지 않는 이상 자동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는 반전운동 과정에서 이슬람 사람들의 역할도 있고, 같이 해야 한다는 것을 설득하기 위해 많은 노력들이 있었다. 남미의 예를 들면, 아르헨티나의 경우도 실업자들과 일자리 있는 노동자들간에 엄청난 싸움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반자본 운동이 성장할 수록 국가 권력의 탄압이 거세진다

두 번째로 자율주의 사상의 오류는 어떤 운동이든 간에 운동이 발전할 수록, 이념적으로 여러갈래로 나뉘고, 이념적인 다양성이 대두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시애틀 투쟁에서도 자발적인 논쟁, 격렬한 논쟁이 있었다. 이라크 전쟁, 아프간 전쟁을 반대해야 하냐, 반대하지 않아도 되냐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남미에서는 에콰도르에서는 논쟁이 격렬해져서 정권을 타도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논쟁도 있었다. 싸움이 승리 해서 대통령이 퇴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승리 이후에도 큰 논쟁이 자발적으로 벌어졌다. 선주민과 노동자로 구성된 정부를 세울 것인가, 대리인이 임기를 마칠 수 있게 하고 다음 선거를 준비하고 기다릴 것인가에 대해서.. 처음에는 단결된 운동 같지만, 이후 자발적인 이념논쟁이 발생하고, 수면위로 떠오르면서 논쟁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세번째로. 운동이 발전하면 국가권력에 폭력적인 탄압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 폭력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가 남는다. 운동이 발전해 자본주의 체제에 위협이 될 수 있을 만큼의 힘을 키우면 국가가 우리를 가만두지 않게 된다. 한국에 있는 동지들은 국가권력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잔인한지는 알고 있을 것이다. 한국의 경우도 몇 년전만 해도 사회주의 사상을 전파했다는 이유만으로 투옥이 되기도 하지 않았나. 남미에서도 70-80 년대 국가 권력이 국가적인 폭력을 휘두른 권력에 의해 칠레에서만도 만 명의 사회주의 활동가가 학살 당했고, 아르헨티나에서는 3만명, 중미에서는 10만-20만명이 살해됐을 것이다.

지난 5년의 경험을 보면 그 정도의 국가권력의 폭력을 아직은 경험하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우리운동이 계속 발전해서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심각한 도전과 위협이 되면 우리는 이런 문제에 당면하게 될 것이다. 실질적으로 맞서야 하는 상황이 되면 자율주의자들은 선택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내 목숨이 걸려 있는데, 국가가 나를 죽이려 하는데 국가를 그냥 무시해 버릴 수 없다. 양자간의 선택을 해야 한다. 그럼 그 자리에서 나를 죽이려고 덤벼드는데 그냥 무시하고 자발적이니까 운동으로 사라지게 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있을 순 없는거 아닌가.

여기서 선택을 해야 한다. 국가를 어떤 방식으로 개혁을 해야 한다거나 국가를 개혁하던지, 전복시키던지. 그런 선택의 기로에서 자율주의자들은 혁명가가 되거가, 개량주의자가 되거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이번 여름 볼리비아에서 자율주의자들이 이런 선택의 기로에 놓인 것을 확인했다. 그 당시에 볼리비아에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 노동자운동이 심각한 위협을 끼치고 있었다. 당시 볼리비아 의회는 우파정부를 세우겠다고 협박을 했고, 우파 정부는 노동운동을 완전히 박살 낼 것이라고 협박했다.

이런 협박을 받으며 대중운동에서는 즉각적으로 두가지 경향이 나타났다. 하나는 지금하고 있는 운동을 멈추고 정부, 의회와 타협을 해 다음 선거 때 우익정부가 집권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고 주장, 당시 자율주의 운동의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이 이런 식으로 주장했다. 반대되는 주장으로 노동자 조직, 농민 조직이 권력을 장악할 수 있는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한 쪽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전략을 짤 수밖에 없고, 어느 세력이 국가에 잘 대응하고 저항할 수밖에 없는지 선택할 수밖에 없다.

  크리스 하먼의 강연은 만석이었다.

반자본운동과 노동자의 역할

맑스가 노동계급을 강조했다. 노동계급이라고 해서 사회 다른 계층이나 계급보다 더 많은 희생이나 고생을 강요 당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많은 지역에서 자본가들이 일을 시키기 위해 돈을 줘야 하는 '굶주린' 농민들이 훨씬 더 고통 속에 있을 수 있다. 자신의 성 정체성 때문에 아웃팅 당하고, 폭행당하는 레즈비언이 노동자보다 더 고통스러울 수 있다. 집단, 사회세력들은 더 큰 고통을 당하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자본주의 체제에 도전하고 권력을 장악할 수 있을 만 한 힘이 없다는 것이다. 노동계급이야 말로 자본체제가 계속 운영될 수 있도록 하는 기반이기 때문에 노동계급만이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국가권력에 억압적인 도구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방해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계급도 노동계급이다. 왜냐하면 국가권력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석유 의존도, 항공, 항만 등과 같은 교통수단이나 철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런 시설을 보호, 유지, 만드는 것은 결국 노동자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힘이 있고, 악명 높은 테러리스트들이 폭탄을 설치했다는 것보다 노동자들의 대중 파업을 더 위협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이런 대중운동은 끊임없이 조직화되고, 다양한 계급과 집단과 단결을 해야만 대중적 운동이 만들어 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당의 역할에 대해 얘기할 수밖에 없다. 노동운동이 성장하고, 전략을 얘기할 때 정당 이야기는 나올 수밖에 없다. 운동 내에서 양분이 되었다. 단결 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정당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과거의 경험에 비춰 정당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오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맑스주의 정당에 대한 해석은 다르다. 맑스주의적 정당에 대한 해석은 단순한 관철에 기반을 두고 있다.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사람들은 자본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노동자들, 자본주의에 대항하고자 하는, 사상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은 한 마디로 매우 많다.

때론 이렇게 세뇌 당하기도 한다. 나는 국가를 장악하고 국가를 운용할 수 있는 역량도 안되고 능력도 안된다는 것을 스스로 믿게 만든다. 파업현장 예를 들면, 자본주의의 세뇌를 극복하고 자본주의 체제에 도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행동, 실천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그 반대 급부로 사측의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쪽도 있다. 그래도 파업에 동참하는 것은 직장동료들에게 망신당하지 않기 위해 참석하는 극과 극 사이에 왔다갔다하는 세력이 있다. 이렇게 세 부류로 나뉘기도 한다.

자율주의자들은 한 사업장에 다른 현상이 있다는 것을 무시한다. 노동자들 중에서 인종차별주의자가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데 구분하지 않게 된다. 마오주의 경향을 가진 노동자, 여성을 차별하는 사람도 있고, 성차별 없애야 한다는 입장이 있기도 하다.

정당이라고 하는 것은 이런 노동자들 중에서 사측에 자본가들에게 저항하고, 도전하려는 의지가 강한 사람들, 성, 인종 차별에 가장 반대하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 노동세력이 이 사회에서 묶는 역할을 하는 것이 정당이다. 자율주의의 가장 큰 비극은 자율주의자들도 인종, 성차별 반대하고 자기결정권을 가진 것이 중요하다고 믿으면서 스스로를 조직화해야 할 필요성을 못느낀다는 것이다. 운동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논쟁을 벌여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가장 큰 비극이라 생각된다.

자본가는 우리 운동에 그런 식으로 개입하는 것에 전혀 주저하지 않는다. 매일 같이 하루가 멀다하고 언론을 통해 자신들의 모든 수단을 동원해 노동자들에게 파업을 하라하면 '무시하라'고 세뇌한다. 그리고 파업을 하면 중도파 지도자를 따라 '급진파의 지시를 따르지 마라'는 등의 내용을 계속 세뇌, 주입한다.

이런 자본가들을 보면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기 위해 가장 퇴행적이고 퇴보적인 사상을 가진 노동자들을 노동계급으로 위장시켜 투입시킨다. 노동자들도 가장 계급적인 신념을 가진 사람을 조직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정당을 이야기 할 때 정당이 운동을 이용하려 한다, 나머지 운동하려는 사람들간의 대결구도다 라고 보면 안된다.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정당에 대해 말할 때는 운동의 한 본분으로 존재하며, 함께 투쟁하면서 자신들이 가진 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는 집단이 바로 정당인 것이다. 그래서 노동현장, 대학, 모든 곳에서 논쟁하고, 자본체제에 도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논쟁을 벌일 수 있는 사람들을 최대한 많이 만들기 위해서 정당을 건설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노동운동은 다른 운동과 배치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제 3세계 국가의 농민들이 진정한 농민해방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자본가들을 전복시키고, 파괴할 수 있는 파괴력을 가진계급과 결합하는 수밖에 없다. 노동계급이 제 3세계의 국가 수도에서 자본가들의 뿌리까지 뒤흔드는 파괴력을 보이고, 가열찬 투쟁을 보일 때만이 농민들도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실제로 느낄 것이다.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의 대 투쟁이 일어났을때, 남성 노동자들이 먼저 나섰을 경우 가열찬 투쟁을 하고 있고 성공하는 것을 보았을 때 보고 있던 여성노동자들도 여성해방의 가능성을 느끼고 신념을 가지고 함께 투쟁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노동운동, 계급을 중요시하는 것은 노동계급이 잘나서가 절대로 아니다. 구조적으로 노동 계급만이 힘과 역량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를 뒤흔들 수 있어야 우리를 억압하는 요소가 함께 흔들릴 수 있는 것이다.

선의를 가진 자율주의자라 해도 우리는 , 자율주의자들이 같은 목표를 가지고 같이 싸우고 있다면, 제대로 싸우려면, 진정한 맑스주의에 기반을 가지고 아래부터 함께 투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태그

반전 , 다함께 , 크리스하먼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라은영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
  • 독자

    어서 정리좀 해주시길..

  • 독자2

    차이와 쓰임새를 모르시면 공부 좀 하시구요.

  • 과연

    크리스하먼이 자율주의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건지 의심스럽네

  • 이슬이

    '든'과 '던'에 대한 열강 부탁드립니다. 어떤 차이인지?

  • 독자3

    독자2 님의 지적 방식은 문제가 있네요.
    '든'과 '던'의 구별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긴 합니다.
    예를 드는 것이 좋겠네요.
    '든'은
    "하'든', 말'든' 내 알 바 아니다" 등의 쓰임새구요,
    '던'은
    "내가 그런 말을 했'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구나"로 쓰이는 겁니다.

  • 자율

    자율주의도 정당적 네트워크를 구성해야 한다는 점에서
    정당에 대한 무조건적 혐오를 드러내는 자율주의의 한 경향에 대해서는 나도 우려하는 바이다.
    그러나 자율주의가 anarchism 계열과 가깝다는 것이 뭐가 문제가 되는가?
    그렇다면 사회주의는 communism인가 아닌가?
    단지, 자율주의는 anarchism의 정치적 실천 형태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본다. 그것은 사회주의와 communism의 관계와도 같다.

  • 저건

    자율주의를 단순히 전술적 관점에서만 파헤치니 저런 답이 나오지

  • 6번에 의문

    자율주의가 아나키즘이라뇨!
    사회에 대한 분석과 피지배 계급의 운동이라는 관점이 결여된 아나키즘과 제국론, 다중론을 통해 맑스주의를 재구성하고 있는 자율주의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물론 자율주의는 다른 맑스주의 경향들과는 달리 아나키즘이나 기타 NGO 식 사회활동에도 친절한 시선을 주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자율주의는 분명히 다중의 힘 속에서 대안을 찾고 있습니다.
    크리스 하먼이 '자율주의는 아나키즘과 비슷하다'고 한 것을 가지고 '자율주의-아나키즘, 사회주의-코뮤니즘'의 도식을 만드는 것은 잘못이라고 봅니다.

  • 8번 쓴사람

    하먼의 말을 가지고 자율주의의 표피만 건드렸다, 자율주의에 대해 잘 모르고 썼다 말이 많은데, SWP 기관지에 쓴 하먼의 글들을 보면 그가 자율주의에 대한 철학적, 실천적 이해가 뛰어남을 알 수 있죠.
    그런 의미에서 전 한국의 자율주의자들에 대해 불만이 있습니다. 하트와 네그리는 제국론, 다중론을 말하면서 단순히 '시대가 새롭기 때문에 새로운 이론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가지 사회 현상을 검증하는 과정 속에서 그 결론으로 제국과 다중을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맑스 꼬뮤날레에서도, 자율평론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조정환 씨 등은 '지금은 맑스 시대가 아닌 탈근대다.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논리!'라는 말만 할 뿐입니다.
    하먼이 자율주의를 반박하는 맥락은 네그리가 주장했던 근거들이 틀렸다는 데에서 출발합니다.
    이에 대해 자율주의 진영이 반박을 하고 싶다면, 애초에 네그리가 주장했던 테제들을 입증하는 근거들을 제시해야 합니다. 하지만 답답하게도 그런 논증은 여지껏 이루어진 적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