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민간의료보험사의 보험료 수입이 GDP의 1.4%에 육박할 정도로 시장규모가 확대되고 있지만, 낮은 지급율과 과다한 보험료 책정 등으로 의료 보장성은 매우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간의료보험 수입규모 7조6천억, 그러나 보장성 취약해
21일 강기정 열린우리당 의원 주최로 열린 ‘국민건강보험과 민간의료보험의 바람직한 발전방안 모색’ 공청회에 참석한 이진석 충북대 교수에 따르면 생명보험사 등의 민간의료보험의 가구당 가입율은 2003년 기준 88.5%로 평균 10가구 중 9가구가 가입돼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2001년 이후 보험업계의 전체 보험료 수입은 연평균 2% 증가한데 반해 민간의료보험은 매년 15%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어 전체 민간의료보험사의 수입규모는 7조6천억 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추정됐다. 이진석 교수는 “민간의료보험사의 전체 수입을 국민건강보험으로 흡수할 경우 암이나 심장질환 등 중증환자와 백혈병 등 희귀난치병환자를 모두 무상으로 진료하고도 남는 규모”라며 “국내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은 04년 국내 GDP의 0.9~1.4%를 차지하여 99년 유럽평균인 0.5%의 2-3배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같은 민간의료보험의 수입규모에 비해 지급율(보험료수입 대비 보험금지급비율)은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평균(80%)에 훨씬 못 미치는 60%선에 불과했다. 이진석 교수는 이에 대해 “낮은 지급율은 민간의료보험사의 과다한 사업비 비율 때문”이라며 “국내 민간의료보험사의 사업비 비율은 유럽 국가들의 10-15%에 비해 3배(38.9%) 가량 높게 나타났다”고 낮은 지급율의 원인을 짚었다.
이어 이진석 교수는 “과다한 사업비는 보험료에 그대로 반영되어 전체 보험료 중 관리운영비라고 할 수 있는 부가보험료가 40% 수준으로 추정된다”며 “가입자가 낸 보험료 중 절반 가량이 주주이익배당, 인건비 등 보험사 몫으로 들어간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 2003년 국내 23개 생명보험회사들은 사망보험 예정사업비를 실제사업비(3조5천281억) 보다 무려 5조3천925억이 초과된 8조9천207억 원으로 책정하고 있었다. 이렇게 과다하게 부풀린 사업비는 고스란히 가입자의 보험료로 전가된다는 게 이진석 교수의 지적이다.
“실손형 민간의료보험,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위축·국가보건정책 사실상 무력화”
한편, 이진석 교수는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대책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는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에 대해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냈다.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이란 가입자가 부담한 진료비 실비를 보장해주는 민간의료보험상품으로 오는 3월 출시를 앞두고 있다.
이진석 교수는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을 구매한 계층은 공보험의 보장성 확대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될 것”이라며 “따라서 보험업계와 실손형 민간의료보험 구매계층은 공보험의 보장성 확대에 부정적인 경제적 동기를 가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그는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이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도입될 시 “경제적 구매 능력에 따른 의료이용의 양적·질적 격차가 확대되는 부작용 발생이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또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이 국민건강보험의 법정본인부담금을 실비로 보상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과 관련해 “국가보건정책의 중요한 수단을 사실상 무력화시키는 결과를 야기할 것”이라고 경고하며 “민간의료보험이 국가보건정책의 취지를 훼손하는 결과를 야기하지 않도록 영역을 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진석 교수는 국민건강보험과의 상호보완적 관계 설정을 위한 민간의료보험의 기본 방향으로 “△민간의료보험의 발전이 공보험의 재정적 위험을 경감시키고, △국가보건정책의 수단을 훼손하지 않아야 하고, △공보험의 보장 영역이 아닌 위험을 보장함으로써 국민건강보장의 완결성을 제고하는 데 기여하고 △신의료기술의 개발과 활용을 촉진시켜야 한다”고 제시했다.
재경부·복지부, 민간의료보험 도입 두고 시각차
한편, 이날 공청회에 참석한 재정경제부와 보건복지부 관계자들은 민간의료보험 도입을 두고 다소간의 시각차를 나타냈다.
재경부 조원동 경제정책국장은 “민간의료보험은 정액형에서 실손형으로 진화·확대되어 많은 국가들이 보험사와 의료기관간 계약 등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의료공급량을 관리하고 있다”며, “민간보험 역할을 신기술, 고급진료 위주로 설정하면 공보험과 다른 독자영역 개척이 가능하므로 반드시 경쟁관계로 인한 공보험 위축을 초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이상용 보험연금정책본부장은 “미국, 스위스, 독일 등 민간보험역할이 큰 국가의 의료비 지출이 OECD 국가들의 8.3%에 비해 10~14%로 1~3위를 차지하고 있다”며 민간의료보험 도입에 따른 국민의료비 지출 증가 등의 문제점을 지적한 후 “민간의료보험이 보건의료정책의 틀 속에서 기능할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장치를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