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관계 사진 찍어 동성애자 사실 입증해라”

군대 내 동성애자 인권침해 심각

만약 누군가가 나의 성적지향을 확인한다며, 성관계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요구한다면 어떨까? 말도 안되는 소리 같지만, 2006년 한국의 군대는 동성애자들에게 이같은 요구를 하고 있었다. 15일 안국동 느티나무카페에서 인권단체연석회의 주최로 열린 ‘군대 내 동성애자 인권침해 규탄과 군 당국의 조속한 해결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에서 소개된 한 인권침해 사례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군 당국, 성관계 횟수·성관계 사진 요구

2005년 6월 모 사단 신병교육대에 입소한 동성애자 A씨는 군생활 관련 상담을 하는 도중 담당 간부에게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혔다. 신병이면 누구나 그렇듯 군생활이 힘들었던 A씨는 상담을 통해 군생활의 어려움을 해결해보고자 했다. 그러나 A씨는 상담 뒤에 오히려 심각한 인권침해와 차별에 시달려야 했다. 상담내용에 대한 비밀유지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이곳 저곳 불려 다니며 온갖 조사를 받아야만 했다. 해당부대는 A씨의 의사와 상관없이 에이즈 검사를 받게 하고, 해당 이메일 내용까지 검열하려 했다.

뿐만 아니라 해당부대는 A씨에게 ‘정신질환으로 전역을 시켜주겠다’며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입증할 것을 요구했다. 현재 국방부령 제 556호 등 징병신체검사규칙에서는 동성애를 질병 및 심신장애로 규정하고 있다. 해당부대는 A씨에게 남성과의 성관계 횟수를 물어보고, 심지어 100일 휴가 당시 남성과 성관계를 갖는 사진을 찍어 제출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미 심각한 인권침해에 시달리던 피해자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부대 측의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8일 최초로 A씨를 상담한 정욜 동성애자인권연대(동인연) 활동가는 “피해자는 처음에는 전혀 전역을 고려하지 않았고, 군대에서 잘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다”며 “단지 군대 생활에서 몇가지 어려운 점이 있었고, 이를 솔직히 말하고 해결하고 싶어했다”고 전했다.

정욜 활동가는 이어 “그러나 원치않게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 피해자는 온갖 인권침해와 성폭력에 시달려야만 했다”며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피해자는 부대 측의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피해자를 만났을 때 그는 이미 자살을 결심하고 있었다”며 당시 피해자의 심각한 상황을 전했다.

인권단체,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구제조치 요청


동인연 측은 상담이후 A씨의 동의를 얻어 지난 10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과 긴급구제조치를 요청하는 한편, 정신과 진료를 받도록 조치했다. 긴급구제조치란 인권위에 접수된 진정이 최종 결정되기 이전이라도 진정 조사 대상의 인권침해행위가 계속 중에 있다는 상당한 개연성이 있고, 이를 방치할 경우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될 때 취하는 조치다. 이는 현재 진행 중인 중대한 인권침해로부터 피해자를 구조하거나 증거인멸을 막고 증인이나 제보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한편, 동인연에 따르면 A씨의 진료를 담당한 용인정신병원 진범수 진료과장은 “정신진단 결과 심한 우울증, 자기비하감, 수면장애, 식욕저하, 불안초조의 증상을 동반한 주요우울증 증상을 앓고 있다”며 “환경적 스트레스가 지속될 경우 증상의 악화로 자·타해 시도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아 정신과적 입원치료를 통해 약물 및 상담치료가 병행되어야 할 것”이라는 소견을 밝혔다.

“군대 내 인권 가이드라인 조속히 마련되어야”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이번 사건에 대해 “군대 내에서 동성애자에 대한 일관된 인권지침 혹은 가이드라인이 없고, 지금까지 사례를 보면 대부분 정신질환으로 간주돼 의과사 제대하게 된다”며 “군대 내 동성애자에 대한 인권 처리지침이 조속히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경 동인연 활동가는 “A씨의 경우 이외에도 많은 동성애자들이 군대 내에서 성폭력과 인권침해의 고통을 겪고 있다”며 “이번 사건은 군대 내 동성애자 인권침해 중에서도 가장한 심각한 사례”라고 지적했다. 또 그는 “군대 내에서 마치 동성애자들이 이성애자들에게 성폭력을 행사하는 것 처럼 왜곡되고 있지만, 이번 사례에서 보듯 오히려 남성동성애자들이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이어 이경 활동가는 “이번 사례에서 보듯 군 당국은 병사들이 차별과 폭력, 그리고 인권침해를 당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방치하고 있다”며 “군대 내 동성애자에 대한 성폭력과 인권침해 문제는 일반 사병들에 대한 처우 개선과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인권단체들은 △피해자의 조속한 전역 △동성애 행위 처벌조항인 군형법 제92조 삭제 △동성애를 질병 및 심신장애로 규정하고 있는 국방부령 제556호 징병신체검사 등 검사규칙 폐지 △군대 내 인권교육 지침과 인권 가이드라인 마련 등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