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노동운동에 헌신해온 조문익 동지 별세

[부고] 향년 43세. 7일 별세, 전북대병원 영안실 2층, 5일장

[근조] 삼가 조문익 동지의 명복을 빕니다.

[출처: 참소리]

민주 노동운동에 헌신해온 조문익(향년 43세) 동지가 교통사고로 7일 밤 9시 50분경 운명을 하셨습니다. 이날 장수군 번암에서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제설차의 사고로 다시 돌아올수 없는 길을 떠났습니다.

고인의 유해는 전북대학교 대학병원 영안실에 안치됐습니다.
빈소는 전북대병원 영안실 2층입니다. ☎(063)250-2450

고인의 아내 이현선 님, 상주(喪主) 아들 조용화 조용창 군, 친형 조창익 님과 친동생(3인), 부모님 등 유족들은 노동시민사회단체 인사들과 장례를 엄수키 위해 장례일정 협의에 들어갔습니다.

민주노총 전북본부(본부장 신동진)은 8일 유족과 협의해 각 시민사회 민중단체 등 제 단체에 장례위원회 구성을 위한 절차 마련에 들어갔습니다. 장례위원회에서는 8일 오후 2시 위원회 논의를 거쳐 발인, 영결식, 운구, 안장, 장지 등의 장례일정을 주관키로 했습니다.

고 조문익 장례준비위원회 관계자는 “고인의 명확한 사인을 규명한 후, 꾸려질 장례위원회에서는 유족과 협의해 민주노동 열사 5일장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출처: 참소리]

고인은 80년대 학생운동과 90년대부터 민주노총 등의 활동을 통해 항상 투쟁의 현장에서 민주 노동운동에 몸을 아끼지 않았으며, 노동열사추모사업회, 노동포럼, 노동자학부모연대, 인터넷 매체 미디어 운동, 이주여성을 위한 논실마을 운영 등 각계와 연대해 폭넓은 활동을 해왔습니다.

삼가 선배노동자로 모범을 보여주었던 고 조문익 동지의 명복을 빕니다.

<고 조문익 동지가 살아온 길>

1964. 3 전남 곡성 출생
오산초등학교, 남성중학교 졸업
1982. 남성고등학교 졸업
1983. 고대 철학과 입학, 민주화 운동으로 제적
1985. 전북대 철학과 입학
1990. 전북대 철학과 졸업
1992. 전북지역노동조합연합회 간부 활동
95~2005 민주노총 전북본부 활동(교선국장,사무처장, 부본부장)
한일노동자연대 활동
2002 참소리 상임운영위원
2003 한일장신대학교 NGO 정책대학원 입학
2004 민주노동당 전북도당 정책위원
2005 민중언론 참세상 창간 제안자
2005 호남사회연구회 분과위원
2005 장수 논실마을 운영
2006. 2. 한일장신대학교 NGO 정책대학원 졸업 예정
2006 민주노동당 전북도당 정책위원회 부위원장, 참소리 상임운영위원
덧붙이는 말

출처 - 참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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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동자

    전 고인을 모릅니다.
    그래서 관련기사를 읽어봤지요.
    가슴이 아프네요.
    좋은 동지를 잃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문익동지의 명복을 빕니다.

  • 백승연

    참으로 가슴이 아픕니다.
    아직도 하실일이 너무나 많을텐데..
    몇년전 애니어그램 교육받을때 조문익동지가 아이와 함께 올라와 '영성프로그램'에 대해 강의할때 정말 감명깊게 들었지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

    사회는 날로 잔인해지고 민중의 슬픔은 바다처럼 깊어가는데, 지도분파들은 갈래길을 내놓고 고성을 높이고 있기 하시절, 맑고 차분한 님이 생을 달리하게 되다니, 아쉽고도 허망합니다.
    님과 어울릴 세상이 아니었나봅니다. 내세에는 그 몸에 어울리는 행복을 누리시길 기원합니다.

  • 이상윤

    선배동지들의 힘찬 투쟁이 있었기에 단결과 전진, 그리고 승리있습니다. 거듭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송석현

    3년 전 활정조 토론 때와 맑스 코뮤날레 때 등 몇 차례 뵈었던 조문익 동지의 웃는 얼굴이 기억납니다.

    고인은 항상 웃고 계셨지요. 그리고 스스로를 영성 맑스주의자로 칭하시면서 맑스주의 운동의 새로운 걸음을 만들고자 노력하셨지요. 상대방과 생각의 차이가 나도 끝까지 잘 듣고 이해하려고 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조리있게 전달하려고 노력하셨지요. 아마 맑스주의 운동 진영 내부에서는 '구성의 정치'를 해야 한다는 고인의 신념에 기초한 것이었다고 생각해봅니다.

    아는 것도 많으셨고, 말도 잘하셨고, 무엇보다 실천도 잘 하셨던 동지였습니다.

    고인과 한솥밥을 먹을 뻔 했는데, 좀더 가까워질 수도 있었는데, 서로 같이 운동한다는 것을 더 깊이 느끼면서 함께 즐거워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채 동지를 저 멀리 보내고 말았습니다.

    지금 동지는 우리 곁에 없지만, 우리는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고 조문익 동지의 죽음은 우리 운동사에서 참으로 커다란 슬픔입니다.
    동지를 진심으로 애도합니다.

  • 운수노동자

    다 잊고 평안히 가십시요
    뒤 늦게 접한 동지의 안타까운 소식에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