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권서 "노동기본권 중심으로 자본의 분할구도 돌파를"

[특별기획 : 2005년 한국의 노동자](10) - 정규-비정규직 차별, 해답은 없나②

"굉장히 절망했고 엄청난 벽을 느꼈습니다. 열사냐 아니냐의 논란. 대공장 기업별 노조가 쌓아 온 성벽같은 걸 느꼈습니다. 그 힘은 사회를 진보시키는 역량이기도 했지만 거꾸로 그 방향성이 잘못될 땐 어떻게 되나 이런 생각도 해봤습니다"

류기혁 열사정국에 대한 구권서 전국비정규노조대표자연대회의(전비연) 의장의 소회다. 17일 영등포 민주노총 본부에서 그를 만나, 비정규직 확산과 차별의 원인, 정규직-비정규직 연대의 현 상황과 과제 등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구권서 전국비정규노조대표자연대회의 의장
구권서 의장은 비정규직 양산과 차별은 "궁극적으로 노동운동을 파괴하기 위한 자본의 분할-지배 전략"이라며 "노동 3권에 대한 부정과 차별에 맞서서 자본의 분할구도를 정면 돌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1+1' 등 비정규직 문제를 바라보는 민주노총 지도부의 관점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하며 "비정규직 문제는 노동기본권적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구권서 의장은 일부 사내하청노조들이 보이는 '정규직 활용론'과 관련해서도 "이는 정규직을 동지적 관계가 아니라 대상화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갈등을 풀어내고 소통할 수 있는 '마당'을 만들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다음은 구권서 의장과의 인터뷰 전문.

비정규직의 양산과 차별이 이루어지는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노노 간 분할-지배전략의 관철로 이해된다. 자본의 인적자원관리는 비용절감이라는 것보다는 궁극적으로 노동운동을 파괴하기 위한 것에 있다. 여기에는 당연히 노동운동을 짓밟음으로써 이윤창출의 가장 큰 걸림돌을 없애겠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차별은 임금이나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도 있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것은 노동 3권의 부정과 차별이다. 차별이 심화되는 것도 노동기본권의 배제 때문이지만, 노동자에게 고용이나 임금은 노동 3권에서 다 파생되는데, 그러니 부정하는 것이다. 저항할 수단이 없지 않은가. 지금 진행되고 있는 사내하청투쟁들이 다 그렇지 않은가? 단결권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을 부정하는 형태로 나오고 있다.

올해 정규직-비정규직 연대에 대한 평가를 한다면?

올해 성과가 없었던 건 아니다. 금속만 해도 5천 사내하청을 조직하고 울산만 해도 2천 조합원이 생겼다. 비정규직에 대한 인식도 나아진 게 사실이고. 그러나 기아와 현대자동차 임단협을 보면서 이것 밖에 안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내하청 동지들도 한편으로는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아직 해법을 못찾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동지적 관점에서 서로 바라보는게 아니라 대상화 시키는 측면이 있다. 정규직이 자리잡힌 노조는 사실 사내하청의 경우인데, 잘하는데도 있다지만 둘 다 문제가 있다. 잘하는 데는 보호 내지 시혜주의적 관점이 있고, 잘 못하는 예가 현대자동차처럼 면피나 하자는.. 사실 그 수준도 넘어가 버렸다. 비정규직은 애증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비판을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의존하는 경향이 있고 실제 '활용해야 하지 않느냐'는 경향도 있다. 이런 것은 동지적 관계가 아니라 대상화하는 것이다.

물고기 다섯 마리를 주는 건 하루 식량이지만 한마리를 잡는 법을 알려주면 평생 식량이라는 유대 속담이 있다. 물론 이건 굉장히 어려운 문제다. 정규직 비정규직 연대는 서로 공동운명체로 바라보지 않고는 안된다. 여전히 고용안정판으로 보는 문제도 있고. '현장 대중이 어쨌다' 이건 거짓말이다. 현장의 단사 지도부부터 운명을 걸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 비정규 주체들은 여전히 많이 모자란데, 비정규직이 자기 발로 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에 대한 해법은?

70만 조합원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시각을 바꾸는 것이다. 결국 차별을 극복하는 길은 자본의 분할구도를 전면적으로 맞서서 돌파하는 방법밖에 없다.

이목희나 노무현은 대공장 비정규직이 문제라고 얘기한다. 이들에게 매달리다 보니 5, 6백만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조차 못만든다고. 실제 그런 문제가 없는 게 아니다. 그러나 비정규직 문제를 그렇게 접근하면 남는 게 하나도 없다. 대중이 분노가 없느냐. 대중은 집단이기주의다 뭐다 노동운동을 비판하지만, 그들 자신도 개별적인 분노를 가지고 있다. 담아낼 그릇이 없을 뿐. 선택적 포섭과 배제라는 개념을 흔히 말하는데 바로 그렇게 관철해 간다. 정규직 노조를 끊임없이 공격, 집단이기주의로 매도하고 이제는 대기업 비정규직마저 동일한 논리로 대중과 분리시키려는 것이다.

자본·정권에 뭐라고 할 게 아니다. '권리보장'이 아닌 '보호입법'이라는 말이 내부에서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데, 구심인 지도부가 비정규 문제를 옳게 바라봐야 한다. 요즘 혁신이니 위기니 얘기를 많이 하는데 실천이 본질이다. 실천으로 해결되야 할 문제지 '말'이 아니다. 여전히 노동 3권을 빼고 차별을 얘기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니 '대리주의다' '시혜다'라는 얘기가 나오는 거다. 일단 바른 생각이 있어야 한다.

총연맹에 대한 평가를 좀 더 구체적으로 해달라.

다시 얘기하지만 기본권적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 비정규직의 어려움을 '실제적 어려움을 뭐 하나라도 해결해야지 않나'가 아니라, 임단협이라도 할려면 노동기본권을 통째로 부정하고 공권력 수준에서 대응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1+1'(비정규법안 협상에서 '개악 요소를 제거하고 현재보다 나아진 조항이 있다면 법안을 수용하겠다'는 민주노총의 입장)이 아니라 대중적 수준에서 노동기본권 문제를 알려내야 한다. 열린우리당도 열사정국에 대해 '비정규직이 이렇게 처참하다. 그러니 빨리 통과시켜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대중들은 얼마나 헤깔릴 것인가. 이런 상황에서 옳게 대처하지 못하면 너죽고 나죽는 길밖에 없다.

류기혁 열사 정국을 보면서도 드는 생각은 지도부가 지도부답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좀 고통스럽더라도 방향제시를 하는 게 지도부 아닌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이 지도부 아닌가. 툭 까놓고 현대자동차 노조에 끌려다녔다는 게 맞다.

비정규직 철폐투쟁을 하면서 느꼈던 어려움이라면?

90년대 중반에 마른걸레도 쥐어짠다고 하는 혹독한 구조조정기를 거쳤다. 이걸 막아내지 못하자 비정규직이 양산되기 시작했다.

2000년도에 어느 대공장 위원장에게 비정규직 문제를 왜 제대로 안보느냐고 물었는데, 이런 대답을 들은 적이 있다. 저사람들과 연대하고 싶어도 우리 파업 때 기계를 돌렸던 사람들이 저들(비정규직)이라는 거다. 지금은 물론 달라졌지만, 사고가 왜 그렇게 밖에 안되는가. 이제 비정규직이 파업하면 정규직이 기계를 돌릴 것이다. 구조조정은 끊임없이 계속 되는 것이고, 정규직 노조들은 이제 40대 중반, 아닌게 아니라 곧 물량적인 위기가 올 것이다.

정규직은 사장과 부딪히는가, 아니 관리자들과 부딪혀왔다. 이것도 다 노노갈등인건데,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부딪힌다. 계급적 관점에서 보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문제들은 투쟁할 때 마다 부딪힌다.

'마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갈등은 어느 시대나 있지만 노노갈등으로 나타나는 건, 이걸 풀어내고 소통할 마당을 못 만들었기 때문이다. 정규직도 답답한 게 있을 거고. 지금 조직 혁신위 돌리는 건 상반기 험악했던 분위기 때문인지 몰라도 토론분위기가 안 만들어지는 것 같다. 왜 이런 걸로 아직 토론을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이제 '나는 이게 어렵더라' '이래서 연대가 잘 안되더라' 이런 얘기가 나와야 한다. 전략기금 50억을 만들면 해결되나. 투쟁할수록 이런 문제가 나올텐데.

구체적으로 현재와 올 하반기 그리고 당면한 몇년의 기간,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전선을 좀 힘있게 모아야 한다. 정규직도 힘있게 같이 해야 하는 게 맞지만 우선 전제는 비정규직 주체가 기본적인 분노가 있는만큼 총파업 전선을 힘있게 가도록 모아주어야 한다. 또 이렇게 나설수 있도록 연대도 있어야 하고, 실천을 중심으로 하는 범사회적 연대가 아직 잘 안 만들어지는 것 같다. 사내하청 현장투쟁은 굉장히 치열하게 전개됐지만, 문제의식은 전사회적으로 확산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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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티코

    자본에 비하면 약자란다... 지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