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정책은 간 데 없고, ‘양극화 해소’만 나부낀 2005년

[2005참세상이슈](3) - '양극화 해소' 구호 속에 얼어 죽고, 타 죽어간 민중들

정치권, 너도나도 '양극화해소'

2005년 새해 벽두부터 대통령을 비롯해 여야 정치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양극화 해소’를 외쳐댔다.

노무현 대통령은 연초 신년기자회견에서 “더 이상 양극화 현상이 지속된다면 소득격차가 커지는 것은 물론, 성장잠재력과 사회통합의 기반마저 크게 훼손하게 될 것”이라며 기업간․산업간․근로자간 양극화 해소가 경기회복 이상으로 시급히 해결해야할 과제라고 강조했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은 양극화 해소 필요성의 강조와 함께 ‘통합’, ‘협력’, ‘양보’, ‘동반성장’ 이라는 수식어를 잊지 않았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박근혜 대표는 연초 여의도연구소가 주관한 사회복지 관련 토론회에서 “최근 쪽방과 탄광촌, 저소득층 아이들의 공부방을 방문하니 소외계층의 고통과 그늘이 얼마나 깊고 사회안전망이 얼마나 취약한지 절감했다”며 “계층간 양극화에 따른 공동체 해체의 위기 극복과 그늘 없는 세상을 위해 선진적 사회안전망 구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9월 22일, 사회양극화해소국민연대 발족 기자회견

양극화해소연대, 희망한국21, 국민통합연석회의

양극화에 대한 문제의식은 시민사회단체들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지난 9월 22일 참여연대와 민주노총을 주축으로 전국 132개 시민사회단체들은 ‘사회양극화해소국민연대’(양극화해소연대)라는 양극화 해소를 위한 공동대응 기구를 발족하고 “양극화해소, 사회통합,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국민적 연대운동에 나선다”고 밝혔다. 양극화해소연대는 당시 “현재와 같은 경제정책 및 사회정책의 기조가 지속된다면,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더욱 심화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라며 “직면한 경제사회적 위기 극복을 위해 부문별 개혁과제 추진은 물론 다수 국민의 삶의 물질적, 사회적 기반의 붕괴와 해체를 가져오는 정치의 흐름을 바꾸기 위한 국민적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천명했다.

양극화해소연대가 ‘정치의 흐름을 바꾸기 위한 국민적 행동’에 나서자 정부와 여당은 화답이라도 하듯 같은 달 26일 ‘희망한국21-함께하는 복지’(희망한국21)라는 이름을 붙인 사회안전망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는 양극화 해소를 위해 2009년까지 총 8조 6천억 원을 투입하고, △기초생활보장제도 내실화 △차상위계층에 대한 빈곤예방 및 탈빈곤 정책 강화 △사회안전망 추진체계를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또 정부의 화답은 여기에 머물지 않았다. ‘희망한국21’ 발표에 이어 10월 12일 노무현 대통령은 양극화 문제를 비롯해 경제사회적 의제를 다룰 범사회적 협의 틀을 제안하고 나섰다.

그야말로 2005년은 정치권, 시민사회단체 할 것 없이 정치․사회 제세력들이 양극화 해소를 목 놓아 외친 한 해였다. 그러나 2005년 빈민들의 삶은 이들의 외침을 비웃기라도 하듯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져만 갔다.

짐수레 위에서 죽고, 불타죽고, 얼어 죽고

1월 서울역에서는 이른바 ‘노숙인 난동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서울역 역사에서 쓰러져있던 한 노숙인이 철도공안원들에 의해 짐을 나르는 손수레에 실려 가다 사망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동료노숙인 주검의 비인간적인 처리를 목도한 노숙인들이 경찰에 의해 시신이 탈취되 듯 수습되자 노숙인들의 분노가 폭발해 발생한 집단적 저항이었다. 이 사건이 발생한 날은 노무현 대통령이 신년기자회견에서 양극화 해소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빈곤 소외계층이 곤경에 처했을 때 우선 보호조치를 하고, 나중에 절차를 밟는 ‘선보호제도’를 적극 시행하겠다”고 밝힌 지 불과 10일이 채 안 지난 1월 22일이었다.

  1월 22일, 노숙인들이 동료노숙인 주검의 비인간적 처리와 경찰의 시신탈취에 항의하며 항의하고 있다.

또 지난 7월에는 한 여중생이 돈이 없어 전기료를 못내 단전된 집에서 촛불을 켜놓고 자다 화재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어디 이뿐이던가, 연일 한파가 이어지던 지난 19일에는 경남 함안에서 장애인 조 모 씨가 방안에서 누운채로 동사한 채 발견됐다. 노후된 보일러가 터져 방안으로 물이 들어왔으나, 근무력증을 앓고 있어 움직일 수 없었던 조 씨는 이불을 덮은 채로 동사했다. 이렇게 2005년 빈민들은 얼어죽었고, 타 죽었고, 짐수레에 위에서 죽어갔다.

말로만 ‘양극화 해소’, 실질적인 복지정책은 전무


빈민의 삶은 파탄나고 있었지만, 정부는 양극화 해소의 필요성만 강조할 뿐 양극화 해소를 위한 실질적인 복지정책 추진에는 침묵했다. 노무현 대통령을 필두로 정부의 행정관료 및 정치인들은 2005년 내내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 간 임금격차가 커 근로자간 양극화가 발생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더니만, 실질적으로 저임금불안정 노동자와 빈민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정책들에 있어서는 ‘예산이 부족하다’, ‘경제가 어렵다’는 논리로 외면했다.

  6월 28일, 최저임금위원회 제 5차 전원위원회 모습

올 6월 열린 최저임금심의위원회에서는 노동계의 퇴장 속에 2006년까지 적용될 최저임금이 시급 3,100원, 8시간 기준 일급 24,00원(주 44시간 기준 월 700,600원)으로 결정됐다. 전년에 비해 시급기준 260원 오른 이 금액을 두고, 정부는 작년에 비해 9.2%나 인상됐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노동계가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전원 사퇴하면서까지 정부와 사용자위원들의 안에 반대했던 것은 주 40시간제 도입을 고려하면, 월급 기준 0.99%(6,060원) 인상된 647,900원에 그친다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주 40시간제 도입에 따른 연월차 삭감까지 고려하면, 실질적인 삭감안이라는 게 청소용역노동자들을 비롯한 노동계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정부와 사용자들은 아시아나와 대한항공 조종사노조가 파업할 때는 ‘비정규직과의 임금격차’를 들먹이며 탄압을 하더니만, 저임금 노동자들의 ‘생존권 보장’ 요구에는 ‘기업이 다 죽어간다’라는 논리를 들이댔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생존권도 보호하지 않으려는 자본과 정부의 결탁 속에 참여정부의 ‘일을 통한 빈곤탈출’이라는 복지정책 기조는 공허해져만 갔다.

극빈층에 대한 정부정책 역시 공허하기는 매한가지였다. 한국 사회 유일한 사회안전망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내실화하겠다’며 ‘희망한국21’을 발표했지만, 막상 국민기초생활보장법(기초법)의 문제점을 그대로 방치한 채 기초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오히려 ‘희망한국21’에는 “근로능력있는 기초수급자 중 자활사업 불성실 참여자에 대한 제재 강화 등 조건부 수급제도를 더욱 엄격히 시행한다”며 조건부 수급 조항을 강화하는 이른바 ‘도덕적 해이 방지대책’를 포함시켰다.



‘양극화해소’라는 정치적 구호는 이제 그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800만 명에 육박하고, 빈곤계층은 적게 잡아도 50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절대다수의 노동자들이 빈곤해지고 있는데, 도대체 정부가 말하는 ‘양극화’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일자리가 없을뿐더러, 일을 해도 가난해질 수밖에 없는 조건에서 2005년 정부가 한 일이라곤 ‘양극화 해소’라는 정치적 구호를 외치면서, 실제로는 빈민들을 저임금․불안정 노동시장으로 떠밀어 놓은 것 밖에 없지 않은가?

대통령을 비롯해 참여정부의 관료들은 간혹 운동진영을 향해 ‘구호로는 안된다’는 얘기를 하곤 한다. 되묻고 싶다. ‘양극화 해소’라는 구호 말고, 또 최저임금을 깍아내리고, 빈민들을 방치하고, 비정규직법안을 개악하고, 농민들을 거리로 내모는 것 외에 정부가 내놓은 복지정책이 무엇이었는지... 빈민들이 가난 때문에 타 죽고, 얼어 죽고, 거리에서 죽어 간 2005년 한 해 동안 당신들은 무엇을 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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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 , 양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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