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과 차별 그리고 자본, 감염인의 생명을 노리다

[에이즈공동기획](2) - 강요된 침묵, 이제 감염인의 목소리를 들어라!

가장 두려운 공간, 병원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공간은 어디일까? 환자마다 다르겠지만, 치료과정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떠올린다면, 아마도 병원이 아닐까? 그러나 그 고통은 병을 치료하기 위한 과정이기에 병을 앓고 있는 대부분의 환자들은 자신의 건강을 되찾기 위해 망설임 없이 병원을 찾는다.

HIV감염인들과 AIDS환자들은 어떨까? 이들도 병원이 두려운 곳이긴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감염인들이 병원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한국감염인연대(KANOS) 이원진(가명) 사무국장은 “감염인들은 병원 입구에 들어서 항상 ‘나는 감염인이에요’라고 외치고 진료를 받는다”고 말한다. 어떤 의미일까? 그가 전하는 상담사례를 들어보면, 분명해진다.

“감염인 A씨는 진료의뢰서를 받아 3차병원에서 진료접수를 하려했지만, 병원직원이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접수를 거부했다. 그 감염인은 ‘왜 진료의뢰서가 있는데 접수가 안 되냐’고 항의했고, 잠시간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런데 접수를 담당하고 있던 직원이 옆에 있던 직원에게 ‘이 사람 에이즈 환자인데, 접수해줘도 되요’라고 물었다. 질문을 받은 직원은 정확한 답을 할 수 없었는지, 또 다른 직원에게 ‘저 환자가 에이즈 걸렸다는데, 접수해줘도 되요’라고 다시 물었다. 직원들 사이에는 질문에 질문이 이어졌고, 결국 이날 이 병원 접수창구에 근무하는 모든 직원들은 물론이고, 접수를 기다리던 사람까지 A씨가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난해12월 1일 세계에이즈의 날에 국가인권위 앞에서 열린 ‘HIV/AIDS 감염인 인권 사망 선고’ 기자회견. 인권위 앞에는 이날 에이즈로 죽어간 이들의 영정이 차려졌었다

“제발 이 병원에 왔다는 걸 소문내지 말아 달라”

감염인들이 병원에서 일상적으로 시달리고 있는 인권침해의 한 장면이다. 문제는 감염인들이 병원에서 무차별적인 신상정보 노출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이고, 진료자체를 거부당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이 모 씨는 라식 수술을 받기 위해 평소 다니던 안과를 찾았다. 한 번에 한쪽 눈밖에 수술할 수 없어 왼쪽 눈을 수술하고 한 달 후 오른쪽 눈을 수술하기로 했다. 왼쪽 눈을 수술하고, 다음 수술을 위해 기다리는 동안 이 모씨는 우연히 HIV 감염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시 수술을 받기 위해 안과를 찾은 이 씨는 담당의사에게 솔직하게 감염사실을 밝혔다. 그런데 사실을 들은 의사는 이 씨를 구석진 곳으로 불러 돈이 든 봉투를 쥐어주며 말했다. “제발 이 병원에 왔다는 걸 소문내지 말아 달라”

이 모 씨의 사례는 감염인들이 일반적으로 겪게 되는 직접적인 진료거부의 형태이지만, 감염인들은 진료거부를 당하지 않더라도 수술을 비롯한 치료과정에서 온갖 제약을 받는다. 감염사실을 이유로 입원을 거부당하고, 격리 치료가 필요치 않은 경우임에도 HIV 감염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격리병동에 수용되기도 한다.

감염인 은 모 씨는 자폐증상 치료 과정에서 검사를 받다가 HIV 감염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시 은 씨는 초기 감염단계로 면역력 저하가 거의 진행되지 않은 상태라 에이즈와 관련한 별도의 진료가 필요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자폐증 증상이 심화돼 입원할 병원을 여기저기 알아봤으나 소용이 없었다. 겨우 찾은 한 병원은 ‘2주 후 퇴원하겠다’는 각서를 요구했고, 이 씨는 창문도 없는 격리병동에서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무지와 편견, 의료인들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병원에서의 진료거부는 감염인의 건강권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몇 해 전 서울 시내 몇 몇 종합병원들이 급성 맹장염에 걸린 한 감염인의 수술을 거부해 환자가 18시간 가까이 거리를 헤맨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이처럼 쉽게 치료 가능한 질병에 걸려도 감염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적절한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는 게 감염인 단체들의 지적이다.

‘나누리+’ 윤호제 대표는 “의료서비스의 질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절대적으로 판단하기는 쉽지 않지만 감염사실이 확인되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드러나는 의료서비스의 차이는 감염을 이유로 한 질의 차별이 존재함을 입증한다”며 “많은 의료인들이 충분한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있음에도 두려움이나 편견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전히 한국 사회에는 에이즈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감염인들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존재하고, 이는 곧 감염인들의 의료서비스 접근을 가로막고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에이즈에 대한 비감염인들의 인식 수준이 과거보다는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 감염인들에 대한 태도는 곱지 않다. 한국에이즈퇴치연맹이 2003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자녀가 에이즈 감염자와 같은 학교에 다니도록 허용하겠냐’는 질문에 대해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허용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또 응답자 중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감염인들이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답변을 했고, 48%가 ‘감염인을 격리시켜야 한다’고 답변해 감염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여전히 견고함을 알 수 있다.

[출처: 한국에이즈퇴치연맹, 2003년 전국민 성행태 및 에이즈 의식연구]

또 감염인들에 대한 차별적 인식과 태도는 직접 의료현장에서 일하는 의료인들에게서도 똑같이 발견된다. 작년에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가 공중보건의사 39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에 응한 공중보건의사 대다수가 감염인의 의료이용 권리와 관련해 특별한 관리와 제한이 필요하다고 응답하는 등 일반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인식을 보였다. 이 설문이 의사협회가 회원들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실제 의료인들의 감염인들에 대한 태도는 더욱 부정적일 것으로 보인다.


[출처: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엄중석 한림대 교수는 의료인들이 감염인들에 대해 일반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태도를 보이는 이유에 대해 “의료인들도 HIV와 AIDS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엄중석 교수는 지난 달 열린 나누리+ 주최 토론회에서 “의료인들이 HIV와 AIDS에 대해 정확히 아는데도 불구하고, 감염인들을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며 “일반인들의 생각과 달리 의료인들 역시 HIV와 AIDS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고, 이는 곧 감염인들에 대한 황당한 차별로 이어진다”고 의료인들의 무지에 일침을 가하며 재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시장성 없는 한국 감염인들, 약 먹지마라?

의료인들의 감염인에 대한 인식과 태도의 문제와는 별개로 급여제한과 본인부담 등 취약한 보장성은 감염인들의 의료접근을 가로막는 또 하나의 장벽이다. 현재 감염인들에 대한 치료비는 국가가 100% 부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고혈압성질환, 당뇨병 등 개인이 일부 또는 전체를 부담해야 하는 수많은 비급여항목이 존재하고 있다.

또 에이즈 관련 의약품의 경우 현재 국내에 시판되는 10여 종에 한해서만 사후적으로 지원이 되고, 그 외 비용은 모두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 감염인들은 우선 자신이 직접 병원 진료비 또는 약값을 지불한 이후에 영수증을 보건소에 청구해 지원을 받는 방식이다. 따라서 감염인들의 손에 당장 현금이 쥐어져 있지 않다면 진료는 엄두도 내지 못하게 된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총 27종의 HIV/AIDS 관련 의약품들이 개발되어 있으나, 국내에서는 2000년 이후에 개발된 대부분의 의약품들이 시판되고 있지 않다. 의약품은 개발 즉시 수입되는 것이 아니라, 제약사에서 등재신청을 하고 보건복지부에서 승인을 해야 시판이 가능하다. 그런데 국내 HIV감염인들 중 약을 필요로 하는 에이즈 환자는 600여 명이 채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약자본 입장에서는 시장성이 있어야 하는데, 약을 필요로 하는 환자수가 적다보니 한국은 제약사들에게 매력적인 시장이 아니다. 결국 시장성이 없다는 이유로 환자들의 생명을 좌지우지 하는 의약품이 유통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는 얘기다.

수입되지 않는 의약품의 경우에도 개인이 희귀의약품센터에 자가치료의약품으로 신청을 하면 구입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정부의 지원이 없는 이상 개인이 지불해야 하는 한 달치 약값은 적게는 수십만 원에서 많게는 수백만 원에 달한다. 일례로 테노포비르(tenofovir)란 약의 경우 1개월 분 약 값만 70여만 원에 달한다. 통상적으로 에이즈 환자들은 세 가지의 약을 함께 먹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 달에 지불해야 하는 약값만 150만 원에서 200만 원 수준에 달한다.

정부가 의료공공성 확보와 권리 침해 규제 철차 마련해야

병원의 진료거부든, 턱없이 비싼 약값 때문이든 감염인들은 당장 치료받을 권리를 침해받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이들의 권리를 구제할 방법이 없다는게 감염인 단체들의 주장이다. 현행 의료법은 시설·과목이 없는 경우, 입원실의 만원 등 의료기관의 능력상 진료가 불가능한 경우를 제외하고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의 요구를 거부하지 못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러나 여러 사례에서 보듯 병원의 진료거부는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고, 또 직접적인 진료거부는 아니더라도 치료과정에서의 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윤호제 대표는 “국가가 감염을 이유로 한 의료서비스 이용에서의 차별을 방지하기 위해 적극적인 지원책과 지침의 마련뿐만 아니라 부당한 차별을 시정할 수 있도록 요구하고, 권리의 침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의료단체들은 감염인들의 의료접근권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의료의 공공성 확보가 무엇보다 강조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동숙 평등사회를위한민중의료연합(민의련) 회원은 “현재의 의료체제는 감염인들이 의료를 이용함에 있어 많은 부분을 개인의 부담으로 전가시키거나, 개인이 발로 직접 뛰게 만드는 불편함을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비급여 항목이 많고, 본인부담 비중이 높기 때문에 부담해야 하는 의료비는 높고, 이는 의료이용의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며 “HIV치료제에 대해서는 필수의약품으로 간주, 본인이 부담하는 항목을 없애는 방식을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HIV? AIDS?

HIV는 ‘Human Immunodeficiency Virus’의 영어 머리글자로써 우리말로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로 부른다. 에이즈를 일으키는 원인 병원체인 HIV는 인체 내에 들어와 면역체계를 파괴시키는 바이러스다. 또한 우리가 일반적으로 부르고 있는 에이즈는 ‘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의 영어 머리글자인 AIDS를 영어식으로 발음한 소리이며, 한글 병명은 후천성 면역 결핍증이다.

HIV 보균자:
HIV 검사를 실시하여 양성으로 나온 확진자. HIV 감염인은 외관상으로 구분이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증상으로 판단하는 것은 어렵다.

에이즈 환자:
HIV 감염인 중 면역기능이 현저히 저하됨은 물론 에이즈 특유의 여러 가지 임상증상이 나타난 상태의 환자이다.

HIV 보균자가 면역력이 약해져 AIDS 환자로 발전하긴 하나, 적절한 투약과 치료로 HIV/AIDS는 극복할 수 있는 만성 질환이다.

■KANO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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