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활동가들 경찰청인권보호센터 점거 농성 돌입

인권보호센터, "사무실 주인은 우리다. 나가라”


인권활동가들이 경찰청이 ‘인권경찰 비전 선포식’을 갖고 당찬 포부로 지난달 문을 연 구 남영동 대공분실에 위치한 경찰청 산하 '인권보호센터’를 점거하고 농성에 돌입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경찰폭력에 의한 농민 사망사건과 관련해 허준영 경찰청 사퇴와 관련자 처벌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구 남영동 대공분실은 군사정권 시절 민주인사들에 대한 고문으로 악명을 떨쳤던 곳으로, 고 박종철 씨도 이 건물 5층에서 경찰의 물고문에 의해 사망했다. 경찰청이 ‘인권경찰’의 상징으로 자랑하는 ‘인권보호센터’는 바로 윗 층인 6층에 위치하고 있다.

인권보호센터, “사무실 주인은 우리다. 나가라”

다산인권센터, 평화인권연대, 이윤보다 인간을, 인권운동사랑방 등 인권단체 활동가 5명은 15일 오전 11시 40분 경 남영동 대공분실 6층 인권보호센터에 기습적으로 진입했다. 이들은 인권보호센터 진입 직후 ‘농민집회 살인진압 허준영은 사퇴하라’, ‘민중생존권 짓밟는 노무현정권 퇴진하라’, ‘경찰청 기동단 전의경 해체하라’고 적힌 가로 8m, 세로 1m 짜리 대형 현수막을 창가에 내걸고 구호를 외치며 농성을 진행했다.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농성에 돌입하자 경찰은 “사무실의 주인은 우리(경찰)”라며 자진퇴거를 강력히 요청했다. 특히 인권보호센터소장인 안재경 총경은 이날 직접 활동가들을 향해 “당신들 어디서 왔냐? 남의 사무실에 들어와 이게 무슨 짓이냐?”며 격앙된 어조로 따져 물었고, 한때 직원들에게 현수막 철거를 지시하기도 했다.

계속된 퇴거 요청에도 불구하고, 활동가들이 이를 거부하자 경찰은 “형법상 퇴거불응죄에 해당된다. 계속 불응할 시 법에 따라 강제퇴거에 나설 수밖에 없다”며 공권력 투입을 여러차례 시사했고, 오후 12시 40분 경부터 건물 1층 현관에는 에어매트리스가 설치돼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다.

또 이날 인권활동가들은 인권보호센터 안에 고 전용철 씨를 추모하는 간이 분양소를 설치했고, 이 과정에서 경찰은 “주장하러 왔으면 주장만해라. 분양소는 절대로 설치할 수 없다”며 이들을 막아서 몸싸움이 발생하기도 했다.


“국민 때려 죽여 놓고 현장책임자 한 사람 처벌로 끝내려하나?”

이날 인권단체 활동가들은 성명서를 통해 14일 경찰이 발표한 중간수사 결과에 대해 “경찰은 진지하게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기 보다는 이종우 기동단장의 직위해제로 모든 것을 덮으려는 미봉책을 제시하고 있다”며 “이는 경찰이 국민을 때려 죽여 놓고 현장 지휘 책임자 한 명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씌우려는 얄팍한 술책”이라고 주장했다.

경찰은 지난 달 여의도 농민집회에 참석 후 사망한 고 전용철 씨 사인에 대해 그간 ‘경찰의 직접적 가격이 없었다’, ‘집 앞에서 넘어져 숨졌다’고 주장하며 관련 책임을 전면 부인해왔다.

그러나 14일 경찰청은 “고 전용철 씨가 집회 현장에서 ‘정지된 물체에 후두부가 충격을 받아 사망한 것’이라는 부검결과가 있고, 일부 기동대원들이 방패로 시위대를 타격하는 사례가 있었다”며 “집회에 참석했던 농민이 사망하고 다수 부상자가 발생한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며 우회적으로 전용철 씨 사망에 대한 책임을 인정했다. 또 “그 총체적인 책임을 물어 당시 현장 지휘책임자인 이종우 기동단장을 직위해제할 방침”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날 인권단체 활동가들은 경찰의 이같은 방침에 대해 “고 전용철 농민의 사망사건에 책임을 지겠다고 발표한 그날 경찰은 청와대 앞 농성장에서 다시 폭력을 휘둘러 농민 한 명의 코뼈가 주저앉게 만들었다”며 “인권을 후퇴시키려는 표리부동한 경찰의 태도 분노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들은 △경찰은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성실히 응할 것 △당시 현장 책임자와 직접적 가해 전의경 색출과 처벌 △경찰기동단 해체 △허준영 경찰청장 사퇴 등을 촉구했다.

안재경 총경, “한번에 다 되면 세상 얼마나 아름다워지겠는가”

한편, 이날 3시 30분 경 전국 35개 인권단체들로 구성된 인권단체연석회의 회원 10여 명이 농성 지지차 인권보호센터를 방문했다. 이들 중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와 김덕진 천주교인권위 사무국장은 인권단체 대표단 자격으로 안재경 총경과 약 30분 가량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박래군 상임활동가는 “경찰이 실질적으로 달라지는 모습은 없고, 인권경찰을 운운하며 인권보호센터를 만들고, 인권경찰 비전 선포식 등의 이벤트성 행사만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경찰이 직접 인권경찰직무규칙을 만들어 놓고, 그것도 제대로 안지키니 문제가 되는 것”이라며 “그 직무규칙에 따르면 시위 현장에서 다친 사람을 구호하게 되어있다. 그런데 구호는 커녕 오히려 다친사람을 찾아내 폭행을 했다”고 그간의 경찰 폭력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안재경 총경은 “한번에 다 되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워지겠는가”라고 반문하며 “시간이 걸리겠지만, 지적한 부분들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인권보호센터는 아무나 와서 얘기할 수 있는 곳"

또 안재경 총경은 농성 중인 인권활동가들에 대한 인권보호센터 측의 향후 조치를 묻는 질문에 기자들을 의식한 듯 “다른 곳도 아니고, 경찰 인권보호센터는 아무나 와서 얘기할 수 있는 곳”이라며 처음과는 다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한마디 상의도 없이 이렇게 들어와서는 무작정 항의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예의는 아닌 것 같다”며 점거 농성에 대한 불쾌함을 숨기지 않았다.

이에 대해 박래군 상임활동가는 “농성자들이 최소한 허준영 청장의 사법처리는 아니더라도, 사퇴는 해야지 농성을 풀겠다는 의지더라”며 우회적으로 강제 해산 여부를 재차 묻자, 안 총경은 “찾아 온 손님인데, 어떻하겠냐? 같이 농성해야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날 한 경찰공무원의 자리에는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이 가지런히 올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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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가다

    마지막 줄에 오타있어요. '이윤보다 인간을'이 맞습니다.

  • 상용

    공안과 경찰력... 살인을 저지르는 이들의 폭력의 맞서 인권의 이름으로 저항하는 당신들의 행동은 정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