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펙에 ‘여성의 얼굴’을 씌우려는 ‘아펙 여성의제’의 허구성

10월 17일을 세계화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연대로!

“...여성이 지구적 성장과 회복에 기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성은 각 국 노동인구 중 32-46%를 차지한다. 지구적으로 노동인구 중 여성비율은 특히 수출지향 부문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런 부문에서 여성은 노동인구의 4분의 3을 차지한다. 여성이 비공식 부문에서 특히 활동적인데, 이런 부문을 통한 경제 기여도과 참여도는 막대하다. 더욱이 여성의 무임금 노동은 경제에 지대한 기여를 하고 있다. (중략) 적절한 정책과 프로그램은 점차 증가하고 있는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도와 여성기업의 성장은 아펙 회원국 경제들로 하여금 지구적 무역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지구적 무역으로부터 보다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게끔 한다.” - 1998년 아펙의 첫 여성관련 장관회의 선언문 중. www.apec.org

“아펙의 무역 및 투자 자유화 관련 활동(TILF), 그리고 경제적?기술적 협력 프로그램(ECOTECH)은 여성에 큰 영향을 끼친다. (중략) [아펙의 목표는] 무역과 투자 자유화 및 원활화가 제공하는 경제적 기회를 여성들이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 - “아펙에 여성을 통합하기 위한 기본골격”(Framework for the Integration of Women in APEC). www.apec.org


여성인력을 잘 활용하기 위한 아펙정상회담


오는 11월 18일-19일 부산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아펙) 정상회담이 개최된다. 벌써부터 아펙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를 기원하는 각종 플래카드와 광고물이 세워졌고, 사전회의가 연일 진행 중이다. 정부에서는 마치 아펙정상회담만 성공적으로 개최되면 경제가 활성화되고, 보다 나은 사회가 도래할 것처럼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아펙은 본질적으로 신자유주의 체제를 더욱 강화하고 미국의 군사·정치적 지배력을 재생산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기에 민중들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할 뿐이다.

이번 부산 아펙정상회담에서는 7가지 주제가 논의될 예정이다. △자유무역 증진 △반부패 △지식기반경제의 혜택 공유 △인간안보 △아펙 개혁 △문화 간 이해 증진 그리고 △중소기업·영세기업 및 여성 참여 강화라는 ‘여성’에 관한 의제도 포함되어 있다. 아펙은 이런 여성의제를 통해 여성기업인을 육성하고 아펙의 모든 활동에 ‘성을 주류화’ 내지는 아펙에 여성을 ‘통합’함으로써 아태지역에서 양성평등을 이룩하겠다고 한다. 또한, 위 인용문에서도 볼 수 있듯이 아펙이 추진하는 무역 및 투자 자유화로부터 여성들이 이익을 볼 수 있도록 하고 그럼으로써 여성인력을 잘 활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아펙은 몇 년 전부터 그 내에 젠더전담관네트워크(GFPN), 여성리더네트워크 등 여성 관련 기구와 작업반을 구성하였으며, 이번 부산 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해 정부는 부산에 사무소를 설치하고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일부 여성단체와 여성기업인 단체들은 ‘APEC 여성의제 채택 여성연대’를 구성해 ‘시민사회’ 입장에서 또는 ‘여성운동’적 차원에서 아펙 여성의제에 대한 지지와 지원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아펙의 의제와 목표는 여성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한 여성의 빈곤화, 빈곤의 여성화를 더욱 촉진시킨다.


앞뒤가 맞지 않는 아펙의 여성정책

아펙에서 나온 여러 여성 관련 문서들은 ‘노동의 여성화’ 또는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 증가를 언급하면서 여성이 경제에 지대한 기여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한국 70년대 공순이에서부터 90년대 마낄라도라 내지는 동남아 의류 공장까지, 가정주부에서부터 비정규직까지, 여성은 늘 경제에 참여했고, 엄청난 기여를 했고, 이중 삼중으로 착취 당해왔다. 그러나 위의 첫 인용문에서 볼 수 있듯이 아펙은 여성노동에 대한 이러한 착취를 정당화하고 있을 뿐이다.

이번 부산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의제의 나열만 봐도 아펙의 여성의제가 얼마나 허구적인지를 알 수 있다. 자유무역을 증진하고 ‘인간안보’를 구축하겠다는 것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더욱 강도 높게 도입하겠다는 것이며, 아울러 부시가 내세우고 있는 전 지구적 차원에서의 ‘대테러전쟁’에 대한 지지와 지원을 동원하겠다는 의도이다. 신자유주의와 군사주의는 오로지 여성에게 빈곤과 폭력, 차별을 가져다줄 뿐인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는가. “무역과 투자 자유화 및 원활화가 제공하는 경제적 기회를 여성들이 유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삼겠다는 것, 이런 구조를 통해 ‘양성평등’에 도달하겠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앞뒤가 안 맞는다.

여성의 탈을 쓰고 여성을 위협하는 아펙


여성 의제 그 자체로서도 문제적이다. ‘여성기업인 육성과 참여 확대’는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문제를 은폐하고 축소하는 효과를 갖는다. 실제로, 여성의 경제참여를 급속히 확대되고 있지만 전체 여성노동자 중 70.5%가 임시일용직이며, 임금은 남성의 63%에 불과한 상황에서 과연 ‘여성기업인 육성과 참여 확대’는 이미 사회적 지위를 어느 정도 가진 극소수 여성에게만 이익이 될 뿐이다. 물론, 역사적으로 ‘자본가’조차 되어보지 못한 여성들에게 이런 아펙은 진보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여성’ 자본가가 되는 것은 여성운동의 목표가 될 수도, 되어서도 안 된다.

즉, 여성 기업인을 육성하여 무역자유화를 활성화시키고, 무역 및 투자 자유화의 이득을 여성들이 향유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아펙의 목표는 그 자체로서 어불성설이며, 소수 여성들에게만 ‘당근’을 쥐어줌으로써 신자유주의의 핵심 추동기제인 아펙에 인간적, 여성적 탈을 씌우겠다는 것에 불과하다. 있는 얼굴을 그대로 드러내는 괴물보다 ‘인간적·여성적’ 탈을 쓰고 대중을 기만하는 괴물이 더욱 파괴적이고 위험한 법이다.

이 속에서 아태지역 여성들의 극심한 차별과 빈곤, 여성에 대한 폭력은 은폐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아펙의 기만성을 폭로하고, ‘무장한 신자유주의 세계화’ 하에서 이중삼중으로 억압을 받고 있는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행동에 나서야 한다. 10월 17일을 세계화에 반대하는, 아펙정상회담을 반대하는 전 세계 여성들의 연대로 만들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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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 아펙 , 여성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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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글 감사드리며 늘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