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 전시상황 된 부산, 공포분위기 섬뜩

집회마저 봉쇄, 준 전시상황, "아펙 빌미로 한 공안 조성 규탄한다"

민주주의 국가라는 이 나라에서 아펙회의를 빌미로 사상 최대의 군과 경찰병력이 동원된 공포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국정브리핑 10월 19일자에 따르면 금번 부산 아펙정상회의에는 회원국 21개국 정상을 비롯한 정부대표단 3500여명, 민간회의 대표단 및 해외언론 등 해외인사 6000여명과 국내 인사 4000여명 등 총 1만여 명이 참여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정부는 이라크 주요 파병국인 미국과 한국, 일본, 호주 정상들이 모이는 이번 아펙회의가 그 어느 때 보다도 ‘테러위협’이 높다고 보고 전시상황 혹은 계엄상황을 방불케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APEC 주회의장은 BEXCO(부산 전시컨벤션 센터)본관 안에 붙어 있는 테러범 식별요령 포스터
정부 스스로도 단군 이래 최대라고 하듯이 경호-안전 인력만 3만7000명(경찰 170개중대 포함)에 이른다. 그리고 정상회의 기간에는 한반도 주변 상공에 공중조기경보기가 24시간 정찰활동을 실시하고, 바다에는 미국 항공모함이 배치되며 11월 19일 2차 정상회의가 이뤄질 동백섬 ‘누리마루’에 7킬로미터 이내 항해와 회의장 상공비행이 금지된다. 또한 지하철과 대형 쇼핑몰 등에는 군과 의용소방대, 자원봉사자 등 1만5000여명이 동원돼 테러 감시활동을 펼친다.

벌써부터 군인들이 노란 옷으로 갈아입고 지하철 역내를 돌아다니고 있는 것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 경찰은 다음달 1일부터 해운대와 롯데호텔, 농심호텔, 김해공항 일대 등 4개 권역을 특별치안 강화구역으로 지정하여 반경 1.5㎞ 내에서 아펙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모든 행위는 차단한다는 계획이다. 이미 군대도 대량 투입되어 있다. 육군 53사단은 정상회의장 주변 5개 주요 지역 의 육상 경호작전 지원 임무와 주요 호텔에 대한 경계도 맡고 있다. 목표물이 잘 보이는 700여개의 고지를 확보하여 활동하고 있고 매복진지까지 구축할 계획이라고 한다.

가히 아펙행사 하나를 위해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요 국민을 대상으로 ‘군기’를 잡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어떤 법적 근거에 의해 이러한 조치들이 시행되는지 정부가 공개한 바도 없기 때문에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CIA, FBI까지 가세해 있다. 중앙일보 인터넷판 9월 21일자에 의하면 이미 미국 정보요원들은 국내에 들어와 아펙에 대비한 활동을 하고 있고 11월에는 100여명의 요원이 추가로 파견될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시위가 무서운가

‘아펙반대 부산시민행동’에 의하면 정상회의가 열리는 기간에 부산에서 집회는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부산에서 주로 집회가 열리는 서면, 시청, 부산역광장 등에 시민행동 측이 집회신고를 했지만 경찰은 4곳의 선전전만 허용한다고 통보했다. 나머지는 이미 HID, 자유총연맹, 주부클럽 등 보수-관변단체들이 집회신고를 했다는 것이다. 해운대 일대 237곳에 대한 집회신고 역시 모든 장소가 이미 집회신고가 되었다는 이유로 전면 금지되었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 단체들이 조직적으로 연대하여 행동한 적도 없거니와 경찰이나 정부의 사전 요청이나 지원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미 경찰은 2000년 아셈정상회담 반대 집회 당시에도 대리-위장신고를 한 바 있고, 2003년에도 광화문 일대 집회장소에 대해 대리-위장신고를 저질러서 사회적으로 커다란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이번에도 경찰은 그와 유사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아펙반대 시위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막으라고 상부에서 경찰 하부를 쥐어짜고 있어서 이러한 사태에 이르렀을 것이다.

국제행사가 개최될 때면 늘상 집회와 시위의 자유나 시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정부와 경찰의 인식이다. 심지어 부산시장, 시의회의장, 시교육감, 부산지검장, 부산경찰청장 등 지역 5대 기관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집회나 시위에 대하여는 법에 따른 엄정한 조처가 불가피하며 각종 통제를 감내해 달라고 밝혔다. 한마디로 지배자들의 협박이요 군사독재 시절에나 가능한 권위주의적 발상이다. 아펙 기간에 국민들은 집에만 있으라는게 내심이 아닐지.

이중삼중으로 된 삼엄한 경계 속에서 청와대경호실, 국정원, 경찰, 군대, 검찰 등 국가권력의 물리력을 총동원하여 국민들을 격리시키고 육해공 입체적으로 정상회의장을 봉쇄하여 그 속에서 ‘그들만의 잔치’를 벌이는 것은 한편으로 그들 스스로의 자신없음과 불안함을 드러내는 것 아닌가? 그렇게 시위가 무서우면 아예 아펙을 하지 말든지 말이다.

인권침해의 온상이 될 아펙

테러대책에 거의 노이로제가 걸린 정부는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고 있는 아펙은 그야말로 인권침해의 온상이 되고 있다. 부산시는 거리 노숙인을 아펙기간 동안에 시설에 강제 수용하는 계획을 세웠고 이를 거부하면 경범죄를 적용한다는 방침을 밝혀 반인권적인 작태라고 지탄을 받고 있다. 거리 경관을 이유로 노점상들을 강제철거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CCTV도 대폭 확충되었다. 김해공항에는 해상도가 높은 CCTV가 추가설치 되었고 해운대 주변의 CCTV 활용도 강화되었다.

특히 김해공항에서는 정상회의 보름전부터 탑승객은 물론 배웅 또는 마중나온 일반인에 대해서도 검문·검색을 실시한다. 부산항 각 부두에서는 105대의 CCTV를 24시간 가동한다. 한마디로 부산시민들은 아펙기간을 전후로 어디에서든 감시와 불심검문을 당할 수 있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테러대책이라는 미명하에 국내 무슬림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가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국정원은 한명이라도 테러조직과 연계될 가능성에 대비해 무슬림들을 감시하고 있다고 한다. 국정원은 국내에 56개 이슬람권 국가 출신 외국인 8만3000여 명이 체류하고 있으며, 이 중 미등록 체류자가 3만9000여 명으로 추산된다면서 특히 미국이 테러 지원국으로 분류하고 있는 이란, 시리아, 리비아, 수단, 쿠바 출신 외국인 2400명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중앙일보 9월 21일자 인터넷판).

또한 경찰은 아펙회의 대비의 일환으로 10월 26일에 공단주변 등 외국인 밀집지역에서 검문검색을 실시하고 11월 15일에도 일제 검문검색을 실시할 예정으로 있어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심각한 인권침해가 발생할 것이다. 경찰은 ‘테러범 식별요령’에 따라 융통성있게 검문검색을 한다고 하지만, 경찰이 곳곳에 부착해 놓은 그 식별요령이라는 것도 ‘계절에 맞지 않는 두껍고 긴 상의를 입은 사람’, ‘체구에 비해 허리, 아랫배가 유난히 불룩한 사람’, ‘땀을 많이 흘리거나 얼굴표정이 불안한 사람’ 등으로 되어 있어 실제로는 광범위한 인권침해를 불러올 것이 뻔하다. 국민들과 이주노동자들을 잠재적인 테러범으로 보는 반인권적인 작태는 사라져야 한다.

이라크 전쟁, 빈곤과 불평등이 테러의 원인

실제로 미국이나 한국정부는 아펙 기간에 테러발생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아펙 기간에는 테러경보도 최고 높은 ‘심각(레드)’ 단계가 된다. 그런데 그 테러라는 것은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니다. 이라크 전쟁으로 인한 학살과 점령, 가진 자들만을 위한 세계화가 초래한 빈곤이 그 근본원인이다. 아펙회의도 정확히 이것을 의제로 한다. 11월 18일 열리는 1차 정상회의 의제는 ‘무역자유화의 진전’이고 19일의 2차 정상회의는 ‘안전하고 투명한 아-태지역’이다. 무역자유화 의제는 주로 WTO DDA(도하개발의제) 협상과 FTA(자유무역협정)을 진전시키자는 것인데, 이는 자본에 이익을 주지만 대다수 민중들에게는 피해를 주는 것이다.

안전 의제는 ‘인간안보’의 탈을 쓴 ‘대테러전쟁’ 협력을 말하는데, 이라크 전쟁에 대한 파병과 지원, 지배자들에게 적대하는 세력에 대한 억압조치를 확대하고자 하는 것이다. 결국 테러의 근본원인을 더 키우는 아펙회의가 타겟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이라크 파병은 한국을 계속 표적으로 만들어왔고 정부도 이를 인식하고 있다. 예컨대 관세청은 10월 1일부터 입국시 모든 휴대물품을 신고서에 의무적으로 기재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라크에 파병된 자이툰부대가 복귀할 때까지 시행한다는 것이다(YTN 9월 21일자). 런던 7.7 테러 당시에 영국민들의 64%가 이라크 파병 때문에 사건이 발생했다고 보았다.

그런데도 노무현정권을 비롯하여 각국의 지배층들은 테러의 원인을 제거하기는 커녕 오히려 심화시키고 있고, 그러면서도 그 위협이 두려워 공권력을 동원해 폭력적인 방식으로 막으려 한다. 아펙회의에 참가하는 미국, 한국, 호주, 일본 등 침략국과 파병국들이 점령과 파병을 중단하는 것만이 근본대책일 뿐이다.

11월 18일 부산에서 심판하자

국민의 인권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부시와 그 동맹자들의 인권만 지키는 공권력,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시민들을 들들볶아대는 아펙대책, 최소한의 반대 목소리마저 입막음하려는 전체주의적 발상은 아펙 자체를 고립시킬 것이다. 테러만 막고 시위만 봉쇄하면 무슨 수단이든 써도 된다는 저열한 작태는 아펙이 정당하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폭로하는 것일 뿐이다. 각국의 지배자들, 자본가들이 몰려들어 돈과 정치를 놓고 그들만의 잔치를 벌이는데 분노한 민중들의 시위가 없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이며 비민주적인 사회일 것이다.

이제 인권이 살아 있고 민주주의가 살아 있으며 전쟁과 빈곤에 저항하는 민중의 역동성이 살아 있다는 것을 부산에서 보여주어야 한다. 비열한 짓거리로 일관하는 저들은 민중의 힘을 똑똑히 보게될 것이다.
덧붙이는 말

정영섭 님은 사회진보연대 활동가 이며 현재 아펙반대국민행동 조직투쟁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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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꼭두각시

    글 감사드리며 늘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