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를 쓰레기통에 처박았노라!

[기고] 레이 아시스 아시아학생연합 활동가

홍콩에 왔노라!
민중행동주간에 투쟁했노라!
WTO를 쓰레기통에 처박았노라!
그리고 이겼노라!


이말이 지난 12월 홍콩에서 열린 6차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 기간 동안 진행된 반WTO 민중투쟁주간의 승리를 잘 묘사 하는 말일 것이다.

각양각색의 술수와 선전에도 불구하고, 수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수백 개의 선전물들을 흔들어댔다. 6차 각료회의가 열린 컨벤션센터(CEC)의 창가에서 봤다면 이 모습은 해일이 밀려드는 신기루 처럼 보였을 것이다.

다양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세계 각지, 각 국에서 모여, 무수히 많은 창의적인 계획과 축적된 운동, 행동, 선전물들을 이용해 격렬하게 WTO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우리는 승리했다.

정말로 우리는 승리했다. 왜냐하면 2005년 12월 11-18일까지 진행된 민중행동주간(PAW)의 바로 그 목표를 쟁취했기 때문이다. 그 목표는 “WTO에 반대하는 저항”으로 직접 번역되는 “꽁이 사이 무”이다.

  단식돌입 기자회견 장면. [출처: 홍콩민중동맹]
홍콩민중행동은 반민주적이고 폭압적인 기구에 분노를 표하고 이런 입장을 가진 국내외 조직들을 연계하면서, 이 목적을 위해 필요한 공간을 마련했다.

회의와 협상이 진행되는 컨벤션센터(CEC)를 향해 수영을 한 한국인들에서부터 겨우 몇 발걸음 떼고 머리를 땅에 숙이는 한국인들에 이르기까지, 상징적인 연와시위를 했던 필리핀인들과 다양한 언어로 얼굴에 페인트를 칠하고 “WTO를 쓰레기통에"를 외쳤던 학생 및 젊은이들 그리고 커다란 꼭두각시 인형에서 선동가요, 큰 소리로 외쳤던 구호까지, 우리는 가장 창의적이고 효과적인 형태로 저항을 표출했다.

또, 홍콩언어, 전통적인 중국어로 번역조차 되지 못했던 홍콩 선언의 발표는 농업협정, 서비스협정, 또는 심지어 비 농산물 시장접근에서 조차도 의미 있는 합의를 전혀 도출해내지 못한 것을 포장한 것에 불과했다.

홍콩 선언은 이 각료회의를 묘사하기에 충분한 한 단어 ‘실패’를 조심스럽게 말로 늘어놓은 것에 불과했다.

WTO의 잔인함

WTO 각료회의를 탈선시키는 것이 몇몇 조직의 목표일 수 있듯이, 몇몇 조직에게는 WTO에 대한 그들의 입장을 알리는 것이 목적일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은 각료회의가 단지 착취자들과 억압하는 자들, 국가와 기업들이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한 선전대에 불과하다고 믿고 있다. 칸쿤의 사례에서처럼, 한국의 이경해 열사의 자결도 WTO가 5차 각료회의에 뒤이은 몇 차례의 미니 각료회의와 밀실협상을 통해 인간에 앞선 이윤추구를 막지 못했다.

WTO를 멈추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억압과 수탈 시스템에 반대해 일어서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민중을 섬기고 보호해야 할 정부와 기업이 민중들을 희생시키려고 공모한다는 것을 증명해 온 각 나라에서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다.

900명이 연행되다.

12월 17일 반 WTO 저항행동에 참가했던 1300명이 넘는 집회 참가자들을 대규모로 줄줄이 연행한 것보다 이 상황을 더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이다.

홍콩 경찰은 야만적이고 잔혹한 폭력을 이용해 집회참가자들이 컨벤션센터(CEC)에 접근하는 것을 막았다. 7시에는 이들을 둘러쌌고, 그들이 연행되어 한사람씩 수갑을 찼던 새벽 1시에서 다음날 오후 3시까지 비상경계선을 쳤다. 이들이 밤새 괴로움을 겪는 동안 그들은 경찰로부터 물이나 음식을 전혀 공급받지 못했다.

  홍콩시민 동조단식자들이 노숙 농성을 하고 있다. [출처: 홍콩민중동맹]
그 주간 후에, 우리는 길을 걷고 있던 사람들 또한 피해를 입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한 여성 참가자는 경찰에게 뺨을 맞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충격탄이 사용되었으며, 병원에 입원한 집회참가자가 경찰에 의해 강제로 끌려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결국, 1300명 중 14명 만이 불법시위와 관련해 기소되었다.

연대를 표현하다.

민중투쟁국제리그(the International League of People's Struggle)는 여전히 빅토리아 공원에 남아있던 다양한 단체들과 함께 사태를 파악하고, 물과 음식물을 들고 시위 장소까지 행진했다. 행진을 하고 있던 수보다 더 많았던 경찰병력 중 나머지는 도로를 막아섰다.

계속 살아왔건 우연히 거기에 있었던 사람이건 집회 참가자들은 홍콩 사람들로부터 매우 따뜻한 환대를 받았지만, 이와는 반대로 쓸모없고, 터무니없는 그런 적대적인 세력으로 비춰졌다.

모두는 아니라고 해도 대부분이 이들에게 격려의 메세지를 보냈다. 어떤 사람들은 돈이나 음식을 주기도 했다. 또 어떤 이들은 현장에서 통역을 자원해서 해주기도 했다. 집회참가자들이 12월 18일 매우 이른 아침까지 계속 끌려가고 있을 때, 우리는 홍콩 사람들도 경찰이 아닌 집회참가자들을 지지, 격려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반WTO 투쟁, 12월 17일의 사건은 목소리를 높이고 단결할 수 있는 권리와 자유를 단순히 행사한 사람들을 잡아가는 국가의 잔혹성-여기서는 경찰로 대표되는-을 스스로 목격하며, 홍콩 사람들의 눈을 뜨게 만들었다.

민중행동주간(PAW)을 마감하는 12월 18일 집중 집회에는 더 많은 홍콩 사람들이 길 옆의 구경꾼이 아닌 집회에 동참하는 참가자로 나섰다.

요약하자면

2006년 1월 11일은 WTO에 저항하는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날이었다. 기소된 14인 중 12인이 7일간 단식투쟁을 이미 진행했고, 이를 지지하는 120명이 넘는 활동가들과 개인들이 하루 동조 단식을 진행했다.

  촛불 문화제의 모습 [출처: 홍콩민중동맹]
동시에 이 날은 쿤통 법원이 불법집회로 기소된 14명중 11명을 석방한 날이기도 했다. 남아있는 세 명은 모두 한국인이었고 한국의 각 조직에서 핵심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이들은 여전히 기소되어 있으며 심리에 출석하기 위해 3월에 다시 홍콩으로 돌아와야만 한다. 그러나 그들은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터무니없이 많은 3만 홍콩 달러를 보석금으로 내야만했다.

1,300명이 대규모로 연행되었을 때의 경험과 마찬가지로 이 경험에서도 보안당국이 민중의 입장과 이해가 아닌, 민중을 억압하고 학대하는 기구를 보호하고 있는 자본주의 국가라는 것을 드러냈다. 이건 단지 홍콩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다른 어떤 국가에서도 마찬가지의 현실일 것이다.

WTO는 궁극적 목표인 이윤을 획득하기 위해서 그 무엇에도 굴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시애틀 전투, 칸쿤의 이경해 그리고 그들만의 이기적인 이익 때문에 조용히 고통 속에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죽어간다는 것을 그들을 잊겠지만, 우리는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정말로 우리는 잊지 않을 것이다.

WTO반대 투쟁에서 큰 도약을 하면서 새로운 가슴과 정신을 얻어냈기 때문에, WTO와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은 격렬해지고 있다.

번역- 변정필 한노정연 연구원
덧붙이는 말

레이 아시스(Rey Asis) 님은 아시아학생연합(ASA) 활동가이자 홍콩민중동맹 미디어팀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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