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관념속에 성폭력은 그렇게 존재하는가?"

여성계, 민언련 등 “일반인으로서도 명백한 성범죄, 강력 처벌할 것”

27일 최연희 한나라당 사무총장의 여기자 성추행 파문이 뒤늦게 밝혀졌다. 지난 24일 한나라당 당직자들과 동아일보 기자의 간담회 겸 만찬 자리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이에 대해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을 비롯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여성계는 “최연희 사무총장에 대한 한나라당의 중징계는 물론 강력히 처벌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27일 성명을 통해 "최연희 사무처장의 성추행 사건에 대한 변명이라는 것이 관념적으로 성폭력을 성토하고 대책을 호언장담하던 사람들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냐"며 되묻고 "성폭력 문제가 실은 도처에 널려있는 일상의 범죄라는 사실, 자신도 자유롭지 못한, 이렇게 온 국민의 시선과 언론의 눈이 집중된 시기임에도 무엇을 조심하고 감춰두어야 했는 지도 모를 만큼 둔감한 성폭력 관념"이라고 꼬집었다.

여연은 같은 날 성명에서 “한나라당은 최연희 국회의원을 즉각 중징계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할 것”은 물론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 제소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여연은 “국회의원 신분을 떠나서 일반인으로서도 명백한 성범죄이자 강력하게 처벌되어야 하는 범죄”라며 “이러한 성폭력 범죄가 제대로 처벌되지 않는 다면 우리 사회는 또다시 성폭력 문제를 은폐하는 역사적 과오를 저지르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여연은 “술에 취해 음식점 주인으로 착각해 실수를 저질렀다”고 해명한 최연희 사무총장의 발언에 대해 “여성의 성에 대한 의식이 완전히 왜곡되어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라며 “이번 성폭력 사건은 우리 사회의 상층까지도 여성에 대한 성범죄가 얼마나 묵인 가능한 것으로 인식되어 왔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밝혔다.

"신권언유착, 이 정도냐?"

한편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민언련)도 성명을 내고 이번 성폭력 사건의 발단은 신권언유착이라고 주장했다. 민언련도 우선 여연과 마찬가지로 “최 의원의 행태는 명백한 실정법 위반”이라며 “이번 성범죄는 ‘당직사퇴’ 정도로 눈감아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밝혔다.

또한 민언련은 “당의 최고위 관계자들과 신문사 간부들이 이런 술자리를 갖는 일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치부되는 현실이야말로 우려할 대목”이라며 “한나라당과 동아일보의 끈끈한 ‘신권언유착’ 행태가 정치인이 언론인에 대해 가져야 할 최소한의 ‘경계심리’마저 무너뜨려 성범죄로까지 나아가게 한 눈에 보이지 않는 근본 원인이 아닌가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한국성폭력상담소 27일 성명서

당신들의 관념속에 성폭력은 그렇게 존재하는가?

연일 성폭력 보도가 차고 넘치던 와중에 새로운 사건이 또 한번 국민을 경악시켰다. 한나라당 최연희 사무처장의 성추행 사건, 그리고 변명이라고 내뱉은 ‘음식점 주인’ 발언. 관념적으로 성폭력을 성토하고 대책을 호언장담하던 사람들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일까. 당의 명예와 위용을 걸고 책임져야 할 이 나라의 성폭력 문제가 실은 도처에 널려있는 일상의 범죄라는 사실을. 자신도 자유롭지 못한 어느 구석에서 시작되는 문제임을. 이렇게 온 국민의 시선과 언론의 눈이 집중된 시기임에도 무엇을 ‘조심’하고 ‘감춰두어야’ 했는 지도 모를만큼 둔감한 성폭력 관념!

성폭력은 도처에 일상적으로 존재한다. 십년전에도 그러했고 어제도 그랬다. 그러나 ‘성폭력’은 따로 있다! 우리들의 관념 속에, 우리들의 의식과 말 속에 성폭력은 따로 있다. 그것은 너무나 더럽고 추악하고 끔찍한 것이기에 정신병자의 소행이 분명하고, 전 국가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저것은 성폭력이 분명하지만, 이것은 성폭력이 결코 아니다! 나는 이러 저러한 이유로 가해자가 아니고, 저 사람은 이러 저러하기 때문에 피해자가 될 수 없다! 저 뉴스 속 성범죄자는 정말 극악무도한 인간말종이다, 그러나 내가 한 이 ‘경미한’ 짓은 ‘그깟 일로’ 문제삼는 피해자가 신경과민이다, 딸 같아서, 동생 같아서 예뻐 했을 뿐! ‘순결한 여자도 아니니까’ 성매매 여성은 성폭력 피해자가 될 수 없다, 그 시간에 그런 옷을 입었으니 유혹한 게 분명하다, 나는 아니다! 이것은 결코 그것이 아니다!

우리들의 관념 속에는 ‘할 만한 일’과 ‘하지 못할 짓’이 나눠어있다. 또 ‘해도 될 여자’과 ‘해서는 안될 분’이 양 극으로 나뉘어 있다. 그 기준은 남성중심적인 사고방식에 친근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용산 초등학생 성추행 살해사건은 ‘해서는 안될’, 순결하고 의심할 일 없는 대표격인 ‘어린이’와 ‘하지 못할 일’의 대표격인 살해, 시체 유기라는 양 극단이 결합되어 초강력 스펙터클 사건이 되었지만, 그 ‘중간 단계’의 수없는 성폭력은 사건화되지 못하고, 고소할 만한 일이 아니게 되며, 기소할 만한 일이 아니고, 처벌할 만한 일이 아니게 된다.

국회의원이 드나드는 ‘음식점 주인’이 피해자였더라면 사과를 요구할 수 있었을까? 요구했다면 국회의원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고소를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혹은 이 사건이 사내 회식 자리에서 직속 상사로부터 있던 것이라면 이 사건은 어떻게 되었을까?

저 바닥에서 기고 있는 고소율의 관문을 넘고 그 까다롭다는 기소율의 관문을 넘고 결코 만만치 않은 유죄판결 가능성을 넘어 처벌이 되고 나서 이 과정을 다시 한번 거쳐야 빛나는 전자팔찌를 얻을 수 있다! 는, 성폭력을 ‘현실’로 경험하는 이들의 씁쓸한 자조를 최 의원은 하루만에 입증해 보여주었다. 그렇게 흥분해 마지 않던 성폭력의 ‘현실’을 보라! 가해자 개인이나 한나라당만의 문제로 몰아가는 흥분 또한 본 상담소는 경계하며 지켜볼 것이다.

한나라당은 사과, 파면으로 무마하지 말고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 여, 야를 막론한 모든 당은 당직자, 국회의원, 실무자 대상의 성폭력 예방 교육을 내실 있게 준비하고 실시하라. 무엇이 문제인지, 그 원리를 두고 두고 설명하고 교육하고 재차 확인하지 않으면 그들은 모르면서 아는 척 하고 있기 십상이다. 또한 성폭력으로부터 모든 개인이 자유롭고 안전할 권리를 보장하는 당내 반성폭력 규약을 제정하라.

성폭력 방지 대책을 내놓고 있는 정부 각 기관은, 어린이 성폭력에 대한 분노 여론에 밀려 어린이, 청소년 대상 범죄자에만 한정해서 내놓은 즉흥적인 대책을 꼼꼼히 살피고 성폭력 범죄의 근본적이고 전반적인 문제점에 대한 당면 과제를 연구하라. 그리고 정책과 법을 제정하고 집행하는 인력들에 대한 교육을 사활을 걸고 실시하라!

2006년 2월 27일
(사)한국성폭력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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