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의 최종안, '결단'인가 '배신'인가

정부와 사용자 의도에 부합, 비정규직 대량 생산 가능성 제기돼

노동계가 일제히 반발하고 있는 한국노총의 최종 수정안은, 민주노총의 요약에 따르면 크게 △기간제 사유제한의 포기(사유제한없이 2년까지 사용), 혹은 1년 사용 후 사유제한 적용해 1년 추가사용 △불법파견 고용의제의 포기 △사용사업주 책임의 포기 △특수고용 노동3권의 유보 등으로 특징지워진다.

민주노총의 지적대로 이같은 안은 국가인권위원회나 시민사회단체의 안에도 크게 미달하는 수준이며 오히려 정부나 사용자 측의 안과 더 가까워, 현실화될 경우 비정규직을 양산하고자 하는 정부와 사용자의 의도에 부합하게 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사실상 계약직 노동자를 무제한적으로 쓸 수 있게 돼

한국노총이 '복수안'으로 제출한 기간제 근로의 사용기간 안은 '사용한도 2년에 이후 무기계약 간주'와 '1년+1년(사유제한) 후 고용의무' 두 가지로, 최초 채용시 정규직 채용이 사라질 것이 우려되고 있다.

지금까지 1년 이상 반복적으로 계약이 갱신될 경우 정규직으로 간주하는 판례들이 있었고, 노동계는 명백하게 기간제를 사용해야 할 사유(출산휴가나 육아휴직, 산재 등)가 없을 때는 '기간에 정함이 없는 고용' 즉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었다.

그러나 한국노총이 제출한 안대로라면, 대부분의 사용자가 1년 혹은 2년짜리 계약직만을 채용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2년을 초과한 기간제 노동자에 대해 무기계약으로 간주한다는 조항도, 2년이 되기 전에 해고하면 그만이므로 실효성이 없다.

주봉희 방송사비정규노조 위원장은 "1년이나 2년 후에는 해고될 것이 뻔하지 않느냐, 파견법의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양규헌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대표도 "1+1이냐, 2+0이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며 "계약기간이 끝나면 회사에 협조적인 노동자만이 재계약될 것이며, 나중엔 모든 노동자가 비정규직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불법 파견된 노동자도 직접 고용되지 않을 수 있어

불법 파견된 노동자에 대해 '고용의제'를 적용하라던 당초의 주장에 비해, 한국노총은 '고용의무'라는 안으로 물러났다. '고용의제'를 적용하게 되면 불법 파견된 노동자의 경우 직접 고용된 것으로 법적인 '간주'를 하게 되지만, '고용의무'를 적용하면 불법 파견된 노동자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뜻이 되므로 사용자의 불복과 소송의 가능성을 대폭 열어주었다.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은 이 부분을 언급하며 "현행 파견법에 비추어서도 후퇴한 명백한 개악"이라고 지적하며 "'고용의무' 규정 하에서는 노동자가 사용자를 상대로 부당해고를 다툴 수 있는 여지가 완전히 불가능해지고, 사용자에게 공법적 의무만을 부여하는 것이므로 온정을 기다릴 수밖에 없게 된다"고 우려했다.

또한 파견법 허용 대상 업종을 당초 26개에서 '현행 유지'토록 한 것은 "현재의 착취를 용인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더구나 한국노총은 '노사정협의'를 통해 허용 업종을 조정하겠다고 발표해 파견대상 업종이 오히려 늘어날 가능성이 생기게 됐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한편 시급한 과제였던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과 관련해, 한국노총은 "비정규직 관련 법안을 금년 내에 처리하고 난 후에 노사협상을 통하여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입법을 내년 상반기에 추진하여야 함"이라고 발표해 사실상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요구가 이번에 다뤄지기 무망하게 됐다.

전비연 소속 대표자들은 한국노총 기자회견장에서 "김태환 열사가 지하에서 통곡하고 있다"는 피켓을 들었으며, 민주노총도 "김태환 열사의 한이 서려 있는 특수고용 노동자 문제조차 외면함으로써 한국노총은 노동자의 입장을 스스로 포기했다"고 비판했다.

이 밖에도 비정규직 노동자의 차별 금지와 관련, '차별 시정 청구주체'를 당초 노동계 안인 '당사자 외에도 노동조합의 신청권을 인정해야 한다'에서 후퇴해 '당사자'만으로 국한했다. 한국노총은 이 부분에서 스스로 '양보했음'을 시인하기도 했다.

한국노총의 감행이 그들의 주장대로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최대한의 개선폭을 얻어내고자 하는 결단"이 될 지, 전비연 대표자들의 절규처럼 "노동운동 역사에 남을 반동적 행위"가 될 지는 자명해 보인다.

비정규직 관련법 제·개정을 위한 한국노총 최종안

1. 기간제 사유제한, 최장기한, 기간초과 후 근로관계

1) 기간제 근로 최장 2년 미만 예외적 허용

○ 기간제 근로는 원칙적으로 불허하되, 반복갱신을 포함하여 계속근로기간이 최장 2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허용함. 법조문에는 다음의 원칙을 명시함.

- 첫째, 기간제 근로계약은 통상적인 무기근로계약을 지속적으로 대체할 목적으로 체결해서는 안되며 그러한 결과를 가져와서도 안됨.
※ 사유제한이 규정되지 않음으로서 기간제근로를 통상의 근로형태로 고착화될 것을 예방하기 위하여 , 법의 기본정신에서 정규직 고용원칙을 밝힌다는 취지임.

- 둘째, 기간제 근로계약은 반복갱신된 경우를 포함하여 계속근로기간이 2년을 초과할 수 없음.

2) 2년 초과시 고용의무 또는 무기근로 간주

① 기간제 근로계약은 근로계약 기간과 계약의 갱신, 임금 및 근로조건 등을 명시하여 반드시 서면으로 체결되어야 함.
※ 서면계약은 사용자에게는 이용사유를 명확하게 하고 근로자에게는 근로조건을 명확하게 알 수 있도록 함으로써 비정규직 고용의 남용과 정규직 노동자와의 부당한 차별이 생겨나지 않도록 하는데 기여할 것임. 또한 정부는 이를 기초로 효율적으로 근로감독을 행할 수 있고, 분쟁 시 법원의 판단을 용이하게 할 수 있음.

② 1안) 기간제 근로를 1년간 사용한 이후에 갱신되는 1년간은 사용사유를 제한하여 기간제근로를 2년으로 제한하고 계속근로기간이 2년을 초과하여 지속된 경우에는 즉시 고용의무를 부과함.
2안) 기간제 근로계약이 반복갱신된 기간을 포함하여 계속근로기간이 2년을 초과하여 지속된 경우 그 근로계약은 기간을 정하지 않은 무기근로계약으로 간주함.

③ 사용자는 출산·유사산 휴가 도중에 기간제 근로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할 수 없으며 동 휴가가 계속되는 도중에는 계약기간의 만료만을 이유로 기간제 근로계약을 해지할 수 없음.
※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 보호 장치. 사용자들이 출산휴가 중인 비정규직 노동자와의 근로계약을 해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빈발하는 문제이며 이로 인해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이 출산을 기피하고 있음.

2. 파견근로의 대상업무, 최장기간, 위법파견시 근로관계

1) 현행 26개 대상업무, 2년 기간 상한 유지

① 현행 파견법의 26개 대상업무와 최장기간(2년)을 그대로 유지.
※ 정부 개정안의 경우 파견 최장기간을 3년으로 확대할 것을 주장하고 있으나, 직접고용인 기간제에 비해 간접고용인 파견의 규제가 더 약화되는 것은 법논리적으로 맞지 않으므로 ‘기간제 2년, 파견 2년’의 균형을 고려하여 현행 2년 유지가 바람직함.

② 파견근로를 허용하는 대상업무의 조정 문제는 노사정 협의로 시행령에 규정함.
※ 법에 규정하는 것이 더 경직적이며 대상업무의 조정은 노사의 이해관계가 얽혀 법개정과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 더 어려울 것임

2) 파견기간 초과 및 위법파견시 고용보장

○ 파견법을 위반한 경우는 ① 파견기간 상한(2년)을 초과하여 파견근로를 사용한 경우 ② 파견대상 금지업무 규정(제5조)을 위반한 경우, ③ 무허가 파견의 경우로 구분되며 각각의 법률 위반시 사용업체 사용자는 해당 파견근로자를 고용한 것으로 간주하거나 직접 고용하도록 의무를 부과함. 직접고용 간주 또는 의무의 발생 시점은 다음과 같음.
- 기간 초과시 : 2년을 초과한 시점부터 즉시 고용의제
- 금지업무 파견시 : 불법파견으로 판정받은 즉시 고용의무
- 무허가 파견의 경우 : 무허가 파견이 확인된 즉시 고용의무
※ 단, ②와 ③의 경우 파견근로를 제공받은 시점부터 직접고용 의무를 이행하기 전까지의 기간동안 발생한 차별적 처우에 대해 사용자의 배상책임 부과방안 검토

3. 차별금지 및 차별시정 절차

1) 비교대상 노동자와의 차별 금지

① 차별을 금지하는 조문은 다음과 같이 규정함.
- 당해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동일한 기술과 능력 등을 가진 기간제 근로자를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에 비해 임금, 근로조건 등에 있어서 동등하게 처우하여야 한다.
- 당해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동일한 기술과 능력 등을 가진 시간제 근로자를 전일제 근로자에 비해 임금, 근로조건 등에 있어서 동등하게 처우하여야 한다.
- 당해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동일한 기술과 능력 등을 가진 파견 근로자를 사용업체에 직접 고용된 근로자에 비해 임금, 근로조건 등에 있어서 동등하게 처우하여야 한다.
※ 비교대상 노동자와의 판단 기준에 ‘성과’를 추가하자는 경영계의 주장은 비교의 객관성을 완전히 허무는 것이므로 절대 불가함. 능력이 포함된 것도 경영계의 주장을 고려한 것임.

② 기간제/단시간/파견 노동자는 비교대상 노동자와의 차별적인 대우의 이유에 대해 사용자가 설명할 수 있는 내용을 문서로 전달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명시. 이러한 문서는 노동자가 요청한 후 2주 이내에 전달되어야 하며, 이 법에 의한 증거로 사용될 수 있도록 함.
※ 사용자 입증책임 규정에 따라 차별시정기구 제소시 사용자가 차별여부를 입증해야 하는 바, 사전에 노사간 자율적 차별해소의 여지를 열어두기 위해서 사용자의 차별이유 제시를 규정할 필요가 있음.

2) 당사자의 차별시정 청구권 및 사용자의 차별여부 입증 책임

○ 차별시정기구에 대한 제소권은 당사자에게 부여하고 차별여부의 입증 책임은 사용자가 지도록 함.
※ 비정규직 노동자가 사용자에 대해 차별시정을 요구하고 이를 노동위원회나 법원에 제소한다는 것은 불이익의 우려가 있으나 차별입증책임을 사용자가 지도록 한 것은 노동자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을 것임.

4. 특수고용 노동자 권리 보장

○ 비정규직 관련법안을 금년내에 처리하고 난 후에 노사협상을 통하여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입법을 내년 상반기에 추진하여야 함.
※ 한국노총 김태환 충주지부장 살인사망 사건, 화물연대 김경윤 조합원 분신 등 특수고용 노동자 사망 사건 등으로 특수고용 문제가 첨예한 쟁점이 되어 있으므로 노동기본권 보장 문제를 중심으로 조속한 입법을 추진하도록 해야 할 것임.

5. 법 시행 점검을 위한 노사정 공동기구의 설치

① 비정규 관련법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노동계, 경영계, 정부 모두 엄청난 불안과 우려를 갖고 있으며, 법시행의 효과와 영향, 문제점을 다각적으로 점검하고 주기적으로 재평가(review)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함.

② 파견법의 경우 위원회 구성에 관해 시행규칙에 명시돼 있으나 실제 구성되거나 활동한 적이 없음.

③ 노사정(공익)으로 구성되는 중심이 되는 ‘(가칭)비정규직 및 노동시장 규제평가위원회’를 구성하여 기존 파견법을 포함하여 비정규관련법의 시행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현상과 문제점들을 조사 수집토록 하고, 정부와 국회, 차별시정기구에 대해 주기적으로 권고를 내도록 해야 할 것임.
※사유제한을 명시하지 않음으로써 이 법에 의한 비정규직 양산 우려가 현실화되는 것으로 판명될 경우 사유제한 조치를 도입하는 법개정을 권고할 수 있도록 함.

6. 기타 - 적용시기

① 기간제법은 2006년 7월 1일부터 적용하고
② 기간제법 중 차별시정 관련 조항은 2007년 1월 1일부터 적용(노동위원회 정비 등 준비기간 필요)
③ 파견법은 개정 즉시 적용하도록 하고 차별시정 관련 조항만 2007년 1월 1일부터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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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주

    상반기에 외쳤던.. 김태환 열사 정신 계승!은 누가 도둑질해갔냐?
    지하에서 통곡하실 김태환 열사께 드릴 말씀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